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2,943
추천수 :
108
글자수 :
335,404

작성
21.06.09 08:41
조회
35
추천
2
글자
11쪽

제1장 (18) 의외의 반격

DUMMY

새벽이 밝아왔다.

송화는 결국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현섭의 영혼은 심하게 몽롱해했다.

밤을 새워서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송화에 대한 걱정과 질투가 혼란스러웠다.

현섭이 독신일 때 즐겼던 것들도 겹쳐져서 그녀를 의심하기도 했다.


회색 모래는 오른쪽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활발한 잿가루도 아침이 이른 사람들을 괴롭혔다.


현섭은 마지막 정신 줄을 잡듯 나무탈을 불렀다.


“야···, 야아?!”


그는 하늘로 올라갈 힘도 없었다.


나무탈이 나타났다.

송화와 처음 만났던 가로등 밑이었다.


현섭과 말이 통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소원은 정했소?”

“송화···. 어떻게 된 거야···.”

“소원이 정해지지 않았으면···.”

“송화 왜 안 와아?!”


그의 목소리는 술주정뱅이의 고성 같았다.


“소원과 상관없는 이야기는···.”

“닥치고 송화 데려와!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무슨 얼어죽을 연기자야!

송화 지켜내 이 새끼야!”


나무탈은 항상 변함이 없었다.


“나는 당신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요.”


현섭은 나무탈의 똑같은 말이 진절머리가 났다.

그러자 현섭의 온 집중이 오른팔로 쏠렸다.

미라가 된 모래 덩이에 힘이 전달되었다.


“내 누누이 이야기하오.”


형체가 불분명하게 꾸물거리던 회색 모래가 손 모양으로 잡혀 갔다.


“이제 당신이 소원을 빌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소.”


송화를 지켜낼 수 없다면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원도, 자신의 죽음도 현섭은 지긋지긋했다.

분통스럽고, 서러웠다.


“그놈의 소원, 소원··· 시끄러워 죽겠네···.”


현섭은 속이 끓어오르는 힘을 다모아 주먹을 쥐었다.

회색 모래 덩어리가 형태를 띠며 장돌처럼 뭉쳐졌다.


“명심하시오. 소원은 한가지요.

그러니 먼저 정리를 해보시오.”

“이 새끼가- 진짜?!”


오른손잡이 현섭은 체중을 실었다.

체중 따위 없다 해도 좋았다.

그는 나무탈 놈의 아구창을 날릴 셈이었다.


나무탈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벌써 수십 번은 되풀이된 광경이었다.


현섭은 온 힘을 다해 오른 주먹을 날렸다.


슷파박!


나무탈 놈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쳤다!!


놈은 휘청이며 헛걸음질을 했다.

왼쪽 관자놀이에 제대로 들어갔다.

나무탈은 이내 반쯤 주저앉았다.


현섭의 오른팔에도 분명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팔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기괴한 타격음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우웨에엑···.”


구역질 소리는 나무탈이 내는 것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토하거나, 탈을 벗지는 않았다.

그래도 헛구역질을 해댔다.


현섭은 오른손을 확인해보았다.

그의 오른 팔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당황했지만 그로 인한 통증은 없었다.


오히려 술이 좀 깨는 것 같은 현섭이었다.

나무탈이 비틀거리는 건 환상이 아니었다.


타격이 들어갔을 때 ‘슷파박’ 소리.

모래 상태인 미라 팔이, 나무탈의 점혈에 통째로 흡수되는 소리였다.


현섭의 순수한 분노가 미라가 된 오른팔에 실렸다.

분노를 발산하는 그 순간 원래의 그가 아닌 것이 떨어지게 되었다.


나무탈은 부정적인 기운을 주관하는 점혈이 없었다.

떨어진 미라 팔이 그 빈방에 눌러앉아 버린 것이었다.


모래에는 부정적인 기운이 농축되어있었다.

그는 휘청거릴 정도로 영향을 받고 말았다.

다만 원래 자기 점혈이 아니었으므로 잠시 후 게워낼 수 있었다.


미라의 연기가 하건에게 흡수된 것과는 달랐다.

점혈이 비어있는 나무탈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다시 진정된 나무탈은 자세를 똑바로 했다.

그는 되도록 평상시처럼 말을 꺼냈다.


“소원은 한가지요···.

당신의 말은 지리멸렬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소.”


현섭은 꽉 막힌 나무탈 때문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이 시키 진짜 꽉 막혔네.”

