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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급 흑마법사가 종말방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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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크
작품등록일 :
2024.06.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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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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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처음엔 나 같은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팔란디아 대륙이 한창 멸망하고 있었을 때.

그러니까 아직 승산이 있다고 착각하던 시절, 팔란디아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마법사란 직업의 이로운 점이 어느 집단을 가든 환영을 받는다는 거였지.

나 또한 한 집단의 일원이었던 시절이 존재했다.


꽤 오랫동안 머물렀던 집단에 대해선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 같은 흑마법사가 농경 지식을 갖고 있는 건 전부 그들 덕분이었으니까.


집단의 이름은 없었고 좋은 의미로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보통 물 흐리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법도 한데, 운 좋게도 모난 사람 없이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팔란디아의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다.


단체가 유지되기 위해선 개인이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했다.

그런데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여유가 사라지자 각자 자신부터 챙기게 됐고, 그때부터 조금씩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흑마법사인 나는 전투 담당이었기에 외부인에 살짝 발을 걸친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없었던 건지, 사람들은 종종 내게 와서 구성원에 대한 뒷담화나 한풀이를 하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아이반. 내 얘기를 좀 들어봐. 요즘 그 자식이─.’


‘흑마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에는···.’


그 당시에는 왜 나, 아이반 데르에게 약점이 될만한 이야기를 털어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앙심이라도 품으면 집단을 와해시킬지도 모르는 건데 굳이 불안한 요소를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로서도 집단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나름의 해소법을 찾은 것이다.


나한테 속내를 털어놓기 편하다고 했던가?

종종 듣던 무해하다는 외모가 아마 그런 기능을 한 게 아닐까 싶다.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면서도 연장자들과 말이 통하는 점도 있었겠지.


어쨌든 대부분의 말로가 그렇듯 소소하게 시작된 갈등의 골은 결국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고 말았다.


그 후 일부 인원끼리 갈라서기 시작했고, 남은 사람들은 작아진 집단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받기 시작했다.


새로이 유입된 자들은 대개 전쟁에서 싸우다가 도망친 탈영병 혹은 고향에서 항전하지 않고 가족들을 데리고 빠져나온 사람들이었다.


구성원이 대부분 바뀌니 분위기도 당연히 변했다. 평범한 생존 집단은 레지스탕스로 성격이 변질되었다.


전쟁을 겪어본 자들의 의견 때문이었다.

우리도 대륙을 되찾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했었지.

한 줌의 전력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을 세워서 탈주 죄를 상쇄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탈환 전쟁’ 당시 막강한 기사들조차 이계의 침입자들에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그나마 마나를 활용한 공격이면 통하겠으나, 최소 ‘소드 익스퍼트’ 단계에 오른 기사가 그리 흔할 리가 없었다.


그 정도의 전력은 왕국들의 안일함으로 인해 선봉에서 무참하게 갈려버렸기도 했고.


‘뭐. 자칭 용사란 작자들도 거의 죽은 마당에.’


그땐 전쟁에서 도망친 자들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는 것에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사실 그건 그냥 명분을 위함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바로 ‘상인 조합’에게 물자를 지원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이란 특수기간 동안 이름을 날리려는 신흥 상회들이 출현하면서 우리 세력에게도 그들의 값싼 지원을 받을 기회가 찾아왔다.


다만, 현실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참혹했다.

성공했다면 조합의 가치가 상승하는 행동이었을 테지만, 판도를 읽는 그들에게도 팔란디아 대륙이 ‘마경’으로 변해버릴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주문하신 곳이 전쟁터 한가운데라고요? 우리 딜리버리02는 죽는 한이 있어도 주문하신 물건을 배달하러 갑니다!]


그런 당돌한 슬로건을 내세운 떠오르는 루키 상회, ‘딜리버리02’는 내뱉은 말 그대로 전멸했다.


아, 참고로 물자는 도착하지도 못했다.


