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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몽환의 역

본 베히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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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
작품등록일 :
2016.12.27 22:52
최근연재일 :
2017.02.21 12:09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8,454
추천수 :
326
글자수 :
174,063

작성
17.01.10 23:59
조회
585
추천
10
글자
9쪽

14. 역전

DUMMY

"제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라 가르쳤습니까? 황자님?"


그 순간 화악 하고 어둠이 눈을 가득 채웠다. 수많은 촛불들이 없어졌다. 꽂혀있던 책들이 책장 째로 증발했다. 거대한 유리 십자 문양은 온데 간데 없었다.


연기로도 가루로도 변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소멸은 방 안의 모든 것들을 어지러운 환각으로 집어삼켰다.


덩그러니 남은 두 사람은 흙바닥에 발을 내리고 있었다. 기둥만 덩그러니 남은 저택. 그 잔해 속에서 갈대들이 바람에 휘날려 허리춤을 간잘이려 했다.


플루토는 다시금 얼굴을 비추는 달빛에 정신이 굳어버렸다. 말문이 막혀 입이 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보자 생리적인 공포가 등허리를 내달렸다.


"그렇게 던전에 목매던 자들의 최후. 부정한 운명에 도전한 자들의 말로가 어떻습니까?"


한 순간 갈대 밭이 검게 물든 착각이 들었다. 매캐한 연기가 혼란스럽게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온 몸이 갈라진 시체들이었다. 오직 이 세상에 그런 죽음은 단 한 존재 밖에 없었다. 죽음조차 방황을 끝내주지 않는 자들.


"이 개자식이이이!!"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자 손아귀의 창이 무거워졌다. 고함을 내지르며 폭력적인 힘 그대로 휘둘렀다.


백작의 가냘프다 못해 말라깽이인 몸이 폭발했다. 그러나 피범벅이 되었어야할 갈대 밭엔 다시금 환영이 일렁였을 뿐이다.


플루토는 두 걸음만에 저 멀리 벗어난 환영을 타격했다. 다시 한 번 불꽃이 흩어지듯 환영이 저 멀리 이동했다. 그 때마다 추격했지만 물리의 개념을 벗어난 존재는 연기처럼 창을 미끄러져 나갔다.


다시 한 번 박차고 나가려던 순간, 신기루가 인간의 형체로 나타났고.


기회로 여겨 속력을 올린 플루토는 억지스러운 몸의 반동에 뒤로 밀려났다.


"크학!"


왼쪽 어깨가 뜨거워 눈을 돌리자, 기둥만한 선홍색 송곳 끝에 붉은 액체가 터져 흘렀다. 몸을 관통한 거대 원뿔이 플루토의 돌진에 맞부딫쳐 날아왔다.


눈을 따라가니 백작의 가소롭다는 표정이 보였다. 팔 통째로 변모한 무기가 스르르 제 모습으로 돌아갔다.


"당신의 어처구니 없는 행보는 잘 들었습니다. 암포라를 부수고 있다고요? 우리 자랑스러운 제국인들이 신의 은사라 부르는 것을!"


백작의 목소리가 분노로 무섭게 떨렸다. 음산할 정도의 혐오감이 엄습해왔다.


"그것도 제 제자라 부르는 자가 말입니다. 이런 수치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간에 열쇠를 가로챘습니다. 당신을 제 손으로 심판하도록!"


일갈과 동시에 원뿔 기둥이 쇄도했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 엄습한 가시에 숨이 턱 막혔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아뿔싸하고 몸이 굳어 버렸다. 꽉 쥔 오른손이 얼어버렸을 때.


붉은 가시가 눈동자 앞에서 아슬하게 멈춰섰다. 찌릿한 느낌이 눈동자에 쏠릴 때에서야 플루토는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자세히 보니 백작의 머리에 화살이 명중해 있었다. 제법 짧은 흑색 화살대가 왼쪽 이마에 명중해 목을 꺾어버린 뒤였다.


