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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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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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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글자수 :
3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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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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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DUMMY

박현섭의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흘렀다.

그의 소원은 제대로 성취되고 있었다.


하건은 하루하루 모두가 즐거운 걸 의식했다.

그러면서 쑥쑥 자라났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 *


조용호는 전문학교를 나와서 일을 배웠다.

그리고 서울에 자그마한 스포츠 마사지 가게를 차렸다.


온 나라가 붉은 옷을 입고 축구 응원에 열광할 무렵이었다.

용호는 전문학교 동기 중에서 제일 먼저 독립을 했다.


몇 년 후 용호는 대출받은 것도 다 갚았다. 그때부터는 부모님께 용돈도 드렸다.


용호의 매형 김상철이 소원을 성취했다. 그의 자립은 상철의 소원이었다.

철로를 달리는 기차처럼 순조로웠다. 나무탈이 점혈을 조정할 여지도 거의 없었다.


용호와 나무탈의 소원 관계가 종료되었다.


* *


김상철은 그보다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용호가 자립했을 때 그는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클레이 아트의 꿈을 위한 직장생활이었다.


그러다가 작품들을 가지고 공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돗자리를 펴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판매했다.

도매점에서 점토도 가져다가 거의 원가에 제공하기도 했다. 원한다면 직접 만들어 시범을 보였다.


나무탈은 그게 나쁘지 않은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상철이 공원에 가는 시간에는 비구름을 거두어주었다.


공원에서 얻은 자신감을 가지고 상철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클레이 아트를 컨셉으로 한 찻집을 열고 싶었다.

일주일의 반 이상 전통 찻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시간은 여전히 클레이 아트에 쏟아부었다.


나무탈이 막을 이유는 없었지만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기.

조연정의 그 소원은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 무렵 빛의 조각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나무탈에게 스며들었다.

그는 언제까지 어디로 가야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 *


손명희의 영혼은 사소한 것도 안타까웠다.


자신의 빈소는 식장에서 제일 넓었고 제단도 제일 풍성했다.

문제는 빈소에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남편은 연구만 해서 그런지 시야가 좁아지곤 했다.

그래서 가끔 엉뚱한 선택을 했는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런 건 싫은 명희였다.


하지만 이제 다 지난 일이었다.

명희는 생각보다 긍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경일에게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었다.

그녀는 지난 8년간 너무 행복했다.


전남편이 있었기에 그 시간의 가치를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죽음은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스쿠버 다이빙은 그녀 자신이 너무나 좋아했던 취미였다.


광재만 꼭 좀 잘 부탁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말하지 않아도 경일이 잘하리라 믿었다.

그는 벌써 세 번이나 광재에게 그 비슷한 말을 건넸다.


조문객은 없었지만 경일은 계속 서있었다.

명희는 마지막으로 경일과 키스를 하고 싶었다.


‘남편이 좀 숙여줘야 하는데···.’


두 사람은 키 차이가 좀 났다.

그 순간 명희의 몸이 떠올랐다.


“호홋.”


장례식과 안 어울리는 큰 웃음이 살짝 터졌다.

명희는 경일과 키스했다.


그녀는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

왼쪽 팔에 빛나고 있는 팔찌가 있었다.

그게 인도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병원 옥상을 지나려고 할 때였다.

그 사람이 나타났다.

풍선처럼 떠오르고 있던 명희의 길을 막고 떠 있었다.


사극에 나오는 분위기의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왼쪽 눈 부위는 쪼개진 탈 같은 걸로 덮여 있었다.

죽음의 안내자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곱상한 느낌이 전 남편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그는 전남편보다 훨씬 잘생긴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손명희라고 해요!”

“··· 안녕하시오.

난 내 이름을 모르오”

“아 그래요. 가시죠.”


명희는 씩씩하게 앞장섰다.


나무탈은 다시 날아서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눈에는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는 붉은 가시넝쿨 몇 줄기가 보였다.

그들 부부를 하늘이 맺어주었다는 증거였다.


“손명희 씨와 최경일 씨는 하늘이 맺어준 연분이었소.”

“천생연분이요?”

“그렇다고 할 수 있소.”

“어머머!”


명희는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여행사에서도 항상 실적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서로 떨어져야 하니, 그걸 안타까워한 하늘이 두 사람에게 각자 하나씩 소원을 들어주기로 것이요.”


명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원이요?!”

“그렇소.”

