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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검향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난세의 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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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매검향
작품등록일 :
2024.05.19 17:44
최근연재일 :
2024.06.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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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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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7,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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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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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20쪽

인재는 많을수록 좋다

DUMMY

1


태사자가 즉시 말을 타고 떠나자 간옹은 세 사람을 관사로 모셔 연회를 베풀었다. 별가종사 순욱과 고생한 관통만이 배석한 가운데 간옹이 발언에 임했다.


“세 분 모두 용기, 지략, 영웅의 기개가 있어 모시게 한바, 청주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고, 수시로 날뛰는 무리를 징치하여 안전한 고을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동참해 주시겠습니까?”


잠시 실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던 중 병원이 물었다.

“노 자간(盧 子幹)의 문하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네, 그분 밑에서도 수학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돌 때 탁군에 가 노 자간과 잠시 사귀기도 하였으나, 오래 있지는 못하였지요.”


“스승님과의 연분(緣分)을 생각해서라도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주의 문학사(文學師)로 모시고자 하오니, 청주의 문학 발전을 위해 힘써주셨으면 합니다.”

위에서 문학은 학문(學文)을 말하는 말로, 당대에는 학문을 문학이라고 표현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병원이 답했다.

“우리를 요동에서 썩지 않게 한 은혜가 있는 데다가, 노 자간과의 안면도 무시할 수 없으니 당분간 함께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스승님의 예로 모시겠습니다.”


“그럴 수야 있나요? 나야말로 주목 밑에서 종사하는 자인데.”

병원의 말에 왕렬이 나섰다.

“서로 예우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죠.”


병원의 대답으로 예우 문제가 일단락되자, 간옹이 왕렬를 향해 말했다.

“청주 부중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사표(師表)가 될 것인즉, 청주의 미풍양속 진작과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 옹과 함께해주시죠?”


“그야 내 녹을 얼마나 챙겨주느냐에 달렸지요. 하하하...... 그건 농담이고, 근구(根桕:병원의 자)도 함께 한다고 하고, 우릴 요동의 거친 들판에서 썩지 않게 해준 은혜도 있고 하니, 조그마한 자리라도 내주면 열심히 해볼 양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 율령사(律令師)로서, 주의 법률이 공정하게 적용되는지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왕렬은 간옹과 근 스무 살, 정확히는 19년의 연배(年輩) 차가 나므로 선생이라는 존칭을 붙인 것이다. 아무튼 이제 유정만 남았으므로 그의 의향을 떠보았다.

“월령사(月令師)로서 주의 시절 제사를 주관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고마운 말씀이나 요동의 공손도가 나를 두려워하고 미워해, 이리저리 쫓기는 몸이 되다 보니,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우선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합니다. 하니 사군께서는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허허,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니, 그렇게 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사군!”

“자, 지금부터 술 한잔하는 것으로 그간의 고단함을 씻고, 새 출발 하는 것으로 합시다.”


간옹의 말을 병원이 받았다.

“나 또한 오랜 세월 금주해 왔으나, 오늘 같은 날은 한잔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렇게 되어 오랜 시간 술판이 벌어졌는데 병원과 간옹만이 전혀 취한 기색이 없었다.


이런 병원은 자가 근구(根桕)로 청주 북해국 주허현 사람이다. 화흠(華歆), 관녕과 함께 일룡이라 불리면서 세상 사람들이 병원은 용의 배라고 여겼다.


병원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기에 집이 가난했다. 그런 까닭에 서당을 지나갈 때마다 서글피 울었다. 그러자 서당의 선생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왜 우냐고 물었다. 이에 병원이 답했다.


“고아는 쉽게 상처를 입고, 가난한 사람은 쉽게 자극을 받습니다. 무릇 책이란 반드시 부형이 있어야 갖출 수가 있는데, 첫째는 고아가 아닌 아이들이 부럽고 둘째는 공부를 하는 것이 부럽습니다. 마음이 슬프니 눈물이 저절로 납니다.”


공부도 안 한 11살짜리가 이런 말을 하자 선생이 측은하게 여겨 돈을 내지 않고 서당에 다니게 해주었다. 병원은 겨울 안에 효경과 논어를 익히는 등 다른 학생들이 병원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해 병원은 이제는 유학이 가고 싶다면서 안구의 손숭(孫嵩)을 찾아갔다.


병원을 맞은 손숭이 물었다.

