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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의 서재

어쩌다 보니 공간도약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파란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3 14:41
최근연재일 :
2021.03.05 18:15
연재수 :
106 회
조회수 :
19,786
추천수 :
184
글자수 :
390,460

작성
20.12.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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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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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8쪽

2장 근데, 총 쏘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4)

DUMMY

“뛰어요! 점프!”


진욱은 하마터면 안전벨트를 풀 뻔했다.


조종석에 앉아 허리가 꺾일 듯 뒤로 돌아본다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닌 진욱이었다.

하지만 열리는 해치 너머로 점점 보이는 희진의 상태를 보면 그럴 만하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다던 다리가 하필 이때 다시금 말썽이었을까 싶었다.

희진이 달려오는 속도가 진욱의 생각보다 늦었다.


더군다나, 화물칸 게이트가 열리면서 점점 약해지는 인공 중력 때문인지, 희진은 눈에 띄게 버거워했다.


진욱은 슈퍼노바 호가 만들어 내는 필사적인 움직임이 목소리에 담기도록 크게 외쳤다.


“여기로 점프해요!”


희진은 다행히 소리치는 진욱의 모습을 보았는지 곧 상체를 살짝 숙였다.

진욱은 고개를 돌린 채, 희진을 보면서 슈퍼노바 호를 천천히 후진시켰다.


동시에 희진은 속으로 수를 센 후, 무릎을 굽히고선 그대로 앞으로 도약하였다.


약해진 인공 중력과 마지막으로 불타오르는 촛불처럼 강하게 끌어당기는 기압 차는 그런 희진에게 가속도를 붙였다.


자기부상 차량처럼 살짝 공중에 몸이 맡겨진 희진은 이제 광선처럼 곧게 몸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몇 미터 정도 남았을 때였다. 희진의 허벅지로 공구상자가 돌진했다.

공구상자는 무심하게 희진의 허벅지를 그대로 가격했다.


진로가 뒤틀린 공구상자는 당구공처럼 그대로 튕겨 나갔다.

날아가던 공구상자는 슈퍼노바 호의 추진부 앞에 다다르자, 불꽃이 만드는 반작용에 밀려 저 뒤로 밀려났다


떠다니던 희진도 잘못하면 공구상자의 전철을 따라 밟을 처지에 놓였다.


뉴턴의 작용-반작용 법칙이 이렇게나 원망스러운 것이었나 생각하며, 희진은 손을 버둥거려 어떻게든 잡을 것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진욱은 후진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희진의 필사적인 왼손에 슈퍼노바 호의 선체 내부가 스쳤다.


희진은 순간적으로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손을 돌려서 슈퍼노바 호의 틈 사이를 잡았다.


하지만 희진의 다리는 여전히 가속도에 따라 추진부로 향하였다.


“으아아악!”


공기가 거의 빠져나가 조금만 멀어져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경이 되었지만, 진욱은 얼핏 속삭임 정도의 기합을 들은 듯했다.


희진은 오른손을 지렛대로 삼아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무사히 선내로 들어왔다.

진욱은 이미 희진이 선체를 잡았을 때부터 바로 해치를 올리고 있었다.


답답하게 닫히는 해치를 보며 진욱은 속으로 오만 욕지거리를 하며 가속 레버를 당겼다.

진욱은 숨을 멈춘 채, 이리저리 떠다니는 화물들을 요리조리 피하였다.


슈퍼노바 호의 후방 해치가 완전히 닫힐 즈음, 진욱은 소름 끼칠 정도로 까만 연합정보부 함선에서 탈출하였다.


“괜찮아요?”


몇 초간 최고로 가속 레버를 가동했던 진욱은 참았던 숨을 내쉬며 뒤를 향해 외쳤다.


먼저 빨려 나갔던 화물들이 여전히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고 있었기에, 진욱은 레이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희진 씨!”


위급할 때도 특유의 시끄러운 성격을 안 잃어버리던 희진이었기에, 대답이 없는 희진은 진욱에게 순간 위기감을 주었다.


