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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의 서재

어쩌다 보니 공간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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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3 14:41
최근연재일 :
2021.03.05 18:15
연재수 :
1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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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2
추천수 :
184
글자수 :
390,460

작성
20.12.2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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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추천
3
글자
13쪽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2)

DUMMY

“도착했어요, 희진 씨.”

진욱은 ITC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아직은 별다른 일이 없었으나, 불안감이 사라지진 않았다.

언제 그 부장이란 사람에게 따라잡힐지 몰랐다.


그 때문이었을까, ITC를 보는 진욱의 눈은 발톱을 숨긴 사자처럼 은연중에 날카로웠다.


ITC 옆 자그마한 합성 유리창에 손을 대고 밖을 내다보던 희진은 몸을 띄우며 고개를 돌려 진욱에게 말했다.


“정말요? 에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CPS에 의하면 여기가 맞아요.”

“그냥 까만데요?”


진욱은 ITC를 마저 조작한 후 선체의 앞부분으로 몸을 움직였다.

진욱은 조종석에 다시 앉은 직후, 고개를 돌려 희진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창을 보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희진과 눈이 마주쳤다.


진욱은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킨 뒤 창밖을 가리켰다.


“없다니까요. 그쪽에선 뭐 보여요?”


희진은 진욱의 손동작은 가볍게 무시하고 진욱에게 약간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러나 진욱은 역시 아무 말 않고 다시 창밖을 가리켰다.

희진은 중얼거리며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향했다.


“아니, 그쪽에서는 뭐 보이냐니까 계속 손가락만······ 꺅!”


살짝 뾰로통한 표정을 만들려던 희진의 안면 근육들은 그 대신 급하게 입을 벌리는 데 사용되었다.


아까 전까지 까맣게 보이던 창밖으로 너덜너덜해진 사람의 다리 하나가 지나갔다.

각반과 검은 군화 때문에 대부분의 다리 모습은 가려져 있었지만, 마침 잘린 단면 부분이 창문을 훑고 희진의 눈앞을 지나갔다.


“뭐예요!”

“찾던 곳 맞죠?”


진욱은 조종석을 뒤로 돌린 채, 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욱은 조용히 팔걸이에 얹은 손에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진욱의 모습은 평소처럼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이겼다는 기쁨을 은근슬쩍 자랑하는 것처럼 희진에게 보였기에, 희진은 진욱이 얄미워졌다.


“씨, 알고 있었죠?”

“전투 흔적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네요.”


진욱은 희진의 말에 동문서답을 하며 계기판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희진은 그런 진욱에게 뭐라고 하려다, 흔적이 많다는 말에 다시 창가로 얼굴을 대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유리잔이 깨진 것처럼, 군데군데 흩어져 떠다니고 있는 전투의 파편들이 차츰 보였다.

희진은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단숨에 조종석 쪽으로 몸을 날렸다.


“저기 빨간 점 보이죠?”


희진은 진욱이 마침 전면 유리에 띄운 HUD를 따라 눈을 돌렸다.

HUD가 이동하여 전면 유리의 한 곳에 멈추었다.


곧 HUD가 사각형으로 빛나더니 간단한 정보들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저 사각형이 있는 위치가 원래 전초기지가 있던 곳이에요.”


연합군에서 수습할 때 전초기지부터 수습하였는지, 사각형 근처에선 잔해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진욱은 설명을 마친 후, 옆에서 호기심 넘치는 아이의 눈으로 밖을 보는 희진을 바라보았다.


희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진욱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희진은 적을 노리는 저격수처럼 앞에 펼쳐진 우주 공간을 꼼꼼히 살펴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진욱 씨, 제가 가져온 가방 뒤에 있는데 좀 열어줄래요?”

“알았어요.”


진욱이 안전벨트를 풀고 뒤로 갔다 올 동안, 희진은 단말기를 전면 유리에 대고 보이는 풍경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돌아온 진욱은 희진의 왼편에 가방을 살며시 띄워놓았다.

희진은 부조종석에 앉아 손가락을 가방에 댔다.


딸깍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가방이 열리자, 가방 한쪽에 붙은 파란색의 모니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구 덩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희진은 가방을 뒤적거렸다.


“뭐예요?”


진욱의 손은 여전히 계기판과 키보드를 만지고 있었기에 곁눈질로 물어보았다.


“아, 이거요? 기억나요? 도착하면 비밀 알려주겠다고 한 거요. 이게 그 비밀이에요.”


희진은 출발하던 때를 떠올리는 듯 표정이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대답하였다.

기구를 하나씩 꺼내어 이것저것 만지던 희진은 곧 기구들을 서로 끼워 맞춰 조립하기 시작했다.


진욱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슬쩍 보였을 때부터 내심 궁금했지만, 기구가 뚫어질 듯 집중하는 희진의 모습을 보고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조립이 끝나자 희진은 기구를 편편한 곳에 조심스럽게 세우고 나서 가방에 있던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두들겨 조작하였다.

