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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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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글자수 :
3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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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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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1장 (17) 망쳐진 연극

DUMMY

현섭의 영혼은 얼굴만 살짝 내밀었다.

극장 천장과 뒷벽이 만나는 곳에 현섭의 탈이 걸린 꼴이었다.

그 옆에는 객석 조명이 있었다.

그나마 관객들과의 거리가 유지되었다.


맨 뒷 줄 손님한테는 잿가루가 다소 도달했다.

다행히 기침할 정도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게 현섭으로서 최대한 배려를 한 거였다.


객석은 한 두 자리 빼고 만석이었다.

극장은 공연을 기다리는 특유의 긴장감으로 충만했다.


* *


막이 오르고 ‘사장님은 가정부’가 시작되었다.


무대는 큰 공간과, 작은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공간은 그냥 하얀 벽으로만 꾸며져 있었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소품이 두, 세 개 바뀌었다.

거기에 조명을 달리해 그곳이 어디인지 설명해주었다.

장소가 거실일 때는 텔레비전과 소파가 놓였다.

침실일 때는 이불이 깔리는 식이었다.

할아버지의 방과 딸의 방은 작은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구적인 가스 가로등을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그게 세워지면 큰 공간에 놓이면 공원이 되었다.


무거운 소품에는 바퀴를 달아놓았다.

극은 최대한 리드미컬하게 진행되었다.


연출가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파트 단지를 그렇게 표현했다.


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불만은 이야기해댔다.

참 깐깐하니 얄미워 보였다.


딸아이는 엄마를 하녀 부리듯이 했다.

10대로는 안 보이는 젊은 여자가 맡았다.


반면에 남편은 너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항상 결정적으로 아내를 답답하게 했다.


가족들끼리는 천적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남편은 할아버지 앞에서 무조건 순응했고, 딸은 남편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손녀딸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아무 말 못 한다고 사이가 좋은 것이 아니고, 말을 막 한다고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송화가 연기하는 ‘정미숙’은 그 집의 주부였다.

모든 공간을 자유롭게 누비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모든 인물들의 짜증을 다 받아내야 했다.


그런 가정을 누빌 수 있는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사장님이 집에 눌러앉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가 집의 가정부를 하게 된 것이다.


괴짜 사장님은 유쾌하고 유능했다.

그의 솔직한 성격에 가족들이 휘말리게 되었다.


제일 먼저 사장님과 친해지는 것은 ‘미숙’이었다.

그녀는 늘 참아야 했지만 가끔씩 독기 어린 모습을 보였다.

유독 사장님에게 세게 나오는 독기였다.


그러던 그녀가 사장님을 조금씩 남자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화장을 고친다든지 언뜻 우스웠다.


하지만 ‘미숙’은 그때부터 매력적으로 보이게 노력했다.

몸짓 말투 표정···.

그건 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여자였다.


그리고 그 매력은 사장님 ‘김철수’를 당황시켰다.

그럴 때 ‘미숙’은 20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 *


무대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극은 중반으로 넘어가 있었다.


‘미숙’과 ‘철수’가 단 둘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막 ‘미숙’이 캔커피를 마시려는 찰나였다.


그때 지각해서 극장으로 들어오는 관객이 있었다.


생전에도 현섭은 도중에 들어오는 관객을 안 좋아했다.

여러모로 약해져 있는 지금, 그것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그런데 그 관객은 현섭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공진태 선배.

예전에 ‘리틀 킹덤’에서 같이 활동했던 사람이었다.


‘아이씨, 공선배···.

좀 빨리빨리 다니지···.’


현섭은 판단이 흐려져 있었다. 그가 반갑거나 하지도 않았다.

진태는 극장 맨 뒤쪽 문으로 들어왔다.

좌석이 반대쪽인 듯 그는 뒷 벽을 따라서 걸었다.

자연스레 현섭에게 다가오는 꼴이었다.


그 순간 현섭의 초점이 흐려졌다.

시커먼 괴물이 바로 코 앞에서 꿈틀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으-으-.”

“아아아아악!”


괴물의 낮은 신음이 현섭의 비명에 묻혔다.

현섭은 극장 밖까지 튕겨져 나와버렸다.


