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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2,941
추천수 :
108
글자수 :
335,404

작성
21.06.06 08:41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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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제1장 (15) 나쁜 여자

DUMMY

권 대표가 타이밍을 맞추어 일어났다.


“한 배우님, 그리고 우리 감독님?

진짜 죄송해요.

임 배우님 하고 담배 한 대만 태우고 오겠습니다.

이해하시죠?”


이럴 때 동환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창규는 현섭의 장례식 때 와주었다.

그는 이번에도 예의를 지켰다.


“누나, 미안해요.

나중에 이야기할게요.”


송화는 고개만 살짝 숙여주었다.


동환은 임창규가 나쁘지 않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강수정을 소개해준 사람이 임창규였구나···. ’


이 세계에서 동환도 물론 눈치를 본다.

창규는 무시하기에는 꽤나 컸다.

그렇다고 눈치를 볼만큼 존경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성복 형님한테 하소연이나 해야겠다···.’


동환은 성복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말을 걸 수 없는 분위기였다.


성복은 오래된 가죽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들었다.

바로 책장을 넘겨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보조 의자가 접혀있었다.

동환은 그걸 가리키며 송화의 눈을 보았다.


“미안해요-.

저기 의자 펴서 앉으시고, 잠시만 이대로 기다려 주세요-.”

“네.”


송화는 벽 쪽으로 가 그냥 서있었다.

동환은 그녀가 연기의 스위치를 끄지 않은 걸 알았다.


* *


현섭의 영혼은 오랜만에 창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들은 밖으로 나있는 비상계단에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현섭이 엿듣기 매우 좋은 지형이었다.


창규는 현섭보다 4살 어렸지만, 경력은 1년 정도 아래였다.


키가 크고 멋진 체형의 현섭, 말랐지만 꽃미남 계열의 창규.

둘 다 극단의 간판 배우였다.


현섭은 연기를 그만둔 이후에 연극과 관련된 것들과 거리를 두었다.

창규의 작품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창규는 연기를 쉬지 않았다.

이제는 라이벌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권 대표는 창규의 한 다리 건너 인맥이었다.

창규는 자신의 출연료를 대폭 깎아서 주연을 한 번 맡아주었다.

그 작품이 히트를 해서 권 대표 회사의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번 일로 제가 마음이 좀 상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다른 애들은 경력도 제대로 없어요.

또 그런 친구들 오디션 경험 쌓게 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그건 창규 씨도 이해하시죠?”


창규가 3년 전에 문을 연 학원의 경영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그래서 출신 배우를 한 명이라도 더 현장에 보내는 데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소규모 제작자에게조차 이런 대접을 받았다.


창규는 시간이 나자마자 달려왔다.

오디션 시간이 마침 그때인줄은 몰랐다.


이야기를 대충 들은 현섭은 먼저 회의실로 돌아갔다.

역시 아내가 신경 쓰였다.


* *


성복은 대본을 바라본 채 동환에게 물었다.


“감독님. 저분한테 우리 대본 보여 드렸어요?”


동환은 허를 찔린 것 같았다.


“그게 저-. 그러니까-.”

“핫핫핫.

그럼 안 보여드린 걸로 하고.”


성복은 대본의 내용을 가리키며 송화에게 보여주었다.

너무 많이 봐서 걸레처럼 된 ‘사장님은 가정부’의 대본이었다.


“나송화 씨.

여기 이 부분, 리딩 한 번만 해보시겠어요?”


동환은 깜짝 놀랐는데 송화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 *


사장님 ‘김철수’는 ‘문식’의 집에 얹혀사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그는 가정부를 자처했다.


가정부 업무는 완벽하게 소화하는 사장님은 유별난 괴짜였다.

그런데 솔직한 그의 모습에 가족들은 한 명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 집의 가족끼리는 서로 마음을 완전히 닫은 상태였다.


그들은 각각 사장님에게만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 덕에 모두가 1차적인 평안을 얻게 된다.


* *


성복의 손끝에 극 중반 ‘정미숙’과 ‘철수’ 부분이 보였다.


송화는 일단 성복에게서 대본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미숙’의 대사가 다 들어있었다.


“네, 근데 사장님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면 될까요?”

“김철수 여기 있습니다.”


성복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성복과 동환은 한번 눈이 맞았고, 서로 미소 지어 보였다.