그러자, 기구의 가운데 있던 매끄러운 원 부분이 위로 솟아올랐다.


“생긴 게, 마치······.”

“박테리오파지 같죠, 진욱 씨?”

“거미 같네요······.”


희진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네요. 아무튼, 이걸로 툴론의 비밀을 밝힐 수 있어요.”


진욱은 이 거미같이 생긴 것이 어떻게 툴론의 비밀을 밝힐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리송함 반과 기괴함 반이 섞인 진욱의 표정을 눈치챈 것인지 희진은 말을 이었다.


“아이참······ 알다시피, 공간도약을 하면 차원이 일그러지며 서로 연결되잖아요. 그러면 우주선뿐만 아니라 두 군데 있던 암흑물질들도 덩달아 이동하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죠. 즉, 공간도약을 한 흔적이 남아요. 그건 알죠?”


희진은 어느새 강단에 서있는 듯 설명을 시작하였다.

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을 잘 비교하면 어디서 공간도약을 시작해서, 어디로 왔는지 알 수 있죠.”

“그게 가능해요? 아니 애초에 하루에 공간도약을 하는 우주선이 몇 대인데······.”

“맞아요. 그래서 교통량이 많은 지구나 달, 화성 주변에서는 조사해봤자 의미가 없죠. 딱히 할 필요도 없고요. 그렇지만 여기는 다르죠.”


차근차근 짚어주는 희진의 모습과는 다르게, 진욱의 표정은 살짝 흥미를 잃어가는 듯 보였다.


“그래서 여기는 공간도약이 별로 없으니 잘 된다 그건가요?”

“정확히는 추적이 유의미하다는 거죠.”


진욱의 눈썹이 살짝 치켜져 올라갔다.

추적이란 단어가 진욱의 막혀있던 사고의 벽에 금을 만들었다.


희진은 말을 이으며 기구의 솟아오른 부분을 가리켰다.


“암흑물질을 여기다가 넣으면 분석이 돼요. 뭐, 정확하게는 암흑물질 안의 특수한 물질 하나가 필요한 거지만 그건 어려우니, 아무튼 그러면 이 공간도약이 어디서 이루어진 건지 추적이 가능해요.”

“즉, 그 말은······.”

“맞아요, 툴론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는 거죠. 이제 감이 잡히나 봐요?”


진욱의 표정이 살짝 변하였다.

기대했던 반응이 진욱에게서 드러나자 희진의 기분이 더욱 고조되었다.


“아직은 대략적인 위치만 추정되는데, 제 가설이 맞기만 하면 이제 그 잘난 교수들도 내 앞에서 머리를 숙이겠죠, 깔깔깔.”


희진은 그 짧은 시간 만에 미래의 복수 계획까지 세웠는지, 슈퍼노바 호 밖으로 들릴 만큼 웃었다.


진욱은 그 기구 덩어리에 얼굴을 더 가까이 댔다.


“그런데, 왜 하필 여기죠?”

“네, 네?”


진욱은 이리저리 기구를 돌아보다, 그 상태 그대로 입술만 열어서 희진에게 물었다.

머릿속에서의 행복한 결말을 생각하며 한참 웃던 희진은 정적을 깨는 진욱의 한 마디에 놀란 모양이었다.


“툴론이 침입한 곳이라면 가까운 화성이랑 소행성대도 있잖아요.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뭔가 싶어서요.”


희진은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손바닥에 자신의 주먹을 쳤다.


주먹을 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은 생각이 진욱의 대뇌에 퍼지는 순간, 희진은 기구가 든 가방을 들고 슈퍼노바 호의 뒤쪽으로 유영했다.


“어디 가요?”

“어디긴요, 이유 설명하러 가죠. 백문이 불여일견.”


진욱은 멀어져 가는 희진의 뒤에 대고 약간 소리를 높여 말했다.

하지만 희진 역시 대답만 크게 할 뿐, 희진의 몸은 곧 라운지 방향으로 사라졌다.


진욱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조종석에 몸을 파묻었다.


가만히 있으면 곧 희진이 그 이유를 들고 올 것이었다.

거기다, 오랜만에 사방이 조용해진 것이 진욱의 맘에 들었다.


희진은 몇 분이 지나도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진욱은 눈을 감았다.


가을날 인공 태양 볕을 쬐며 달의 정원에서 여유를 즐기는 나리 벌레처럼, 선잠에 빠져들려 하던 진욱은 사이렌 소리에 황급히 눈을 떴다.


전면 모니터에는 후방 에어 로크의 모습이 확대되어 펼쳐져 있었다.


“거기서 뭐 해요?”

“암흑물질 얻으러 가야죠.”


희진은 두꺼운 우주복을 입고 해맑게 에어 로크의 CCTV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욱은 이 여자가 얼마나 더 놀라게 할 수 있을지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희진은 옆에 놓인 헬멧을 챙기며 큰 소리로 말했다.