얼굴을 얕게 내밀려면 절묘한 힘 조절이 필요했는데 너무 놀라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었다.


‘지금 건 뭐냐···?’


극장 밖은 고요했다.


‘나 같은 놈이 더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근데 왜 여기서?’


그 괴물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헛것을 본 가능성도 있었다.

현섭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 *


괴물은 아직 극장에 있었다.


객석 중간에 앉은 공선배 위였다.

괴물은 그에게 목말 탄 형태로 얹혀서 꾸물꾸물 움직여댔다.


객석이 어두워 구체적인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팔과 다리가 따로 없었지만 성인 남자 한 명 정도 되는 크기였다.


저게 좋지 않은 거라면 사람들이 반응할 것이었다.

현섭은 기침 같은 게 발생하나 주의 깊게 살폈다.

그렇게 잠시 기다려 보았다.


그놈의 모습을 알아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연극에 방해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제는 공선배가 관계자석에 앉아있는 거였다.

괴물과 아들의 거리가 꽤나 가까웠다.


장인 장모님 사이에 쏙 하니 하건이 보였다.

현섭은 연극보다 하건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영혼의 시력은 생전 본인의 그것과 비슷했다.

최근에는 취한 시간이 더 많았던 그였다.


괴물한테서는 연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담배연기와 비슷했다.

머리 위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연기 한올이 하건의 머리 위에 맴돌았다.

그러더니 아이의 관자놀이로 빨려 들어갔다.


현섭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 *


하건은 연극을 처음 보았다.

다 큰 어른들이 온 힘을 다해 놀고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엄마도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런 엄마가 싫은지 좋은지는 판단이 안 섰다.


그런 건 모른 척 했더니 연극이 꽤 재미있게 봐졌다.


그런데 하건의 머리가 좀 아파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사장 아저씨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연달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가족들은 아빠가 있잖아.’

‘엄마는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지.’

‘엄마 옆에 왜 아빠가 아니라 다른 아저씨가 있는 거지.’


결국 하건은 그날 생각에 다시 침식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꾹 참고 이겨내고 있었던 악몽이었다.


‘그때 서울에 제대로 도착했더라면.

아빠 직업을 조사할 수 있었더라면.

좀 더 일찍 아빠한테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더라면.’


하건은 숨이 막혀왔다.

참을 수 없어서 할아버지한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나 집에 갈래요.”


* *


송화는 관객 앞에 서는 연기자가 되었다.

소원이 성취된 것이다.

그렇게 나무탈과의 소원 관계가 종료되었다.


나무탈이 그날 극장 상공에 떠 있었던 건 현섭 때문이었다.


그도 늦게 오는 공진태를 보았다.

진태는 영혼의 미라에 씌여 있었다.


미라는 생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자의 것이었다.

육체가 닮는 자손에게 씌었다.

미라는 죽은 사람의 정신적인 점혈이고 그게 한 두 개만 남은 상태였다.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기운이었다.

현섭의 눈에도 보인 것은 그 또한 미라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건강한 사람은 미라가 전혀 상관없었지만 마음이 약해져 있는 사람은 달랐다.

부정적인 기운에 영향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숙주가 우울할수록 미라는 더 강해졌다.


진태가 극장에 다가갈수록 씐 미라가 더 세어졌다.

저 미라 때문에 힘들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었다.


나무탈은 그런다 해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소원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 *


‘사장님은 가정부’는 대단원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김철수’는 사실 국제기구의 특수요원이었다.


석고 댓생 같은 가면을 쓴 작자들이 있었다.

적국의 공작원들이었는데 극 중간중간 잠깐씩 올라왔다.

그들이 ‘철수’를 찾아 헤맸다.


고등학교 운동부 후배 ‘오문식’은 그들의 정보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때문에 ‘철수’는 그의 집에서 대피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철수’는 국제기구가 문제를 해결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문식’의 가족들이 적국 배에 납치를 당하게 되었다.


배에 갇힌 설정으로 무대의 작은 공간이 쓰였다.

네 명의 가족이 처음으로 옹기종기 모이게 되었다.

넷은 그곳에서 말싸움을 폭발시켰다.

그들은 서로에게 쌓인 것들을 비로서 풀 수 있었다.