그는 진짜로 ‘철수’ 역으로 확정된 사람이었다.

애초에 이번 작품은 성복이 사장 역을 맡았기에 제작될 수 있었다.


송화와 성복은 동환을 기준으로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섰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송화는 성복에게 꾸벅 인사했다.

불필요한 고민은 전혀 없는듯했다.


그녀는 지정 대본의 몰상식한 대사를 평범한 ‘미숙’스럽게 말해볼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주어진 과제가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주부의 대사에 악독한 ‘리건’의 기분을 집어넣기로 했다.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이기심 말이다.


그녀가 손에 쥔 성복의 대본은 하도 손때를 타 자연스레 돌돌 말렸다.


“이거··· 캔 음료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송화는 양해를 구했다.

그러기엔 일렀지만 동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벤치에서 한번 시작해 볼까요?”


감독의 지시에 성복이 보조 의자 두 개를 펼쳤다.

그러더니 그는 신사처럼 자리를 권했다.

송화가 부끄럽다는 듯이 먼저 앉았다.


두 사람은 벌써 연기를 시작해 있었다.


“준비-. 시작-.”


평범한 주부가 갑자기 이기적이 될 때 약간 얼빠진 사람처럼 된다.

그런 게 너무 오랜만인 것이다.


송화는 ‘미숙’이라는 인물을 그렇게 잡았다.


“··· 저는요.

지금 생활에 불만이 있다는 게 아니에요.

시아버지 모시는 게 시어머니 모시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잖아요?”


송화는 ‘대본 돌돌’을 입에 갖다 댔다.

그녀는 목이 타는 것 같았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창규와 권 대표였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곳은 이미 무대였다.


그들은 문가에 서서 연극을 바라보았다.

창규는 순간적으로 그녀가 송화가 아닌 줄 알았다.


“딸은 무슨 시험을 봐도 항상 전교 10등 안에 들고···.

남편은··· 결혼하고 큰소리 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성복은 고개 숙인 송화의 얼굴에 눈높이를 맞췄다.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눈을 조금 피했다.

그러면서도 성복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 말은···.

생활에 불만은 없지만 가족한테는 불만이 있다?”


송화는 움츠러들었고 성복은 말을 이었다.


“하루에 불만을 백 개는 말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영감탱이이고,

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독재자가 되는 딸년과,

소리를 지르지 않지만 감복의 탄성도 지르지 않는 웬수라는 말로 들리네요.”


송화는 성복을 보고 힘없이 웃었다.

물론 그런 미소는 대본에 쓰여있지 않았다.


“사장님도 참-,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나쁜 사람 눈에는 나쁜 사람만 보이고,

좋은 사람 눈에는 좋은 사람만 보인다지요?

미숙 씨가 어디에 속할지 아직 편을 못 고른 모양이네요.”


송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나쁜 년이에요!”


그녀는 거기서 해맑았다.


성복과 성복이 연기하는 ‘철수’,

두 인격이 동시에 이 여자 참 이쁘다고 생각했다.


“남편 몰래 사교댄스를 배우고 있거든요!

가족들이 알면···.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성복도 자리에서 일어나 송화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녀의 어깨 뒤로 팔을 감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미숙’은 사실 기쁘면서도 마지못한 척을 했다.


“사실은 들키기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미숙’과 ‘철수’는 사교댄스를 추게 된다.

동환은 이 장면에 음악을 아직 고르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네- 거기까지-.”


동환의 눈에는 몇초 전부터 ‘철수’가 아니라 밤의 성복이 나온 것을 느꼈다.

그래도 오디션의 만족도는 최고였다.


동환이 지정 대본을 그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날 공원에서 그가 보지 못한 감정이 ‘악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송화가 소화한 ‘정미숙’의 패턴은 아주 괜찮았다.

여기서 그냥 맡겨버리면 좋은 연출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환은 또다시 짜릿했다.


송화는 권 대표와 창규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동환의 종료 신호까지 집중이 끊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창규야, 가서 니 배우 데려와라.

오디션 마저 하자.”


성복이 상황을 종료시켰다.


대본은 외우는 게 다가 아니다.

창규도 학원에서부터 누누이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가르친다고 바로 실행하고 그러지를 못했다.


연극 경험이 없는 송화가 오디션장에 나타난 위화감은 잠시 잊어버린 창규였다.