결국, 진욱은 잠깐 고개를 돌렸다. 희진은 한쪽 벽면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아이참, 치료 중이에요!”

“알았어요.”


진욱은 다시 앞으로 돌아보고 선체의 상태를 점검했다.


“아무튼, 다행이에요, 희진 씨.”

“어머, 걱정해 주는 거예요?”


진욱의 위로에 희진은 급성진통주사를 맞으며 아까 전보단 밝은 소리로 대답했다.

농담까지 하는 걸 보면 희진이 어느 정도 괜찮아진 것 같았다.


희진은 자신의 농담에 대답 없는 진욱을 뒤로한 채, 라운지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바지를 갈아입을 때 희진은 정강이 쪽이 다시 쓰려왔지만 견딜 만했다.


해치 쪽에 떠다니던 구급상자를 집어 든 희진은 조종석을 향해 유영했다.


“가만있어 봐요, 진욱 씨.”

“됐어요, 나중에 알아서 치료할게요.”

“어허!”


다가온 희진은 진욱의 다친 어깨 주변을 손가락으로 슬쩍 눌렀다.


유압장치를 점검하고 있던 진욱은 순간 희진을 흘겨보았으나, 주사를 든 희진의 기세에 살짝 눌려 가만히 있기로 하였다.


진욱은 이윽고 조향장치에 손을 대었다.


“이제 어디로 가요?”

“어디로 가다뇨?”

“새 목적지요.”

“네······?”


진욱은 멀뚱멀뚱 희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희진의 표정이 더 가관이었다.


“네?”

“당연히 트리톤이죠, 진욱 씨.”

“뭐라고요?”


진욱은 조향장치에 대었던 손을 거두고, 치료하던 희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때문에 마지막으로 진욱의 상처에 단백질 폼을 덮으려던 희진은 단백질 폼을 놓치고 말았다.


“가만있으라니까요. 놓쳤잖아요.”

“제정신이에요? 방금 그 난리를 치고 거길 계속 간다고요?”

“뒤집어 보면, 그만큼 제 말이 옳다는 의미죠.”

“안 돼요. 난 못 가요.”

“글쎄요······ 무조건 가야 할 이유가 있을 텐데요.”


희진은 진욱의 당황함 반, 어이없음 반이 핫초코처럼 적절하게 섞인 표정을 바라보았다.


진욱은 그런 희진의 모습에 고민에 빠졌다.

진지하게 지금 해치를 열어 이 여자를 내보내는 것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명줄을 더 길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일단은 들어보고 열어봐도 늦진 않을 것 같았다.

진욱은 조심스럽게 손을 해치 개방 스위치 근처로 옮기고 말했다.


“뭔데요?”

“첫째, 의뢰 목표는 나를 트리톤에 데려다주는 것.”

“착수금하고 경비 전부 돌려주고 취소할게요.”

“둘째, 나뿐만 아니라 진욱 씨도 수배 리스트에 곧 오를 것.”

“정보부는 조용히 처리해서 그럴 일 없어요.”

“어쨌든 진욱 씨 본인은 조용히 실종되겠죠?”

“그건······”

“그리고 셋째.”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던 희진은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해치 스위치 근처에 놓인 진욱의 팔을 잡았다.

동시에 반대 손으로 버클을 눌러 진욱의 안전벨트를 풀었다.


“해치 여는 순간, 같이 빨려 나간다는 점.”


진욱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대화의 주도권이 이미 희진에게 넘어간 것은 분명했다.


희진은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고 있던 단백질 폼을 다시 잡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진욱을 보면서, 희진은 단백질 폼을 진욱의 상처에 바른 후 구급상자에 넣었다.


“최대 출력으로 가면 저 연합정보부 함선도 따돌릴 수 있을 거예요. 참, 마실 것 좀 줄까요?”


희진은 할 말을 다 한 듯, 미련 없이 휙 돌아서 라운지로 몸을 날렸다.

진욱은 그런 희진을 멍하게 보다가 결국 트리톤으로 항로를 설정했다.


