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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셔냐옹은 체셔냐옹이라 체셔냐옹

검은머리 던전 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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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체셔냐옹
작품등록일 :
2024.05.08 12:13
최근연재일 :
2024.06.10 11:3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8,340
추천수 :
720
글자수 :
19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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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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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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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2장 장인의 발걸음 (16)

DUMMY

당장이라도 대문을 박차고 나갈 듯이 전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뤼시앙은 모두를 선도해야 할 베테랑 모험가로서 무모한 돌진에 나서는 대신 팽팽한 긴장감에 바람을 뺐다.


“하지만 출발도 전에 탈진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출발 전에 심신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이걸 하나씩 드시죠.”


“이건?”


“살아남는 모험가는 항상 만약에 대비하는 모험가지요.”


뤼시앙이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손가락 두 개 크기의 작은 막대를 네 개 꺼냈다. 얇은 기름종이를 벗기니 달콤한 냄새가 퍼졌다.


“견과류를 밀가루와 함께 꿀로 뭉친 비상식량입니다. 제대로 된 식사가 될 수는 없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목숨을 구해줄 정도는 됩니다. 무엇보다 작고 가벼워서 부담되지 않고요.”


‘에너지 바다!’


“항상 모험가 파티의 최대 인원인 6인 기준으로 챙기고 다닙니다. 이것 덕분에 던전 깊은 곳에서 살아 돌아온 적도 있지요.”


“행운의 음식이로군. 고맙게 받겠네.”


“감사히 받겠소.”


“감사합니다.”


“물기라고는 눈물만큼도 들어있지 않은 바짝 마른 음식이니 최대한 천천히 먹어야 합니다.”


텅텅 빈 위장에 막대한 당분은 그다지 친근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애초에 던전 따위에 들어오면 안 됐다.


에드릭은 물을 마시며 간신히 삼켰으나 지향은 목이 시큰할 정도로 달콤한 꿀을 최대한 천천히 음미했다. 침과 함께 한 모금씩 넘어갈 때마다 몸에 활력이 도는 기분이었다.


로타는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야성적으로 와드득 와드득 씹어 삼키고는 물 한 병을 꿀꺽 삼켰다. 남은 것도 그렇게 해치웠다.


“남은 둘은 또 있을지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의미로 아껴두겠습니다.”


“좋은 판단이네. 두 대장장이는 천천히 들게. 나는 다시 마력 순환을 거치며 기다릴 테니.”


“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최상 같은 말을 감히 붙일 수는 없겠지. 지금도 마력이 조금씩 누출되고 있으니. 하지만 안심하게. 적어도 이 던전을 나갈 때까지는 버틸 수 있겠어.”


로타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된 거 아예 무장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출발하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급하게만 움직이는 게 능사는 아니잖습니까?”


“로타 경의 상태가 안정된 만큼 그 말에도 일리가 있군요.”


뤼시앙은 남은 에너지 바를 입에 털어 넣고 주머니를 열었다. 손도끼 한 자루, 투척용을 겸하는 전투 단검이 세 자루 있었고 지향이 준 투척 단검도 한 세트가 남았다.


여기에 윤활유가 두 병, 폭풍의 분노가 한 병, 연막탄이 하나, 접이식 다기능 공구가 하나, 다목적 단검이 한 자루 더 있었다.


원래라면 투척한 무기는 전투 후 회수해야 했으나 탈출 과정에서 회수하지 못한 무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이제는 무기 투척에도 유의해야 했다.


“종류가 엄청 다양하군요.”


“다른 역할군과 달리 길잡이에게는 전투의 척후뿐만 아니라 정보 수집, 함정 파훼, 장애물 돌파 등 다양한 역할이 요구됩니다. 도구가 번잡해지는 것도,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지요.”


“그런 것치고는 잘 싸우던데요?”


“달인이라는 칭호를 받으려면 최소한의 전투력은 갖춰야 하는 법입니다.”


“대단합니다. 우선 무기 중심으로 살펴볼게요. 하지만 수가 이래서야 투척 위주의 전술은 아무래도 제한이 걸리겠는데, 혹시 장검을 다룰 줄 아나요?”


“일단 쓰는 법은 압니다. 하지만 잘 다룬다고는 못 합니다.”


“다행이군요. 그러면 이것도 무장에 포함하지요.”


지향이 망령 기사의 검을 내밀었다. 악의마저 느낄 수 있던 흉흉한 마력은 온데간데없었다.


로타의 검을 재시동하는 과정에서 검의 핵심과도 같은 무언가가 부서졌다. 설령 지향이 마석을 같은 방식으로 퍼부어도 재생할 수 없었다.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덕분에 검을 쓰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직접 마력을 보지 못하는 뤼시앙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망령 기사의 검 아닙니까? 제대로 정화와 축성은 거친 겁니까?”


