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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검향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난세의 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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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검향
작품등록일 :
2024.05.19 17:44
최근연재일 :
2024.07.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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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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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3,335

작성
24.05.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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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1쪽

성을 바꾼 개자식이 되다

DUMMY



1


관통(管統)은 청주 평원국 사람이다. 그의 생애를 보면 건안 8년 청주자사 원담 밑에서 동래 태수를 맡고 있었다. 당시 원담은 아버지인 원소 사후 기주를 차지한 동생 원상과의 교전에서 패하였다. 평원국 탑음현(漯陰縣)에 있던 유순(劉詢)은 반란을 일으켰고 많은 성이 호응하였다.


원담이 “주가 온통 배반하니 설마 나의 부덕이란 말인가!”라며 탄식하였다. 곁에 있던 별가(別駕) 왕수가 “동래 태수 관통은 비록 바닷가 먼 곳에 있지만 절대 배반하지 않고 이리로 올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10여 일 후, 과연 관통은 처자식까지 포기하고 원담에게 갔고, 처자식들은 살해당하였다. 원담이 낙안태수(樂安太守)에 임명하였다. 이후 원담은 조조와 잠시 연합해 원상을 축출한 후 발해군 남피현(南皮縣)에서 조조와 결전하였다.


낙안에서 군량을 보급하던 왕수는 원담이 위급하단 소식에 달려갔다. 미처 이르기도 전에 원담이 패사하였다. 그리고 다른 성들도 투항했지만 관통만은 낙안을 끼고 복종하지 않았다.


조조는 왕수에게 낙안으로 돌아가 관통의 머리를 가져오라 하였다. 왕수는 관통을 망국의 충신이라 여겨 그 결박을 풀어주고 조조에게 호송하였다. 조조는 기뻐하며 관통을 사면하였다. 한마디로 지조를 지킨 의리의 사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세 명과 유달리 친밀하게 지내던 어느 날. 이날도 저녁에 정현의 강론이 있었는데 경옹과 다투는 일이 벌어졌다. 노식 문하에서처럼. 대학의 한 구절인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에서 ‘격물(格物)’의 해석을 놓고 정현과 경옹의 한바탕 설전이 전개되었다.


위에서 ‘격(格)’을 정현은 ‘오다’라는 의미의 ‘래(來)’로 보았고, 경옹은 ‘바로 잡는다’라는 의미의 ‘정(正)’으로 보았다. 따라서 정현은 ‘선에 대한 앎이 깊어지면 선한 것이 오고(先物), 악에 대한 앎이 깊어지면 악한 것(惡物)이 온다’라고 해석하였다.


반면 경옹은 ‘사물을 바로 잡는다’라는 의미로 해석해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그에 따라 정현의 노여움을 피할 순 없었으나 배우는 학우들로부터는 존경의 시선을 받았다. 물론 이런 일이 전에도 몇 번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튼 이런 일로 경옹은 정현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고로 경옹은 이날 이후로 정현으로부터 경학이 아닌 천문역수 등 다른 학문을 주로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그런 어느 날. 정현이 모든 학생을 불러놓고 말했다.

“나의 제자 헌화로 말할 것 같으면, 경학부터 천문역수에 이르기까지 나의 학문을 모두 대성하였다. 따라서 나로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어 내 곁을 떠날 것을 명하노라.”


스승의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리자 손을 저어 조용히 시킨 정현이 이어 말했다.

“내가 스승 마융 선생과 이별할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의 학문은 강성과 함께 동으로 간다’라고. 나는 그 말을 헌화에게 돌려주고 싶다. 오늘부로 나의 학문은 헌화와 함께 북으로 간다.”


“우와.....!”

스승의 더할 나위 없는 찬사에 학생들의 환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경옹이 말했다.


“과찬의 말씀! 하나 스승님의 은혜 평생 간직하고, 스승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가일층 노력하겠사옵니다.”

“좋다! 오늘 간단히 송별연을 여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자.”


이렇게 되어 이날 오후 간단하지 않은 송별연이 개최되었다. 돼지도 한 마리 잡고 술도 여러 동이가 나와 오후 한때를 즐겼다. 그리하여 송별연이 파하자 경옹이 장합을 찾아가 말했다.