익숙한 검은 화살깃을 따라 제빨리 눈을 돌렸다. 그러자 익숙한 여자 한 명이 숨 가쁘게 서있는 것이 보였다. 플루토는 백작의 몸이 무너지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살아있었던 거야?"


저도 모르게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도니타는 훤히 드러난 배의 자상을 손으로 붙든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상체를 반토막 낼 길이의 붉은 선에 헛숨을 들이켰다.


"아무래도 아직은...근데 다른 녀석들이..."


그녀의 옆엔 역시나 검은 시체들로 가득했다. 사지가 갈라진 바위처럼 되어버린 자들이었다.


모두 조금 전만 해도 동료였을 것이다. 처연히 내려앉은 눈빛에 플루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가 날 듯 이빨을 깨무는 것 외엔 할 수 없었다.


천천히 돌아섰다. 서서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두 배. 세 배. 네 배. 다섯 배로 힘이 올라갔다.


정신과 심장을 이어 붙였다. 설령 악마에 영혼을 팔더라도, 저 녀석만은 용서할 수 없다며 힘이 끝없이 올라갔다. 열 배 열 한 배. 열 두 배. 열 세 배. 열 네 배. 열 다섯 배...


정신이 심장에 맞춰 박동했다. 공명하는 심신일체에 무한한 회전이 오고갔다. 백 배. 이 백 배. 삼 백 배. 사 백 배..


마지막으로 인간임을 포기한 백작의 주춤거리는 기상이 보였다.


천 배.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멈췄다. 혈관을 타고 도는 기운이 심장에서 다리 끝으로 천의 속도로 달렸다.


기운이 한계까지 몸을 채웠을 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격노에 몸을 실어 쏟아지는 대기를 꽤뚫어버렸다. 박찬 지반의 폭발음이 순식간에 멀어지는 동시에 랜스를 사납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세상을 무너뜨릴 일격이 백작의 몸을 날려버렸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기파가 그와 플루토 사이를 갈랐다.


그러나 백작의 몸은 잠시 부유했을 뿐. 균형잡힌 자세로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다. 가해진 힘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그의 몸은 날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플루토는 반동에 다리를 끌어도 저 멀리 튕겨나갔다. 모래 씹히는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 플루토는 땅을 박찼다.


격돌이 수도 없이 일어났다. 붉은 가시와 검은 랜스가 부딫 칠때마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번쩍였다. 손아귀가 짜릿해지는 느낌을 이 악물고 버텨냈다.


거대한 충격파가 갈대밭을 수십번이고 휘저었다. 무수히 주고 받은 공방에서 플루토는 서서히 백작을 밀어냈다.


그러나 백작 특유의 깔보는 미소를 보았을 때, 타격에 분노와 조급함이 서서히 타고 흘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자신이 밀어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백작 쪽에서 뒤로 물러나던 것이었다.


알고도 여러 번 당하는 그의 수법. 빈틈 없는 방어술로 적의 스태미너를 고갈시키는 것. 혈기 넘치는 그의 성격과는 정반대의 전략이기에 그가 채택한 수법이었다.


끝 없는 공방에 점차 호흡이 뭉개져 갔다. 자세의 허점이 늘어 미처 막지 못한 잔공격들에 몸 이곳저곳 새빨간 선이 그어졌다.


결국 백작의 속삭임과 동시에 공수의 입장이 교체되었다.


"맞장구 쳐주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황자님."


순간 백작의 양팔이 교차로 크게 올려 그었다.


목표를 사정없이 짓이기던 검은 랜스가 힘 없이 날아올랐다. 꽉 쥐고 있던 팔이 딸려 날아가자 흉부가 훤히 비고 말았다.


마치 주마등이 흘러간 것 처럼, 정신이 아득해진 플루토는 수 초를 속수무책으로 넘겨줬다.


눈 앞에서 다시금 일렁이며 백작은 수십개의 가시들로 변모했다. 벌집이 되는 상상이 머릿속을 통째로 집어삼킬 무렵.


