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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의 서재

어쩌다 보니 공간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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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3 14:41
최근연재일 :
2021.03.05 18:15
연재수 :
106 회
조회수 :
19,788
추천수 :
184
글자수 :
390,460

작성
20.12.24 18:15
조회
299
추천
4
글자
9쪽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6)

DUMMY

“제길!”


어지럽혀진 사무실 바닥에 떨어진 집기들을 그대로 밟으며, 빅토리아는 책상으로 뛰어갔다.


바깥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은 상관없었지만, 떨려오는 파동은 사무실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순간 균형을 잃은 빅토리아는 겨우 책상을 잡아 넘어지는 것을 피했다.


“끄으으응······.”

빅토리아는 책상 위의 물건들이 떨어지든 말든, 책상을 있는 힘껏 구석으로 밀었다.


빅토리아의 발이 파르르 떨릴 때가 되어서야 책상이 자신의 역치 값을 넘어섰다.

책상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상이 있던 밑에는 으레 영화에서 그렇듯, 무언가 숨겨져 있었다.

칼로 긁힌 정도 두께의 얇은 원이 있었다.


빅토리아는 그 원의 중간에 손목을 대었다.

그러자 바깥 선을 따라 은은한 빛이 반짝이더니, 전차의 해치가 열리듯 원이 갈라지며 구멍이 나타났다.


빅토리아는 그대로 허리를 굽혀 다리부터 집어넣었다.

다리 끝으로 사다리를 잡은 채, 빅토리아는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버텨라······!”


바닥에 도착한 빅토리아는 자신의 단말기를 꺼내어 급하게 화면을 두들겼다.


좁은 통로를 몇 걸음 달려간 빅토리아는 어두컴컴한 방 한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아까 전 들어온 좁은 입구로 또 다른 폭발음의 파동이 전해져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빅토리아는 단말기의 작은 불빛에 의존해, 다급하게 앞에 있는 버튼을 더듬었다.


의자 앞의 화면에 빨간색의 경고창이 나타났다.

빅토리아는 의자에 깔고 앉아 걸리적거리던 안전벨트를 주워 맸다.


“간다!”


빅토리아는 벨트를 조인 후 바로 앞에 있는 레버를 당겼다.

순간적으로 버튼들이 두 개로 겹쳐 보일 만큼 격렬한 진동이 방안을 감쌌다.


빅토리아는 어금니를 꽉 깨문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하였다.

이대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진동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시련은 한 번 더 오기 마련이었다.


“뭐야?”


규칙적인 사이렌 소리에 실눈을 겨우 뜬 빅토리아의 눈에 기분 나쁜 경고가 떴다.


“충돌 경고?”


빅토리아는 신경질적으로 오른쪽 계기판에 있는 붉은 버튼을 눌렀다.


‘미사일 발사’


화면에는 간략한 문구만 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몰랐다.

죽든지 살든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 빅토리아는 어쨌든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다행히 충동적으로 한 결정은 잘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빅토리아의 앞을 막던 장애물이 미사일에 산산조각 났다.


충돌 경고는 곧 사라졌다.

조금씩 사그라지는 진동을 눈치챘을 때가 되어서야, 빅토리아는 완전히 활성화된 전면 모니터와 계기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


완전히 탈출한 후, 후방 카메라가 비추는 광경을 보는 빅토리아의 눈에 헤르메스가 보였다.


얼핏 보이는 헤르메스의 추진부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헤르메스에서도 방금 일어난 사태에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빅토리아는 중력 레이더를 가동하며 현재 상황을 판단하였다.

다행히 근방에는 헤르메스만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의 적이면 수준이 상당하단 의미였다.

어정쩡하게 도망쳤다가는 붙잡힐 것이 뻔했다.


헤르메스 역시 각각의 구역들이 위치를 바꾸며 급하게 공간도약을 할 준비에 들어갔다.


빅토리아 역시 무언가 해야 했다.

빅토리아는 계기판 위에 손을 얹은 뒤 고민하였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어디론가 공간도약이라도 해서, 아무튼 몸을 피해야 했다.

찡그린 미간이 아직 빅토리아의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으나, 빅토리아의 손가락은 과감하게 움직였다.


“에라, 모르겠다!”


빅토리아는 부족한 결단력을 혼잣말로 채우고,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하수구에 물이 빨려 들어가듯, 빅토리아의 시선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한 점을 향해 빠르게 쓸려갔다.


전면 모니터부터 사라져가는 모습은 곧 계기판을 넘어 빅토리아의 손까지 닿아 치즈처럼 늘어질 지경이었다.


이질적인 이 느낌은 빅토리아에게 늘 불쾌했던 모양인지, 빅토리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몇 초 뒤, 고뇌하던 빅토리아가 있던 우주 공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만이 남았다.



------------------------------



“여기요! 살려주세요!”


안 그래도 고음의 목소리에 다급함까지 더해진 희진의 외침은 슈퍼노바 호 내부까지 긴장감을 가득 채웠다.


몸을 숨기던 전함 잔해의 끄트머리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레이더 정면에 새롭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함선에, 희진과 진욱은 절망 반 반가움 반이었다.


