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저 너머 몽환의 역

본 베히모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베네토
작품등록일 :
2016.12.27 22:52
최근연재일 :
2017.02.21 12:09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8,458
추천수 :
326
글자수 :
174,063

작성
17.01.21 23:49
조회
564
추천
9
글자
10쪽

19. 으스러짐

DUMMY

"물론 나도 가야지. 이 녀석만 보내면 불안해서 어떡해."


플루토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에버리스도 이젠 화가 풀린 모양인지 아무 말도 안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이 왜 필요한지는 묻지 않았다. 괜스레 자신의 정체를 탄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먼은 한 차례 피식 웃었다. 플루토와 에버리스는 그의 가벼운 발걸음을 따라갔다.


"적어도 우리가 어디가는지는 말해주면 안 될까? 순순히 따라는 가지만 말이야.


플루토는 '순순히'라는 말을 특히나 강조했다. 물론 그러려는 의향은 없었다. 만일 공격의 의사가 보인다면 즉시 반격할 것이다.


다만 좀 전 상대했던 함정들을 보고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적어도 그를 따라간다면 번거로울 일은 없을거라 판단했다.


플루토의 말에 사이먼이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언짢은 표정을 짓자 그 때서야 장난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여기 레이크볼 산에 오는 이유는 한 가지 아니겠어? 옛날이나 지금이나 카노푸스 신전 외엔 이 외진 곳을 올 이유가 없지."


"흥, 꽤나 자랑스럽게 말하는군. 거기 뭐라도 저당 잡아놨나?"


"직접 보라고, 흐흐.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플루토는 재미없다는 듯이 콧김을 불었다. 사이먼은 그것마저도 재밌는지 팔짱을 크게 끼었다. 에버리스는 둘 사이의 이질적인 공기에 양쪽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래봐야 별 것 없다. 던전이 신전의 형태라고 해서 별 차이가 있을리 없다. 모든 던전은 천연적인 탄생 순간과 몬스터의 끝없는 부활. 그 뿐만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외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질리는 구조다.


더군다나 이곳, 모험 초심자들을 위한 던전은 지형 분포도 고르다 못해 평지 수준이다. 와이번 때도 그렇고, 시리우스 때도 그렇고 눈만 있다면 길을 잃을 수가 없다.


마치 고의로 그렇게 만든 것처럼.


수풀 우거진 녹색 파도가 바람에 한 차례 휘날렸다. 이파리 흩날리는 대양에 플루토는 타성에 젖어 걸었다.


뭔가를 계획하려고 머리를 살짝 내렸지만, 틈새로 번지는 따스한 햇빛에 눈꺼풀이 무겁다. 반쯤 멍한 상태로 걷던 중.


"누구 생각이라도 난 거야? 아님 여기에 추억이 있던가?"


"아니, 처음 와 봐. 지금은 한 번도 안 와봤기에 이럴 수 있는걸꺼야."


사이먼이 장난스런 미소로 말하자 툭하니 대답했다.


그러나 대충 던진 대답에 사이먼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해보니 이곳은 던전 카노푸스. 성좌의 위치에 지어진 이곳은 별들의 순열을 따른다. 시리우스, 그 다음은 카노푸스. 이런 식으로.


이 순서가 바뀔 수 없단 건 다른 의미론 모험가들이 거쳐가는 순서란 뜻이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실력에 이런 곳도 지나지 않았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명백한 실수였던 것이다. 에버리스의 불안히 흔들리는 눈동자가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플루토는 숨결 하나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여전히 차분히 내려앉은 눈빛으로 천천히 답을 줬다.


"난 메아리 산을 건너 왔다. 이곳 모험가가 아니야."


엄밀히 말하자면 모험가도 아니지만. 굳이 알려줘 좋을 게 없기에 그렇게 말했다. 앞은 맞으니까.


사이먼은 진위조차 판별하려 하지 않았다. 번쩍 뜨여 굳은 눈동자엔 어떤 감정이 서려 있는걸까. 말문이 막혔는지 헛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메아리 산?"


"그래. 고대룡이 산다는 그곳."


혹시나 몰라 보충해줬지만 별로 귀담지 않는 듯 했다. 그런 게 중요한 상황이 아닌듯 싶다.


에버리스의 입술이 달싹였다. 거짓을 말하기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플루토는 그녀를 보고 작게 미소지었다.


이 녀석 넘어왔어.


그 다음은 예상대로였다.


사이먼은 플루토의 팔을 휙 잡아 채더니, 쏜살같은 달리기로 그를 끌고 갔다. 뒤에서 에버리스의 멍한 신음이 멀어졌다. 그렇게 달려 간 곳은.


"그렇게 조급해서 어떡해?"


플루토는 놀리듯 말했다. 사이먼은 숨 하나 차지 않는 모험가 특유의 열정으로 앞을 가리켰고,


"너가 정말로 그곳에서 왔다면...정말로 용의 산을 넘었다면..."


