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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마법 웨딩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중·단편

공모전참가작

에리카짱
그림/삽화
에리카
작품등록일 :
2024.05.22 16:44
최근연재일 :
2024.06.20 14:3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207
추천수 :
18
글자수 :
76,439

작성
24.06.05 15:00
조회
10
추천
1
글자
10쪽

잃어버린 시간

DUMMY

‘깜빡깜빡’

조명의 불빛이 꺼졌다가 켜지기를 천천히 반복했다.

‘깜빡깜빡’

까만 어둠 뒤에 빛이 들어오자 마차를 타고 앞으로 나오는 신랑 신부의 얼굴이 순간 어린아이로 변했다.


“어머!”


“쉿!”


서리가 어느새 곁에 서서 유나에게 주의를 줬다.


‘뭐야?’


입모양으로 묻는 유나를 무시하고 서리는 사회자 석 마이크 아래에 놓인 붉은 막대를 힘껏 내렸다.


‘여긴 뭐가 참 수동적이네. 오래 일하려면 팔 힘부터 길러야 하나?“


유나가 팔뚝을 올리고 힘을 주어 접어 보였다.


서리를 슬쩍 쳐다봤지만 역시나 보지도 않았다.


서리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움직이는 마차를 바라보자 웨딩홀 주례석 아래에서부터 하얀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이게 사람들을 잠들게 하는 가스인가? 하아암!’


제일 먼저 유나에게 반응이 온 듯 길게 하품을 했다.


깜빡이는 조명까지 더해져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건 최면 같은 건가?


깜빡깜빡

어린아이 모습의 신랑 신부는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있었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


웃음소리...


“행복해 보인다.”


저도 모르게 따라 웃으며 유나가 쭈그리고 앉았다.


서리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마차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 졸려! 쟨 왜 괜찮은 거야? 정직원은 다른가?”


마차는 앞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하늘로 붕 솟아올랐다.


작은 아이들을 태운 마차가 하늘을 날자 재미있다는 듯 까르르 웃음소리가 주변에 번졌다.


웃음소리가 귀를 울리고 하얀 연기가 눈앞을 흐리게 했다.

잠들면 안 되는데 눈에 힘을 주고 애를 써도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는 눈꺼풀을 이길 수 없었다.


DALL·E 2024-06-05 09.59.54 - A whimsical scene in the style of Japanese anime, featuring a carriage flying through the sky. Inside the carriage, an 11-year-old girl wearing a wedd.jpg


앗 차가워!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차가운 물이 유나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여기가?

생전 처음 와보는 숲 속 개울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었다.


"아, 나 하필이면 축축하게 물속에서 눈을 뜰 건 뭐야?"


"여기 어디야?"


일어나니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하고

첨벙첨벙 발목까지 물길을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은 봄날인지 찬바람이 불었지만 개나리와 벚꽃이 활짝 피어 주변을 환하게 하고 있었다.

“에취! 이러다 감기 걸리겠네.”

물기 때문에 엉덩이에 착 달라붙은 스커트를 떼어내 손에 꽉 쥐자 물이 뚝뚝 떨어졌다.


무작정 언덕을 오르던 유나는 까르르 웃음소리에 발을 멈췄다.

찾았다!

일단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좌우를 살폈다.


탁! 탁 소리와 함께 하얀 드레스 자락이 밖으로 나왔다.


긴 드레스는 바닥에 끌려서 끝자락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직업 정신인지 저걸 어쩌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어울리지 않게 나무 막대기를 든 소녀는 주변을 탁탁 때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턱시도 차림인 소년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이거 이렇게 했었지?”


“안 잊었구나.”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내가 제일 행복했던 시간.”


“앞으로 더 행복하게 지내자."


“당연하지. 하하 하하 하하”


웃음소리가 나무 사이사이로 울리며 둘은 산책하듯 천천히 길을 걸었다.


1000년은 됐을 것 같은 검고 두꺼운 나무 한 그루가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여자 귀신처럼 긴 가지를 아래로 내려 길고 뽀족한 나뭇잎이 모두 바닥을 보고 있었다.


음침한데 하며 신기한 마음에 구멍 난 나무속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맞다. 아이들! 아니 신랑 신부!


그사이 멀어진 그들을 쫓느라 서둘렀다.


찾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좀 전과 달라졌는데... 뭐지?

바닥을 덮고 있던 소녀의 드레스가 위로 부쩍 올라가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가 길어져서 허리까지 내려온 하늘하늘한 생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옆으로 고개를 돌린 소녀의 얼굴은 어느새 자라 열대여섯 살은 되어 보였다.

설익은 얼굴 속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이 귀여운 여자아이는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부끄러운 듯 하도 손을 비벼대는 통에 치마에 쪼글쪼글 주름이 져 있었다.


어린 시절 얼굴에서 약간 못생겨진 남자아이는 이마에 여드름이 돋아나 있었다.

빨긋빨긋한 자국 때문에 소년의 얼굴은 더 붉게 보였다.

둘 사이에 피어난 어색한 공기 사이로 부끄러운 듯 서로를 바로 보지 못하는 그 나이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천천히 산길을 걷는 그들의 모습이 커다란 나무에 가려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두 사람은 아름다운 성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서로를 자연스레 바라보는 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젊었다.


“예쁘다.”


남자의 진심 어린 말에 여자는 얌전하게 웃었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이렇게 성장했구나!”


여자도 조용히 말했다.


“실망이야?”


