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매검향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난세의 간웅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공모전참가작 새글

매검향
작품등록일 :
2024.05.19 17:44
최근연재일 :
2024.07.02 18:0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31,747
추천수 :
700
글자수 :
223,335

작성
24.05.19 18:00
조회
1,119
추천
17
글자
10쪽

국의

DUMMY



1


다음 날 아침.

경옹과 유비는 오전 수업에 참석하지 않고 노식이 거처하는 내실로 향했다. 머지않아 두 사람이 그의 거처에 도착하자 노식이 환한 웃음으로 맞으며 경옹에게 물었다.


“결정했느냐?”

“네, 스승님! 아무래도 돌아가 집안일을 도와야겠습니다.”

노식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내가 추천해 줄 테니 정현(鄭玄)에게 가, 배움을 더 이어 나가는 게 어떻겠느냐?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와 강성(康成)은 마융(馬融)이라는 한 스승 밑에서 수학하였으나, 그 배움의 깊이는 천양지차다. 그러니 그에게 가 학문 도야에 더욱 힘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생각에 잠겨 말이 없는 제자를 바라다보던 스승이 곧 붓을 드니 일필휘지로 정현에게 경옹을 부탁하는 추천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성이 끝나자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노식의 시선이 유비에게 향했다.


“너는 왜?”

“이 비(備) 또한 고향으로 돌아가 홀어미를 돕고 싶사옵니다.”

“음......!”

잠시 생각하던 스승 노식이 답했다.


“내가 볼 때 너는 문재(文才)가 뛰어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룰 것이니 실망 말고, 네 생각대로 하는 게 좋겠다.”

유비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기세로 목이 메어 말했다.

“스승님의 은혜 죽는 그날까지 간직하고 결초보은할 날만을 기다리겠사옵니다.”


“하하하......! 사내가 눈물이 그리 흔해서야 쓰겠느냐? 하하하......!”

다시 한번 호방한 웃음을 터트리지만 스승의 눈가도 붉어져 있었다. 사랑하는 두 제자를 떠나보냄에 그 마음도 애석함을 금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 * *


덕연과도 작별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스승 이하 전 학우들의 전송을 받으며 일로 탁현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6일 만에 마침내 탁현에 도착한 두 사람은 경평의 학당부터 들렀다.


마침 수업이 다 파한 시간대로 둘을 맞아들인 경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로 왔느냐?”

“여기.....”


경옹이 말없이 노식이 써준 추천장을 부친에게 내밀었다. 빼앗듯이 받아 든 경평이 빠른 속도로 읽더니 아들에게 말했다.

“노구강도 너의 학문 성취를 인정해주는 것을 보니 한없이 기쁘긴 하다. 그런데 네 생각은 어떠냐? 정녕 정 선생의 문하에 들어 학업을 잇고 싶은 것이냐?”


“그렇긴 하나.....”

“네 고민이 무엇인지 안다. 빈한한 아비의 처지로서는 다시 한번 염치 불구하고 처남에게 부탁해 보는 수밖에.”

“반드시 보은할 것이라 일러주십시오.”


“알았다.”

곧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학당을 물러 나왔다. 경옹이 또다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정현의 명성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문하생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현세에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만큼이나 권위를 인정받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런 결심을 한 것이다.


아무튼 유비를 데리고 자신의 방을 찾아든 경옹이 그에게 말했다.

“자당(慈堂)과 네 주특기가 돗자리를 짜고 짚신을 삼는 것 아니겠어?”

“그야 그렇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인데, 그 특기를 살려 앞으로는 화문석(花紋席)을 짜봐.”


“화문석?”

반문하며 의문부호를 띠고 있는 유비의 눈을 보며 경옹이 자세한 것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왕골이라는 것을 대단위로 논에 식재해 거기서 얻은 왕골을 여러 색으로 염색해 꽃무늬 돗자리는 물론 오채용문석(五彩龍紋席), 용문염석(龍紋簾席), 오조용문석(五爪龍紋席) 등 다섯 가지 색으로 짠 용무늬 꽃자리며 다섯 개의 발톱이 달린 용무늬 꽃자리 등을 짜라고 일러주었다.