환희에 젖은 목소리는 숨가쁜 느낌을 주었다. 한손가락으로 안경대를 밀어쓰는 특이 행동과 함께.


사이먼의 안경이 빛났다.


"너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어. 이 또 다른 용의 산에서."






던전.


동굴, 탑, 신전 등 모습도 가지각색의 건축물. 모순적이게도 건물이나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산과 바다와 같은 자연의 산물이다.


그 모습은 대체로 아름답다. 그 이면에 숨겨둔 것을 가릴 정도의 위상이 모험가들을 홀리는지도 모르겠다.


그 본질은 성좌의 연결. 천체의 인과를 끌어내린 점성'술'의 결과물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가 입모아 한 곳을 지목한다.


던전이 진주알 대신 품은 그것은 십자성(Cross nova).


그렇기에 제국인이라면 신의 창조물이라 믿는다. 의심없이 그것이 신의 징표라고 믿는다.


그들과 괴수를 머금은 자들 사이 선을 긋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던전엔 항상 숭배의 표시로 가득하다. 인위적인 문자의 나열이 성스럽다고 여긴 것이다. 우습게도 천연의 건물에 말이다.


플루토는 어두컴컴한 신전 속에 새겨진 글귀를 눈으로 따라갔다. 눈이 침침했지만 왠지 그 내용에 눈을 뗄 수없었다.


"뭔가 알아낸 거야?"


에버리스가 옆에서 불안하게 신음했다. 을씨년스러운 곳에 들어오자 에버리스는 의기소침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한동안 말이 없다 이제야 소곤거리니 웃겼다.


"아직.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너가 읽을 수 없는 거란 말이야?"


놀란 표정으로 에버리스가 천천히 귀에 다가왔다. 반대 방향에서 뭔가를 적는 사이먼을 곁눈질하며.


"넌 제국인이잖아."


에버리스의 속삭임에 무안해졌다. 플루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읽을 수는 있어. 다만 읽는 거랑 이해한다는 거랑은 다른 세계라고 봐, 난."


"그럼 어떻게 읽는지만 알려주면 안 돼?"


옆에서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플루토는 설마 도움이 되겠어, 하고 냉큼 읽은 걸 읊었다.


"일기야. 누군가의 일기. 자기네 신전에 낙서라니 대단한 신앙심이군. 아, 내용은 이렇게 쓰여 있어."


플루토는 한차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생각만 해도 어처구니 없는 글귀였기에.


"나는 발자취를 따라갔다. 빛이 있다. 나는 으스러졌다."


"뭐...문학적이다고 해야할까...그 외엔 괜찮다고 보는데?"


"전 날 으스러진 사람이 다음 날 일기를 써?"


에버리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플루토는 어깨를 으쓱인 후 계속 읽어나갔다.


"나는 또 다시 발자취를 따라갔다. 빛이 있다. 나는 으스러졌다."


"뭐야! 또? 아까랑 똑같잖아."


"너도 어처구니 없지? 다음 것도, 그 다음 것도 전부 똑같아. 왜 이렇게 썼는지 알 수가 없네."


"역시 너도 읽을 수 있군. 문제 삼는 곳도 똑같고."


뒤에서 사이먼이 걸어왔다. 플루토는 이제야 끝났냐며 입꼬리를 달싹였다. 제법 오래 기다렸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해 온 업적엔 감탄할 따름이다. 사실 오래 걸릴지언정 제국어를 번역한 모험가는 사이먼이 최초이다.


시도한 것도 최초이고. 그렇기에 제법 높게 평가하고 있다. 능글맞은 성격만 아니었다면 좋아질텐데.


사이먼은 다시 그 특유의 한 입꼬리 미소로 말했다.


"나도 이상했다니까? 누가 썼는지는 감도 못잡겠어. 뭘 썼는지는 더더욱. 혹시 짐작가는 거 없어?"


"있지. 글솜씨가 더럽게 봐주기 힘들다는 거. 다른 녀석들에 비해 이 녀석은 너무 볼품없어. 읽어주고 싶지도 않다고."


플루토가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그런 후 사이먼이 건네주는 두루마리를 받았다. 사이먼은 기쁜지 입꼬리가 양쪽 모두 올라갔다.


플루토는 잠자코 그것을 읽었다. 또박또박 야무지게 받아적은 문장이 제법 술술 읽히는 게 놀라웠다. 제국어의 기본 형태에 심도 깊은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경지다.


그렇기에 머릿 속을 휘젓는 문구에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무척이나 신경이 거슬렸다.


"우리가 떠나는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다. 사명을 받았기에 거스를 수 없을 뿐이다. 세상엔 하나의 신만이 남겨져야 한다. 이 땅의 신비를 모조리 사냥해 멸할지라도."