* *


현섭의 영혼은 벽에 걸린 탈처럼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회의실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감독의 종료 신호가 들렸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런 느낌으로 그는 건물 밖으로 힘없이 튕겨나갔다.


외간 남자가 송화를 안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송화는 아내가 아닌 것 같은 걸 넘어섰다.

그녀는 완전히 이름 모를 그 배역의 여인이었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현섭은 소리를 질렀다.


“탈바가지?!”


배에 힘이 들어가니, 순식간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졌다.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탈바가지!

치사하게 성복이 형을 이용하냐?!

그래 너 잘났다! 시키야!

아내가 연기자 됐다 됐어!

그래서 속이 시원하냐?! 이 나쁜 시키야?!”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 되는 현섭이었다.


“확 그냥 소원으로 너나 실컷 줘 패 버려?!”


그때 나무탈이 갑자기 나타나 현섭은 깜짝 놀랐다.

그는 모습만 안보였을 뿐 계속 거기 있었다.


“날 패는 것이 소원이오?

한 가지로 정리를 해보시오.

당신이 나를 패기에는 나는 좀 전능하다오.

그러니 구체적이면서도 간단해야 하오.”


현섭은 나무탈과 놀고 싶은 여유조차 없었다.


“아오?! 됐어 시키야!”


그 자리에서 현섭이 먼저 사라졌다.

사무실에서 공연 날짜나 알아볼 셈이었다.


‘저 모습을 보니 잘된 모양이로군.’


회의실에 있던 사람 중, 나무탈이 점혈 조정을 안 한 건 ‘한성복’ 뿐이었다.


이미 성복은 사람을 볼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았다.

연기에 대한 시선이 날카로웠으며 의리가 있고, 돈보다 작품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나무탈은 창규의 초조함을 조정하기는 했다.

한데 이렇게 딱 맞추어 등장할 것 까지 예측하지는 않았다.


송화는 ‘되도록 빨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렇다 해도 나무탈은 전혀 급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번 오디션에 떨어졌어도 상관없었다.


저번 공원에서 만난 인연만으로도, 그녀는 앞으로 세 번의 오디션에 더 참가할 수 있었다.


물론 현섭에게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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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21.06.15 37 0 12쪽
26 제2장 (2) 아리스 광재스 21.06.14 33 0 12쪽
25 제2장 (1) 치약 꼬마 최아리 21.06.13 36 0 12쪽
24 제1장 (마지막) 하건과 즐거움이 따르는 길 21.06.10 35 1 14쪽
23 제1장 (20) 박현섭의 소원 21.06.10 36 1 14쪽
22 제1장 (19) 금이 간 탈바가지 21.06.09 45 0 14쪽
21 제1장 (18) 의외의 반격 21.06.09 35 2 11쪽
20 제1장 (17) 망쳐진 연극 21.06.08 38 1 11쪽
19 제1장 (16) 취해버린 남편 21.06.07 42 1 12쪽
» 제1장 (15) 나쁜 여자 21.06.06 41 3 11쪽
17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21.06.03 51 3 12쪽
16 제1장 (13) 몸 따로 마음 따로 21.06.02 38 3 11쪽
15 제1장 (12) 과도한 효능 21.06.01 44 3 11쪽
14 제1장 (11) 실력 이상의 것 21.05.31 49 2 13쪽
13 제1장 (10) 나송화의 소원 21.05.30 49 2 12쪽
12 제1장 (9) 아내의 결심 21.05.27 57 4 11쪽
11 제1장 (8) 소원의 불안요소 21.05.26 61 5 11쪽
10 제1장 (7) 소원 찾기 21.05.25 63 6 12쪽
9 제1장 (6) 남편의 과거 21.05.24 77 3 12쪽
8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21.05.23 92 5 11쪽
7 제1장 (4) 기괴한 호의 21.05.20 85 3 11쪽
6 제1장 (3) 수상한 전화 21.05.19 91 6 13쪽
5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21.05.18 102 5 11쪽
4 제1장 (1) 하건이네 집 21.05.17 136 5 13쪽
3 프롤로그 (3) 계속되는 소원 21.05.16 158 5 14쪽
2 프롤로그 (2) 하늘이 맺어준 연분 21.05.16 208 14 14쪽
1 프롤로그 (1) 나무탈과 한 가지 소원 21.05.16 409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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