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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검향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난세의 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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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검향
작품등록일 :
2024.05.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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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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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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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노식 문하

DUMMY



1


후한(後漢) 말.

암군 영제(靈帝) 시절인 희평(熹平) 6년 즉 서력 176년.

유주 탁군의 치소이자 현청이 있는 탁현 내의 경가장(耿家莊).


경가장은 탁군 사람들에게 학당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 경가장은 탁현을 굽이쳐 흐르는 도수(桃水)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경가장의 장주이자, 학당을 운영하는 경평(耿平)은 지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들을 유학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결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학당의 훈장이 아들을 유학 보낸다는 것이 어폐가 있었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유학 보내려는 곳이 다름 아닌 당대의 유명한 학자이자 장군인 노식(盧植)이 새롭게 문을 연 학당인 까닭이었다. 노식은 작년 구강과 여강군에서 연이어 반란이 일어나자 구강 태수가 되어 두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후 병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탁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학당을 열었다. 그래서 유명세에서 달빛과 반딧불이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노식 문하로 유학을 보내기로 결심했으나 한 가지 더 걱정되는 것이 있어 주저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풍족하지 못한 가세였다. 자신이 탁군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학자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나 수입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딸린 식구가 많아 더욱 힘들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천재인 아들 경옹(耿雍)을 위해서는 유학을 보내기로 최종적으로 결심하고 정녕 내키진 않지만 처가의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래서 같은 군내 방성현(方城縣)으로 하인 한 명을 심부름 보냈다. 그리고 학당에 적을 두고 있는 서른 명 남짓한 학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가 듣기로 고안현(故安縣)에 노식 선생께서 새롭게 학당을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경옹을 유학 보내기로 한 바, 함께 갈 사람은 같이 가도 좋다.”


자신의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리자 경평은 곧 오늘 수업은 종료한다고 선언하고 자리를 떴다. 몇몇 학생들이 경옹의 근처로 몰려들었다. 주로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학우들로 유비(劉備)와 유청(劉淸) 그리고 장비(張飛)가 그들이었다.


“축하한다!”

금년 15세로 동갑인 유비의 말에 경옹이 답했다.

“아직 확실히 결정된 건 아니야. 꼰대의 형편으로 봐서는 남의 신세 지지 않고는 나를 유학 보내기 힘들거든.”


“그럼, 스승님께서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리셨지?”

“처가에 신세를 질 모양이지.”

“외갓집이 부자요?”

11세로 작년부터 학당을 찾아온 장비의 물음에 경옹이 답했다.


“방성현에서는 알아주는 호족이지.”

“그렇군.”

유비와 장비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던 유청 즉 훗날의 유덕연(劉德然)이 말했다.


“나도 아버지께 졸라봐야지.”

“에고, 나는 일찌감치 포기해야겠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도와 줄 사람 한 명 없으니.”

유비의 씁쓸한 말에 유덕연이 나섰다.

“형, 내가 아버지께 잘 말해 볼게.”


“간둬라, 간둬. 남의 신세 지면 반드시 갚아야 하니 그것도 부담이다.”

유비의 말에 유덕연이 물었다.

“우리가 왜 남이야?”

“그렇다고 아주 가까운 집안은 아니잖아.”


“그래도 말씀드려 볼거야.”

더 이상 상대하기 싫어 유비는 입을 닫았다. 이때 장비가 나섰다.

“나도 따라가고 싶지만, 아직은 스승님께 더 배워야 하니 훗날을 기약해야겠어.”


장비의 말을 받아 경옹이 답했다.

“너는 천생 무부(武夫)이니 무예 연습이나 더 열심히 해.”

“알았어, 형!”

장비가 알았다고 답했지만 수긍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딴에는 사군자도 잘 치고 글 깨우치는 속도도 느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 * *


그로부터 10일 후.

손 아래 처남인 유위(劉偉)가 일곱 살 난 아들 유방(劉放)까지고 데리고 경가장에 나타났다. 감히 한고조의 휘인 방(邦)을 따라 지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자가 다른 방(放)으로 지은 아들의 이름이었다.