마지막 문구는 건조하기 그지 없었다.


"강철의 나라는 유일로 영원할 것이다."


"오오, 역시 제대로 읽을 줄 아네?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저 너머에서 왔다면 더 뭔가를 알듯 싶어서 말이지. 여기서 막혀버려서 머리가 아프다고."


사이먼은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호기심으로 점철된 접근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상황이 마음에 안들었다.


어떻게 말해야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에 덜컥 입이 열려 버렸다.


"몰라. 말했듯이 읽는 거랑 이해하는 거랑은 달라."


플루토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시야가 이동하는 찰나, 사이먼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스쳐갔다.


사이먼은


"1년이나 여기 투자했단 말이야. 좀...도와줘."


어깨를 잡혀 뒤를 돌아봤다.


사이먼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간절한 눈빛으로 부탁하고 있다.


플루토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있는대로 다 말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어디에 있을지 모를 함정들이 전부 작동할 것이다.


더군다나 사이먼은 예상 밖의 강적. 이런 곳에서 제국군 외에 이 정도의 적을 만날 줄은 몰랐다. 단 한 차례 겨뤄 봤지만, 마나의 분배와 기술의 응용면에선 탄식할 정도였다.


하지만 말해주지 않기도 그렇다. 1년 동안이나 노력해왔는데 큰 벽에 가로막혔다. 과거 그 답답한 심정이 떠오르자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어쩌지...'


고뇌에 빠져있던 사이, 에버리스가 말했다.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면 되잖아. 고민할 필요없이."


그 순간 플루토의 눈이 크게 뜨였다.


"뭐...?"


작가의말

어? 던전인데 몬스터가 없네요? 다 어디 간 걸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S.W.청명
    작성일
    17.01.22 00:35
    No. 1

    엥. 그러게요. 던전하면 몬스터고 몬스터하면 아이템 드랍이고, 아이템은 레어템과 잡템으로 나뉘는데?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17 베네토
    작성일
    17.01.22 00:54
    No. 2

    ㅎㅎ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후, 던전하면 몬스터죠. 기대해주세요, 후후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20 [탈퇴계정]
    작성일
    17.04.15 02:11
    No. 3

    에버리스가 또.....ㅎ
    잘 읽고 가용 ~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베네토
    작성일
    17.04.16 20:27
    No. 4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ㅠ 제가 계속 스케줄 문제로 연재를 지연하는 것도 좀 그렇고...ㅠ 조만간 리메이크해서 돌아오겠습니다! 다음엔 좀 더 알차고 재밌는 내용으로 보답할게요.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본 베히모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자유연재로 돌릴 예정입니다. +2 17.02.23 498 0 -
공지 토, 일은 수정 작업을 합니다. +2 17.02.05 222 0 -
공지 제목 변경을 공지합니다. +4 17.01.26 289 0 -
34 31. 정세 +1 17.02.21 243 3 13쪽
33 30. 성창 +1 17.02.17 282 4 10쪽
32 29. 모험가 +2 17.02.14 223 5 10쪽
31 28. 신의 사다리를 잡은 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3 17.02.09 383 7 10쪽
30 예고편. 아크(Arc) +7 17.02.08 429 6 15쪽
29 27. 잔재 +11 17.02.07 393 7 12쪽
28 26. 크레이터 +2 17.02.06 297 6 9쪽
27 25. 결의, 그것은 최후의 맹약 +8 17.02.03 475 8 13쪽
26 24. 사냥, 그것은 산 자들의 추격전 +3 17.02.01 435 7 8쪽
25 23. 사이먼 +4 17.01.31 503 7 10쪽
24 22. 악마 +1 17.01.30 442 7 9쪽
23 21. 님로드, 그것은 부정의 이름 +5 17.01.26 404 8 10쪽
22 20. 똬리 +4 17.01.24 473 9 9쪽
» 19. 으스러짐 +4 17.01.21 565 9 10쪽
20 18. 외로운 산의 마법사 +9 17.01.19 586 12 9쪽
19 17. 카노푸스로 +3 17.01.19 561 11 11쪽
18 예고편. 운명을 구부리는 산 +12 17.01.16 562 12 3쪽
17 16. 기울어짐 +7 17.01.14 573 11 11쪽
16 15. 말로 +6 17.01.12 522 12 16쪽
15 14. 역전 +5 17.01.10 586 10 9쪽
14 13. 돌파 +1 17.01.09 509 10 11쪽
13 12. 습격 +3 17.01.08 542 10 14쪽
12 11. 운명, 막다른 길 +2 17.01.07 558 10 12쪽
11 10. 공모 +2 17.01.06 592 10 10쪽
10 9. 급습 +3 17.01.05 586 10 10쪽
9 8. 로프 타운의 보안관 +3 17.01.04 585 9 15쪽
8 7. 징벌 +5 17.01.03 640 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