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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흑마법사가 방송을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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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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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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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컨텐츠로 배워볼 생각이 있냐니.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이지?


긴가민가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혹시 농사를 가르쳐준다는 건가요?”


[젖소가싫어요 – 아뇨 흙을 정화하는 거요]

[젖소가싫어요 – 아까 보니까 신성을 다룰 줄 아시던데 제가 성직자라서요]


···백수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설마 그쪽 계열이었을 줄이야.

솔직히 위험을 감수하고도 흥미가 생긴다.

아니, 안 생기는 게 이상하다.


마경에 침식된 토양을 정화할 수만 있다면 다시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특히 토양을 아껴서 소모할 필요가 없어지니 더 넓은 면적의 농사를 짓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즉, 마경에서의 농사 라이프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물자의 한계가 있어 평생 산다고 확신은 못 하지만, 그래도 단순 기간으로 몇 개월 정도는 확실히 더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전 좋아요. 생존에 직결되는 거니 거절할 이유가 없죠.”


[지붕맛 - 오 잘하면 밥 안 굶을 수 있는 거 아님?]

[zell369 - 성직자분도 방송이란 걸 보시는구나ㄷ]


시청자가 뜬금없는 제안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다행히 채팅창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가르쳐주신다는 건가요?”


문제는 물리적인 부분이었다.

결국 나와 소통할 방법은 채팅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채팅을 보고 배우려 한다면 이해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건 자질이라기보단 감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신성」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루는지 물어보면 제각각의 대답이 나올 것이다.


참고로 나는 「신성」을 물풍선처럼 생각해서 다룬다. 펑 하고 터지지만 않도록 크기를 키우거나 매만진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 들었을 때 마치 갓난아기를 생각해서 조심스레 다룬다고 한 사람도 있었으니, 그에 비해 난 꽤 거칠게 다루는 편이었다.


[젖소가싫어요 – 그건 아직 생각을 안 해봤어요]

[젖소가싫어요 – 방금 놀라서말한거라;]


그렇긴 하겠지.

설령 가능한 수단이 채팅밖에 없다면 그건 컨텐츠적으로 고민해 봐야 하는 부분이다.


다른 시청자들이 내가 채팅으로 수업을 듣는 걸 보면서 무슨 재미를 느끼겠는가?


만약, 나에게 「신성」을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빠르게 배우더라도 다른 이들에겐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되지 않을 것이다.


‘공감이 가지도 않고 지루하겠지.’


생존과 직결된 것이니 처음에야 잠깐 봐준다 하더라도, 아까 내 회심의 유머가 실패하자 가차 없이 시청자가 줄어든 걸 보면 이 업계는 꽤 냉정하다.


차라리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저스트 채팅을 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이제 와서 방송을 배제할 순 없다.

여태까진 숨만 붙어 있었을 뿐 죽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는 걸 자각했으니 말이다.


“좋아요. 괜찮은 생각이 나면 말씀해주세요. 부담가지진 마시고요.”


[젖소가싫어요 – 근데 그건 어떻게 다룰 수 있는 거예요?]

[젖소가싫어요 – 흑마법사시잖아요]


“아, 그건···.”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비밀이에요. 나중에 흙을 정화할 수 있게 되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젖소가싫어요 –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채팅을 마지막으로 젖소가싫어요는 방송 종료를 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으음. 젖소가싫어요.

꽤나 음흉한 시청자구나.




***



[‘IVAN’ 님의 방송 통계]

[총 방송 시간 155 시간]

[최고 시청자 244명]

[평균 시청자 142명]

[팔로워 4,921명]

[팔로워 변동 +3명]



***




어쨌건 연달아 희망찬 소식이 생겼구만.


유클리드12를 통해 식량이 있을 만한 장소의 좌표를 얻었고, 젖소가싫어요는 내가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신성」을 다루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준다고 했다.


이렇게 된다면 다시 물자를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아직 늦지는 않았다.

당장 부족한 것은 마경에서 활동하기 위한 마나 포션밖에 없었다. 체력 포션이라든가, 다른 것들은 아직 몇 개월은 버틸 만큼 충분하다.

사치 부린 물자도 위생과 관련된 목욕이었고.


컴퓨터를 종료한 나는 부족한 수면을 채우기 위해 랜턴을 껐다. 발광하던 마석의 빛이 줄어드는 것을 보곤 침대에 드러누웠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손을 위로 뻗었다.


그에 반응하듯 잔잔한 빛의 구체가 손에 떠올랐다. 랜턴을 끈 방이 조금 밝아질 정도의 세기였다.