앞으로 저 여자와 얘기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다짐하였다.

동시에 왜 저 여자와 얘기만 하면 지는 것인지, 자신이 조금 한심하기까지 느낀 진욱이었다.


이번에는 협력한 것도 있으니 봐주는 것이라며 진욱은 애써 합리화하였다.

그러나저러나, 진욱의 손은 이미 가속 레버를 끝까지 밀어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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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 공간도약이 기존 이온추친 방식을 넘는 미래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엄밀하게 지켜봐야······.”

“변리사님, 이미 우주에 돌아다니는 화물선 중 80%가 공간도약을 쓰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상치 통계도 보셨죠? 김 변리사님은 여기 오실 때······.”


야심한 밤에 하는 시사 프로는 늘 인기가 없었다.

TV 속의 두 출연자는 열띤 토론을 이어갔지만, 그 열기는 환하게 빛나는 TV를 벗어나 공기와 닿는 순간 증발하여 버렸다.


TV 앞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마주 앉아있는 사람에게만 몰려있을 뿐이었다.

다만 출입구 쪽에 앉은 여자 한 명은 검은 바둑알 속의 흰 바둑알 하나처럼 달랐다.


여자는 맞은편에 달아오른 얼굴로 앉아있던 태환의 비틀거림을 이리저리 피하며 TV를 보고 있었다.


태환은 TV만 보는 여자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조용히 소주 한 잔을 잔에 부은 뒤 단숨에 들이켰다.


“괜찮다니깐. 어서 한잔해.”


여자는 그런 태환의 말을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들었는데 모르는 체하는 것인지 TV 토론에 눈을 고정한 채 헛된 젓가락질만 한두 번 해댔다.


TV에서는 이제 삿대질까지 하는 모습이 얼핏 비쳤다.

태환은 여자의 젓가락질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기를 한 점 집었다.


태환은 집어 올린 고기를 여자의 젓가락 근처에 몰래 놓았다.

여자의 젓가락에 고기가 닿자, 그제야 여자는 고개를 돌려 태환과 자신의 젓가락을 번갈아 본 뒤 입을 열었다.


“뭐야?”

“고기 안 먹을 거야?”

“먹긴 할 건데, 넌 걱정 안 돼?”

“에이······ 나이가 몇인데 알아서 했겠지.”


태환은 약간 취한 뉘앙스로 소주병을 들었다.

여자는 손을 살짝 들어 태환에게 거절의 표시를 보냈다.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 테이블 오른쪽의 인식창을 몇 번 눌렀다.

그러자 약간의 진동과 함께 초벌구이 된 고기가 이동로를 따라 예쁘게 불판 위에 올려졌다.


“좀 먹고 나서.”


태환은 여자의 말에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병을 내려놓았다.

여자는 고기 몇 점을 뒤집은 뒤 태환을 보고 입을 열었다.


“지금쯤 도착했겠지?”

“아마도?”

“근데 왜 연락이 없지······.”

“야, 거기서 여기랑 거리가 얼만데 뭘.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했어.”

“그래도 너무 늦어······.”


여자는 고기를 집어 먹기 위해 움직이던 젓가락을 멈추고 말을 흐렸다.


“직접 연락해 봐야겠어.”


여자는 젓가락을 접시에 내려놓고 품에서 단말기를 꺼내려고 했다.

한창 뜨거운 고기를 입에서 식히며 김을 내뿜던 태환은 짐짓 놀라면서 여자를 제지하였다.


“에헤이, 나중에 해, 나중에. 일단 지금은 맛나게 먹읍시다, 빅토리아 씨.”


태환은 사탕을 더 먹으려는 아이를 달래는 엄마처럼 빅토리아라 불린 여자를 달랬다.

그러면서 자신의 젓가락을 빅토리아의 손 위로 대며 넣어두라는 젓가락질을 하였다.


빅토리아는 태환의 능글거리는 모습에 고민하다, 결국 단말기를 다시 넣었다.