“··· 아내를 지켜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요?

구체적으로 말을 해보시오.”

“시끄러 인마···.”


현섭은 휘청거리며 구역질하는 나무탈을 보아서 좋았다.

그도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상쾌한 아침 공기가 느껴졌다.

현섭은 정말로 오랜만에 제정신으로 돌아온 걸 느꼈다.


오른팔은 사라졌지만, 곧바로 왼손이 회색 모래가 되어갔다.

왼 손목을 감싸던 빛의 팔찌는 모래를 피하려는 듯 조금 위로 올라왔다.


머리가 맑을 때 소원을 생각해야 했다.


‘가족, 연극···.’


그때 하건과 장인어른이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불러놓은 콜택시에 탑승했다.


현섭도 트렁크에 올라탔다.

몸에서 잿가루가 나오긴 했지만, 증상이 그나마 좀 덜했다.


나무탈은 홀로 남겨졌다.

점혈을 지배당한 경험은 두려웠다.


오랜만에 자기가 누군지 조금 궁금해졌다.

언제나처럼 금방 잊고 현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두려움은 잊히지 않았다.


* *


병원 사람들은 잿가루에 더 민감히 반응했다.


현섭의 영혼은 계속 병원 밖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그는 병약한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처럼 그의 몸상태가 좋은 것이 의미가 없었다.


그곳은 거대한 종합병원이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창문에 커튼이 쳐있다든지 해서, 밖에서 송화의 병실을 찾을 수는 없었다.


꽤 긴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하건과 장인어른, 장모님이 같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장인, 장모님 표정이 그렇게 어둡지 않은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현섭은 가족들을 쫓아가지 못했다.

송화가 걱정되었다.

질투로 쓸데없는 생각을 한 자신이 한심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왼팔의 회색 모래는 팔뚝을 잠식했다.

머릿속도 점점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현섭은 주장 완장처럼 왼 팔 위쪽에 올라와있는 팔찌를 보았다.

그 빛이 영롱하니 유혹적이었다.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임을 느꼈다.


그는 그나마 남아있는 멀쩡한 정신을 풀로 가동했다.

소원을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관계자석에 공선배가 있었다.


창규가 연락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 다른 극단 사람들도 왔었으리라 생각되었다.


‘송화의 연기를 보고 다들 어땠을까.

나는?

내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그 연기를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현섭은 이제 와서 유일한 후회가 하나 있었다.


아들에게 진작 연극을 알려주었어야 했다.

같이 즐겼어야 했다.

하건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라고 너무 방심했다.


‘아니다. 벌써 4학년이지···.

더 이상 후회하면 안 돼.

한 가지 소원으로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을까.’


어젯밤 공선배의 표정은 굉장히 어두웠다.


‘시커먼 괴물은 둘째 치고···.’


예전 공선배는 잘 웃던 사람이었다.

현섭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선명하게 옛 생각이 났다.


공선배가 웃음이 헤픈 편이었지만 ‘리틀 킹덤’의 우리도 잘 웃었다.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마시던 그 술.

그 분위기.

······.

하건이한테 뭔가 전하고 싶은데.

그 뒤풀이 같은 건데.’


그는 언젠가 아들이 크면 함께 한 잔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기 혼자 취해서,

좋다고 설쳐대는 건 안 좋다고 애한테 가르쳐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모두가 같이 즐기는 것’이었다.


그 순간 현섭은 감이 왔다.


‘이거다!

내가 후회하지 않는 이유.

난 연극을 했던 것도, 그만둔 것도 후회하지 않아.’


현섭은 점점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몸에서 바스러지는 잿가루도 다시 어제만큼 많아졌다.

그는 더 이상의 망설임을 지웠다.


* *


“탈바가지?! 소원 말인데?!”


나무탈은 현섭의 영혼 앞에 나타났다.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그들은 병원 앞 주차장 상공에 떠있었다.

나무탈은 현섭이 소원을 정했다는 걸 알았다.


“소원은 정했소?”

“야. 어제 송화가 어떻게 된 건지 정말 말 안 할 거야?”


망설임은 없었지만 송화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제 그녀가 어떻게 된 건지 아는 것이 소원이요?”


아내에 대해 더 끈질기게 물어보고 싶었다.

질투를 비롯해 그녀를 위하지 않는 생각은 사라져 있었다.


“아냐 인마. 소원 정했다.”


그래도 현섭은 제정신인 지금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마음속에서부터 나오는 말로 소원을 빌고 싶었다.