유위의 가문 역시 황족 출신이었다. 그런데 유비, 유표, 유언, 유우, 유엽은 한경제의 후손이고, 유대, 유요 형제, 유총은 한고조의 후손인 것과 달리 그는 이채롭게도 한 무제의 후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무제의 삼남 연자왕 유단(劉旦)의 장남 광양경왕(廣陽頃王) 유건(劉建)의 아들 유용(劉容)의 후예였다.


그런 가문이지만 부침이 많았다. 그래도 증조부 때부터 재산을 축적해 방성현의 유력 호족 가문이 되었다. 그러나 탁군에서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경평만 한 식자가 없어 그가 유씨가문의 사위로 선택된 것이다.


아무튼 수인사가 끝나자 유위가 말했다.

“아니래도 아들놈을 매형의 학당에 입학시키려던 참이었는데, 불러주시니 지체치 않고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노구강(盧九江:노식)의 문하로 들여보내는 것이 낫지 않겠나?”


“어느 정도 글을 깨우친 후에나 모를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르치기로 하고, 내 부탁은 어찌 생각하나?”

“밥술이나 뜨고 사는데 누님의 면을 보아서라도 의당 옹을 지원해야지요. 또 옹이 이름난 천재이기도 하고요.”


“고맙고, 감사한 일이군.”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학자들은 경제적 기반이 탄탄한 호족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후학을 위하여 학당을 여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로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제자들이 인근 지역의 식자층을 형성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자신의 세력과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제자들을 자기 집에서 숙식케 하고 훈장을 두어 가르쳤는데, 학비는 받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먹고 입는 것과 공부에 필요한 책이나 여러 문구류에 드는 비용은 당연히 학생들이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당시에는 책값이 아주 비쌌다.


종이는 이미 전한 시절에 환관 채륜(蔡倫)이 발명하여 생산되고 있었으나 여전히 귀한 물건이었다. 인쇄술이 없는 시절이었으므로 모든 책은 필사(筆寫)해야 했다. 필사하려면 책을 빌려야 했는데, 빌리는 데도 돈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베끼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더욱 많이 필요했다.


이미 필사하여 제본해 놓은 책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쌌다. 거기에 글씨를 연습할 붓과 종이가 많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경평의 학당에서야 모래판에 글씨 연습을 했지만, 본격적인 공부를 하려면 종이를 비롯한 문방구를 많이 장만해야 했다.


학비를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책과 문구류를 준비하는 데만도 많은 돈이 들었으므로, 당시에 글공부하는 사람은 대개 부유층으로 한정되었다. 그런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경평의 처지로서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지금 처남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경평이 처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데는 대가족이기도 했지만 다른 학당과 달리 가을에 집안 형편에 따라 학비를 받았다. 하지만 그게 큰 도움이 되질 않았다. 보통 그해 수확한 쌀 한두 말이나, 조나 서숙 서너 말을 가져오니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학생들을 위해 필사본도 제공하고, 숙사(塾舍)도 멀리서 온 학생 몇몇 외에는 제공하지 않으니 그들로부터 거둘 괸리비도 적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논과 밭이 제법 있어 농사를 지어 근근이 살고 있었다.


이렇게 경옹의 유학이 결정된 그 시간.

유비도 집안 아저씨 벌인 유원기(劉元起) 즉 유덕연의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아 노숙 문하에 들기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


* * *


다음 날.

세 사람은 3백여 리 떨어진 노식의 학당을 향해 새벽 일찍 출발했다. 유학을 떠나는 세 사람과 유원기의 하인, 경가장의 집사까지 다섯 명이 일행이었다. 그 외에도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도 있었다.


마차에는 세 사람의 의복과 문구류 등의 잡다한 물건들, 그리고 스승께 바칠 예물과 노상에서 먹을 음식과 건초도 실려 있었다. 노식이 학당을 연 고안현은 탁현에서 동남쪽으로 300여 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일행은 6일 여정을 잡고 중간중간 여사(旅舍)에서 묵었다. 그리고 6일 후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노가장(盧家莊)에 도착했다. 당시 부자가 아닌 일반 서민은 하루 두 끼를 먹었다.