“아직 스승님의 무예 절반도 익히지 못했는데, 떠나게 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그런고로 이 옹이 청한 몇몇 아이들과 함께 저자에 나가, 한잔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허허, 이를 말인가. 나도 헌화와의 작별이 아쉽기만 하네. 하니 당연히 가야지.”

“고맙습니다.”

이렇게 되어 평소 친하게 지내던 국연, 왕수, 관통에 장합까지 다섯 명이 스승의 허락하에 고밀현 저잣거리에 위치한 객잔에 들었다.


그리하여 석별의 정을 나누며 서너 순배의 술잔이 돌았을 때였다. 갑자기 한 무리가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손님들을 욕하고 무시하는 것에 더 나아가 폭력행사에 이르니 손님 전부가 달아났다. 그러나 유독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경옹 일행이었다.


그 결과 무뢰배들은 일행에게 다가와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야, 너희들은 왜 안 꺼지고 있어?”

진즉부터 울근불근하던 관통이 갑자기 벽력성을 토해냈다.

“이 자식들이 보자 보자 하니, 안 꺼져!”


“어쭈! 이건 또 뭐야?”

대뜸 무뢰배 중 한 명이 관통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이렇게 되자 무뢰배 다섯 명과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는 곧 휴대하고 있던 병장기를 꺼내 휘두르게 되었고, 무뢰배의 우두머리인 놈이 장합의 칼에 살해되는 참경(慘景)에 이르렀다.


비로소 일행 모두가 정신이 번쩍 들었으나 이미 쏘아놓은 화살이요,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나머지 무뢰배 모두 도망한 가운데 이미 벌어진 살인사건에 일행도 얼이 빠져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경옹만은 침착하게 객잔 주인을 불러 물었다.


“죽은 자의 신분을 혹시 아십니까?”

“왜 모르겠소. 평소에도 악행이 많아 고밀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불한당이외다. 이 자가 그렇게 된 데는 이 고을의 호족 손씨(孫氏)의 비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오.”


“오호라! 그런 일이 있었군요. 혹시 호족이라는 손가네의 집을 알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요. 길거리에 나가 어느 집이냐고 묻는다면 삼척동자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오.”


“고맙소이다. 이건 약소하지만 계산하시고 남은 것은 이 자의 장례비로 썼으면 하오.”

말과 함께 경옹은 봇짐에서 동전 한 꾸러미를 꺼내 주인에게 던져주었다. 그러자 이를 받아 든 주인이 말했다.


“어서 피하시오. 관의 이졸(吏卒)들이 몰려오기 전에.”

그제야 일행 모두가 또 한 번 정신이 번쩍 든 가운데 경옹이 말했다.

“우리 다섯 누구도 이제는 살인죄에 연루되어, 그 죄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소이다. 그러하니 모두 이곳을 떠나되, 내 계획에 따라 주시길 바랍니다.”


이후 대책 없는 이들 모두가 경옹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일행이 탐문(探問)하여 몰려간 곳은 이 지방의 유력 호족이라는 손가네였다. 이미 밤이 깊어 달빛 한 점 없는 가운데 일행이 그 집에 이루니 집안 전체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비호하는 자가 살해되었다는 말에 호족 손가가 범인을 잡아 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담장 너머로 바라보고 있던 경옹의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바로 마굿간이었다.


곧 경옹은 오면서 준비한 횃불에 불을 붙이더니 일행을 이끌고 몸을 숙인 채 마굿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건초더미에 던져버리니 잠시 후에는 화광이 충천했다.


이에 말들이 놀라 날뛰는 가운데 담장을 훌쩍 뛰어넘은 경옹, 장합, 관통 세 명이 마굿간 문을 여는가 싶더니 놀란 말을 제어해 훌쩍 올라탔다. 이어 두 필의 말을 여분으로 끌고 나와 왕수와 국연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다섯 명은 북이 아닌 서쪽을 바라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즈음에서야 손가네 장정들의 추격이 시작되었으나 얼마 후에는 그들의 추격도 중지되었다. 그들도 비록 손가의 녹을 먹고 있으나, 평소에도 손씨들의 횡포가 심하고, 죽은 자 역시 탐탁지 않게 생각했으므로 변명거리를 만든 다음에는 철수한 것이다.