돗자리나 화문석이나 짜는 것은 똑같지만 짚 대신 왕골을 사용하는 것이 다르고 다섯 가지 색으로 염색해 형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달랐다. 그 외에도 경옹은 탁현에서 나는 볏짚으로는 짚신을 삼도록 했다.


유주는 황하(黃河) 이북에 있어서, 농사는 대개 밭작물이 주를 이루었다. 사람들은 밀, 콩, 조, 기장 등을 재배했으며, 자연히 주식도 빵이나 국수였다. 그런데 애초에 장강과 회수(淮水) 사이에서 시작된 벼농사는 당시에 북으로 상당히 진출해 있었다.


물이 흔하고 평야가 넓은 중원 지역, 그러니까 서주(徐州), 연주(兗州), 예주(豫州)는 물론, 심지어 기주(冀州)와 청주(靑州)까지도 벼농사를 지었다. 따라서 황하 유역의 사람들도 장강 유역의 사람들보다는 못했지만, 하얀 쌀밥이 주는 달콤한 미각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탁군에서도 당시에 벼농사를 지었는데†, 비록 남쪽보다 소출은 적었으나 기온이 낮은 지역에서 자란 벼는 밥맛이 좋았다. 또 물이 적은 곳에서는 품종이 약간 다른 밭벼를 재배하기도 하였다.


밭벼는 논벼보다 줄기가 굵고 억세며 낱알도 크고 길었는데, 수확량은 더 적었으나 재배하는 데 노력과 품은 더 많이 들었다. 이 지역에서 나는 쌀은 밥맛이 좋기로 유명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그곳에서 나는 ‘경서도(京西稻)’는 중국에서 유명한 품종이다.


그 외에 경옹은 버드나무 가지를 벗겨 바구니 등을 제작해 보라고 했다. 또 대나무와 댕댕이도 바구니나 여타 용기를 만들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시도해 보라고 일렀다. 그리고 이를 대규모로 확대 생산할 방법도 일러주었다.


농한기는 당연한 것이고, 바쁜 농사철에도 일거리 없는 부녀자들에게 일을 맡겨 그 제품을 사들여, 탁현 저자에 연 매장을 통해 탁군은 물론 유주 더 나아가 전국에 팔 방법을 강구해 보라고 일러주었다.


이에 유비로부터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받은 경옹은 그 길로 그를 보내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차례로 찾아뵈었다. 그리고 한 분뿐인 누님과 여동생들도 만나보았다.


집안 열 식구 중 남자는 아버지와 경옹 단 둘뿐이었다. 그러니까 할머니와 어머니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여자였다. 위로 누님과 밑의 세 살 터울 다섯 동생이 모두 여자였다.


그러니 삼대독자인 경옹을 할머니를 비롯한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얼마나 떠받드는지 그가 버릇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각설하고 그로부터 10일 후 외삼촌 유위가 또 한 번 방문했다. 이에 아버지까지 셋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외삼촌이 말했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현 선생의 학당은 북해국(北海國) 고밀현(高密縣)에 있다. 그런고로 여기서부터 천 리 길인즉 너 혼자 보낼 수는 없음이야. 처처에 도적들이 날뛰고 있으니 중간에 무슨 변고를 당할지 모른다. 그런고로 너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호송인을 고용해야겠어. 그러니 시일이 좀 지체될 것인즉 그런지 알아.”


외삼촌 유위의 말대로 영제의 치세에서는 이미 수많은 난민이 발생해 그들이 도적이 되어 곳곳에서 설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나 귀한 물건을 안전하게 호송해 주는 훗날의 표국 같은 것이 당시에 벌써 자생적으로 생겨나 있었다.


“신경 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외삼촌!”

경옹의 말에 손을 내저으며 외삼촌이 말했다.

