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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몽환의 역

본 베히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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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
작품등록일 :
2016.12.27 22:52
최근연재일 :
2017.02.2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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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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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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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2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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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1. 정세

DUMMY

플루토는 한동안을 멍하니 서있었다.


하늘을 보자니 꽤나 이상한 느낌이었다. 멍한 눈으로 올려보니 푸르게 덧칠한 한폭의 배경일 뿐이었다.


그런 게 밀폐된 건축물 안에 있으니 이질감이 들었다. 던전의 구조는 각기 고유함을 가지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되어가는거지...뭔가 이상해. 원래대로라면 이럴리가 없어.'


던전이 하나 더 생겨났다? 그것도 이런 필드 한복판에 필드의 모습을 한채로? 무엇보다도 이상한 건 이미 멸종된 몬스터들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한가지 의문이 있기에 플루토는 옆의 청년에게 물었다. 듀라한에게 몰아세워졌음에도 얼굴엔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어째서 너희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곳에 들어온 거야? 의심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뭐, 우리야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거든. 마을이 제국군에 몰아세워지고 있어서."


눈이 휘둥그레 커질 뻔했다. 속으로만 소리를 질러가면서까지 표정을 태연하게 유지했다.


"제국군 녀석들...그래봤자 NPC들인 주제에 플레이어인 우리를 착취하는거지. GM이라는 녀석들은 뭘하는지, 쯧."


"알아보니 그 사람들 통제에서 벗어난 사태라든데. 뭐, 이미 제멋대로 사라진 NPC에 듣도 보도 못한 신종 몬스터들이 날뛰니 이미 망한 게임이지만."


앞의 소녀가 한마디 던진 걸 청년이 받았다. 모르는 단어들이 쏟아져도 대충 끄덕이기만 했다.


애초에 이 세계는 원래 유희(game)일 뿐이었으니.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 있다. 기억이 이상해지기 전 자신은 도대체 누구였는지.


그래서 그 결과가 끝없는 자괴감. 이 손으로 부숴 버린 모든 것들이었다.


성국에 자행된 일방적 학살. 무고한 모험가들의 전쟁은 모두 이 손에 이 창에 달린 운명이었을까. 침묵으로 고개를 떨어뜨리는 동안 입구까지 오게 되었다,


급작스럽게 의문이 마음 속을 소용돌이쳤다. 어째서인지 이 거대한 탑을 들어오고서부터 부쩍 감정적으로 변했다. 술(conjure)을 의심해 보기도 했지만 몰래 든 나침반은 반응이 없었다.


플루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연기했다. 일행은 플루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시선을 돌려 누구에게서 의문을 풀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자 시선을 의식한 유일한 한 명이 뒤를 돌았다. 그 외의 일행은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너도 기분이 애매한가보네. 나도 그런데."


빵모자가 특이한 소녀였다. 얹어있듯 푹 눌러 쓴 큰 모자 아래 머쓱한 미소가 다가오자 마주 피식 웃었다.


"애매한 건 또 뭐야? 난 그저 지칠 뿐이야."


"감정이란 건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나는 뭐가 자꾸 떠올라서 말이야."


"뭐가?"


어째서인지 소녀 쪽에서 다가오고 있다. 의문도 풀 겸 과거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기로 했다.

"난 [제2계급]의 모험가야.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갑작스레 자신의 강함을 어필하는 소녀였다. 영문 모르겠다는 플루토의 반응에 소녀는 올커니 했다.


"너같은 플레이어가 왜 여기에 온 거야? 뭘 얻고 싶어서?"


"조사 겸 온 거야. 아직 플레이어들이 잘 살아 있는지."


입에 붙지 않는 한 단어에 플루토는 속으로 찡그렸다. 그들의 세계에서 모험가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그 의미가 마음에 들진 않았다.


누군가에겐 현실이고 인생인 세계를 고작 유희로 본다는 말인가. 제국인이 아니더라도 이 땅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 생각할 것이다.


다만 그런 생각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얼른 말의 주제를 바꿨다.


"그래도 걱정한 것보단 낫더라고. 뭐 지옥에 층계를 나누는 것도 웃기지만."


"네 말대로야. 던전에 겨우 연명하며 살고 있는 거지, 우리는."