“한 가지 무엇이든 말해보시오.”

“그래 인마.

우리 가족이, 사회나 학교, 집에서 모두 다 같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아들과 아내에게만 해당된다 해도 우리 가족이면 소원이 두 개가 되오.”


현섭도 그럴 줄 알았다.

그렇다면 선택은 역시 한 가지뿐이었다.


“우리 하건이가 자라면서,

모두가 같이 즐거운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 줘.

잘 좀 부탁한다.”


현섭은 미라가 된 손으로 나무탈의 어깨를 다독이려 했다.

그러다 만지려는 걸 멈췄다.


나무탈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는 나무탈을 만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현섭의 손 때문이 아니었다.


“모두가 같이 즐거울 수 있는 것··· 말이요?”

“그래.

만에 하나 하건이가 지 좋다고 학교에서 왕따를 주도하면 큰일이잖아.”


홀가분한 기분으로 설명하는 현섭이었다.


“누가 왕따를 당하는 데 옆에서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도 그렇고.

아니면 사회에서 지혼자 잘난 줄 아는 놈이 된다든지.

그런 거는 모두가 즐거울 순 없잖아.”


나무탈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있었다.

현섭은 그게 그가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했다.


“탈바가지, 넌 꽉 막히고 나쁜 시키였지만, 그래도 인마,

그나마 니가 있어서 살았다. 수고했어.”


현섭은 생각했다.

모두가 즐거운 것, 그것은 어쩌면 별거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좋은 어른으로 자라나길 원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길 바랬다.


현섭이 지금까지의 삶에 후회하지 않는 것.

그건 주변이 즐겁고 자기도 즐거운 일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이 소원이 장래에 함께 나눌 술잔처럼 작게나마 아들을 응원해주길 바랬다.


정작 나무탈은 상당히 당혹해하고 있었다.

이대로 라면 그 소원은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즐겁다’라는 기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원에 관해 나무탈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나무탈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점혈이었다.


현섭의 이마에서 열린 점혈에서 새어 나온 빛이 있었다.

그건 분명 기억의 점혈이었다.

그런데 그 빛이 하늘로 스며들더니 빛의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틈이 열리게 되었다.


그때 나무탈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점혈은 ‘시공의 점혈’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21.06.15 38 0 12쪽
26 제2장 (2) 아리스 광재스 21.06.14 33 0 12쪽
25 제2장 (1) 치약 꼬마 최아리 21.06.13 36 0 12쪽
24 제1장 (마지막) 하건과 즐거움이 따르는 길 21.06.10 35 1 14쪽
23 제1장 (20) 박현섭의 소원 21.06.10 36 1 14쪽
22 제1장 (19) 금이 간 탈바가지 21.06.09 45 0 14쪽
» 제1장 (18) 의외의 반격 21.06.09 36 2 11쪽
20 제1장 (17) 망쳐진 연극 21.06.08 38 1 11쪽
19 제1장 (16) 취해버린 남편 21.06.07 42 1 12쪽
18 제1장 (15) 나쁜 여자 21.06.06 41 3 11쪽
17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21.06.03 51 3 12쪽
16 제1장 (13) 몸 따로 마음 따로 21.06.02 38 3 11쪽
15 제1장 (12) 과도한 효능 21.06.01 44 3 11쪽
14 제1장 (11) 실력 이상의 것 21.05.31 49 2 13쪽
13 제1장 (10) 나송화의 소원 21.05.30 49 2 12쪽
12 제1장 (9) 아내의 결심 21.05.27 57 4 11쪽
11 제1장 (8) 소원의 불안요소 21.05.26 61 5 11쪽
10 제1장 (7) 소원 찾기 21.05.25 63 6 12쪽
9 제1장 (6) 남편의 과거 21.05.24 77 3 12쪽
8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21.05.23 92 5 11쪽
7 제1장 (4) 기괴한 호의 21.05.20 85 3 11쪽
6 제1장 (3) 수상한 전화 21.05.19 91 6 13쪽
5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21.05.18 102 5 11쪽
4 제1장 (1) 하건이네 집 21.05.17 136 5 13쪽
3 프롤로그 (3) 계속되는 소원 21.05.16 158 5 14쪽
2 프롤로그 (2) 하늘이 맺어준 연분 21.05.16 208 14 14쪽
1 프롤로그 (1) 나무탈과 한 가지 소원 21.05.16 409 2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