그러고 태환의 이어지는 소주 공세에 단말기 대신 자신의 잔을 들어 올렸다.


“짠~”


영롱한 소리와 함께 그렇게 소주 한 병이 또 바닥을 보였다.

빅토리아는 아까 내려놓은 고기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러나 태환과 달리 바로 입에 넣지는 않았다.

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빅토리아의 눈빛이 방금보다 깊어 보였다.


고기를 보고 고뇌하는 그런 네오채식주의자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

단지 술기운에 빅토리아의 머리가 더 빠르고 극단적으로 돌아가다 보니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 더 그럴듯한 설명이었다.


그런 빅토리아의 경직된 모습을 알아차렸는지, 태환은 새로 부은 소주를 털고 입을 열었다.


“지금 아마 신났을 거야.”

“그러면 다행이지만.”

“고마워서 만든 자리에 초를 치고 그래. 장사꾼이 책임감이 너무 강한 거 아냐?”

“나는 상관없는데, 너는 진짜······.”

“아유, 너나 나나 할 만큼 다 했어. 진짜 걱정되나 봐? 난 안 되는데.”


태환은 고기를 집어 든 젓가락을 이리저리 공중에서 돌리면서 빅토리아를 놀려댔다.

빅토리아는 그런 태환의 모습이 익숙했지만,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다.


빅토리아는 애써 평정심을 되찾으며, 소주 한 잔을 천천히 넘겼다.

목을 타고 넘어오는 알코올의 향이 꽤 무겁게 느껴졌다.


“알았어. 네 말대로 기다려 보자. 뭐, 연합 녀석들이 여기 들이닥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걔들이나 우리나 어차피 연합한테 들켜서 끌려가면 집에 있는 포크 개수까지 탈탈 털릴 거 알잖아?”


빅토리아의 경고에도 태환은 남은 고기를 마저 입에 넣고 잇몸 곳곳에 육즙이 스며들게 고기를 꼭꼭 씹어댔다.


빅토리아는 그런 태환을 바라보다가 TV로 시선을 돌렸다.

TV에선 어느새 토론이 끝이 난 모양이었다.

맞춤형 광고가 안 그래도 관심 없는 사람들을 더 관심 없게 만들고 있었다.


태환은 까끌까끌한 수염에 묻은 몇 방울의 소주를 손으로 쓱 닦고는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았다.

빅토리아는 흠칫 놀라며 다시 태환을 바라보았다.


“깜짝이야.”

“난 연합군이 여기 와도 괜찮아.”

“왜?”

“난 그때 여기 없으니까.”

“너 혼난다.”


빅토리아는 태환의 또다시 놀리는 말투에 주먹을 쥐었다.

태환은 빅토리아의 주먹을 눈치챘는지 살짝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빅토리아는 주먹을 풀고 다시 젓가락을 쥐면서, 질렸다는 기분을 온몸으로 내뿜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보자······ 휴가가 금요일까지니까······ 오래 있으면 토요일?”

“일찍 내려가.”

“싫은데.”


태환은 빈정대는 말투를 굳이 표정에까지 담아 얘기하였다.


“여기서 더 할 거 있어?”

“아니, 안 바쁘면 너랑 놀지 뭐.”

“뭐래, 그럴 거면 물건이나 좀 사. 얼마 전에 달에서 들여온 크리움 오일 있어.”

“아이고, 그거 직장에서 쓰다가 고장이라도 하나 나면 나 바로 징계야.”

“대기업씩이나 다니면서 나한테 민폐만 끼치지 말고 도움이 좀 돼라. 매상도 올려주고.”

“몰라, 야, 짠!”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던 둘은 마지막 잔을 비우며 소주병을 비웠다.

태환은 빈 술병을 슬쩍 본 후, 테이블에 붙어있는 인식창으로 손을 옮겼다.


한창 스크린을 뒤적이는 찰나, 빅토리아가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들고 일어날 채비를 하였다.


“잘 얻어먹었어. 연락 오면 얘기할게.”