팔란디아에 패색이란 기운이 맴돌자 이름있는 상회들은 빠르게 판단을 내려 아스파라 대륙으로 본진을 옮겼다.

그렇게 물자와 보급 수단이 부족해진 팔란디아의 군대와 저항 세력들은 당연히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다.


‘내가 괜히 컴퓨터를 안 쓴 게 아니지.’


거래가 가능만 했더라면 차단이 됐더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허나, 상회조차 모조리 발을 뺀 이곳 팔란디아에서 그런 외부적 요소를 이용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이미 심하게 데여본 경험이 있는 그들에게 이름을 날린다는 건 가치 없는 위험한 행위.

고작 몇십만 실링어치의 배달을 하려고 사지에 뛰어들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그런 나조차 포기한 식량 관련한 문제를···.


‘유클리드12. 이 자식은 무슨 근거로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단언하는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내용을 읽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내가 발끈하게 될 줄이야.

죽음이 확정된 미래를 두고도 의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내심 그런 현실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넌 뭐 하는 놈이냐?”


음습하게 아이디를 검색해보니 오늘 막 만든 계정이었다. 확인차 어제 방송의 통계를 확인했다.


[평균 시청자 3명]


‘3명이면 거의 끝까지 봤다는 건데. 로그인하지 않고 본 건가?’


채팅에서 본 기억은 없으니 아마 저 조용히 늘어난 한 명이 유클리드12일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되짚어보기 위해 방송의 ‘다시 보기’를 훑어봤다.


다행히 별말은 안 했다.

별로 남지 않은 식량이 맛대가리가 없다든지, 마경에 있으면 정신병이 생겨 이곳에서 사는 예술가들은 역작을 남길 거라는 등 그런 영양가 없는 얘기만 했다.


아무튼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준다는 걸까. 물어봐서 손해 볼 건 없으니 곧장 귓속말을 보냈다.


[IVAN : 안녕하세요.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신다는 거죠?]


언제 답장이 돌아올지 모르니 신경 끄고 다른 방송들을 훑어보려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돌아왔다.


[유클리드12 : 그건 그날 방송이 끝난 후에 말씀드릴게요!]


···이걸 말이라고.

누가 봐도 수상하다.

잠시 생각을 거친 후, 시간을 들여 귓속말을 작성했다.


[IVAN : 죄송하지만 마경 탐사는 제 나름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컨텐츠라서요. 유클리드12님께 죄송하지만 단 한 분을 위해서 비밀방을 만드는 건 너무 무리가 아닐까 싶네요ㅎㅎ]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헛소리하지 말아라.’를 최대한 예의 있게 돌려 말했다.


자, 그럼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클리드12 : 아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ㅇㅅㅇ;]

[유클리드12 :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응원할게요 ㅇㅁㅇ!]


“어라?”


예상과는 달리 유클리드12는 의외로 맥 빠지게 뒤로 물러났다.

으음. 일단 내버려 둬볼까.

어떤 의도로 마경 탐사를 비밀방송으로 요구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일단 유클리드12는 지켜보는 걸로 하고 참고할 만한 컨텐츠가 있을지 다른 방송들을 구경했다.


<-자! 드레이크의 가죽, 라이칸스로프의 어금니, 그리고···. 와, 이게 걸리네. 3년간 말린 고블린의 빤스! 이것들로 소환해볼게요.>


시청자가 제시한 랜덤 촉매로 소환을 해보는 방이 있는가 하면 현 전시 상황에 대해 떠드는 방도 있었다.


<-솔직히 평화롭죠. 대륙을 빼앗겼더라도 이미 놈들한테 상처가 많을 겁니다. 이계의 침입자. 요즘은 ‘아우터’라고 부르죠? 그놈들이 회복하기 전에 빠른 시일 내에 쳐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채팅창 반응은 방송인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묘하게 날선 분위기인 게 여기서 반대의견을 낸다면 몰매를 맞을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함대가 움직인 것도 모르나 보네.’