연명이란 말에 플루토는 들리지 않는 신음을 흘렸다. 왠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럼 해결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


"뭐?"


소녀가 과장되게 눈을 크게 뜨자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계속 밀고 나갔다.


떳떳하지 못한 거짓말과 함께.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난 모험가야. 그 사실엔 변함이 없어. 맞지?"


"그, 그렇지. 그야 NPC라는 제국인들은 모두 제도로 떠났을테니까? 굳이 이 척박한 땅에 있을 필요가 없겠지. 아마 우릴 만났다면 우호적일리 없겠고."


그건 편견이야.


그렇게 충동적으로 말할 뻔했다. 그 순간을 재앙의 장면이 가리기 전까진. 결국 자신도 제국인이다. 모두에게 휘둘렸다해도 모험가 연합을 찢어버린 전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함성으로 퍼져나간 그 날의 예명은 국토 전체의 혐오이고 질투일 뿐이다.


사실 눈앞의 소녀에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게 정상이다. 성국의 몰락 때 모험가의 연합도 같이 전멸해 버렸다. 그 날 살아남은 고위 모험가는 한 명도 없다.


이러한 진실이 머릿속을 맴돌자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제2계급이라...그렇다면 성국 전쟁엔 참여한거야?"


혹시 그 때의 생존자일까. 만약 그렇다면 언젠가 속죄할 생각이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좋다. 이미 각오한 바이다.


그러나 대답의 양상은 의외성을 띄었다.


"아니."


소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여유로운 제스처에 반해 플루토는 얼어버리고 말았다.


"근데 어떻게 그 정도의 등급까지 간 거야? 그건 제국에 입성한 플레이어만 도달할 수 있는데?"

"원래라면 그렇지."


"그리고 말이 안되잖아.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는데? 완전히 무지 상태 아니었어?"


그들만의 용어를 쓰지 못한게 불안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 소녀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 웃긴 얘기지. 모험가의 등급을 제국인들이 알려줬다는 게."


소녀는 흥분해 말하려는 플루토보다 한박자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이해가 안되는 거 알아. 하지만 제국군이 알려줬어. [제2계급]의 달성 조건은 제국 입성이 아니라 경험치라고. 결국엔 제국까지 정규적인 방법으로 경험치를 쌓으면 입성할 때의 경험치로 진급했던 모양이야. 아무도 모르던 사실을 괘심하게도 그들은 알고 있던 모양이야."


머릿속이 혼란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플루토는 머리를 거세게 헝클어뜨리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그런 정보는 처음 들어본다. 더군다나 제국인이 모험가의 정보를 어떻게 본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빌어먹을!'


안 보이게 이를 까득 씹는 플루토와 달리 소녀는 태연하게 얘기했다. 조금은 슬픈 눈치로,


"녀석들은 이상하게 우리의 정보를 너무 자세히 알고 있어. 장부 같은 것도 만들었고. 인원수 조사에 상시 병사들이 마을을 순회한단 말이지."


"그거...뭔가 관리하고 있는 것 같네. 아주 대놓고."


"내 말이! 자기들 말로는 보호라는데 걔들이 우릴 왜 보호하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 어떻게든 밝혀내야 해."


"호오, 그럼 해결할 의지가 있다는..."


뒷 말을 속삭이는 소녀에게 플루토는 대뜸 크게 말했다. 소녀는 기겁을 하며 플루토의 입을 틀어 막았다.


"으, 으, 읍!"


"그걸 그렇게 크게 말하면 어떡하냐? 이 바보야!"


귀 가까이 다가온 소녀는 저 멀리 가고 있는 일행을 가리켰다. 대화가 한참이던 둘에겐 관심이 없었는지 꽤나 먼 거리에 있었다.




"착각하지마. 모두가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건 아니라는 걸."




차갑게 한마디 던진 소녀는 일행에게 걸어갔다. 뒤돌아보는 동료에게 파리 털듯 휙휙 손을 휘둘렀다.


플루토는 한참을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말마디가 귓가를 맴돌며 벌레 날개짓처럼 이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 멀리 모험가 일행이 멈추는 게 보였다. 그들의 너머엔 익숙한 소년이 안경을 고쳐쓰고 있었다.