“호호홋!”


명희는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졌다.

경일을 만나니 죽어서까지 좋은 걸로 가득했다.


“즐겁다니 다행이오.”


남자가 미소 지었다.

명희가 20년만 젊었으면 열광할 수도 있었다.


“아니에요.

죽었는데 즐겁긴요. 그냥 너무 대박이라···.”

“석 달 시간이 있소.

소원이 정해지면 부르시오.”


나무탈은 사라졌다.

초여름 파란 하늘이었다.

이런 공중에서 하는 이야기니 명희는 신뢰가 갔다.


명희는 하늘에 떠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쉬엄쉬엄 동네를 날아다녔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역시 그것밖에 없었다.

해는 이미 지고 낮의 흔적이 어슴푸레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왠지 가족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 *


“저기요, 사신님?”


나무탈이 나타났다.


“난 사신이 아니오. 그저 소원을 들어주는 자요.

소원은 정했소?”

“네, 정했어요.

우리 애들이 있어요.”


나무탈은 명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기억의 점혈이었다.


“아이고?!”


그의 손이 나무처럼 까끌까끌 해서 깜짝 놀랐다.


“최아리 양과 최광재 군 말이오?”

“네 맞아요! 신통하시네.”

“계속해서 말해보시오.”

“물론 둘 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걸 전제로 들어주세요.”


명희는 진심으로 아리를 응원했다.

경일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아이는 성실했다.

그게 경일과 꼭 닮아있었다.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광재가 많이 뒤처지고 있었다.

아리가 탤런트 일을 하는 건 빼고 생각해보았다.

광재는 공부도 운동도 아리보다 못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광재는 많이 다치고 뭘 하려고 하면 잘 안되었다.


소원 같은 기적이 있다면, 역시 광재 쪽이 조금 더 축복을 받아야 했다.

그래야 두 자식이 같이 잘 될 것 같았다.


물론 복이 또 광재한테만 쏠리지 않게 고민을 했다.

광재가 아리보다 성공한다?

광재만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

이런 건 경일에게 미안했다.


명희는 나무탈에게 이런 설명들을 했다.


나무탈은 묵묵히 들어주고 있었다.

한쪽 눈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맑고 깊은 느낌이었다.

그의 표정에 명희도 더 진솔해졌다.


“···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봤어요.”

“한 가지로 잘 정리를 해보시오.”


명희는 한번 숨을 고르고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광재가 살아가면서, 아리보다 운이라도 좋게 해 주세요.”


나무탈은 한번 멈칫했다.


“··· 운 말이오?”

“네.

이거 한참 고민했어요.”


되물을 필요는 없는 소원이었다.

하지만 나무탈은 알고 있었다.


빈소에는 영혼의 미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소원은 그걸로 정해졌소?”

“뭐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명희는 미소 지었다.

손님은 자기였는데 버릇처럼 상대방을 배려했다.


그녀는 영혼의 미라가 빈소에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그녀 자신이 아직 미라화가 되지 않아 볼 수가 없었다.


나무탈은 그때 깨달았다.


“······.”


그는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괜찮소.

소원은 이제부터 변경하지 못하게 되오.

그게 마지막 결정인 거요?”

“네.”


명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탈은 최광재와 최아리의 점혈을 느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소원을 위한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나무탈은 빈소로 내려갔다.


* *


아리가 주저앉은 광재를 안아주었다.

광재는 반응이 없었다.

아리는 어색하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둘은 말없이 벽에 기대어 나란히 앉아있었다.


영혼의 미라도 거기 있었다.


미라는 광재의 목을 조른 채 벽을 타고 천장에 붙어 꿈틀거렸다.

성인 남자 크기로 짙은 잿가루가 뭉친 것 같았다.

목을 조르는 팔 두 개 외에도 네 개나 더 뻗어있었다.


그놈의 팔은 두 짝이 한 묶음인 것 같았다.

묶음별로 색과 질감이 달랐다.

미라는 자세를 바꾸어 갔다.

그러자 광재의 목을 조르는 팔이 교대되었다.


놈은 쉬지 않고 담배연기 같은 걸 뿜어내었다.

공진태의 것보다 기분 나쁜 빛깔을 하고 있었다.


나무탈은 광재의 점혈을 조정했다.

미라가 광재를 조르던 손을 풀면서 대량의 재가 떨어졌다.

나무탈도 그 재를 뒤집어썼다.