“자네가 사는 고을에 정군(정현)이 사는데,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정군은 고금을 통달하고 널리 듣고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사물의 오묘한 지리를 탐구했으니 진실로 학자들의 사표가 되네. 자네가 그를 두고 여기까지 천릿길을 왔으니 정군을 동쪽 마을의 공구(공자) 정도로 생각한 것 같네. 자네는 그를 모르면서 안다고 대답한 것 같은 데 왜 그랬는가?”


병원이 답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쓴 약을 먹고 좋은 침을 맞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미천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뜻이 있고, 모범으로 삼는 것도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산에 올라가서 옥을 캐고, 또 어떤 사람은 바다에 들어가서 진주를 캡니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사람이라고 바다의 깊이를 모르고,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산의 높이를 모르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정군을 동쪽 마을의 공구 정도로 생각한다고 나무라셨지만, 선생님께서도 저를 서쪽 마을의 어리석은 녀석쯤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 말을 들은 손숭은 사과하고 ‘나는 연주와 예주의 인물을 많이 알고 있지만 자네 같은 사람은 없었다. 책을 서로 나눌만하다’라며 자신의 책을 주었다. 병원은 그 뜻을 사양하기 어려워 책을 받아왔다.


하지만 ‘스승을 구하여 학문을 배우고 뜻이 높은 자와 통하는 것은 분수를 지킬 때 비로소 성립하는 교제와는 같지 않은데, 책만 가지고 무엇을 한단 말인가’라며 책은 집에 가져다 두고 길을 떠났다.


그는 주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 9년 동안 유람하면서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마시지 않으며, 노력한 끝에 진류에서는 한자조(韓子助:한탁)를 스승으로 모시고 영천에서는 진식(陳寔)을 선배로 모셨다. 여남에서는 범방(范滂), 탁군에서는 노식과 친하게 되었다.


이윽고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 병원은 친구들과 이별하니 친구들은 그에게 술을 주는 대신에 쌀과 고기를 주며 송별했다. 이에 병원이 말했다.


“나는 원래 술을 잘 마셨지만 아무 생각도 없고 업을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술을 끊었네. 지금 멀리 떠나는 마당에 노자를 주니 한 잔 마시는 것이야 어떻겠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병원은 하루 종일 술을 마셨다. 그러나 취하지 않아 모든 사람이 놀랐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집안에 팽개쳐두었던 책을 손숭에게 돌려주면서 안에 담긴 뜻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패기를 보여주고 얼마 안 있어 군의 주부로 임명된다. 그러다가 황건 난이 일어 요동으로 피신했다.


최염이 동조연으로 있었을 때, 예양의 현신들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내린 병원의 평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징사 병원, 의랑 장범은 모두 인덕을 갖추고 있고 선량하고 순수하며, 뜻과 행동이 충직하고 방정하며, 성정이 맑고 고요하고 풍속을 격려하기에 충분하고, 인품과 격식이 곧고 바르므로 일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용한봉익이며, 모두 국가의 중요한 보물입니다. 그들을 천거해 중히 사용하십시오. 어질지 못한 신하는 멀리 가겠습니다.


진수가 평하기를 몸소 청결한 삶의 방식을 이행했으며, 나가고 물러남에 있어 도의에 입각해 행했으니 이들은 공우, 양공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겠다고 했다.


* * *


율령사가 된 왕렬은 142년생으로, 자는 언방(彦方)이며 청주 북해국 주허현 사람이다. 여러 가지 지식과 도에 통달했고 의가 아니면 돌아보지도 않았다고 하며, 전적을 공부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학문을 배우기 위해 관녕과 병원이 배우기도 했던 영천의 진식을 스승으로 받들었으며, 이 때 스승의 두 아들 진기, 진심과 친구가 된다.


당시 영천에는 순상, 가표, 이응, 한융과 같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모두 진식에게 배우기 위해 왔지만 그 가운데 왕렬의 기량이 워낙 출중해 모두가 감복하며 따르니 그의 명성은 해내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영천에서 덕을 이뤘다고 생각한 왕렬은 고향의 초려로 돌아왔으나 도착하자마자 조부가 사망해 3년 상을 치렀는데, 그 와중에도 대기근이 닥쳐 사람들이 굶주리자 자신의 창고에서 먹을 것을 풀어 읍민들을 구하니 종족들은 그를 효자라 하고 읍민들은 어질다며 그를 칭송한다.


그는 자신이 영천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서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에 전념해 학교를 세우고 더욱 발전시켰으며, 사람들을 윽박질러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성품과 기질을 잘 파악하는 맞춤형 교육을 통해 도에 합당하도록 깨우쳐주었다.