“아니, 아까워서. 그 시기를 놓친 게. 그냥 한 번쯤 보고 싶었어.”


“나도 당신의 젊은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참 예뻤네. 좋아해 준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연애도 숨돌릴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지. 돈 버느라 그런 거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좀 아쉽긴 하다. 이렇게 예뻤는데.”


“고생했어. 수고했어.”


거칠고 큰 손으로 부드럽게 머리를 어루만지며 하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오빠도 고생했어.”


중얼거리듯 말하며 여자가 남자의 손을 꼭 맞잡았다.

바라보는 둘의 눈에는 이제 평온함이 느껴졌다.


“궁금했어. 당신의 살아온 모습이.”


“어땠어?”


“예뻐. 지금도”


“연애 안 해 봤다면서 여자 마음은 참 잘 알아.”


“연애를 책으로만 배워서.”


“농담도 할 줄 알고.”


“이제는 책임질 사람도 없으니 서로만 바라보고 잘 살자.”


“속이 다 시원하네. 우리 할 만큼 한 거지?”


“그럼”


젊은 두 사람은 노인의 말로 이야기하며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뭐가 이리 짠해...”


가족들을 위해 자신은 뒤로하고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이 참 고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나는 내 밥그릇도 안 치웠는데...

참 철이 없이 살고 있구나 나는...

유나의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겨우 몇 십 년 차인데 그들의 20대와 유나의 20대는 너무나 달랐다.


이런 마음도 며칠 가지 않겠지만

한편으로 지금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의 삶이 존경스럽고 또 서글펐다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다른 한편으로는 책임져야 할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맏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는 과거의 관습이 부조리하다 생각되었다.


그런데 뭐 어쩌겠어.

시간은 지났고,

그렇게 결정했었고,

무를 수 없는데.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준다는 게 멋있었다.


마법 웨딩홀은 이런 곳이구나.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결혼식도 할 수 있지만 마음속 한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게.

자신이 마법 웨딩홀의 스텝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물론 정직원은 아니지만...


“정신 차려!”


찰싹! 하는 소리와 약한 통증에 눈이 떠졌다.


“너 자꾸 근무 시간에 잘 거야? 그럴 거면 집에 가서 자. 편하게.”


“난 엄만 줄 알았네. 목소리 톤이 딱 우리 엄마야.”


“너 그거 욕이지?”


서리에 날 선 목소리에도 유나의 입은 자꾸 웃고 있었다.


“아직 식 중이지?”


하얀 연기는 아래로 가라앉아 잔잔한 호수 위에 있는 것 같았다.

나이 지긋한 신랑과 신부는 주례 앞에 선 채 가만히 있었다.

발이 위로 떠 있지도 하객들이 잠들어 있지도 않은 평범한 결혼식이었다.


“주례 하시는 분 누구야? 신랑 신부보다 젊은데”


유나가 낮게 말했지만 서리가 검지를 올려 조용히 하라고 몸으로 말했다.


“직업 주례하시는 분”


입으로 말하는 서리의 말을 유나가 용케 알아들었다.


“직업 주례도 있어?”


숨소리를 넣어서 가능한 입으로만 말했지만 소리가 컸는지 서리가 또 째려봤다.


“쏘리”


“쉿”


눈치가 없는 건지 요령이 없는 건지 유나는 자꾸 실수했다.


“여기 다 있어. 한 열 분쯤”


“그런 거구나.”


주례도 직업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하긴 나이 드신 분들은 주례 구하기도 힘들 것 같다.


“사실 하객들도 다 여기 분들이셔.”


“응?”


“너무 썰렁한 결혼식은 싫다고 해서.”


“오, 그런 것도 있구나.”


“인간관계까지 챙기기에 인생 너무 바쁘지 않니?”


그러고 보니 유나도 넓지 않은 인간관계가 갈수록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가 가장 친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손가락을 쫙 펼쳐 하나씩 접으며 친한 친구를 떠올렸지만 진희와 영식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건가 싶어 학창 시절부터 친했던 사람들을 돌아봤다.

소위 명문대를 다니는 친구들.

대학 때 애매하게 인사하던 사람들.

룸메이트 무서운 언니들....

생각만 해도 피곤해지는 게.

에이, 그냥 이대로 살자.

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인연들이 생기겠지 싶었다.


“뭐, 인생을 되돌아보는 그런 뻔한 짓 하고 있는 거 아니지?”


귀신이다. 서리 쟤는 눈치가 빨라서 진급도 빠른가 보다.


“뭐해?”


“뭐?”


“식 끝났잖아. 신부 드레스 잡아.”


“어? 어. 어”


달려가는 유나의 다리가 꼬여 앞으로 넘어질 듯 휘청댔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조끼 뒷덜미가 잡힌 채 돌아본 유나의 눈과 똑단발 머리를 한 남자의 깊은 눈이 마주쳤다.

그 와중에 앞머리는 왜 저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긴급한 상황은 아니었나 보다.


“잡았다.”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남자가 유나를 더 세게 당기자 남자의 넓은 어깨에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DALL·E 2024-06-05 10.10.18 - A detailed, colored scene in the style of Japanese anime. A 20-year-old woman with her hair up in a bun, wearing a white shirt, black vest, and black .jpg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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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 이시언
    작성일
    24.06.05 20:49
    No. 1

    판타지를 빌었지만 정말 현실적인 글이네요 이번회 그림도 맘에 들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에리카짱
    작성일
    24.06.06 09:43
    No. 2

    ^^~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서 한 발자국씩 들어가려고 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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