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 너머 몽환의 역

본 베히모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베네토
작품등록일 :
2016.12.27 22:52
최근연재일 :
2017.02.21 12:09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8,464
추천수 :
326
글자수 :
174,063

작성
17.01.06 23:45
조회
592
추천
10
글자
10쪽

10. 공모

DUMMY

플루토는 경직된 채 목덜미를 만지는 도니타를 무시하고 천천히 랜스를 포대에 넣었다. 눈빛을 처연함으로 내리깐 채 포대를 힘없이 어깨에 매었다.


플루토는 자신의 창끝이 뭉뚝하다는 걸 잘 알았다. 그만큼이나 자기 자신이 무른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바꿀 기회가 있었음에도 플루토의 창은 뾰족하지 않았다. 죽여야만 할 상황이 생겨도 찔러선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베이거나 관통당하는 것 외에 부숴 져도 죽을 수 있다. 살인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끝만 뭉뚝하게 한 어리석음. 혈기에 불타올라 모험가들을 구하겠다고 나온 무른 자신과 같게 느껴졌다.


부정한 탑을 부수는 일 외엔 쓰고 싶지 않은 저주받은 창. 최근 다른 목적으로 여러 번 쓰이는 것 같다.


고개를 숙인 채 여관 문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미안해. 이러려고 한 게 아니야."


발걸음이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여관 안과 밖의 경계선에 선 플루토는 목만 돌려 도니타를 노려봤다.


"우리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어. 제국 녀석들이 너를 찾아내라고 압력을 넣었어. 그리고..."


도니타는 시선을 사선으로 피한 채 말했다. 그녀의 눈빛이 진의로 빛났다. 진심어린 사과란 걸 알고 있음에도 플루토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리고 던전이 우릴 가둬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우리에겐 필요한 곳이야. 필드 몬스터가 괴수들에게 전멸해 버린 뒤로 던전이 아니면 우린 살 수가 없었어."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에 플루토는 눈을 가늘게 떴다. 평원의 패왕, 베히모스는 모험가들이 이 세상에 갇혀 버린 순간 태어났다.


견고한 암석 갑피는 어떤 피해에도 면역. 매섭게 돌진해오는 거구는 무슨 수로도 막을 수 없다. 무쇠의 턱은 어떠한 재질도 자르며 억센 네 다리로 적을 짓밟아 뭉갠다. 집착성이 강해 한 번 쫓은 사냥감은 지쳐 다리를 꺾을 때까지 추격한다.


그들의 압도적인 능력치에 평원의 몬스터들은 도태되었고, 모험가들은 생존을 위해 던전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런 모험가들이 처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해결하려는 녀석이 보이지 않아 한탄할 뿐이다.


그런 플루토의 심정을 아는지, 도니타는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정말 미안해. 난 너가 제국인들이랑 같을 줄 알았어. 이 마을의 리더로서 사과할게. 모두 내가 시킨 일이야. 이 사람들은 책임이 없어. 너가 어떤 녀석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낮은 자세로 나온 그녀의 행동에 정말로 진의가 담겨 있을까. 플루토는 새삼 그런 게 떠올랐다. 그녀의 침울한 표정만으론 충분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진심을 알기 힘들었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빌붙으려는 걸까. 이제와서 기회를 잡으려는 걸까. 이러다가 표정을 싹 바꿔 공격하지는 않을까. 대신 저택에 틀어박힌 제국인을 끄집어내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닐까.


마노 때부터도 그렇지만 배신당하는 것은 아닐까. 잡념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내가 널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좀 전까지 공격해 왔는데 말이야."


도니타는 입을 열지 못했다. 플루토는 이런 정적의 상황이 괴로웠다. 서로 믿을 수도, 마음 편하게 적으로 돌리고 쳐부술 수도 없다. 신뢰의 경계선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답답했다.


그래서 이래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먼저 말해 버렸다.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적이 하나란 걸 알려주면 되잖아. 결국엔 너나 나나 이상한 상황에 휘말린 거야. 둘 다 어쩔 수 없이 협력하는 걸로 하면 되잖아."