섬뜩함이 나무탈을 덮쳤다.


“캬아아!”


미라는 울부짖었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미라는 나무탈의 얼굴을 도전적으로 노려보았다.


광재가 아리보다 운이 좋아지기 위해 해야 할 것은 간단했다.


미라는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아리의 점혈을 조정하는 길은 하나였다.

그게 너무 선명해서 다른 것들이 무의미했다.


나무탈은 망설였다.

그때 빛의 조각이 내려왔다.

나무같은 손에 스며들었다.


손은 깃털처럼 움직여져 아리의 이마를 눌렀다.


그러자 광재의 미라가 길게 비명을 질렀다.


“캬아아아알!”


미라의 팔에서 각각 손 같은 게 떨어져 나왔다.

그 잿빛 모래 덩어리 여섯 개가 아리의 목을 향했다.

조금씩 색과 질감이 다른,

두 손,

두 손,

두 손이,

차례로 아리의 목에 들러붙었다.

동시에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러더니 목에 붙은 덩어리들이 바스러졌다.

그 잿가루가 그녀의 목을 통해 몸안으로 스며들었다.


아리는 그런 것들이 벌어지는 줄은 전혀 몰랐다.

목이 좀 칼칼한 정도였다.


나무탈은 잠시 아리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다시 명희 앞으로 가야 했다.


* *


명희는 한갓지게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경일과는 틈나는 대로 해외여행도 했다.

많은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다.

그래도 자기 자신이 이렇게 공중에 떠있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무탈이 돌아왔다.


“··· 그 소원 성취되기 시작했소.”

“어머! 빨리 오셨네요!”


이번에 나무탈은 다녀오는데 3분이나 걸렸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명희는 유리처럼 되어갔다.

그리고 강풍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번지점프 같은 것도 해본 그녀는 금방 몸의 균형을 잡았다.


태풍의 눈 같은 곳이 오로라처럼 빛났다.

얇고 다른 색을 한 오로라가 가득히 교차했다.


“호호홋!”


명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광재와 아리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살펴야 했다.

그들은 명희의 소원 대상자이고 나무탈의 악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점혈 조정의 주도권을, 영혼의 미라가 쥐고 있었다.


고민하지 않는 나무탈은 처음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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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21.06.15 38 0 12쪽
26 제2장 (2) 아리스 광재스 21.06.14 33 0 12쪽
25 제2장 (1) 치약 꼬마 최아리 21.06.13 36 0 12쪽
24 제1장 (마지막) 하건과 즐거움이 따르는 길 21.06.10 35 1 14쪽
23 제1장 (20) 박현섭의 소원 21.06.10 36 1 14쪽
22 제1장 (19) 금이 간 탈바가지 21.06.09 45 0 14쪽
21 제1장 (18) 의외의 반격 21.06.09 35 2 11쪽
20 제1장 (17) 망쳐진 연극 21.06.08 38 1 11쪽
19 제1장 (16) 취해버린 남편 21.06.07 42 1 12쪽
18 제1장 (15) 나쁜 여자 21.06.06 41 3 11쪽
17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21.06.03 51 3 12쪽
16 제1장 (13) 몸 따로 마음 따로 21.06.02 38 3 11쪽
15 제1장 (12) 과도한 효능 21.06.01 44 3 11쪽
14 제1장 (11) 실력 이상의 것 21.05.31 49 2 13쪽
13 제1장 (10) 나송화의 소원 21.05.30 49 2 12쪽
12 제1장 (9) 아내의 결심 21.05.27 57 4 11쪽
11 제1장 (8) 소원의 불안요소 21.05.26 61 5 11쪽
10 제1장 (7) 소원 찾기 21.05.25 63 6 12쪽
9 제1장 (6) 남편의 과거 21.05.24 77 3 12쪽
8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21.05.23 92 5 11쪽
7 제1장 (4) 기괴한 호의 21.05.20 85 3 11쪽
6 제1장 (3) 수상한 전화 21.05.19 91 6 13쪽
5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21.05.18 102 5 11쪽
4 제1장 (1) 하건이네 집 21.05.17 136 5 13쪽
3 프롤로그 (3) 계속되는 소원 21.05.16 158 5 14쪽
2 프롤로그 (2) 하늘이 맺어준 연분 21.05.16 208 14 14쪽
1 프롤로그 (1) 나무탈과 한 가지 소원 21.05.16 409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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