"아직이야."


플루토는 튕겨나간 랜스를 허리까지 틀어가며 붙잡았다. 종아리에 온 힘을 쏟아 땅을 붙들었다. 왼쪽 팔까지 써 랜스를 크게 젖혔다.


수 십번이나 당해온 비장의 기술. 반드시 쓸거라 예상했다. 돌격 승부 위주의 자신에겐 가장 탁월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양손 휘두르기 자세가 된 플루토에 마지막으로 가시가 되려던 백작의 표정이 무너졌다. 후회감으로 일그러지는 백작의 이목구비가 나선으로 빨려들어 갔다.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은 대착점. 백개의 거대한 가시에 플루토는 고함으로 맞섰다.


"하아아아아아아앗!"


사선베기가 백작의 몸에 작렬했다. 크게 휘두른 랜스가 눈앞의 붉은 벽지를 사선으로 찢어 발겼다. 이어지는 풍압이 플루토를 향한 가시들을 돌풍으로 날려버렸다.




'황자님께선 언젠가 스승인 절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날이 서로 죽고 죽여야 할 비극적인 날이 아니길 바랄 뿐이죠.'




몸이 산산히 찢어지는 와중에 백작은 마지막으로 의식을 붙잡았다.




'하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입니다. 이 대련이 끝나고 제가 당신과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 지금 당장 절 넘어서야 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렷품히 기억나는 짗궂은 질문에 백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단 한 번도 제자가 자신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에도 그는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 때와 같은 대답이 울려퍼지자, 백작은 저절로 그려지는 미소를 참지 못했다.



'스승님을 이기기 위해 내가 꼭 이겨야 하는 이유를 떠올릴 거야.'



"당신을 이기기 위해 난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가 필요했어."



기억과 현실에서 엇갈리는 한마디에 백작은 마지막 의식 조각을 스르르 내려 놓았다.



'난 아직 찾지 못했어. 그러니 이번 싸움은 질 게 분명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할 이유가 있어. 그러니 내가 이 싸움에서 질 이유는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 작성자
    Personacon S.W.청명
    작성일
    17.01.13 18:14
    No. 1

    와... 전투씬 잘 쓰신다ㅠㅠㅠ
    저도 3장에 무도대회가 나오다보니 전투씬을 썼는데 굉장히 쓰기 힘들더라고요....
    판타지 액션의 꽃인데ㅠㅠ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베네토
    작성일
    17.01.13 21:06
    No. 2

    칭찬 감사합니다.ㅎ 저의 경우 전투씬에서 중요한 건 구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일 대 일. 일 대 다수. 다수 대 일. 다수 대 다수. 이 네 가지 모두 필요한 것이 다르거든요. 갠적으로 일 대 일을 선호합니다. 면대면으로 부딫칠 때의 각자의 것을 쏟아붓는 비장함만큼 멋진 것도 없거든요.ㅎ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6 삼원색
    작성일
    17.01.28 01:04
    No. 3

    ㅇㅇ 이분 배틀씬 잘 쓰시는 듯 기대없이 들어왔는데 감탄하고 감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베네토
    작성일
    17.01.29 22:16
    No. 4

    에이, 감탄할 정도는...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탈퇴계정]
    작성일
    17.03.25 10:57
    No. 5

    전투씬 잘 보고 갑니다 ^^
    살짝 무협느낌도 나네요 ㅎ 구도가 중요하다는 말
    참고할게욘 ^^
    즐감햇어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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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 말로 +6 17.01.12 522 12 16쪽
» 14. 역전 +5 17.01.10 586 10 9쪽
14 13. 돌파 +1 17.01.09 509 10 11쪽
13 12. 습격 +3 17.01.08 542 10 14쪽
12 11. 운명, 막다른 길 +2 17.01.07 558 10 12쪽
11 10. 공모 +2 17.01.06 592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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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 로프 타운의 보안관 +3 17.01.04 583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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