아침은 대개 7시에서 9시 사이, 저녁은 3시에서 5시 사이에 먹었다. 그래서 이 시간대를 지칭하는 별도의 말도 있다. 오전 7~9시를 식시(食時), 오후 3~5시를 포시(晡時)라고 했다.


포시 중에서도 오후 4시 무렵 노가장에 도착한 일행은 다시 한번 인근의 객잔을 잡아 하룻밤을 더 머물게 되었다. 먼 길을 걸어서 피곤한데다가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스승을 뵙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다음 날로 미룬 것이다. 그러나 경가장의 집사만은 노가장을 찾아들어 노식의 허락을 구하러 들어갔다.


​다음 날.

세 사람은 몸을 정갈하게 닦고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스승께 바칠 예물로 각자 술 한 되와 닭 한 마리씩을 안았다. 세 사람은 학당의 집사에게 성명을 알리고 스승의 대면 허락을 기다렸다. 물론 어제 노식으로부터 입학 허가는 받아놓은 상태였다.


잠시 후 노식의 허락이 떨어지자 세 명은 노식이 앉아 있는 대청의 바깥에서 길게 읍하여 예의를 표했다. 그리고 가까이 오라는 명을 받아 그의 앞에 나아가 예를 올리며 가르침을 청했다.


“탁현의 어리석은 경옹과 유비, 유청이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으신 스승님의 위명(偉名)을 사모하여, 먼 길을 걸어 감히 문하(門下)에 거두어 주길 청하옵니다.”


노식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답했다.

“너희 세 사람이 더한 배움에 뜻을 두었다니 가히 기특하도다. 오늘부터 학당에 머물며 여러 벗을 사귐은 물론 심신을 단련토록 하여라.”

“감읍하옵니다. 스승님!”


이로써 세 사람은 노식과 사제의 연(緣)을 맺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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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함께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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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난세의 시발 NEW +3 17시간 전 195 9 12쪽
39 인재는 많을수록 좋다 +4 24.06.27 317 11 20쪽
38 단양병 & 태사자 +4 24.06.26 360 14 12쪽
37 청주 목으로서 +3 24.06.25 391 11 12쪽
36 그래도 웃자 +5 24.06.23 466 16 13쪽
35 문무 겸비 충절의 무장 +2 24.06.22 477 13 13쪽
34 채문희, 정희 +4 24.06.21 475 12 12쪽
33 겹경사 +7 24.06.20 494 12 12쪽
32 기계, 기책 +2 24.06.19 514 12 13쪽
31 미양 출전 +3 24.06.18 534 15 12쪽
30 장재, 장재, 인재 +2 24.06.16 577 12 12쪽
29 국고와 중장을 가득 채울 비책 +4 24.06.15 577 12 12쪽
28 논공행상 +2 24.06.14 584 16 13쪽
27 때로는 손을 비빌 필요도 있다 +2 24.06.13 599 14 12쪽
26 대공을 세우다 +4 24.06.12 619 15 12쪽
25 대공을 세우다 +2 24.06.11 625 15 13쪽
24 출전 준비 +2 24.06.09 640 14 11쪽
23 웅비를 위한 첫발 +5 24.06.08 648 15 11쪽
22 태수가 되다 +2 24.06.07 654 16 11쪽
21 혼인 +2 24.06.06 660 16 10쪽
20 신부감 +2 24.06.05 660 14 10쪽
19 신부감 +2 24.06.04 660 15 11쪽
18 순욱 +2 24.06.02 661 15 11쪽
17 평준령(平準令) +2 24.06.01 661 19 11쪽
16 낭관(郎官) 중에서도 +2 24.05.31 663 17 11쪽
15 조정 출사 +2 24.05.30 663 16 10쪽
14 종요와 순유 +2 24.05.29 671 17 11쪽
13 상계리로서의 임무 +3 24.05.28 682 15 11쪽
12 낙양행 +2 24.05.27 708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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