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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2,933
추천수 :
108
글자수 :
335,404

작성
21.05.23 08:47
조회
91
추천
5
글자
11쪽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DUMMY

나무탈은 이번에 그녀가 빈 소원은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송화야, 잘했어.

일단 내가 살아나면, 내 소원도 하나 남아있니까 같이 얘기해 보자.”


현섭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완전히 믿게 된 눈치였다.


“당신의 남편이 살아나려면 대체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하오?”


하지만 나무탈의 대답은 둘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현섭이 먼저 당황하며 어이없어했다.

송화도 나무탈의 대답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공격적인 마음보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미쳤냐?!

잘난 척은 오지게 하더니만,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우리한테 물어?!”


현섭의 영혼은 큰소리를 냈다.

그는 송화와 함께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건 아저씨가 생각할 일 아니에요?”


송화는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진짜로 소원을 이루고 싶어 진 것이었다.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은 한 가지뿐이오.

한데 남편은 이미 육신조차 없지 않소.”

“육체를 되돌리면 되잖아요!”

“본디 가지고 태어난 능력도 바꿀 수가 없는데, 모든 육체적, 정신적 능력이 사라진 사람을 어찌 되돌리겠소.”


짜증만 내는 현섭과 달리 송화는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닭갈비집!

남편은 닭갈비 집에서 쓰러졌으니까, 5일 전으로 가면 돼요!

바로 병원부터 가는 거야!”

“5일 전으로 간다면 그것만으로 하나의 소원이 될 것이요.”


송화는 입을 다물고 나무탈을 쏘아보았다.

그래도 실망이 크지는 않았다.

어차피 모든 게 이상한 밤이었다.

저 기괴한 사람이 하는 말은 이상해도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녀는 조금 침착해졌다.

남편의 죽음은 정말 악몽 같았다.

장례식 동안 몇 번을 포기했다가도 다시 집착하고 그러길 반복했다.


한번, 남편의 죽음과 저 사람의 말을 따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현섭은 말이 없어진 송화를 보고 조금 더 따지고 들었다.


“내 소원도 거따가 쓰자고!

그러면 두 개 되잖아?!

과거로 가서 방법을 찾아보자니까!”


나무탈은 현섭의 점혈을 눌렀다.

그의 죽기 전 기억을 엿보았다.

그때까지 현섭이 어떤 경위로 죽게 되었는지 나무탈은 모르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송화의 말대로였다.

그렇다면 소원을 합쳐서 두 개로 쓰자는 현섭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미리 병원에 가있었다면 과연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죽음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종이에 써진 시간처럼 제시간에 찾아오는 걸까?

이번에는 5일 전이었지만, 과거로 갔더니 그 전날 쓰러질 수도 있지 않을까?


과도한 흡연과 음주,

운동부족,

수면부족,

고혈압 등,

현섭은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에 많은 징조 속에서 살고 있었다.

혹시 그것들이 쌓여서 찾아온 죽음이라면, 그가 쓰러지는 시간을 단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무탈 스스로가 어떤 점혈을 조작하듯 과거로 갈 수 없었다.


소원과 관련되어 있을 때 점혈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자연이나 전화기 같은 것을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소원 계약자와 거래를 하기 위한 전제가 있기에 가능했다.


나무탈은 자기가 생각보다 전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전능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난 무언가 더 큰 힘을 바랐던 것인가?’


나무탈은 언제나처럼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짧냐 하면, 현섭이 이마에 나무탈의 손가락이 닿는 것을 느끼고 반응하는 사이 시간에 불과 했다.


“어딜 만져!”

“그 방법으로 소원을 이룰 수는 없소.

하지만 왜 안되는지는 나도 모르오.”


그건 송화에게 하는 말처럼 보였지만 나무탈이 현섭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현섭도 그걸 알았다.


“몰라?!”


현섭은 화가 난다기보다, 허망했다.

어차피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죽음부터 말이다.


“근데 무슨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이 난리를···.

탈바가지 이 나쁜 시키···.

너 때문에 괜히 기대만 했잖아···.”