“너야말로 양 집안의 자랑. 그럴수록 더욱 안전을 도모해야 되니, 뜨내기 집단이 아닌 아주 유명한 집단을 선정할 것이니 시일이 지체되더라도 이해하라고.”


“감사합니다. 외삼촌! 음......”

“할 말 있으면 해.”

외삼촌의 재촉에 경옹이 질문을 던졌다.

“닥나무 아시죠?”


“닥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닥나무 껍질의 섬유로 저포(楮布)라는 베를 짜잖아.”

“그걸로 베가 아닌 종이를 만드십시오.”

“뭐라고? 그걸로 종이를 만들 수 있다고?”


닥나무로 한지(韓紙)를 만든 것이 우리나라도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이니 이 당시 중국에도 그런 기술이 있을 리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경옹이 계속해서 말했다.

“산기슭의 양지쪽이나 밭둑에서 잘 자라니 대규모로 식재해 종이를 만들되,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줄기를 1∼2m 길이로 잘라 밀폐된 솥에 넣고 증기로 한 시진 정도 찐 다음 꺼내어 껍질을 벗긴다. 이것을 그대로 말린 것을 흑피(黑皮)라 하고, 흑피를 물에 불려서 표피를 긁어 벗긴 것을 백피(白皮)라 한다. 흑피는 하급지의 원료로 쓰이고 백피는 창호지, 서류 용지, 지폐 등의 원료로 쓰인다.


이어 경옹은 TV 프로그램 ‘극한 직업’ 등에서 본 바 있는 한지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대충은 이해는 했으니 까먹을 것 같다는 외삼촌의 말에 따라 그 방법을 자세히 기록해 넘겨주었다. 기록까지 다 넘겨받은 외삼촌이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우와! 이 기록대로 종이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 가문은 졸지에 대한(大漢)의 첫째가는 부자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겠는데?”

“그야 이를 말이겠습니까? 그땐 제 공도 기억해 주십시오.”

“아무렴,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금수와 뭐가 다를까 보냐. 하하하......!”


처남의 대소에 질투라도 난 듯 아버지가 말했다.

“진즉 알려주었으면 글방 때려치우고, 우리가 제일 부자가 되었을 것 아니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된다고요.”


“이놈이......!”

주먹을 드는 아버지를 피해 경옹은 멀리 달아났다.


* * *


그로부터 보름 후.

외삼촌이 수배해 물색한 호송집단이 경가장을 찾아들었다. 이에 삼 인이 그들을 맞아들여 대좌했다. 그런데 그 집단 중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거한이지만 덩치에 걸맞지 않게 민첩해 보이는 자였다.


그자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양주(凉州) 서평군(西平郡) 사람으로 국의(麴義)라고 하오.”

‘국의’라는 이름에 깜짝 놀란 경옹이 반사적으로 외치듯 물었다.

“뭐라고? 당신이 국의라고?”


“나를 아오?”

“아니,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아서요.”

경옹의 변명에 목젖이 훤히 보일 정도로 대소하며 국의가 답했다.


------


작가의말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국지 난세의 간웅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종요와 순유 +2 24.05.29 774 18 11쪽
13 상계리로서의 임무 +3 24.05.28 780 16 11쪽
12 낙양행 +2 24.05.27 802 16 12쪽
11 관우 및 진도 +3 24.05.26 826 18 11쪽
10 관우 +1 24.05.25 854 17 10쪽
9 출사 +1 24.05.24 877 16 11쪽
8 누이 도매금 처분 작전 +3 24.05.23 900 18 11쪽
7 누이 도매금 처분 작전 24.05.22 937 15 10쪽
6 보은 24.05.21 983 21 11쪽
5 성을 바꾼 개자식이 되다 +1 24.05.20 1,026 18 11쪽
4 국연 왕수 +1 24.05.19 1,060 17 10쪽
» 국의 +1 24.05.19 1,120 17 10쪽
2 공손찬 +1 24.05.19 1,220 22 10쪽
1 노식 문하 +7 24.05.19 1,413 2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