플루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니타의 눈빛이 놀라움에서 환희로 변하는 순간에도 그 한숨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따라 짧은 한숨이 길게 느껴졌다.






여관의 부산스러움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연중무휴의 축제를 원한다면 이곳 인파에 끼어들면 될 정도였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여관의 분위기는 이상하리만치 밝았다. 이 사람들,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는 걸까. 잠깐 동안의 정적이 싫어 주변 관찰겸 나갔다 왔더니 다시 이런 무르익은 연회이다. 단순해서 좋겠다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은 애써 즐거운 척하고 있었다.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취하지 않는 술을 연신 들이키며 세상사의 슬픔을 애써 삼킨다. 안쓰러울 정도로 마셔대며 거한들과 어깨동무하는 도니타는 특히나 부자연스러웠다.


이런 모순적 상황엔 전혀 동화될 수 없었다. 마음 한가운데에서 받아들이질 못한다. 이질적인 기분에 그저 벽에 기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길 뿐이다. 도니타가 한 말이 떠올라 머릿 속이 두루뭉실해졌다.


'제국 녀석들이 널 무척이나 찾아다니더라? 그리고 그 중 한 여자는 으름장까지 놓고 갔어. 널 찾으면 꼭 자신한테 보고하라고.'


벌써 제국군이 눈치챘다는 건가. 지금까지 무너뜨린 던전은 3개. 시작의 마을에서 부터 여기까지의 행보이다. 이젠 좀 더 서둘러야 되었다.


또 과거의 행적. 정체를 파악하는 거야 5년 만의 마을 간 이동이었으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도니타는 과연 어디까지 눈치 챈 것일까. 플루토는 자신의 어설픈 위장 능력에 한숨을 내쉬었다.


대강의 화해 후 도니타는 어색해진 사이를 해결하려고 일부로 밝은 척했다. 이것 또한 부자연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물론 난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하지 않을 거야. 넌 좀 더 훌륭한 곳에 써져야 해.'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었다. 물론 어디에 쓰려는 건지야 뻔했다. 저택 돌입이겠지. 저택에 틀어박힌 제국 귀족 녀석을 요리하려면 가로막는 용병들을 묵사발 내와야 한다. 그 역할을 플루토가 맡게 된 것이다. 아마 용병들이 술주정꾼 제국 귀족에 비하면 백 배는 강할테니 말이다.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그 뒤는 생각해 봤나? 너희들 모두 죽을지도 몰라. 이런 계획, 난 별로 내키지 않아.'


'어머, 걱정해 주는 거야? 그건 기쁜데? 하지만 우리라고 간단히 당하진 않아.'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야? 어떤 녀석들이 배치되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나라도 위험할지도.'


'수호자보다 강한 녀석이 제국에 있단 말이야? 넌 서사시적 영웅 수준이잖아.'


'원래 명예는 부풀려지기 마련이지. 그리고 난 후보였을 뿐이야. 분명 기사 녀석들 중 여자가 그렇게 말했겠지. 덩치 큰 녀석은 툴툴거렸겠고.'


'호오, 내 머릿 속을 들여다 봤나?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몰라, 그냥 좀 짜증나는 녀석들이니까.'


그 순간만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한 때 친구였던 자들과의 기억. 미소 한가득 꽃 핀 머릿 속의 그림일기들.


장면은 선명히 떠오름에도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 희미했다. 그곳에 있었던 게 정말로 본인인지 알 수 없었다.


공간이, 시간이, 그리고 찰나를 흐르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공허한 기억일 뿐이다.


플루토는 상념이 되어버린 추억을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지금은 이럴 시간이 아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아직 내 질문에 답을 안 했어. 무슨 작전이라도 생각해 놓은 거야?'


'작전? 당연하지! 너가 용병들을 상대할 동안 우리들 모두가 귀족 놈을 후두려 패놓는다. 어때, 합당하지?'


...이 여자, 점점 싫어진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작 그 자리에선 고개를 끄덕였다. 열쇠를 양도받는 대신 최상층의 보상을 일부 제공하기로 했다. 그걸로 거래는 끝났다.


