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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몽환의 역

본 베히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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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
작품등록일 :
2016.12.27 22:52
최근연재일 :
2017.02.21 12:09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8,451
추천수 :
326
글자수 :
174,063

작성
17.01.24 22:06
조회
472
추천
9
글자
9쪽

20. 똬리

DUMMY

"뭐...?"


"그러니까 나에게 말했듯이 말이야."


사이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플루토는 침이 마를 정도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사실 얘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진실을 말이야."


"자, 잠깐! 뭘 말하려는 거야!"


"그 때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되었어. 마음을 가다듬는데도 그렇고. 이렇게 노력하는 친구에겐 더욱 필요한 거야."


그러나 에버리스는 생각이 있다며 눈웃음을 지었다. 플루토가 멍하니 그녀를 보는 동안.


에버리스는 사이먼에게 천천히 다가가 두 손을 잡았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사이먼 앞에서 얼굴을 진지하게 바꿨다.


그녀가 뭔가를 말하려던 순간, 플루토는 한숨을 쉬며 손으로 제지했다. 얼떨떨한 표정을 멀뚱히 보던 에버리스는 미소지으며 한발짝 물러났다.


"본인 소개는 본인이 해야겠지..."


플루토는 이마를 지긋이 누르며 말했다. 상황을 몰라 표정을 찌푸리는 사이먼이 앞에 있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우리가 떠나는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다. 사실 난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플루토는 케케묵은 고서를 털어내듯 말했다. 이제와서야 오래간만인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머지 문장도 다 알고 있고. 그리고 이건 산 너머에서 배울 수 있는게 아니야. 오히려 이곳 녀석이어야 알 수 있지."


사이먼의 눈이 이채로 커졌다.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속았다는 감정이 벌어진 입 속에서 신음한다.


무심하니 말하려나 자꾸만 입 닫고 싶어진다.


플루토는 어둑한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운 듯 돌아보는 눈빛엔 혐오와 조소가 뒤섞여 있다.


"모험가와 제국인들이 부르는 명칭들은 대다수가 달라. 던전은 '암포라'. 괴수는 '베히모스'. 이상하게 몬스터도 '베히모스'. 이렇게 말이야."


벽에 다가갔다. 강줄기를 트듯 꼬불꼬불 칼로 새긴 틈새로 손가락이 미끄러진다.


"그런데 그거 알아? 단 두 가지만은 같은 명칭인 거? 첫번째는 혼돈에는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름을 지을 여유따위 없기 때문이지. 두번째는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고. 이 녀석은 '신'이라 불리지."


"그렇군...생각해보니 모험가들 중 너만큼의 실력자가 있다면 그건 겁쟁이겠지. 약소한 함정이라도 벌벌 기며 피해가는. 그렇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럼 조금 전까진 아예 몰랐던 거네. 그렇지. 내가 너희들이랑 같은 위치라면 일찌감치 함정부터 파악했을텐데. 안타깝게 놓쳤구나, 넌."


사이먼의 싸늘한 안광이 빛났다. 플루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표정을 싸하게 바꿨다.


"'대공황'에 당한 건 너희들만이 아니야. 너희들이 잃은 건 겨우 기술이랑 능력이겠지. 하지만 우린 자신을 잃었어."


"무슨 소리지?"


"기억하는 모든 것에 서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면? 너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가 너 대신 서있었던 거야. 지금까지 너라고 생각했던 놈이 너라고 느껴지지 않는 거라고."


"그게 도데체 어쨌다는 거냐고. 너희 제국인들의 변명은 들어주고 싶지 않아. 말하고 싶은 걸 얼른 말해."


사이먼은 이젠 이빨까지 드러내며 말했다. 가슴 한가득 끓는 증오가 첨예하게 날이 섰다. 플루토는 에버리스에게 가관이라며 비웃으려 했다. 그러나 진지함이 서린 그녀의 침묵에 좀 더 말해보려 했다.


이미 저질러 버렸으니.


