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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난세의 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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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검향
작품등록일 :
2024.05.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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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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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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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공손찬

DUMMY

1


노식의 문하에 정식으로 적을 든 세 사람은 학당의 집사를 따라다니며 학사(學舍)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리고 이미 입학해 있는 학생들과 안면도 익혔다.


노식의 학당에는 멀고 가까운 곳에 사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나이 차이가 커서 적으면 열두 살부터 많으면 스물대여섯에 이르렀다. 그런 까닭에 학생들의 수준이 각기 달랐다. 그래서 오전에는 반을 나눠 초급이나 중급의 경전과 사서를 배웠다.


이때는 노씨 종중에서 학문의 수준이 높은 선비들이 가르쳤다. 오후는 신체를 단련하고 무예를 닦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는 모두 궁술을 연마하였으며, 이어서 자신에게 알맞은 병기를 다루는 연습도 병행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노식이 직접 주재하는 강론 시간이었다. 경전과 사서의 해석에서부터 당시의 시사(時事)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질문하고 서로 토론하며 노식의 강평을 들었다.


이런 일과가 아흐레 동안 이어지고, 열흘째는 자유 시간이 허용되었다. 이날 학생들은 목욕이나 세탁을 하기도 했고, 끼리끼리 어울려 저잣거리를 구경하기도 했다.


​노식 본인도 문무를 겸비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선비들은 대개 몸을 수양하는 데 문무(文武)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난세가 가까워짐에 따라 법보다는 주먹이 더욱 가까운 세태. 그러니 자연히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웬만한 남자는 자기 몸을 지킬 정도의 무예를 익히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더욱이 어느 정도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사대부에게는 그런 능력이 필수 조건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인 까닭에 유명 학당에서는 무예를 가르칠 스승을 별도로 두기도 했다.


멀리 가지 않고 당장 경가장만 하더라도 최거업(崔巨業)이라는 무예 스승을 별도로 두고 있었다. 그러나 노식은 무예 스승을 별도로 두진 않았다. 노식은 키가 8척 2촌으로 190cm에 가까운 장신이었으며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우렁찼다.


그러니 웬만한 자들은 그의 외모나 우렁찬 목소리만 들어도 겁에 질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말술이었다. 그런 그에게 배움의 시간이 흐르자 학문으로는 경옹이 제일 주목받았고, 무예로는 공손찬(公孫瓚)이 인정을 받고 있었다.


경옹과 유비의 동문인 공손찬은 두 사람보다 네 살 더 많았다. 자가 백규(伯珪)로, 인물이 좋고 몸집도 우람하며 성격이 매우 호방했다. 그는 유주(幽州) 동북부에 있는 요서군(遼西郡) 영지현(令支縣)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지냈으나, 모친이 비천한 출신의 첩실이었으므로 낙양에서 벼슬을 하는 부친의 본가에 합류하지 못하고, 모친을 모시고 고향에서 지내고 있었다.


영지현에는 공손찬의 일가붙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종제(從弟) 월(越), 범(範) 등과는 형제처럼 지냈다. 두 종제는 공손찬보다 몇 살 더 어렸는데, 그가 첩실의 자식이라는 것에 전혀 개의하지 않고 서로 마음을 트는 처지였다.


특히 경옹은 공손찬에게 더욱 다가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친밀하게 지내고 있었다. 경옹의 애초 유학 목적이 공손찬을 사귀는 것이 아니라면, 아버지의 명을 따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경옹은 그가 북부 군벌로써 한 시대를 풍미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는 그가 전생의 기억을 갖고 이생에 태어난 까닭이었다. 경옹의 전생은 삼국지 마니아라는 것 외에는 경옹과는 관련이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비록 전생에서 서울의 명문대를 나와 승승장구했지만, 사업에 뜻을 두었다가 IMF 환란을 맞아 여느 많은 사업가처럼 꼬꾸라졌다.