“더 먹고 가. 에이, 앉아.”


태환은 엉겁결에 같이 일어섰다.

겉옷에 팔 하나를 넣고 있는 빅토리아를 향해, 태환은 허공에 손짓하며 말하였다.


그러나 빅토리아는 태환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행동하였다.


“아냐, 충분해. 어차피 내일 새벽에 물건 들어와서 일찍 가봐야 돼.”

“밑에 직원 맡기면 되지, 무슨.”

“됐어. 하여튼, 네 동생 때문에 너나 나나 무슨 일 안 나게만 해.”

“걘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손가방을 챙기고 단말기를 확인하던 빅토리아는 태환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며 출입구 쪽으로 향하였다.


“야, 정말 가려고?”


태환은 허둥지둥하며 급하게 자신의 겉옷을 챙겨 입었다.

겉옷에 한쪽 팔만 넣은 채로 태환은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 태환은 입구에 있던 로봇에게 막혀버렸다.

로봇의 손에는 단말기가 놓여있었다.


태환은 급하게 자신의 손목을 단말기에 스치듯이 갖다 대었다.

삑 거리는 작은 전자음이 나자, 로봇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옆으로 비켜섰다.


로봇은 태환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이 정면만을 바라보았다.


짧은 멜로디가 나오는 문을 열고 나가자, 전형적인 뒷골목 야시장이 펼쳐졌다.


질퍽한 바닥과 캄캄한 하늘이 제일 먼저 태환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사이의 틈을 채우는 왁자지껄한 인공조명들이 태환의 길을 인도했다.


태환은 얼마 안가 이런 소음과 불빛의 풍경에 어울리는 자그마한 부속품이 되었다.


하지만, 태환의 앞에 서 있는 자기부상 택시는 달랐다.

돋보이는 푸른 빛의 택시의 창문이 조용히 내려갔다.


잘 익은 바나나 같은 노란 단발머리를 살짝 손으로 넘기는 빅토리아가 보였다.

그리고 가려져 있었던 빅토리아의 볼이 보였다.

빅토리아는 자신의 볼 앞으로 살짝 손을 흔들었다.


“난 간다. 나중에 봐!”

“야! 빅토리아!”

“누나 이름 불러도 갈 거야, 태환아.”


태환은 멀어지는 택시를 향해 소리를 치려다, 멈칫하고 나팔 모양으로 만든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멋쩍게 넣은 손만 주머니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태환은 작아져 가는 택시를 끝까지 보았다.


“에이······ 분위기 좋았는데······.”


주머니에 넣었던 손 중 하나를 꺼내 괜히 머리를 긁적이던 태환은 곧 몸을 돌려서 반대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제야 아까 전까지만 해도 안 들리던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이 태환의 귀와 눈으로 들어왔다.


태환은 혼잡한 주변을 둘러보며 숙소로 향하였다.

접대용 로봇에게 행패 부리는 취객과 나란히 노상에 앉아 국수를 먹고 있는 커플을 먼저 지나쳤다.


불 쇼를 손님에게 선보이는 노점상 대머리 아저씨도 기운 넘쳐 보였다.

내일 빅토리아의 가게에 가볼까 문득 고민하며 태환은 야시장 코너를 돌았다.


코너를 돌자, 대로가 펼쳐지며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드문드문 가족과 연인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태환은 빅토리아가 했던 말들을 다시 곱씹었다.

분명 강인하고 쾌활한 성격에 하나에 꽂히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동생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오래 연락을 안 하는 것도 사실 내심 사촌오빠로서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태환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는 동생 핑계도 댈 겸, 내일 빅토리아의 가게에 놀러라도 가볼까 하는 생각이 더 컸다.


태환은 웃음을 지었다.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태환은 단말기를 꺼내어 들고 화면을 몇 번 눌렀다.

단말기의 화면이 바뀌자 태환은 입을 열었다.


“네, 강일&헤클러 상사 인천 지부죠? 지상관제부 연결요. 사원 번호는 872914요.”


작가의말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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