선을 따르고 악을 멀리하도록 하며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둔재들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 교화를 철저히 하자 모두가 소중한 인재로 바꾼다. 그에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용모를 단정히 하고 걸음걸이마저 다르니 사람들이 이것만으로도 그의 제자들을 알아볼 지경이었으며, 고을에 이러한 풍조가 생겨나자 모두가 선한 사람으로 변했다.


이렇듯 고을에 좋은 풍습이 생기니 당시에 사람들은 다툼이 생기면 왕렬을 찾아가다가 막상 왕렬의 초려가 보이면 도로 돌아갔다가 서로 상대방이 옳았다고 말하면서 자기들이 다툰 사실이 왕렬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했을 정도였으며, 이런 그의 활약에 관리들은 모두 친히 왕렬에게 관직을 주고 효렴으로 천거하려고 해 삼부에서는 모두 왕렬을 정중히 모시고자 했지만 그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황건적의 난과 동탁의 난이 일어나니 그는 국연, 병원, 관녕 등과 함께 공손도의 명성을 듣고 요동으로 몸을 피하니 당시 그의 명성은 공융을 설전으로 면박을 준 병원이나 화흠과 함께 세상에 이름을 떨친 관녕보다 높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요동으로 피난 오니 공손도는 그를 자신의 장사로 임명하려 했으나 왕렬은 사양하고 오히려 몸소 농기구를 잡고 일하면서 포의를 입고 소박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즐겁게 지내며 상인의 일도 하는 등 자신의 몸을 더럽히니 공손도는 그 일을 포기한다. 이렇듯 그가 백성들과 어울리니 동성의 사람들은 그를 군주처럼 받들었다.


당시에는 세상이 몰락해 참된 지식인이 별로 없었으며, 붕당을 이루어 서로를 비방하는 일이 만연했다. 이러한 세상을 피해 요동으로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러한 일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많았으나 같이 사는 주민들도 모두 착한 사람으로 만드는 왕렬답게 그와 함께 살면서는 조금도 그러한 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왕렬이 요동에 있을 때는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없었으며,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경우도 없었다. 장사꾼들도 시장에서 물건을 팔 때 함부로 가격을 매기거나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없는 등 그의 명성은 오히려 더 높아지는 즈음 마침 요동할 탈출할 기회가 오니 간옹과 함께하게 된 것이다.


* * *


이렇게 청주의 인재를 초빙해 함께 하게 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유비가 평원상으로 발령 나 평원에 이르렀다는 글을 받고는 간옹으로서는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유비를 통해 유주에도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하려 했던 애초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간 까닭이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영역은 수용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으므로 간옹은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유비의 평원상 부임 사실을 속관 회의에서 전했다. 그러자 병원이 평원 사람 화흠(華歆)과 도구홍(陶丘洪)을 추천했다. 이에 간옹은 유비에게 파발을 띄워 두 사람을 초빙해 함께 일할 것을 권했다.


이즈음 관구의가 5천 단양병을 모집해 돌아와 말했다.

“사군께서는 앞으로 광릉(廣陵) 태수 장초(張超)에게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서주와 양주 경계에 있는 광릉군(廣陵郡)의 치소 광릉현(廣陵縣)에 도착하자, 그곳 태수 장초가 직접 나와 우리에게 양초(糧草)를 공급해주는 것은 물론, 신입 군사들까지 크게 호궤하여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상하 모두 그를 칭찬해 마지 않았습니다.”


“허허, 그런 일이 있었구려. 앞으로 인연이 된다면 그와 잘 사귀어 보고 싶습니다.”

“암, 그래야지요. 하여튼 내 임무는 여기까지. 잘 조련하여 사군의 행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금방이라도 떠날 듯 말씀하시는군요.”

“십 리를 전송해도 서운하긴 마찬가지. 떠날 사람은 곧장 떠나는 게 좋습니다.”

“이곳에 머물 생각은 없으십니까?”


“나도 그러고 싶으나 대장군께 받은 은혜가 깊어 어쩔 수 없음이니 양해하세요.”

“정 그렇다면 가시되, 혹여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반드시 이 옹을 찾아와 주세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이렇게 되어 두 사람은 석별의 잔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관구의를 보낸 간옹은 단양병 5천 명을, 다섯 장수에게 각각 1천 명씩 맡겨 정병으로 조련할 것을 지시했다. 그 장수로는 진도, 한호, 석상, 관통, 태사자가 선정되었다.


