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종말의 흑마법사가 방송을 잘함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대격크
작품등록일 :
2024.06.15 21:14
최근연재일 :
2024.07.02 12:2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191
추천수 :
200
글자수 :
83,988

작성
24.06.28 12:23
조회
195
추천
12
글자
12쪽

좌표 (3)

DUMMY

[IVAN : 저인 거 어떻게 아셨나요?]


“······.”


아니다. 그냥 보내지 말자.

엔터를 누르려던 손가락을 멈추고 귓속말에 적은 메시지를 지웠다.


세피아가 나인 걸 곧바로 알아차린 이유는 차분히 생각해보면 하나밖에 없었다.


‘익명 기능이 완전 익명이 아니었구만···.’


시청자한테만 누가 후원했는지 보이지 않고 방송인에겐 보이는 시스템인 모양이다.

쪽팔리다. 용사한테 악질로 불리다니.


그보다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걸까.


“음···?”


엇, 이거 오히려 좋은 기회 아닌가?


「용사」, 세피아라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

동시에 내가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백만 실링까지 후원해주지 않았는가.


불확실한 식량을 위한 탐사냐.

아니면 그것을 포기하고 목표를 위한 방송이냐.


그녀에게 나로선 판단하기 힘든 이 두 선택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좋은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얘기를 하자는 걸 보니 본인이 직접 귓속말을 걸겠지. 괜찮은 상담 후보가 생기니 마음의 짐이 가벼워진 기분이다.


나는 머리 정리와 캠 각도를 매만지고 나서 [방송하기]를 눌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채팅이 올라왔다.


[유클리드12 – 안녕하세요!]


음. 이젠 관음하지 않고 그냥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불노루99 - ㅎㅇㅎㅇㅎㅇ]

[zell369 – 늦게 켜셔서 무슨 문제라도 생긴 줄 알았습니다]


방송을 켜자마자 사람들이 차례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바로 키고 싶었는데 몸이 말을 안 듣더라고요.”


나는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29명 시청 중]


이제 막 방송을 시작했는데 컨텐츠를 시작하기 전, 찍었던 최고 시청자를 아주 쉽게 돌파해버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일단 제가 입고 있는 장비들을 정화하고, 시설들도 한 번씩 점검해줬어요. 그리고 씻고 잤다가 일어나자마자 바로 왔습니다. 세 시간밖에 못 잔 상태라 조금 어지럽긴 하네요.”


[지붕맛 – 더 자야 하는 거 아님?]


“복귀하는 과정을 방송으로 안 보여드렸잖아요. 늦게 키면 무슨 일이라도 난 것 같으니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아마 한 시간 정도만 하고 기절하러 가지 않을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것보단 방송을 오래 할 생각이다. 피로와는 별개로, 캠에 비치는 내 얼굴은 첫날에 스스로 놀랄 때와 다르게 초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사 상태는 과거보다 더 비루해졌음에도 자연스레 입가가 올라가 있고 혈색이 돌고 있었다.


아마 정신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한 상태가 아닐까 싶다.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변화라니···.


‘옛날에는 몰랐는데 말이야.’


나, 아이반 데르는 소통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


[01:29:42 방송 중]

[현재 212명 시청 중]


***




“우웨웨에···. 이거 맞아요?”


세피아는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룰렛으로 나온 결과는 ‘꿀벌주, 토마토 스프, 홍삼 액기스, 콜라, 아메리카노’였다.


그것들을 사 오고 캠에 보이도록 한 채 다섯 개의 음료를 섞자 화면에 끔찍한 색깔이 나타났다. 종류가 많아서 그런지, 1L 보틀이 가득 찰 정도로 내용물도 많았다.


“자, 그럼 먹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으로 완성된 제 디저트에요···.”


그 말에 호응하듯 채팅창에 원샷이 도배되었다.

세피아는 성창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보틀을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마이크를 타고 전해지는 목 넘김 소리.

이윽고 세피아는 빈 병을 머리 위로 한 번 흔들어주고, 책상 위에 탁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후읍···!”


[-캬 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다 마시네]


“우웨···. 그래도 은근 마실만 한데요?”


말과는 달리 세피아가 입을 틀어막았다.


[-ㅋㅋㅋㅋ]

[-이래놓고 화장실 갔다올 예정ㅋㅋ]


“뭐야, 어떻게 알았어요? 그럼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웃음소리로 가득 찬 채팅창을 본 세피아는 캠과 마이크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배불러.”


잠시 입을 틀어막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어서 밀려오는 거북함이다.


은근 마실만 하다는 발언은 방송적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전장에서 구른 용사의 비위는 상한 것만 아니라면 뭐든 삼킬 수 있었다.