"좀 머리를 굴려봐. 옮기기까지 다해서 눈앞에 답이 있는데 놓치면 아깝잖아. 난 왜 녀석들이 자기들만의 도시로 떠난 이유를 말하고 있다고."


"그럼 나머지 문구는 어떻게 되는거지?"


"명을 받았기에 거스를 수 없다. 이건 순 핑계일 뿐이지. 기억 왜곡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속 편해지니까. 진짜로 어떤지는 알아볼 생각도 않지."


"하, 동족을 까는 거냐? 그런 식이라면 나한테 점수라도 딸 줄 알고?"


"너네들만 할까. 그리고 이제부터가 중요할텐데 끊으면 너만 손해야. 보자하니 내가 제국인이라 짜증나면서도 좋아 보이는데? 모르는 건 다 나한테 물으면 되니까."


"얼른 말이나 해."


사이먼은 분을 애써 삭이고 있었다. 플루토는 다루기 쉬운 녀석이라고 속으로 미소지었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 작은 미소마저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세상엔 하나의 신만이 남겨져야 한다는 건..."


사이먼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끝을 흐리는 플루토의 속을 읽을 수 없어서 였다.


플루토는 냉담하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내뱉었다.


"이단 심판, 다시 말해 제국 국교인 십자성단이 인정하지 않은 모든 술(conjure)을 파괴하는 걸 뜻한다..."


천천히 자신의 손을 들여다 봤다. 주먹쥐는 손아귀엔 무시무시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쥐어졌다.


여기까진 모든 제국인들이 아는 사실이다. 사이먼에게 모든 것을 말할 필요는 없다. 그저 제국인 하나 정도로 남으면 된다.


그럼에도 부르르 떨리는 이빨은 멈추질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노력을 부수는게 싫어 도망쳤거늘, 다시 파괴의 연쇄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이번엔 누구도 기쁘지 않을 방법으로.


플루토의 낮빛이 어두워지는 동안, 사이먼에겐 충격이 관통한 표정이 그려졌다.


"그, 그럼 거기엔 뭐가 포함되는데? 국교가 금지시킨 것들엔 뭐가 들어가냐는 뜻이야."


"걱정마. 모험가들이 쓸 수 있는 수준에 그런 건 없어. 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었을리가."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먼은 둘째치고 에버리스조차 처음 듣는 내용에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물론 사이먼 넌 위험하지. 깊고 파고들었으니까. 이 근방 녀석치곤 너의 마술은 이상하게 강하지. 그야 넌 원래 마술을 배우는 법을 따라갔으니까. 뭔 이상한 손가락질 몇 번으로 배우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봐."


플루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험가들의 능력을 비꼬았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는다. 이젠 완벽히 경청 상태가 된 사이먼이었다


"그래도 이런 짓은 그만두라고. 통제 없는 힘은 언제나 문제 있기 마련이야."


플루토는 포대에서 창을 꺼냈다. 영문 몰라 멀뚱한 사이먼을 무시하고 단숨에 창을 내찔렀다. 벽이 어둠 속에서 굉음으로 신음했다.


뒤를 돌아 태연히 걸어갔다. 경악하여 입이 떡 벌어진 사이먼을 지나쳐 갔다. 흙먼지가 나풀거릴 때에서야 그는 고함질렀다.


"무, 무슨 짓이야! 아직 연구할 게 태산처럼 남았단 말이야!!"


불같이 화내는 사이먼에 플루토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따라해 봐. 이렇게."


플루토는 손을 수평으로 그었다. 에버리스 때와 똑같이.


저도 모르게 따라한 사이먼의 눈이 팽창했다. 얼떨떨하게 뒷 모습을 따라가는 시선에 한마디 건넸다.


"세상엔 끙끙댄다고 잘 풀리는 것들만 있진 않아. 꼭 필요한 곳에 전력을 쏟으라고."


신전이 하얀 먼지로 아우성쳤다. 신음하는 천장과 벽이 자갈비로 터져 나갈 무렵.


"너 같은 녀석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셋은 신전의 최후를 뒤로 했다.






온 산이 진동으로 울어댔다.