그러는 동안 사례에서 탈주해온 기병이 500여 명으로 늘어나 그 지휘권을 계속 국의에게 맡기고, 더욱 조련에 열과 성을 다하도록 했다. 그 일이 끝나자 간옹은 서주 도겸에게 파발을 띄워 전황을 알아 오도록 했다.


* * *


애초에 태산군(泰山郡) 화현(華縣) 사람 장패(臧覇)가 억울하게 체포된 부친을 구하여 동해군(東海郡)으로 망명했었는데, 태산군(泰山郡)의 유협(遊俠) 윤례(尹禮), 손관(孫觀), 오돈(吳敦) 등이 무리를 이끌고 장패와 함께 도겸에게 귀부하여 별동대를 이루고 있었다.


도겸이 장패 등을 앞세워 공격해 오자 황건의 무리가 수의 우세를 믿고 일제히 반격하였다. 도겸이 견디지 못하고 후퇴하려는 찰나, 총군사 순유의 명을 받은 관우, 장비, 장합의 3천 군사가 일제히 황건적의 후미를 쳤다.


뜻하지 아니한 습격을 받은 황건적은 자신들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을 잊고 사방으로 쫓겨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일단 무너진 군사를 수습하기 어렵게 되자 황건적의 두목들도 목숨을 구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에 도겸과 청주 군사는 협력하여 지휘 계통이 사라진 오합지졸을 토끼 사냥하듯 몰아붙였다. 그렇게 되자 십여만 명에 달하는 황건적은 죽은 자들을 사방에 즐비하게 남긴 채 흩어졌고, 아군은 그들이 버리고 간 병장기며 식량 등을 취해 개선했다.


그런 즈음 막 간옹이 파견한 파발이 당도해 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위의 전투에서 서주의 주요 전투력은 장패와 유협 무리였다. 그중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펼친 사람이 장패였다.


그런 장패의 자는 선고(宣高)로 연주 태산군 화현(華縣) 사람이다. 아버지 장계(臧戒)는 현의 옥연이었는데, 태수가 사사로이 사형을 내리는 것을 거부하다가 그에게 사로잡혀 관청으로 이송되었다.


장패는 식객 수십 명과 함께 아버지를 구출하여 함께 동해국으로 망명했다. 황건적의 난 때 서주 자사 도겸을 따라 난을 진압하고 기도위에 임명되었다. 이후 서주에서 소규모 군벌이 되어, 다른 소규모 군벌 손관, 오돈, 윤례 등과 연합하여 그 총수가 되고 이번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게 된 것이다.


* * *


서주에서 대규모 공을 세운 군사들이 돌아오니 어느덧 해가 바뀐 189년 정월이 되어 있었다. 이때 스승 정현과 공융이 각각 한 사람씩을 천거해왔다. 정현이 천거한 사람은 서간(徐幹)이라는 인물이고, 공융이 천거한 사람은 시의(是儀)라는 인물이었다.


이에 간옹은 그들을 만나보고 각각 월령사와 주부로 임명하였다. 이제 진도를 완전히 군문에 몸담게 하였으므로 그를 대신해 시의를 주부로 임명해 비서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월령사로 임명된 서간은 171년생으로 자는 위장(偉長)이며. 훗날 건안칠자의 일원이 되는 청주 북해국 극현 사람이다.


맑고 고요하면서 도를 체득해 모든 행동이 완비되었으며, 총명하고 박식해 글을 써서 능히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관직, 봉록을 가벼이 여겨 세속의 영화에 탐닉하지 않았으며, 건안 연간에는 조조가 특별히 표창해 징소했지만 질병으로 가지 않았다.


조비가 원성현의 현령으로 지내던 오질에게 보낸 편지에서 옛날 문인들을 살펴보면 사소한 행동을 지키지 않아 명예와 절조가 스스로 설 수 있었던 자는 매우 적었는데, 서간은 교양과 꾸밈없이 수수함을 갖추면서 명예와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없어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은둔의 뜻을 품고 있는 조화를 이룬 군자라고 했으며, 저작으로는 중론 20편이 있어 문사와 내용이 중후하면서도 우아한 풍격을 가져 충분히 후세에 전할 수 있다고 했다.


주부로 임명된 시의는 자가 자우(子羽)로 청주 북해국 영릉현 출신이다. 금년 16세로 본래의 성은 씨(氏) 가다. 공융이 학사를 열자 학생으로 왔는데 그를 조롱했다.


“‘씨(氏)’ 자는 ‘민(民)’의 위쪽 부분이 없는 것이므로 네놈은 머리가 없구나. 차라리 성을 '시(是)'로 바꾸는 게 낫겠다.”