괜히 세피아의 주 컨텐츠가 ‘괴식 챌린지’가 아니다.


“그랑. 뭐해?”


화장실에서 가볍게 양치를 하고 나온 세피아는 돌아가기 전에 그랑의 방에 들렸다.


틀어둔 컴퓨터에서 아이반 데르가 방송 중이었다. 그리고 그랑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그녀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예, 알겠습니다. 세피아한테도 전해둘게요.”


잠시 후, 통화가 끝나자 기다리고 있던 세피아가 물었다.


“누구야? 스미스 씨?”


“아니. 시장님. 팔란디아 해안선에 거인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네. 함대도 있고.”


그것은 놈들이 다음 움직임을 위해 동력을 충전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현재 세피아와 그랑이 머물고 있는 곳은 항구 도시, 포트리스다. 팔란디아 대륙과 지리상 가장 가까운 곳이면서 크게 활성화된 항구였다.


시기상 교역보단 군사로서의 요새 기능으로 방향이 바뀌었지만.


“···그러면.”


“응. 시장님이 곧 호출할 수도 있다네. 슬슬 시간이 다가오는 걸지도 모르겠어. 여태까지 시도한 공격이 정찰하듯이 보낸 거라면 이 정도 규모는 꽤 진심일 것 같아.”


“으아. 이러면 또 휴방해야겠네. 시청자들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세피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랑에게 아이반이 후원한 것에 대해 슬쩍 말해주고 가려 했는데, 그런 얘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가 방송을 재개하기 위해 돌아가자 그랑은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곳엔 아이반이 생존 보고 방송을 하고 있었다.


[02:57:33 방송 중]

[현재 125명 시청 중]


···엄청난 성장세다.

이젠 단순히 방송만 해도 평균 시청자가 100명대나 되었다.


어제 컨텐츠에 할 때 비하면 극히 낮아 보이지만, 그건 유동까지 포함한 범주다.


소위 말하는 시청자는 ‘콘크리트’라고 불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방송을 보러 와주는 고정층이다.

특히 방송인의 후원은 이 콘크리트로부터 주로 나오기에 매우 중요한 수치였다.


그런데 아이반은 경력이 1년 넘는 대부분의 방송인들마저 힘들어하는 콘크리트, ‘100명’ 대를 벌써 모아버린 것이다.


이 수치를 앞으로 더 쌓게 될지, 아니면 무너뜨릴지 그건 그의 능력에 전적으로 달렸다.

사람들은 단지 마경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방송을 보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체력이 좋을지 몰랐지.’


이런 컨텐츠를 누가 하냐고 욕까지 했던 그랑은 괜스레 민망했다.


마경 탐사 당시, 아이반은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걸어 다니면서 위험한 부근을 지날 때 빼고는 계속 채팅창과 소통했다.


게다가 괴이가 직접 나타난 적도 있기에, 아이반이 침묵하는 구간은 지루하기보단 오히려 긴장감을 자극했다.


직접 거기 있는 현장감이 더해진다고나 할까.


‘특히 방송 마무리가 완벽했어.’


현재 시청자가 세 자리인 건 마지막 남긴 멘트가 꽤 인상 깊었던 효과일 것이다.


[-제 위치가 발각될 위험은 있어도 이건 보여드려야 마경 탐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발언으로.

그가 지금껏 어떤 생각으로 멸망한 대륙에서 살아남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컨텐츠를 통해 아이반이란 인물이 마음에 든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하아···.”


그리 생각하니 그랑은 또다시 기분이 침울해졌다.


그런 사람한테 해야 하는 부탁이 죽어달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니. 【성검】 회수의 필요성도 느끼고 결심도 했으나, 차마 실행으론 옮길 수 없었다.


···어쩐지 아이반이 거절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량이요? 비축한 것도 있는데, 그보단 여태 농사도 지어서 자급자족한 부분이 크죠.>


“응? 식량?”


채팅창을 보니 식량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저번에 보여줬던 비스킷이나 감자 요리에서 이어진 대화의 흐름이었다.


<-계속 지으면 굶어 죽을 일도 없는 거 아니냐고요? 아, 토양의 영양분이 다 떨어지면 의미가 없거든요. 여태까진 비축한 흙을 재활용하면서 썼어요.>


[zell369 – 재활용이면 영양제를 쓴 건가요?]


<-아뇨. 지력을 회복시켰어요.>


어떻게 했는지 보여주겠다는 듯 아이반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잔잔한 빛이 손 위에 구체 형태로 떠올랐다.


[zell369 - 오 이쁘네요]

[지붕맛 - 저걸로 계속 회복했으면 되는 거 아님?]