“정화랄까, 마력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어요. 이대로는 평범한 철검과 다르지 않습니다.”


“으음. 그러고 보니 리타 경의 마법검을 고칠 때 그걸 어떻게 한 것 같던데.”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검에 있던 마력을 모두 소진했지요.”


“리타 경의 검은 괜찮은 겁니까? 저주가 옮겨갔거나 한 건 아닐지.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갑자기 터지면 그냥 위험하다는 말로는 못 넘어갑니다.”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건 아닙니다. 마법의 요체를 옮긴 게 아니라 마력만 끌어다 썼으니까요.”


뤼시앙은 뭔가 더 말하고 싶은지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망령 기사의 검을 붙잡았다. 몇 번 가볍게 흔들어 본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꼈는지 검을 두 손으로 잡고 휘둘렀다.


“검 자체는 좋은 물건입니다. 부디 이걸 쓰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좋겠군요.”


“그 부분은 안심해도 좋아요. 우선 그걸 지금까지 들고 다닌 나도 무사하니까.”


“그도 그렇군요.”


뤼시앙은 출발 전에 연습 삼아 검을 들고 몇 가지 자세와 베기를 연습했다. 언뜻 알렉스가 쓰는 검술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파지법이나 팔의 움직임 등 세세한 부분이 달랐다.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고 곁눈질로 익혔구나. 아마도 파티나 기사단의 검사를 보고 배웠겠지.’


그렇다고 약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실전에서 긴 무기로 싸우고, 그러고 살아남으면서 감각을 익힌 사람이었다. 신체 능력과 결합하면 어지간한 적은 아무 무리 없이 썰어버릴 것이다.


물론 망령 기사 같이 검술에 정통한 적과 싸울 때는 오히려 장검을 버리고 원래의 스타일로 싸우는 게 훨씬 강할 테지만.


그렇다면 그를 지원하는 게 장인이 할 일이다. 지향은 배낭을 뒤져 남은 투척 단검을 모두 꺼냈다.


두 묶음 아홉 개. 로타의 검을 수리할 때 써서 하나가 줄었다. 그래도 탄환이 아홉 개나 늘어나면 숨통이 트이리라.


그리고 이비한테 줄 생각으로 만들던 전투용 단검이 한 자루 더 있었다. 좁고 뾰족한 마름모 단면의 칼날과 가운데가 볼록한 자루는 찔러 죽이는 데 최적화된 모양새였다.


“이것들도 챙기시죠. 혹시 강적이 나타나면 쓸 수 있도록.”


“아주 좋군요. 감사합니다.”


준비를 마칠 무렵, 로타도 다시 나왔다. 한결 나아진 안색이었다.


“이제 출발하지.”


“예. 선두는 제가 맡겠습니다. 장인 두 분은 바로 뒤에 바싹 붙도록 하고 로타 경이 후미를 맡아 주십시오. 뒤쪽보다는 전면의 좌우를 경계해 주기 바랍니다.”


“알겠네.”


뤼시앙이 즉석에서 대열을 짰다. 작전은 단순했다. 최적 경로 최고속 돌파. 배후의 적은 공격권에 들어오지 않는 한 무시한다.


던전에서 탈출하는 경로는 이미 뤼시앙의 머리에 모두 들어 있었다. 뤼시앙은 대문을 열자마자 망설임 없이 큰 걸음으로 골목을 누볐다.


“가장 빠른 경로는 대로를 타는 거지만 투사 공격에 사방이 노출됩니다. 따라서 성문 앞 대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골목을 이용합니다.”


“이해하네.”


뤼시앙은 지향과 에드릭의 체력을 배려해서 너무 빠르지 않은 속도로 움직였다. 조금 빠르게 걷는 정도의 속도였다.


덕분에 지향도 무리하지 않고 뤼시앙을 따라갈 수 있었다. 뤼시앙은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주위를 살피기 위해 잠깐씩 멈췄는데 지향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휴식 시간이었다.


“대장장이 노지향. 그대는 노점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었지?”


“예, 그렇습니다.”


잠시 멈춘 사이 로타가 지향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대는 혹여 마법사인가?”


오랜만에 받는 오해였다. 하긴 눈앞에서 마법을 되살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아닙니다. 아쉽게도 마법을 부리는 재주는 없습니다. 단지 마력에 관련된 모종의, 뭐랄까 특이한 재능, 능력이 있습니다.”


“내 검을 되살린 것처럼 말인가?”


“엄밀히 말씀드리면 되살린 게 아닙니다. 마법은 깨지지 않았고 단지 마력이 부족해 잠들어 있던 거지요. 제가 한 건 잠든 마법을 다시 깨운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불가해한 재주다. 나는 마력을 타고났기에 마법에도 어느 정도 조예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마법을 되살리는 재주는 오늘 처음 봤다.”


