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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마법 웨딩홀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중·단편

공모전참가작 완결

에리카짱
그림/삽화
에리카
작품등록일 :
2024.05.22 16:44
최근연재일 :
2024.08.14 20:14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08
추천수 :
29
글자수 :
128,917

작성
24.06.04 11:17
조회
15
추천
1
글자
10쪽

옆집 오빠

DUMMY

오늘도 엄마는 볼 수 없었다.


가장 높은 언덕으로 올라오면 건넛마을이 훤히 보이는데 엄마의 모습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한밤, 두 밤 자고 나면 데리러 올 줄 알았다.


오늘도 엄마는 오지 않나 보다.


행방불명된 큰아버지 댁에는 아들이 없었다.

가난이 죄라면서 엄마는 둘째 아들을 큰아버지 댁에 양자로 보냈다.

손가락 걸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찾아온다고 했었다.

엄마밖에 모르는 애교 많은 아들을 보내면서 몇 날 며칠을 눈물로 보낸 엄마기에 꼭 올 줄 알았는데, 매일같이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홍일이 어디 갔나?”


큰어머니는 또 언덕에 오른 조카이자 양자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녔다.


새벽같이 나가 해질녁에야 돌아오는 홍일이 혹시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이었다.


“순영아, 홍일이 들어왔어?”


“엄마는 뻔히 알면서 또 찾아다녀?”


“아직 어린데 얼마나 어미가 보고 싶겠어.”


“그렇게 잘 알면서 애는 왜 데리고 와.”


“집안에 아들은 있어야지.”


“이해할 수가 없네. 난.”


순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거짓말쟁이”


홍일의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솟아올랐다.

형은 큰아들이라 안되고, 나는 되고.

뭐가 그래?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괜히 옆에 있는 풀만 죽어라 쥐어뜯었다.

바닥에 흙이 손톱 사이에 끼어 새까매졌다.

풀로 성에 차지 않아 괜히 돌멩이까지 집어던졌다.

무게가 더 있어서 그런지 던졌을 때 아래로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통통통 나면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에이”


아랫마을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려고 하다가 정말로 엄마가 듣고 속상하게 할까 봐 참았다.


“너지?”


하나로 땋아내린 긴 머리에 동글동글 눈망울이 맑은 여자아이가 손에 돌멩이를 들고 씩씩대고 있었다.


“어?”


“네가 이 돌 던진 거지?”


“아닌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모르지.”


혹시 내가 던진 돌에 맞은 건가?

겁이 났다. 아니라고 딱 잡아떼야지.

다쳤나?

홍일의 마음이 무거웠다.


“정말 너 아니야?”


“아니라고... 그런데... 혹시 너 다쳤어?”


“아니.”


휴 다행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어?”


“누가 다치면 어떡해.”


“넌 안 다쳤잖아.”


“난 안 다쳤지만 다른 사람이 다칠 수도 있잖아.”


“다른 사람이 무슨 상관이라고.”


“넌 왜 맨날 이러고 있어?”


소녀는 작정한 듯 홍일의 옆에 주저앉았다.

발을 쭉 뻗고 앉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길이였다.

쪼끄맣네 싶어 한 번 더 흘낏 쳐다보니 소녀 옷의 구겨진 틈으로 끼인 때가 꼬질꼬질했다.

킁킁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초라한 행색과 달리 홍일을 쳐다보는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에는 빈곤함이 없었다.


“왜 맨날 이러고 있냐니까?”


“넌 몇 살이야? 꼬박꼬박 반말이나 하고.”


“어른도 아니면서 높임말 해줘?”


“몇 살이야?”


“10살”


암만해도 부풀린 것 같지만 속는 척하고 슬쩍 눈을 내리깔며 점잖게 말했다.


“난 11살.”


“근데 왜 이렇게 키가 작아?”


“이게?”


이제 홍일은 엄마를 기다리려고 언덕에 오르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고 헐레벌떡 달려 나와 언덕배기에 앉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소녀가 쑥 하고 나왔다.

암만해도 나이를 속인 것 같지만 어쨌든 동생이니 9살이든 10살이든 홍일보다 어린 것은 매한가지였다.


“난 이제 학교 다닐 건데, 넌 안가?”


“난 안가.”


“왜?”


“사람마다 다 사정이 있는 거야.”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넌 어디 살아?”


“뭘 그렇게 물어봐. 그냥 사는 얘기나 해.”


남들보다 어른스러운 소녀라 얘기하는 재미가 있었다.


“넌 이름이 뭐야?”


“참 빨리도 물어본다. 오순녀”


“순녀? 쿠쿠쿠”


“웃지 마. 넌?”


“이홍일”


“그렇구나.”


긴 나뭇가지를 빼 든 둘은 마주 보고 있었다.


“시작할까?”


“시작해.”


“얍!”


소리와 함께 옆으로 날린 나뭇가지는 풀의 가장자리를 싹둑 잘라냈다.


“우와! 된다 돼.”


나뭇가지를 든 소녀가 팔짝팔짝 뛰었다.


“오빠 멋있다.”


홍일의 심장을 때리는 소리였다.