“······어?”


그걸 본 그랑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코를 박을 정도로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흙도 버티는 한계가 있는 건지, 아니면 단기간에 반복해서 그런 건지······.>


아이반의 목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그랑의 시선은 그의 손이 머금고 있는 빛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 어어···???”


틀림없다. 나태의 성녀라면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르피엘 그랑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신성」이잖아···?!”


그랑의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흑마법사, 아이반 데르가.

‘신성력’이란 개념을 다루고 있었으니까.




***




“흙도 버티는 한계가 있는 건지, 아니면 단기간에 반복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경험해봐야 알 텐데 실험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도 않았고.”


나는 슬쩍 시청자를 확인했다.


[03:01:23 방송 중]

[현재 122명 시청 중]


···컨텐츠할 때에 비해 4토막이나 나버렸다. 게다가 최고점은 200명대였는데 어느새 122명까지 줄어들었다.


성장세인가 싶었는데 벌써 퇴물이 되어버린 건가···. 내 목표에 다가갔던 몇 걸음이 다시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탈리아. 그 사람은 입만 털어도 계속 유지되던데 말이지.’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가 계속 오르다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자 더 높아지지 않고 떨어지기만 했다.

일시적인 현상인 줄 알았으나, 3시간이 흐른 지금은 100명 초반까지 줄어들었다.


내가 얘기하는 게 생각보다 재미없나? 그러면 역시 저스트 채팅보단 컨텐츠를 해야 할 텐데, 야외 방송을 마구잡이로 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고 보니 웃는 채팅도 거의 없고.’


최단속의 셀프 피드백을 통해 이유를 깨달아버린 것 같다.


나는 지금 너무 잔잔한 소통 방송을 하고 있었다. 결국 시청자들은 자극적인 재미가 없어 피로를 느껴 나간 게 아닐까?


이럴 땐 분위기 전환을 위한 신의 한 수가 필요하겠지.


“님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연금술사들이 많이 이용하는 전철역이 뭔지 알아요?”


[지붕맛 – 체르비역 아님? 거기에 연금술 상점들이 몰려있는데.]


“땡. 정답은 금연구역입니다~. 금을 연구하는 역이거든요. 아하하!!!”


[유클리드12 - ?]

[불노루99 - ?]

[지붕맛 - ?]


[현재 109명 시청 중]


이런 시발.

어떻게 말 한 마디에 10명 넘게 나가버릴 수가 있는 거지?


[나톨 – ㅋㅋ;]


노잼무새까지도 평소처럼 노잼이라 하지 않고 안쓰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고 하니 웃기려고 설치지 말자.


[젖소가싫어요 – 님님 그러면 마기만 정화할 수 있으면 다시 농사지을 수 있는 거예요?]


그때 하루종일 보이지 않던 인물이 나타났다.

이대로 첫 번째 시청자가 영영 돌아오지 않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괜스레 반가움을 느끼며 채팅창에 도배되는 ‘?’를 치우기 위해 대답했다.


“농사요? 그야 당연하죠. 물론 영구적까진 아니겠다만, 농작물이 자라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최소 몇 개월씩은 더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젖소가싫어요 – 저 그러면요]


“······?”


이어지는 채팅은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젖소가싫어요 – 컨텐츠 삼아 배워볼래요?]


[젖소가싫어요 – 좀 전문적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종말의 흑마법사가 방송을 잘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유입을 위해 제목은 주기적으로 변경될 예정입니다! [천재 흑마법사의 종말방송] 24.06.26 48 0 -
공지 매일 오후 12시 20분 연재 예정입니다 24.06.26 109 0 -
14 침공 (1) NEW +1 2시간 전 68 6 13쪽
13 선택 (3) +1 24.07.01 155 11 15쪽
12 선택 (2) +1 24.06.30 177 13 12쪽
11 선택 (1) +1 24.06.29 214 15 13쪽
» 좌표 (3) +2 24.06.28 196 12 12쪽
9 좌표 (2) +3 24.06.27 204 14 14쪽
8 좌표 (1) +2 24.06.26 208 14 12쪽
7 야외 방송 - 마경 탐사 (3) +1 24.06.25 205 16 16쪽
6 야외 방송 - 마경 탐사 (2) +2 24.06.24 224 17 13쪽
5 야외 방송 - 마경 탐사 (1) +2 24.06.23 235 19 15쪽
4 컨텐츠 (2) 24.06.22 237 14 12쪽
3 컨텐츠 (1) +1 24.06.21 286 17 20쪽
2 첫 번째 시청자 24.06.21 310 13 10쪽
1 프롤로그 +8 24.06.21 466 19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