에버리스는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에 들어오는동안 아무런 제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냉정한 눈의 병사들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꽤나 순조로운 게 아닌가. 사이먼의 말대로 그들은 일개 모험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집과 집 사이 구석 벽에 몸을 기댔다.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떠올려봤다.


'역시 이곳의 리더와 만나는게 좋겠어. 정보도 알아볼 겸 플루토와 사이먼이 이곳에 들어올 방법을 찾아야 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론 불안했다.


'그렇지만 같은 플레이어라는 것만으론 도와줄리는 없는데? 어떻게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지?'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땐 인품을 기대해선 안된다. 그게 그녀의 세계에서 그녀가 배운 법칙이었다.


모두에게 최악의 상황. [대공황]이후 죽음이 가까워진 데스게임에서도 서로를 돕지 않는 플레이어가 더 많았다.


가상현실게임 [플레이아데스]는 한 때 현실적인 시스템으로 각광받던 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공복 수치]이다. 일정 시간동안 식품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으면 기아로 아바타가 사망하고 만다. 그런 아바타는 부활시 던전에서의 리스폰보다 배나 되는 패널티를 받았다. 스테이터스창에 하락한 스탯들로 울상이 된 플레이어들을 꽤나 볼 수 있었다.


물론 이젠 모두 옛날 이야기다. 목숨줄이 한가닥이 되어버린 지금에 스탯 패널티따위 신경쓰일리가. 죽지 않기 위해 NPC의 역할까지 맡게 되는 게 현재 정세이다.


그렇다면 배고픔 앞에 가족도 친구도 없다는 게 사실일까. 하루하루 비어가는 공복 수치에 세계는 생존의 각축장으로 변해 버렸다. 만약 제국과의 전쟁이 없었다면 플레이어들끼리 죽인 수가 더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푸념만 늘어놓을 때가 아니었다. 마을 바깥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을 플루토와 사이먼이 있다. 어떻게든 자신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에버리스는 가녀린 두 주먹이지만 꽉 쥐고 기합을 넣었다. 어쩐지 플루토의 얼굴을 생각하자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꼭 친구들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진심으로 보고 싶다면 필사적으로 찾으러 갈 거 아냐. 그럼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어?'


언젠가 플루토가 한 말이다. 레이크볼 산에 들어오기 전 걷는 게 지루해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의미를 두고 한 말이 아닌 툭 던지는 작은 격려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굴이 홍조로 붉어졌다. 이 말을 듣는 시점엔 고개만 끄덕였다. 어째서 감추고 싶어진 걸까.


플루토는 겨우 NPC가 아니다. 모두가 고작 시스템이라 부를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살아있고 누구보다 따뜻한 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거지...?"


가슴 속 한군데가 쓰라렸다. 뭉클하니 아팠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왜 플루토를 현실의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걸까.


NPC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이미 무의식은 선을 그어 버린 것 같다. 자신과는 다르다고. 세대와 혈통을 거쳐 진화한 뇌내의 식별 시스템이 그를 이질적인 존재로 판별해 버린 것이다.


"아니야. 제국인은 시스템 같은 게 아니라고......"


그렇게 나직히 신음하던 때였다. 온 몸에 엄습하는 불안한 인기척에 에버리스는 휙 고개를 돌렸다.


"예, 우린 시스템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휙 던진 말을 받은 누군가가 에버리스에게 걸어왔다. 그 누군가에게 시선을 옮겼다.


순간 눈이 확 뜨일 정도로 아름답다 생각했다. 같은 여자가 보는 것임에도.


찰랑이는 머리결을 한차례 쓸어 내리자 그렇게 빛날 수 없었다. 고결한 자태 위에 놓인 순백색 갑옷은 어두운 가운데 광택을 뽐냈다. 미끈하게 쭉 뻗은 다리가 사뿐사뿐 우아하면서도 절도있는 패션쇼를 연출했다.


그러나 어떤 것도 백옥 같은 눈동자에 비하지 못했다. 차"운 아름다움을 내뿜는 시선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누구세요?"


에버리스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여기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세상이 얼음장처럼 변해버린 착각이 들었다.


"제국기병대 소속. 백야기사단 단장 로제타입니다."


작가의말

으으 너무 오랜만에 올리는 것 같네요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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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 역전 +5 17.01.10 585 10 9쪽
14 13. 돌파 +1 17.01.09 509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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