“저도 제가 공부해서 배우거나 노력으로 얻은 능력이 아닌지라 뭐라 설명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됐다고밖에는······.”


“타고난 재능이란 말인가.”


“그에 가깝지요.”


‘엄밀히 말해서 타고난 건 아니고 누가 주입한 거지만, 그것도 설명할 방법이 없구나.’


로타는 다시 한동안 침묵했다. 이대로 이야기는 끝인가 싶었는데 로타가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런 능력을 지녔음에도 노점 대장장이인가.”


“이 능력을 개화한 건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이름이 대륙 곳곳에 퍼지는 것도 이제 곧이겠군. 그 전에 그대를 취하고 싶구나.”


“잘못 들었습니다?”


“드라켄바르트 가문은 독자적인 제철소와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대를 그곳의 장인으로 초청하겠다.”


지향과 에드릭 모두 깜짝 놀랐다. 지향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로타가 먼저 부연 설명했다.


“비단 내가 입은 은혜가 아니더라도 공작 전하께서는 장인을 우대하신다. 그대는 마땅히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하지. 당연히 그대에게 주어질 보상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건 정말, 감사합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자에게 마땅한 것이 주어지는 법. 감사할 일이 아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로타 경. 지향 장인은 이미 대장장이 연합에 들기로 했습니다.”


“뭐라? 그 말이 사실인가?”


두 사람이 지향을 빤히 바라봤다. 거짓말할 이유도 없거니와 거짓말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지향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타 님의 검을 수리하는 도중에 에드릭 장인이 연합의 가입을 추천했고, 저는 거기 승낙했습니다.”


“그런가. 흠. 하지만 아직 연합에 ‘행정적으로’ 들어간 건 아니겠군. 그렇다면 지금 대장장이 노지향이 마음을 바꿔도 아무 문제 없지 않나?”


‘도의적인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걸로 취급하는 건가.’


“무, 물론 그렇긴 하지만······.”


“더군다나 드라켄바르트의 문은 늘 장인에게 열려 있다. 에드릭 경, 그대 또한 연합의 장인이라면 실력은 확실히 검증된 사람이니 드라켄바르트로 초청하고 싶은데.”


화살이 드리프트를 하며 에드릭에게 머리를 돌렸다. 에드릭은 두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모처럼의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를 이끌어 준 연합과 한평생을 함께한 대장간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참으로 아쉽군. 하지만 연합이 이끌지도 않고, 한평생을 거기서 보내지도 않은 대장장이 노지향은 다르겠지.”


‘와, 이게 정치의 화법인가?’


지향은 상황을 이끌어가는 로타의 기교에 감탄했다. 전투력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말도 잘 했다.


“그렇게, 그건, 그렇습니다만.”


에드릭이 바라보는 눈길이 지향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


물론 에드릭과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고 그에게 어떤 빚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에드릭이 딱 한 걸음 빨리 지향에게 닿았을 뿐이었다. 그 한 걸음이 마음에 발자국을 남겨서 그렇지.


대장장이 연합과 드라켄바르트 가문을 저울질해서 결정하는 건 지향의 선택이었다. 문제는 드라켄바르트 가문에 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한 거였다.


물론 그냥 귀족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제철소까지 운영하는 대귀족이니만큼 거기에 소속된다고 연합에서 해코지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연합에 비해 인프라와 인력이 부족하고 행동반경에 제약이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반면 연합에서 접근하기 힘든 마법의 정보에 접근하기는 쉬워 보였다. 당장 로타가 들고 있는 검도 마법이 걸려 있지 않은가?


어쨌든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와의 사이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입을 열기 힘들었다.


최선은 아니지만, 일단 보류를 말하기 위해 입을 떼는 순간 지향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마물입니다. 대화는 조금 뒤로 미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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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장 장인의 발걸음 (3) +3 24.05.26 151 14 12쪽
20 2장 장인의 발걸음 (2) +2 24.05.25 160 18 12쪽
19 2장 장인의 발걸음 (1) +1 24.05.24 161 19 11쪽
18 1장 던전의 속삭임 (완) +3 24.05.21 210 21 13쪽
17 1장 던전의 속삭임 (16) +4 24.05.20 189 20 14쪽
16 1장 던전의 속삭임 (15) +1 24.05.19 208 20 13쪽
15 1장 던전의 속삭임 (14) +4 24.05.18 205 18 12쪽
14 1장 던전의 속삭임 (13) +5 24.05.17 205 21 13쪽
13 1장 던전의 속삭임 (12) +4 24.05.16 215 19 12쪽
12 1장 던전의 속삭임 (11) +2 24.05.15 233 21 13쪽
11 1장 던전의 속삭임 (10) +4 24.05.14 248 20 12쪽
10 1장 던전의 속삭임 (9) +6 24.05.13 271 21 12쪽
9 1장 던전의 속삭임 (8) +4 24.05.12 270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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