이에 씨의는 진짜로 성을 시(是)가로 갈아버렸다.


원역사에서 시의는 유요에게 의탁해 강동으로 전란을 피해 피신했으며, 손책의 군대에게 유요의 군대가 패하자 회계로 이주한다. 손권이 손책의 뒤를 이어 문필의 우수함을 이유로 시의를 초빙하자 시의는 손권이 있는 곳으로 도착해 신임을 받아 기밀 사항을 전문적으로 처리해 기도위로 임명되었다.


이후 수많은 공을 세우는데 그러던 중 이런 일이 일어난다.


간신배 여일은 강하태수 조가가 국가의 정치를 비방했다고 무고하자 노망들린 손권은 노여워해 조가를 체포해 옥에 가두고 철저하게 심문했다. 그 당시 함께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여일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일제히 조가가 비방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지만 시의 혼자만 들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의는 며칠 동안 국문을 받으면서 손권의 조서는 엄하게 바뀌었으며, 신하들은 시의 때문에 두려워해 숨을 죽였다. 이때 시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칼과 톱이 이미 신의 목에 있는데, 신이 어찌 감히 조가를 위해 사실을 숨겨 스스로 멸망을 취하여 충성하지 않는 귀신이 되겠습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사람이 들어 아는 것에는 마땅히 본말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일이 사실에 근거해 질문에 대답하면서 말을 바꾸는 일이 없으므로 손권은 결국 그를 풀어 주었고, 조가 역시 사면시켰다.


시의는 다른 사람들이 은혜 베푸는 것을 받지 않았으며, 집과 방은 그 자신을 받아들일 만큼의 크기로 만들었다. 그의 청렴함에 관해 이런 일화가 있다.


한 번은 그의 이웃집에 큰 저택을 짓는 자가 있었는데, 손권은 궁궐에서 나와 멀리서 바라보더니 큰 집을 짓는 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은 시의의 집 같다고 했으나 손권은 시의는 검소하니 반드시 그의 집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물어본 결과 다른 사람의 집이었다.


시의가 인정받고 신임받은 것이 이 정도였다. 시의는 질병으로 눕게 되자 미리 유언을 남겨 옻칠을 하지 않은 관을 사용하고 평상복으로 염을 해 절약에 힘쓰도록 했으며,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진수가 평하길 ‘시의는 청렴하고 삼가며 곧고 소박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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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인물 소개에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보충하고자 이번 회차는 길게 끊었습니다.

감사드리고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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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반동탁연합 +4 24.06.29 339 14 13쪽
40 난세의 시발 +3 24.06.28 390 13 12쪽
» 인재는 많을수록 좋다 +4 24.06.27 443 11 20쪽
38 단양병 & 태사자 +4 24.06.26 464 15 12쪽
37 청주 목으로서 +3 24.06.25 489 13 12쪽
36 그래도 웃자 +5 24.06.23 539 17 13쪽
35 문무 겸비 충절의 무장 +2 24.06.22 543 14 13쪽
34 채문희, 정희 +4 24.06.21 545 13 12쪽
33 겹경사 +7 24.06.20 558 13 12쪽
32 기계, 기책 +2 24.06.19 577 13 13쪽
31 미양 출전 +3 24.06.18 598 16 12쪽
30 장재, 장재, 인재 +2 24.06.16 637 13 12쪽
29 국고와 중장을 가득 채울 비책 +4 24.06.15 638 13 12쪽
28 논공행상 +2 24.06.14 644 17 13쪽
27 때로는 손을 비빌 필요도 있다 +2 24.06.13 658 15 12쪽
26 대공을 세우다 +4 24.06.12 675 15 12쪽
25 대공을 세우다 +2 24.06.11 686 15 13쪽
24 출전 준비 +2 24.06.09 702 14 11쪽
23 웅비를 위한 첫발 +5 24.06.08 707 15 11쪽
22 태수가 되다 +2 24.06.07 718 16 11쪽
21 혼인 +2 24.06.06 723 16 10쪽
20 신부감 +2 24.06.05 723 14 10쪽
19 신부감 +2 24.06.04 724 15 11쪽
18 순욱 +2 24.06.02 725 15 11쪽
17 평준령(平準令) +2 24.06.01 726 19 11쪽
16 낭관(郎官) 중에서도 +2 24.05.31 729 17 11쪽
15 조정 출사 +2 24.05.30 730 16 10쪽
14 종요와 순유 +2 24.05.29 740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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