“좌표 불러 줄 테니까 여기로 가요! N23.596, W35.292, F96.353! 혹시 몰라 ITC로도 보냈어요! 다시 불러 줘요?”

“됐어요. 확인했어요.”


진욱은 천천히 엔진의 속도를 높였다.

약간의 떨림과 함께 슈퍼노바 호는 기지 중심부의 살짝 오른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멀지는 않은지라, 몇 분 후 슈퍼노바 호는 멈추었다.


“도착했어요.”

“고마워요! 여기 가만히 있어요!”


진욱은 알았다는 듯 화면을 향해 손을 올렸다.

희진은 헬멧을 착용하고 한 손에는 그 기괴한 거미를 들었다.


희진이 문 앞의 버튼을 누르자, 보트에 구멍이 난 것처럼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며 에어 로크가 열렸다.

희진은 천천히 슈퍼노바 호를 빠져나왔다.


진욱은 슈퍼노바 호의 중력 레이더 화면과 희진의 우주복에 설치된 카메라, 슈퍼노바 호 외부에 달린 CCTV 화면 등을 전면 모니터에 띄웠다.


희진은 이전에 우주 유영 경험이 있었는지, 생각보다 능숙하게 움직였다.

진욱은 선잠의 기운도 떨쳐낼 겸, 그리고 커피라도 마실 겸 라운지로 향하기로 했다.


“아까 왜 여기냐고 했죠?”


진욱이 이제 막 압축팩에 커피를 넣을 즈음, 진욱의 PSC로 무전이 들려왔다.

진욱은 빨대를 꽂은 후 대답하였다.


“네.”

“이 암흑물질이란 게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서로 움직이면서 섞이면 어차피 주변이랑 같아져서 그 특징이 사라져 버려요······ 영차······ 그러니까, 예를 들면······ 바닷물에 생수를 넣으면 다 섞여서 생수도 바닷물이 되는 것처럼요.”

“그렇군요.”


진욱은 커피를 한 모금 음미하면서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밖에 나가서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밖에서까지 얘기할 줄은 예상 못 했다.

아니, 예상은 했는데 설마 그럴까 싶었다.


“지구 근처에서는 워낙 공간도약이 많으니까, 원하는 샘플을 분석하고 싶어도 곧 다 흩어지잖아요. 예전에 침략한 곳은 시간도 많이 지났고요. 여기는 그럴 일이 별로 없으니까 다행이죠.”

“어서 할 일 마치고 와요.”


진욱은 커피 잔 안에서 빙글빙글 도는 크림을 보며 맞장구쳤다.


“거의 다······ 에구구······ 해가요. 뭐, 여기도 시간이 많이 지나면 주변 암흑물질이랑 섞여서 옅어지겠죠. 근데 제일 최근이니까, 공간도약 중심부 쪽에는 아직 그 흔적이 남아있을 거란······ 희망 같은 거죠.”


희진은 손으로 열심히 기구의 버튼을 눌러대면서 입을 움직였다.

희진의 우주복에 설치된 카메라 화면으로, 기구의 튀어나온 부분에 보라색의 무언가가 조금씩 채워지는 모습이 보였다.


진욱은 커피를 들고 조종석에 다시 앉았다.

그때까지도 희진은 할 말이 많은 건지 아니면 본인이 원했던 일을 무사히 하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우주복이 들썩일 듯 얘기를 계속하였다.


“사실 암흑물질에서 다 필요한 건 아니에요. 이렇게 필요한 물질인 트리니톤만 뽑아서 미립자 분석을······.”


진욱은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PSC의 무선을 차단했다.

슈퍼노바 호의 실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한 공기의 파동만 일정하게 자리를 지켰다. 진욱은 전면 모니터를 훑어보았다.


생각보다 희진의 작업이 길어질 것 같아, 책이라도 꺼낼까 싶은 여유도 묻어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진욱은 자신의 단말기를 꺼내어 음악을 틀었다.

잔잔한 4분의 3박자 재즈 음이 진욱의 귀를 달랬다.

짧은 시간 동안은 차분히 즐길 수 있는 소리였다.


진욱은 레이더와 희진의 카메라를 한 번 더 살핀 후에 눈을 감았다.


작가의말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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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3) +1 20.12.21 337 6 16쪽
»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2) 20.12.20 354 3 13쪽
10 3장 거기 화물칸이 어떻죠? (1) 20.12.20 389 2 14쪽
9 2장 근데, 총 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4) +3 20.12.19 420 3 18쪽
8 2장 근데, 총 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3) +1 20.12.19 427 5 17쪽
7 2장 근데, 총 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2) 20.12.18 471 2 19쪽
6 2장 근데, 총 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1) +1 20.12.17 523 6 17쪽
5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5) +2 20.12.16 565 6 15쪽
4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4) 20.12.15 659 6 16쪽
3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3) +2 20.12.14 841 7 18쪽
2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2) +6 20.12.13 1,002 11 15쪽
1 1장 그래서 홧김에 휴학을 내버렸죠. (1) +11 20.12.13 1,493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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