벌써 거인들까지 준비시켜 아스파라를 넘보고 있는 중인데. 아무래도 놈들이 어떤 상태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응?


그럼 ‘젖소가싫어요’는 어떻게 아는 눈치였지?


“···흐음.”


뭐,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엇. 그러다 방송 썸네일에서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을 발견했다.


분명 팔란디아의 자칭 용사 중 한 명이었던 남자다. 아스파라로 넘어가서 다시 싸울 거라더니, 설마 방송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름이···, 뭐였더라?


[‘검성 탈리아’ 님이 방송을 시작하셨습니다.]

[02:21:51 방송 중]

[현재 21,393명 시청 중]


탈리아? 이런 이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놀랍게도 그의 방송은 컨텐츠 없이 떠드는 ‘저스트 채팅’이면서 무려 2만 명대의 사람들이 봐주고 있었다.


이런 걸 왜 보는지 이해가 안 갔으나 이것도 공부겠지.

그만한 이유를 찾기 위해 방송을 지켜봤다.


<-아. 그때 전장 한가운데서 너무 배고파 가지고 흙이라도 파먹고 싶었다니까요? 솔직히 달달하긴 했을 듯.>


탈리아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신기한 점은 30분이 흘렀어도 오디오가 10초도 비지 않고 계속해서 채워졌다는 것이다.


띠링!


그때 후원이 터졌다.


‘부엌칼마스터 탈리아’님이 ‘1,000’ 실링 후원!

[-나 방금 먹어봤는데 은근 맛있긴 하더라 ㅇㅇ]


<-아, 개웃기네. 부엌칼마스터 탈리아 님. 천 실링 감사합니다! 흙 먹어봤다고요? 님은 어디 가서 제 방송 본다고 하지 마세요~!>


타이밍 좋게 터진 후원에 탈리아가 빵 터지며, 재밌는 반응을 보이자 채팅창도 웃음으로 도배되었다.


‘호오. 이런 느낌인가.’


왜 2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떠들기만 하는 탈리아의 방송을 보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준수한 외모에 적당한 유머. 목소리도 거슬리지 않아 듣기 편해 굳이 안 볼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방 주도권이 완벽히 그에게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는데도 시청자들이 오히려 듣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다.


“역시 잘 나가는 사람은 잘 나가는 이유가 있어.”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스쳐 지나간 수많은 용사들 중에서도 그에 대해 기억하는 것만 봐도 그만한 존재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즉, 누군가의 기억에 계속해서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탈리아란 자칭 용사는 내 2순위 목표, ‘아이반 데르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것’을 이미 이룬 거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된 거.’


죽기 전.

남은 시간 동안 탈리아 정도의 체급이 되는 걸 목표로 해볼까.


‘20,000명’.


이건 방송을 막 시작한 초보가 목표로 세우기엔 허무맹랑한 수치인 것쯤은 문외한인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경험은 지금껏 여러 번 있었지.’


신성 계열의 마법을 익히려고 홀로 노력했을 때도 그랬고.

「마왕」과 마주쳤을 때도 그랬다.


···무엇보다 나, 아이반 데르는 끝내 모든 목표를 이뤄내고 마는 재능있는 흑마법사다.


“큭. 방송이 어려워 봤자 마법보다 어렵겠어.”


새삼 결의를 다진 나는 [방송하기]를 눌렀다.




***


[‘IVAN’ 님이 방송을 시작하셨습니다.]

[내일 마경 탐사하러 외부로 나갑니다!(컨셉아님)]


***



“···으음.”


[‘IVAN’ 님의 방송 통계]

[총 방송 시간 ‘119’시간]

[최고 시청자 14명]

[평균 시청자 5명]

[팔로워 7명]


[팔로워 변동 +5명]

[‘나톨’ 님이 팔로우!]

[······ 님이 팔로우!]

[‘유클리드12’ 님이 팔로우!]



마법보단 살짝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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