그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젊었을 때 많이 읽은 무협과 판타지로 인해 판타지 작가로 살았다. 그리고 비교적 이른 나이인 66세에 삶을 마감한 인물이었다. 담배를 하루에 두세 갑 피운 까닭인지 폐암으로.


아무튼 그런 경옹이 노식의 특강에서 그와 경전의 장구(章句) 해석을 놓고 다툴 정도로 빼어난 학식을 자랑하고 있다면, 공손찬은 무예가 발군이라 학우들의 우러름을 받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에 비해 유비는 엄밀하게 평할 때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제자백가나 사서를 공부할 때 그는 특별하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래도 오후 시간이 되면 유비는 조금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열다섯 살이지만 동년배보다 몸집이 큰 편에 속했으며 기운도 제법 세었다.


그런 까닭에 서너 살 위의 학우들과 대련하여도 그다지 밀리는 기색은 없었다. 유비는 팔이 긴 편이었다. 그 장점은 활을 쏘는데 매우 유리했다. 시위를 더 팽팽하게 잡아당겨서 과녁을 겨냥할 수 있었으므로, 다른 학생들보다 명중률이 훨씬 높았다.


그런가 하면 격검(擊劍)할 때도, 상대와 같은 길이의 목검을 사용했지만 팔이 더 길어서 그만큼 더 유리했다. 그래서 유비는 가끔 흔히 쓰는 연습용 목검보다 더 짧은 목검 두 개를 양손에 잡고 연습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왼손도 오른손과 비슷하게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또 덕연은 예리한 질문으로 좌중을 놀라게 할 때가 많았으며, 자신의 의견을 정연하게 피력하곤 했다. 유비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경청의 재주야말로 유비의 천부적 재능 같았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제일 계명이 ‘칭찬하라’는 말이라면, 몇 번째 안에 ‘경청하라’는 경구가 들어있다.


그 예시로 재산 많은 늙은 여인이 혼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집을 자주 찾아오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늙은 여인의 넋두리를 열심히 경청하며 공감해 주었다.


그 결과 그 여인은 공감 외에는 말이 거의 없는 젊은이가 가장 말을 잘한다고 표현한 것도 부족해, 죽을 때는 그녀의 전 재산을 자식들이 아닌 그 젊은이에게 물려주었다는 내용이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겠지만 경청이 인간관계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든 예시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유비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런 원리를 이미 깨우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1년여가 흘렀다. 올 때는 초가을이었는데 벌써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런 이날 밤 경옹은 홀로 역수(易水) 가에 나와 날로 차가워지는 강물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노식이 학당을 고향 탁현이 아닌 이곳에 지은 이유는 이곳에 역수가 흐르고 있었고 그는 형가(荊軻)를 사모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종종 형가가 지었다는 시를 읊조리곤 했다. 그 생각이 나자 경옹은 자신도 모르게 역수가(易水歌)를 읊조리고 있었다.


풍소소혜역수한(風蕭蕭兮易水寒)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 물은 차구나

장사일거혜불복환(壮士一去兮不復還)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경옹이 역수가를 막 읊조리고 났을 때였다. 달빛을 등지고 두 사람이 나타났다.

​“야, 헌화! 혼자 무슨 청승이냐? 어디 갔나 많이 찾아다녔다.”


유비의 말에 이어 공손찬도 한마디 했다.

“심란해서 그러냐?”

유비가 경옹을 헌화(憲和)로 부른 것은 스승 노식이 세 사람의 자를 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15세 성인이 넘은 놈들이 자(字)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깝다며 경옹은 헌화, 유비는 현덕(玄德), 유청은 덕연(德然)으로 지어준 것이다. 그리고 공손찬이 심란하냐고 물은 이유는 오늘도 노식과 경옹은 대학 편에 나오는 장구를 가지고 다른 견해를 피력한 일이 있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노식은 탄식하며 ‘너에게는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자천자이지어서인(自天子以至於庶人)

일시계이수신위본(壹是皆以修身爲本)


‘천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모두 몸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라는 대학(大學)의 한 구절에서 노식은 근본을 몸(身)으로 보았고,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집안(家)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경옹은 일차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수신에서 말하는 몸이며, 부차적인 것은 백성이라고 보았다. 스승처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을 집안이라고 본다면 근본이 두 개가 되어 불합리하다고 반박한 것이다.