이걸 어떻게 다루게 됐는지 알려주지 않은 건 젖소가싫어요의 의도가 보인 것도 있었지만···.


‘방송에서 말하기엔 좀 무겁지.’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별거 아닌 이야기긴 하다.


「신성」은 ‘탈환 전쟁’에서 함께 싸웠던 주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나만이 끝까지 살아남으며 각성하게 된 힘이었다.


내가 흑마법사로서 유별난 존재라는 건 자각하고 있다. 은사뿐만 아니라 누구나 나를 보며 그랬다.


지금이야 외견은 성인의 나이로 추정되더라도 그 당시엔 앳된 얼굴이라 누가 봐도 어리다는 게 보였다.

그런데도 마법 [슬롯]을 최대 8개나 활용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어엿한 전력으로 취급받으며 천재란 소리를 질리도록 들었다.


다만 아직 실전 경험이 부족한 그 당시에는, 마나 실드까지 해제해 공격에 모든 슬롯을 사용하다가 눈먼 공격에 배가 꿰뚫려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런 안일한 실수를 했는데도 지금껏 살아남은 건 어디까지나 이 「신성」 덕분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뒤틀린.


성직자는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다.

「신성」은 오로지 타인에게로 향했을 때만 그 힘을 온전히 발휘했다.


그런데 나, 아이반 데르는 이 「신성」을 통해 스스로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이유는 힘을 활용하는 나조차 알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물어봤다가 행여 이단자라고 몰려 심판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흑마법사라서 변질된 걸지도 모르지.’


아무리 그래도 왜 내가 이런 힘을 각성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만.


뭐, 마나와 친화력이 좋은 덕분에 마법의 술식을 구축할 때 활용하기도 하고 여러 방면에서 응용할 수 있어 나쁠 건 없었다.


어쨌건 방송에서 「신성」에 대해 깊게 말하는 건 좀 꺼려지는 부분이 있다.

종교적인 부분은 누군가에게 민감한 화제다.

방송 정지를 당할 수 있는 주제는 최대한 피하는 게 맞다.


손에 피어오른 구체를 감싸 쥐자 다시 방이 어두워졌다. 잠들기 위해 사고의 흐름을 중단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까 잠깐 수면을 취한 탓인지 곧바로 잠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늘 그랬듯.


기억 속에 남아있는 굉음과 비명이 귓가에서 계속 울려댔다······.




***




[세피아짱이올시다 : 계십니까~?]


“흠. 자나 본데?”


단말기를 통해 귓속말을 보냈으나 답장이 없다.


24시간 방송 도중 30분의 휴식을 취하는 동안 세피아는 그랑의 방을 급습해 침대를 점령한 상태였다.

그녀가 분홍 머리칼을 침대에 흩뿌린 채 물었다.


“그래서 그게 진짜야?”


“응. 진짜 「신성」을 다뤘어. 무슨 일을 겪었던 건지 영혼의 편린을 구체화할 수 있더라고.”


신성이 무슨 개념의 힘인지 알고 있는 세피아로선 쉽사리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성검도 그 힘에서 기반한 무기였으니까.


“으음. 원래 성직자였던 거 아니야? 마법과 신성력. 두 분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그건 모르겠어. 분명 전쟁에 참가하긴 했을 텐데···.”


그랑과 세피아는 아이반의 정체에 대해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전장에 흐르던 여러 영웅들의 소문과 활약상을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


「나태의 성녀」, 그랑이 위치했던 곳은 전선의 후방이었다.


절반만 남은 몸조차 기어코 소생해내는 그랑의 「신성」은 그 대가로 기력을 모조리 앗아갔다. 결국 누군가를 치유할 때 빼고는 항상 잠들어있어 전쟁에서 그런 소문을 들을 겨를이 없었다.


참고로 「나태의 성녀」란 이명은 그 행적으로부터 비롯된 찬사와 비꼼이 뒤섞인 일종의 멸칭이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랑의 기적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그 힘을 직접 보거나 경험한 적도 없는 자들에겐 항상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나태한 성녀일 뿐이었다.


세피아도 마찬가지였다. 「용사」라는 책임감을 기꺼이 짊어진 그녀는 가장 선봉에 섰기에 다른 모든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결국 현재 그녀의 내면에서 ‘세피아 크로닐’이 아닌, ‘「용사」=세피아’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 일단 가르칠 생각이긴 한 거지?”