사실 현섭 자신은 살아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손목에 빛나는 팔찌가 가야 할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족 곁에서 떠나지 않고 있자니, 어떤 약속을 미루는 듯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역 앞에 집합을 해야 하는 듯한 약속이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역에 가면, 목적지를 알게 되고 기차를 타기 위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는 그런 것이었다.


현섭은 더 이상 피곤하지도 않고 졸리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그를 자극하는 것이 바로 그 약속을 미룰 때 오는 찝찝함이었다.


송화는 나무탈에게 더 이상 되묻지 않았다.


그는 천생연분이 헤어지고 어쩌고 했었다.

남편이 쉽게 살아난다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지 않고, 처음부터 남편을 살려준다고 했을 것 같기도 했다.


‘현섭 오빠랑 내가 천생연분이라고···?’


송화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왜 이제 와서라든지, 유치하다라든지, 그게 무슨 의미인가라든지, 여러 안 좋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부정하고 싶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밤이 늦었으니 일단 집에 가기로 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어요?”


이 밤의 비일상적인 경험은, 송화의 소원에 대한 태도를 진지하게 바꾸어주었다.


“언제든 나를 부르시오.”


그녀는 조금 안심했다.


“소원은 한 가지,

그리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석 달이라는 것만 기억하시오.”

“일단··· 알았어요.”


그녀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살짝 뒤돌아 보았을 때 텅 빈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록 현섭을 살릴 수는 없지만 그녀는 가장 괜찮은 소원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현섭도 당연히 아내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좋은 소원을 찾아주리라 믿었다.

그래도 많이 답답했다.

이럴 때 원망할 수 있는 것은 꽉 막힌 탈바가지 밖에 없었다.


“탈바가지, 이 나쁜 시키···.”


현섭에게는 아직 나무탈이 보였다.

그러면서 송화 몇 걸음 뒤에서 그녀를 쫓아갔다.


현섭은 자기도 아직 이 세상 사람이고 집에 가고 있는 길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그는 나무탈을 경계했다.


“어딜 쫓아와? 따라오지 마.”

“당신은 무얼 걱정하는 거요.”

“송화가 아직 젊고 예쁘니까!”

“이해가 어렵구려.”

“닥쳐 아무 말도 하지 마.

저리 꺼져!”

“내가 이곳에서 사라지는 게 당신의 소원이요?”

“시끄러!”

“계속 아내 곁에 있을 셈이요?”

“너가 뭔 상관이야!”

“당신의 영혼은 부패를···.”

“아, 시끄럽다고!”


현섭은 나무탈의 말을 끊고 송화 옆으로 갔다.


“송화야.”


현섭은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그녀에게 조금 익숙해졌다.

그는 아내의 등에 손을 얹었다.

보듬고 싶었지만 만져지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그때 송화가 살짝 기침을 했다.


현섭은 송화가 많이 피곤한 걸 알았다.

그녀를 먼저 보내고, 자기는 산책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슬픔은 조금 진정되어 있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나무탈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현섭은 송화의 기침이 자기 때문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그도 본격적으로 어떤 소원을 비는 게 좋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섭은 원래 꽉 막힌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게 좋았던 현섭이었다.

이내, 나무탈을 즐겁게 해줘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 *


송화는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침실에 들어갔지만 금방 다시 나왔다.

침실에서 나는 현섭 생각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눈을 살짝 감았을 뿐인데 다음날 아침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달력 날짜를 확인했다.

이날의 예약 손님들은 취소하지 않았다.

조금 더 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일 하기를 잘한 것 같았다.


그때 하건이 방에서 나왔다.

나갈 차림을 하고 책가방을 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한 달에 몇 번씩 지각하는 하건으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이른 시간이었다.

송화와 눈이 맞자 한 손을 가볍게 들어 보이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보통 때라면 오렌지 주스와 치즈 같은 것을 꺼내 먹었겠지만, 아이는 그냥 보리차를 꺼내 따라 마셨다.


“아직 많이 이른데? 아침밥 해줄까?”

“아니.”


하건은 익숙한 듯 컵을 씻어 식기대에 올려놓고는 보리차를 냉장고에 도로 넣었다.


“하건아, 며칠 더 쉬어도 돼.”

“어차피··· 아빠는 안 돌아오잖아.”


하건은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갔다.


“갔다 올게.”

“차 조심해.”