동시에 무대의 큰 공간에서 석고상 공작원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헬리콥터 소리가 울렸다.

석고상보다 많은 수의 사람 그림자가 하얀 배경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국제기구의 요원들이 배로 구출하러 왔다는 연출이었다.


거기에 ‘철수’가 직접 등장해, ‘문식’의 가족을 구해주었다.


그들은 납치 전과 달라져 있었다.

원래는 가족보다 ‘철수’를 더 편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서로 마음을 열고 화해를 한 상태였던 것이었다.


‘문식’의 아버지는 노년이 쓸쓸했다.

딸아이는 공부 스트레스로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와 손녀는 ‘철수’의 소개로 국제기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건강한 밸런스를 잡아가는 모양이었다.


부부 둘 만 남은 거실이었다.

‘문식’이 아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마지막, 미숙이 미소로 화답하며 연극은 끝이 났다.


* *


성대한 박수와 커튼콜이 이어졌다.

송화는 하건과 친정아버지가 객석에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 *


하건의 외할아버지 명세는 핸드폰이 없었다.

두 사람은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건은 서울을 벗어날 때 즈음부터 진정이 되었다.

아이의 시야가 회복되었다.

명세가 자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게 보였다.

지하철 자리를 양보받을 때까지 명세가 하건을 업어주었다.


“할아버지···.

나 이제 괜찮아요.”


하건은 문득 사장님과 가족들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현섭도 하건이 탄 지하철 뒤쪽 운전 칸에 타있었다.

아들이 걱정되어 남을 크게 배려할 수 없었다.

그 바람에 운전사는 심한 감기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 *


외할머니 최미옥한테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하건과 명세가 도착한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다.


송화가 연극이 끝나고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 *


현섭은 역 밖으로 나온 하건을 보았다.

아이는 자기 발로 걸어서 집으로 향했고 장인어른은 지긋한 눈빛으로 아이를 지켜봐 주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을 본 현섭은 집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송화는 도착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극장으로 다시 갈 수도 없었다.

그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고 새벽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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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21.06.15 38 0 12쪽
26 제2장 (2) 아리스 광재스 21.06.14 33 0 12쪽
25 제2장 (1) 치약 꼬마 최아리 21.06.13 36 0 12쪽
24 제1장 (마지막) 하건과 즐거움이 따르는 길 21.06.10 35 1 14쪽
23 제1장 (20) 박현섭의 소원 21.06.10 36 1 14쪽
22 제1장 (19) 금이 간 탈바가지 21.06.09 45 0 14쪽
21 제1장 (18) 의외의 반격 21.06.09 36 2 11쪽
» 제1장 (17) 망쳐진 연극 21.06.08 39 1 11쪽
19 제1장 (16) 취해버린 남편 21.06.07 42 1 12쪽
18 제1장 (15) 나쁜 여자 21.06.06 41 3 11쪽
17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21.06.03 51 3 12쪽
16 제1장 (13) 몸 따로 마음 따로 21.06.02 38 3 11쪽
15 제1장 (12) 과도한 효능 21.06.01 44 3 11쪽
14 제1장 (11) 실력 이상의 것 21.05.31 49 2 13쪽
13 제1장 (10) 나송화의 소원 21.05.30 49 2 12쪽
12 제1장 (9) 아내의 결심 21.05.27 57 4 11쪽
11 제1장 (8) 소원의 불안요소 21.05.26 61 5 11쪽
10 제1장 (7) 소원 찾기 21.05.25 63 6 12쪽
9 제1장 (6) 남편의 과거 21.05.24 77 3 12쪽
8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21.05.23 92 5 11쪽
7 제1장 (4) 기괴한 호의 21.05.20 85 3 11쪽
6 제1장 (3) 수상한 전화 21.05.19 91 6 13쪽
5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21.05.18 102 5 11쪽
4 제1장 (1) 하건이네 집 21.05.17 136 5 13쪽
3 프롤로그 (3) 계속되는 소원 21.05.16 158 5 14쪽
2 프롤로그 (2) 하늘이 맺어준 연분 21.05.16 208 14 14쪽
1 프롤로그 (1) 나무탈과 한 가지 소원 21.05.16 409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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