저 멀리 산을 보고 있던 테르미온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늦은 모양입니다, 흐흐."


테르미온의 기분나쁜 웃음소리에 병사들은 속으로 찡그렸다. 그런 것마저도 이 느긋한 노인은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 선 검은 기사는 반응이 없었다. 광택 빛나는 새까만 갑주로 중무장한 기사는 투구 속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검은 군마는 두려움이라는 갑주로 무장해 있는 듯하다.


신비와 공포에 감싸인 거구의 기사 듣게 테르미온은 비아냥거렸다.


"이거 이거, 나이트 로제타가 맞았군요. 우리가 늦을 거라는덴 저도 동의했습니다. 이거 당신 때문에 헛걸음 해버렸군요."


기사는 듣지조차 않는듯 했다. 테르미온은 이젠 코웃음까지 쳤다.


"평원이 열려버린 지금에는 레이크볼 산에서 클로버 타운까지의 길은 무수히 많단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만 묻죠. 뭐하러 병사들까지 대동해서까지 무리하신 겁니까?"


테르미온의 말에 기사는 아무말도 없었다. 침묵이 꽤나 지루해지려 할 무렵, 테르미온은 귀를 의심했다.


"녀석은 저 산을 나오지 못한다."


투구 속 싸한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어깨에 얹은 할버드를 고쳐쥐는 게 보였다.


"선수를 빼앗겼군."


어둡게 가려진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갔다. 영문 모를 분노 서린 시선이었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던 찰나.


무언가 있다. 산을 통째로 감은 무언가가 있다. 지옥의 밧줄이라 착각할 거대한 무언가 여럿이 똬리를 틀고 있다. 스르르 땅에서 올라오는 그것들에 손발이 심하게 떨렸다.


테르미온은 숨을 삼켰다. 스르륵 뱉어지는 날숨에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 듯 했다. 커진 동공은 잦아들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베히모스...님로드."


두 입꼬리가 볼을 찢듯 올라갔다.


작가의말

여기서 설정 풀이! 모험가들의 성장도는 3개의 계급으로 나뉩니다. 가장 낮은 제 3계 성 급, 현재 에버리스의 상태입니다. 그 다음으로 제 2계 성좌 급, 제국의 모험가들을 뜻합니다. 사이먼의 경우 1년 간의 신전 조사를 통해 그들과 비슷한 수준을 이룩했죠. 그리고 대망의 제1계 성운 급, 지금껏 단 한 명의 모험가만이 그 위치에 올라섰고 지금은 대전쟁과 성장 방해로 더 이상은 없는 계급이지요. 

그렇다면 모험가들의 사후 형태인 괴수(베히모스)들에게도 계급에 따른 강함이 존재하지 않을까요? 차원이 다른 ‘기괴함’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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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S.W.청명
    작성일
    17.01.25 00:26
    No. 1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공부가 되네요. 저는 표현력이 많이 부족해서 베네토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저런 상황에 저런 표현을 쓰면 더 매끄럽구나 라는 걸 많이 배웁니다ㅠㅠ
    그나저나, 이단 심판이라니...무섭네요ㅠㅠ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17 베네토
    작성일
    17.01.25 00:34
    No. 2

    과찬이십니다 ㅠ 그 단어의 경우 금기시하는 마술이나 점성술 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지 고민하다 생각난 거네요.ㅎ 물론 자기네들 기준으로 금기시하지만요. 대신 뭘 금지하려는지는 꼭 봐주셨으면 하네요.ㅎ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6 삼원색
    작성일
    17.01.28 01:15
    No. 3

    표현력이 훌륭하다고 해야할까요 계속 읽는 내내 감탄함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베네토
    작성일
    17.01.29 22:18
    No. 4

    감탄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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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 말로 +6 17.01.12 522 12 16쪽
15 14. 역전 +5 17.01.10 585 10 9쪽
14 13. 돌파 +1 17.01.09 509 10 11쪽
13 12. 습격 +3 17.01.08 542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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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급습 +3 17.01.05 586 10 10쪽
9 8. 로프 타운의 보안관 +3 17.01.04 583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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