공손찬의 ‘심란해서 그러느냐?’라는 말에 잠시 오늘 일을 회상했던 경옹이 답했다.

“아무래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그럼, 나도 함께 가자.”


유비의 말에 경옹이 물었다.

“너는 왜?”

“너도 알다시피 나는 학문에 흥미가 없는 데다가, 홀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분투하는 어머니가 가엾어서.”


“흐흠......!”

자신도 모르게 탁성을 발한 경옹이 답했다.

“내 생각에도 그게 좋겠다. 그리고 너의 생계에 대한 대책은 내가 이미 생각해둔 것이 있으니 걱정 말고.”


유비가 반색했다.

“정말? 그게 뭔데?”

“고향으로 돌아가면 알려줄게.”

“그래. 그렇다면 더욱 홀가분하게 짐을 쌀 수 있겠군.”


“그럼, 나 혼자 남게 되는데, 이거 재미없게 되었군.”

공손찬의 말에 유비가 말했다.

“덕연도 있잖아?”

“그 코흘리개와는 연치를 떠나 잘 맞질 않아. 너희 둘과 다르게.”


경옹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결론 맺듯 말했다.

“불가에서 말하길 이승에서 옷깃 한 번 스치려면, 전생에서 천 번 이상의 만남이 있어야 된다고 했어. 그러니 동문수학한 정은 일러 무엇하겠어. 하니 우리의 인연을 깊이 간직하고, 내가 북방으로 놀러 가면 잘 대접해 주어야 할거야.”


“하하하......! 언제든 오면 상빈(上賓) 대접하지.”

공손찬의 호방한 웃음소리를 끝으로 세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학당으로 돌아왔다.


---------


작가의말

감사, 감사드리고요!

늘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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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반동탁연합 +4 24.06.29 338 14 13쪽
40 난세의 시발 +3 24.06.28 389 13 12쪽
39 인재는 많을수록 좋다 +4 24.06.27 441 11 20쪽
38 단양병 & 태사자 +4 24.06.26 464 15 12쪽
37 청주 목으로서 +3 24.06.25 489 13 12쪽
36 그래도 웃자 +5 24.06.23 539 17 13쪽
35 문무 겸비 충절의 무장 +2 24.06.22 543 14 13쪽
34 채문희, 정희 +4 24.06.21 545 13 12쪽
33 겹경사 +7 24.06.20 558 13 12쪽
32 기계, 기책 +2 24.06.19 577 13 13쪽
31 미양 출전 +3 24.06.18 597 16 12쪽
30 장재, 장재, 인재 +2 24.06.16 636 13 12쪽
29 국고와 중장을 가득 채울 비책 +4 24.06.15 637 13 12쪽
28 논공행상 +2 24.06.14 643 17 13쪽
27 때로는 손을 비빌 필요도 있다 +2 24.06.13 657 15 12쪽
26 대공을 세우다 +4 24.06.12 674 15 12쪽
25 대공을 세우다 +2 24.06.11 685 15 13쪽
24 출전 준비 +2 24.06.09 701 14 11쪽
23 웅비를 위한 첫발 +5 24.06.08 706 15 11쪽
22 태수가 되다 +2 24.06.07 716 16 11쪽
21 혼인 +2 24.06.06 721 16 10쪽
20 신부감 +2 24.06.05 721 14 10쪽
19 신부감 +2 24.06.04 723 15 11쪽
18 순욱 +2 24.06.02 724 15 11쪽
17 평준령(平準令) +2 24.06.01 725 19 11쪽
16 낭관(郎官) 중에서도 +2 24.05.31 729 17 11쪽
15 조정 출사 +2 24.05.30 729 16 10쪽
14 종요와 순유 +2 24.05.29 739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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