두근두근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순녀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됐지만 찾을 방법이 없었다. 홍일이 아는 것은 순녀라는 이름 하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멘 채 그대로 언덕을 올랐지만 소년이 큰 학교로 진학할 때까지 순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잊히지 않은 채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DALL·E 2024-06-04 10.32.05 - A Japanese anime style scene set in 1920s Korea, featuring an 11-year-old boy and a 10-year-old girl standing on a hill, facing each other. The boy, H.jpg


살면서 좋은 가정을 꾸리고 아들딸 낳으며 행복하게 사는 게 사람 사는 순리라고 했지만 홍일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큰어머니 아들로 충실하게 살았다.

친어머니......

그렇게 아리고 그립던 어머니.

힘든 시기를 지나고 학교를 졸업한 후 괜찮은 직장에 취직하여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던 홍일은 쓰러진 어머니 병수발을 드느라 병원과 회사를 오가는 삶을 살았었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묻는다면 그냥. 어머니니까.

키워준 큰어머니도 어머니고, 낳아준 어머니도 어머니니까.

그럼 홍일의 인생은?


이제는 두 어머님이 다 돌아가시고 회사도 퇴직해서 할 일이 없었다.

경기도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에서 호수 공원을 산책하며 보내는 일상이었다.

치열하게 살았는데, 가슴 가득 그리움만 안고 언덕을 오르던 어린 시절 홍일과 별다를 게 없는 매일이다.


오전 10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시간에 찾은 산책길은 고요하다.

내일은 근처 산길이라도 걸어볼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연이 그리워진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다가 툭 하고 떨어지는 별 시답잖은 것인데 그냥 보고 있으면 좋다.


“아이고”


무언가에 부딪히는 느낌과 동시에 차가운 액체가 옷으로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이게 잠깐 하늘을 보다가 앞을 놓쳤습니다.”


카랑카랑하면서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니 괜찮아요.”


돌아본 그의 눈에 10살이라 우기던 조그만 여자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나이 들어 헛것이 보이나 하는데 눈을 비벼봐도 깜빡여봐도 그대로 있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 박혀있던 기억의 조각처럼 떠오르는 얼굴.


“순녀?”


죽을 때가 되었나?

사람이 갈 때가 되면 기억이 거꾸로 간다는데...

갑자기 어린 순녀의 모습을 보다니....

하다가 앞으로 뚝뚝 떨어지는 커피 물과 축축해지는 피부의 느낌이 상상만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순녀?”


다시 한번 불러봤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겠지 하는 마음도 섞여 있었다.


“누구? 오빠?”


설마 하는 마음과 동시에 눈앞에 주름진 순녀의 얼굴이 들어왔다. 곱게 나이 들어 밝은 얼굴 표정이 그대로 있었다.


“알아보겠어?”


“어떻게 못 알아봐.”


“여기 살아?”


“너도?”


할 말과 시간이 많은 나이라 어색하게 선 채 하던 얘기를 근처 가게로 들어가 마저 이었다.


“잘 살았어?”


“못 살진 않았지. 세상에 너무 신기하다.”


끈이 길었을 뿐 다시 만나야 하는 인연이었는지 이렇게 살아서 만나게 되었다.


“자식들은 다 장성했고?”


순녀의 떠보는 말에 홍일은 바로 답했다.


“자식 없어. 아직 혼자야.”


“어머나. 왜?”


놀란 순녀가 홍일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 오빠 외로웠겠다.”


그 한마디에 홍일의 울음보가 터진 것은 두고두고 순녀의 놀림감이 되었다.


순녀도 홀로 지내긴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안 해 본 일이 없었던 순녀는 본인 말로 생활력 하나는 끝내줘서 조카들 시집 장가까지 다 보내고 남은 돈으로 편하게 놀고먹고 있다고 했다.


힘든 일 다 겪은 후에 만나려고 이제야 보나보다 좋게 좋게 얘기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지나온 세월이 야속하지만 그러기에 시간이 너무 없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면사포를 씌어주고 싶은 마음에 웨딩홀을 찾았다.


마법 같은 결혼식 문구 하나가 마음에 들어 멀리 용산까지 찾아왔다. 으리으리한 입구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순녀에게 정말 멋진 결혼식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계단을 올랐다.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과장은 둘을 안으로 안내했고, 사방에 거울이 있는 상담실에서 홍일의 어깨는 아래로 떨어졌다.


거울로 보이는 나이 든 둘의 모습 때문인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세요.”


“저...”


용기를 냈다.


“식을 치르고 싶은데, 올 사람도 많지 않고, 보다시피 저희가 나이가 좀 있어서요.”


“전통혼례를 원하시나요?”


과장의 카랑카랑한 질문에 순녀가 쑥스러운 듯 작게 답했다.


“하얀 웨딩드레스요. 드라마에 나오는 하얀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어요.”


“그럼요. 신부는 하얀 드레스죠. 혹시 또 원하시는 게 없을까요? 이럴 테면 상상 속에서 하고 싶은 결혼식이라든지. 마치 꿈속에서처럼.”


“할 수만 있다면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고운 모습으로 하고 싶죠.”


우스갯소리처럼 순녀가 말하자 과장이 손뼉을 쳤다.


“그럼 아주 많이 행복하겠죠?”


“네?”


“아주아주 많이 행복하겠죠?”


과장이 다시 한번 행복을 강조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녀는 상상했다. 예전의 싱싱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둘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순녀를 보며 과장은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

DALL·E 2024-06-04 10.40.22 - A Japanese anime style scene set in 1998, featuring a chance meeting between a 60-year-old man and a 60-year-old woman in a quiet park. Both the man 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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