이제 할 일은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 저녁 시간의 애매한 어두움만으론 저택을 기습하기 불충분했다. 우선 저택에 들어가 용병들을 쓰러뜨리려면 잠입해야 한다. 플루토가 용병들을 쓰러뜨리는 동안 모험가들이 귀족이 도망치지 못하게 곧장 진입한다. 대강 이런 작전 같지도 않은 작전이었다.


뭔가 역할이 심히 바뀐 느낌이다. 다수가 다수를 상대하고 개인이 개인을 상대해야 맞는 것 아닌가. 상당히 이색적인 전략이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이쪽을 향한 노골적인 발걸음 소리에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아, 너."


맑은 눈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뒷짐지고 올려보는 소녀의 부드러운 미소에도 플루토는 무표정을 일관했다.


"나한텐 말해도 괜찮은데, 헤헤."


"있다면 해결해 줄 거야?"


툭 던진 질문에 에버리스는 빛나는 눈망울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멍한 표정을 바꿔 씩씩하게 웃었다.


"물론! 일단 말해 보라고!"


어째서인지 그녀는 자신이 넘쳤다. 왠지 모르게 무진장 약올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플루토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린 후 비꼬듯 말했다.


"무시무시한 몬스터들과 대판 싸워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피터지는 싸움에 깔릴지도 모르겠어? 도와줄 수 있겠어."


"응."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오히려 약이 오른 플루토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응? 그럼 괴수들은?"


"응, 그것도."


"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거기까진 무슨 수로 네가..."


"도와 줄 수 있어."


에버리스의 어처구니 없는 말에 순간 입을 헤 벌렸다. 그녀는 헛기침을 한 후 당당히 가슴을 폈다.


"너가 무슨 고민이 있든 해결해 줄 수 있지. 따라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본 베히모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자유연재로 돌릴 예정입니다. +2 17.02.23 498 0 -
공지 토, 일은 수정 작업을 합니다. +2 17.02.05 222 0 -
공지 제목 변경을 공지합니다. +4 17.01.26 289 0 -
34 31. 정세 +1 17.02.21 243 3 13쪽
33 30. 성창 +1 17.02.17 282 4 10쪽
32 29. 모험가 +2 17.02.14 224 5 10쪽
31 28. 신의 사다리를 잡은 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3 17.02.09 383 7 10쪽
30 예고편. 아크(Arc) +7 17.02.08 429 6 15쪽
29 27. 잔재 +11 17.02.07 394 7 12쪽
28 26. 크레이터 +2 17.02.06 297 6 9쪽
27 25. 결의, 그것은 최후의 맹약 +8 17.02.03 475 8 13쪽
26 24. 사냥, 그것은 산 자들의 추격전 +3 17.02.01 435 7 8쪽
25 23. 사이먼 +4 17.01.31 503 7 10쪽
24 22. 악마 +1 17.01.30 443 7 9쪽
23 21. 님로드, 그것은 부정의 이름 +5 17.01.26 404 8 10쪽
22 20. 똬리 +4 17.01.24 473 9 9쪽
21 19. 으스러짐 +4 17.01.21 565 9 10쪽
20 18. 외로운 산의 마법사 +9 17.01.19 586 12 9쪽
19 17. 카노푸스로 +3 17.01.19 561 11 11쪽
18 예고편. 운명을 구부리는 산 +12 17.01.16 562 12 3쪽
17 16. 기울어짐 +7 17.01.14 573 11 11쪽
16 15. 말로 +6 17.01.12 523 12 16쪽
15 14. 역전 +5 17.01.10 586 10 9쪽
14 13. 돌파 +1 17.01.09 509 10 11쪽
13 12. 습격 +3 17.01.08 543 10 14쪽
12 11. 운명, 막다른 길 +2 17.01.07 558 10 12쪽
» 10. 공모 +2 17.01.06 593 10 10쪽
10 9. 급습 +3 17.01.05 586 10 10쪽
9 8. 로프 타운의 보안관 +3 17.01.04 585 9 15쪽
8 7. 징벌 +5 17.01.03 640 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