“어. 나중에 성검을 회수하게 된다면 그때도 도움이 될 테니까. 정 다른 방법이 없으면 내가 방송이라도 켜서 소통해볼 생각이야. 채팅으로 가르치기엔 힘든 부분이 많으니 어쩔 수 없겠지.”


그 말이 의외였는지 세피아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내 방송에는 얼굴 비추기도 싫다더니.”


“그야 이건 사람 살리는 일이고, 그건 다른 경우잖아. 난 욕 먹는 거 싫단 말이야! 「나태의 성녀」는 무슨! 나 같이 몸 바쳐서 헌신하는 성녀가 또 어딨다고···.”


그랑이 불만스럽다는 듯 투덜거리자 세피아는 웃으며 말을 돌렸다.


“난 잘 알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연락은 했어?”


“아르한은 곧 포트리스로 도착한다고 했어. 대신 스미스 씨는 촬영 일정이 있어서 당장 합류는 힘들데.”


“엥. 촬영 일정이 있다고? 저번에 다 찍었다 하지 않으셨나?”


“다른 액션 영화래. 이번에 새로 캐스팅됐다던데?”


용사 파티의 일원인 스미스는 전쟁에 참전한 배경에 힘입어, 현재 업계에서 최상위권 주가를 다루는 중년 배우였다.


검을 다루는 그의 실력은 전쟁을 통해 더욱 날카로워져서 액션 장르에 특수 효과 없이 응용할 수 있을 수준이라고 한다.


“와우···. 다들 본업 때문에 바쁠 텐데도 또 와주는구나.”


용사 파티는 표면상 해체했지만 계속해서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 자칭 용사들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안심했다는 의미가 담긴 한숨을 내쉬자, 그랑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다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끝내고 싶은 건 같은 마음일 테니까.”


포트리스에 가해질 공격을 완벽히 틀어막아야 한다. 팔란디아의 혼란을 경험한 이들이었기에 잔불조차 생겨나지 않도록 대응할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마족들로 이뤄진 선발대가 간다더라. 기습하려는 목적은 아니고, 팔란디아에서 활동할 수 있을지만 확인할 거라 시장님한테 배만 지원만 해달라던데?”


“어···, 좀 예상 밖인데. 마왕을 되찾겠다고 막무가내로 협력을 요구할 줄 알았더니?”


“마족도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문화나 예의범절에 꽤 익숙해진 거겠지. 그쪽 아가씨는 인터넷에 빠져 산다는 소문도 돌 정도니까.”


팔란디아가 멸망한 지 아직 5년도 흐르지 않았지만, 결국 시간은 적응에 필요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불과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종족들과 팔란디아인은 좋든 싫든 현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한 모습이었다.


“그럼 난 이제 내 방에서 좀 쉬다가 24시간 방송을 마저 마무리해야겠네!”


얘기가 마무리되자 세피아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그래. 이따 나락 도배되는 거 잘 버티시고.”


“크윽···.”


세피아는 벌써 기운이 빠진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흐으윽. 복귀 방송 2일 차에 또 휴방 선언이라니. 무슨 반응이 일어날지 벌써 두렵다고···.”


사유라도 밝히면 더 낫겠으나, 아직까진 이계의 침입자와 관련된 무거운 소식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세피아는 굳게 마음을 먹은 것과는 달리 터덜터덜 몸이 축 처진 채 방으로 돌아갔다.


우웅!


그때 주머니에 넣어뒀던 단말기에 진동이 울렸다.


[IVAN : 죄송합니다. 잠시 잠들었었네요.]


아이반으로부터의 귓속말이다.

내일이나 되어서야 올 줄 알았는데, 그랑이 방종을 했다고 한 지 3시간도 되지 않았다.


‘어라? 그러면 합쳐서 6시간도 못 잔 거 아닌가?’


그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최소 12시간은 자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렇다는 건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긴. 최소 2년 가까이 혼자 있었을 테니···.”


비슷한 경험자로서 세피아는 아이반의 정신적 문제가 괜스레 걱정되었다. 그녀는 잠시나마 그의 기분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


[세피아짱이올시다 : 다행히 룰렛에서 카스테라는 안 걸렸네요ㅎ]


그리고 잠시 간격을 두고 돌아온 대답은 꽤 장문이었다.


[IVAN : 죄송합니다. 그냥 재미 삼아 방송에 참여해봤던 건데 익명이 보이는 줄 몰랐네요. 방송 도중에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후원해주신 것도 지금이라도 환불이 필요하시면 방법을 강구해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조졌다.

급격히 싸해진 분위기에 세피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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