송화는 그래도 아들이 씩씩해서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 *


하건과 친한 아이들 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경험을 한 아이가 있었다.

그 녀석이 주도적으로 신경을 써주어서 하건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은 숙제를 제출하는 날이었다.

부모님의 직업을 조사하는 그 숙제였다.


반에는 하건과 친한 아이들보다 별로 안 친한 아이들의 수가 더 많았고, 눈치 없는 소년은 다른 아이들의 부모에 대해 알고 싶었다.


“숙제했어? 너희 아빤 뭐하셔?”


평상시 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을 먼 곳의 말이 정확히 하건의 귀에 꽂혔다.

그 목소리가 누구 것인지도 몰랐다.

하건은 가방을 들고 무작정 교실을 뛰쳐나갔다.


* *


송화는 미용실에서 손님에게 말을 안 걸기로 유명했다.

불친절한 게 아니라 하나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거였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손님이 쉽게 붙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녀의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단골들이 적절하게 생겨주었다.


손님이 가고 송화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제 무리한 발의 통증도 욱신거렸다.

그때 중년 부부가 가게로 들어왔다.

닭갈비집 오너 홍병준이 그 아내 김성심과 함께 방문한 것이었다.


송화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났다.

그들은 남편이 예전에 대학로에서 연기를 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병준과 성심은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송화가 영업 미소로 눈물을 가리기 전의 그 슬픈 표정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었다.

병준은 가슴이 저며왔다.


“어쩐 일이세요?”


우물쭈물 대는 병준 대신 성심이 대답했다.


“남편, 머리도 좀 자르고,

겸사겸사, 반찬 좀 가져왔어.

김치 쪼끔이랑 멸치 볶은 거야.”


송화는 “아이고.”라고 감탄할 뿐이었지만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들의 집에서 여기까지 차로 두 시간은 족히 걸렸을 텐데 일부러 와준 것이었다.

그녀는 성심에게서 반찬을 받아 미용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하건이 모르는 남편의 모습, 송화가 너무나 사랑했던 그 모습과 청춘을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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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21.06.15 37 0 12쪽
26 제2장 (2) 아리스 광재스 21.06.14 33 0 12쪽
25 제2장 (1) 치약 꼬마 최아리 21.06.13 36 0 12쪽
24 제1장 (마지막) 하건과 즐거움이 따르는 길 21.06.10 35 1 14쪽
23 제1장 (20) 박현섭의 소원 21.06.10 36 1 14쪽
22 제1장 (19) 금이 간 탈바가지 21.06.09 45 0 14쪽
21 제1장 (18) 의외의 반격 21.06.09 35 2 11쪽
20 제1장 (17) 망쳐진 연극 21.06.08 38 1 11쪽
19 제1장 (16) 취해버린 남편 21.06.07 42 1 12쪽
18 제1장 (15) 나쁜 여자 21.06.06 40 3 11쪽
17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21.06.03 51 3 12쪽
16 제1장 (13) 몸 따로 마음 따로 21.06.02 38 3 11쪽
15 제1장 (12) 과도한 효능 21.06.01 44 3 11쪽
14 제1장 (11) 실력 이상의 것 21.05.31 49 2 13쪽
13 제1장 (10) 나송화의 소원 21.05.30 49 2 12쪽
12 제1장 (9) 아내의 결심 21.05.27 57 4 11쪽
11 제1장 (8) 소원의 불안요소 21.05.26 61 5 11쪽
10 제1장 (7) 소원 찾기 21.05.25 63 6 12쪽
9 제1장 (6) 남편의 과거 21.05.24 77 3 12쪽
»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21.05.23 92 5 11쪽
7 제1장 (4) 기괴한 호의 21.05.20 85 3 11쪽
6 제1장 (3) 수상한 전화 21.05.19 91 6 13쪽
5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21.05.18 102 5 11쪽
4 제1장 (1) 하건이네 집 21.05.17 136 5 13쪽
3 프롤로그 (3) 계속되는 소원 21.05.16 157 5 14쪽
2 프롤로그 (2) 하늘이 맺어준 연분 21.05.16 208 14 14쪽
1 프롤로그 (1) 나무탈과 한 가지 소원 21.05.16 407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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