* * *


그로부터 스무날 후.

일행 다섯 명은 마침내 완현에 도착하여 경가장을 찾아들었다. 이때는 벌써 181년 2월 초로, 161년 3월 3일생인 경옹의 나이 약관을 바라보고 있는 즈음이었다. 참고로 유비는 161년 4월 24일생으로 경옹보다 한 달 스무여 날 늦게 태어났다.


위의 생일 모두 음력으로 이 작품에서 기재되는 날짜는 전에도 그렇고 후에도 음력 날짜다. 아무튼 네 명과 함께 경가장을 찾아든 경옹이 아버지를 뵙자마자 하는 말이 기상천외했다. 아니 한마디로 싹수가 없었다.


“아버지도 아시죠? 이곳 유주 사람들의 방언에 의하면 우리의 성인 경씨(耿氏)를 간씨(簡氏)로 발음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래서 소자 오늘부터 간씨로 고쳐 부르기로 했습니다.”


“뭐, 뭐라고?”

한동안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기어코 분통을 터트렸다.

“4년간 유학 보내놓았더니 돌아와 한다는 말이 겨우 성씨를 바꾸겠다고?”


그렇다고 살인죄에 연루되어 혹시 수배되었을지 몰라 성씨를 바꾼다고 말할 수는 없어 간옹은 막무가내로 밀고 나갔다.

“그,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놈의 자슥이, 당장 나가! 당장 꺼지란 말이다. 당장 호적도 팔 테니 그런 줄 알고.”

“에이, 그렇다고 하늘이 맺어준 부자간의 정리가 끊어집니까? 그러니 진정하시고.......”


“아이고, 복장 터져.”

가슴을 쾅쾅 치며 곧 넘어가게 생긴 아버지 곁에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간옹은 재빨리 일어나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간옹이 일행 네 명을 데리고 간 곳은 완현 저잣거리 즉 시장통이었다.


시장통을 채 반 바퀴도 돌지 않아 간옹은 유비를 만나볼 수 있었다. 유비는 간옹의 지시대로 이미 시장통에 큰 상점 하나를 내어 그곳에서 화문석을 비롯해 돗자리, 짚신, 여타 버드나무 가지, 대나무, 댕댕이 등의 재료로 바구니 등 여타 용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우와! 헌헌장부가 되었구나!”

깃털로 만든 우선(羽扇) 대신 쥘부채를 들고, 푸른 실로 짠 두건인 윤건(綸巾)을 쓴 간옹의 모습이야말로 누가 봐도 고아하고 유장(悠長)한 모습이었다. 그런 까닭에 유비로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귀족이나 관리는 아관박대(峨冠博帶)라고 해서 높은 관모에 풍성한 옷과 넓은 허리띠를 매는 것이 한대(漢代)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나라 말이 되면 관모를 쓰지 않고 두건을 쓰는 것이 오히려 명사(名士)들의 유행이었다.


“너 또한 멋진 대장부가 되었어!”

“서로 금칠 그만하고, 등 뒤에 서 계신 네 분이나 소개시켜줘.”

“아, 그래야지.”


곧 간옹은 장준(張儁)으로 이름을 바꾼 장합, 국연, 왕수, 관통을 차례로 유비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리고 유비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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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감사,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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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출사 +1 24.05.24 877 16 11쪽
8 누이 도매금 처분 작전 +3 24.05.23 902 18 11쪽
7 누이 도매금 처분 작전 24.05.22 939 15 10쪽
6 보은 24.05.21 985 21 11쪽
» 성을 바꾼 개자식이 되다 +1 24.05.20 1,028 18 11쪽
4 국연 왕수 +1 24.05.19 1,061 17 10쪽
3 국의 +1 24.05.19 1,121 17 10쪽
2 공손찬 +1 24.05.19 1,221 22 10쪽
1 노식 문하 +7 24.05.19 1,416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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