진욱은 앞뒤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희진은 그보다 반가움이 더 큰 모양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진욱에게 어서 확인해보라고 닦달을 하였다.

그 와중에 진욱의 어깨까지 손바닥으로 내리치자, 진욱은 희진을 따르기로 하였다.


진욱은 조종을 잠시 멈추고 떨어지는 아기를 받치듯 급하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재빨리 다시 조종간으로 손을 옮겼다.

모니터 하단부에 자그마한 창이 뜨면서, 갑자기 앞에 나타난 함선에 대한 분석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다시 새로운 창이 그 위를 덮어버렸다.

필사적이었던 희진이 이미 ITC로 무전부터 시도하고 있었다.


새로운 창이 초록색으로 바뀌자마자 희진은 그렇게 살려달라고 외쳐대었던 것이었다.


“적이면 어떡하려······.”

“아이, 밑져야 본전이에요!”


희진은 진욱을 째려본 후 다시 전방을 보며 계속 소리쳤다.


“아무튼, 곧 빠져나가요!”


빗발치는 광선을 나선 비행으로 가까스로 피한 진욱은 희진에게 들리게끔 큰 소리로 말하였다.


게임에 몰입하는 아이들처럼 진욱은 자신도 모르게, 끝이 다가올수록 고개와 몸이 앞으로 점점 쏠리며 아드레날린이 구석구석 퍼졌다.


광선에 관통당해 유폭된 잔해들과 함께, 슈퍼노바 호는 전함의 잔해를 마침내 빠져나왔다.


희진과 진욱의 눈앞에는 알래스카 새벽녘처럼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해왕성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희미한 빨간 빛을 내며 자신의 존재를 미약하게 알리는 새 함선이 있었다.


“······어? 아직 살아있었네!”


때마침 처음 보는 함선에서 들어온 회신은 희진에게 적진 한복판에서 듣는 구원의 나팔과 같았다.


일단 적은 아닌 듯한 뉘앙스가 희진의 걱정을 씻겨내려 주었다.

다만, 회신의 메시지 내용과 놀란 듯한 어투는 희진의 마음에 새로운 의문을 낳았다.


“누구세요? 아무튼, 저희 좀 살려주세요!”

“저것들은 뭐예요?”

“몰라요! 일단 그쪽으로 가요!”


두 함선 사이로 지나가는 광선 줄기에 위급함을 다시 느낀 희진은 일단 전진하기로 하였다.


적어도 저 새로운 함선은 자신을 향해 바로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진욱은 눈치 빠른 비서처럼, 곧바로 슈퍼노바 호의 방향을 새롭게 나타난 함선 쪽으로 돌렸다.


눈으로는 형체만 보이는 정도였지만, 그렇게 멀진 않은 거리였다.

슈퍼노바 호를 공격하는 저 까만 함선과의 거리보다는 훨씬 가까웠다.

해볼 만했다.


“엔진은 어때요? 잘 나가죠?”


뜬금없는 내용의 회신에, 희진은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지 못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희진의 머릿속 뉴런이 활성화가 완료되었는지 희진의 눈망울이 곧 커졌다.


“아! 혹시 빅토리아 씨?”

“맞아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나중에 설명할게요, 일단 우리 좀 탈출시켜줘요!”

“안 그래도 나도 탈출해야겠어요!”


반가운 무전만이 계속 오고 갔으면 좋았다.


하지만 촉수처럼 가로질러 퍼지는 광선들 몇몇은 이제 빅토리아가 타고 있는 함선까지 마수를 뻗치기 시작하였다.


빅토리아의 함선 측면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며 회피 기동을 하는 모습이 슈퍼노바 호의 전면 유리를 통해 보였다.


“물어볼 게 있습니다!”


진욱은 조종간을 빅토리아의 함선을 따라 끊임없이 조종하며 말하였다.


“그쪽이 박진욱 씨인가 봐요? 업계 최고라고 희진 씨가 얼마나 칭찬하던지······.”


진욱은 희진을 슬쩍 쳐다보았다.

희진은 빙긋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진욱은 그런 희진을 보면서 외쳤다.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작가의말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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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1) +2 20.12.25 313 6 8쪽
»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6) +2 20.12.24 300 4 9쪽
14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5) 20.12.23 302 4 9쪽
13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4) +1 20.12.22 327 5 9쪽
12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3) +1 20.12.21 338 6 16쪽
11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2) 20.12.20 354 3 13쪽
10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1) 20.12.20 389 2 14쪽
9 2장 근데, 총 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4) +3 20.12.19 421 3 18쪽
8 2장 근데, 총 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3) +1 20.12.19 427 5 17쪽
7 2장 근데, 총 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2) 20.12.18 471 2 19쪽
6 2장 근데, 총 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1) +1 20.12.17 523 6 17쪽
5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5) +2 20.12.16 566 6 15쪽
4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4) 20.12.15 659 6 16쪽
3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3) +2 20.12.14 842 7 18쪽
2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2) +6 20.12.13 1,002 11 15쪽
1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1) +11 20.12.13 1,493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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