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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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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글자수 :
335,404

작성
21.05.2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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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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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1장 (6) 남편의 과거

DUMMY

현섭은 병준이 가장 아끼는 후배 중 하나였다.

그런 후배가 자기 가게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 사실이 병준을 미칠 정도로 괴롭게 했다.

그는 현섭의 장례식에 다녀와서부터, 정신적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런 남편을 보다 못한 성심이 미용실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물론 송화가 걱정되었던 그녀는 일석이조라고 생각하며 일부러 반찬을 만들어왔다.


사람 일은 모르니까 송화가 남편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성심이 아는 그녀라면, 상처를 그런 식으로 풀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남편 병준과 현섭은 오랫동안 같은 극단에 몸을 담고 있었다.

송화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그 극단의 지방 공연까지 쫓아 올 정도로 팬이었다.

물론 그녀는 극단 사람들 중에 현섭을 제일 좋아하긴 했지만, 극단 전체의 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심은 병준과 대학교 때부터 사귀었었다.

때문에 병준의 연극도 꽤나 보러 다녔지만 솔직히 그렇게 대단한 극단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저 다들 순수하고 열정적이라고 느꼈다.


어느 청명했던 가을날 팬들도 불러서 바비큐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미 병준과 결혼 해 있었던 성심도 아무 생각 없이 참가했었다.

그런데 송화는 거기서도 선을 긋고 팬은 팬, 극단원은 극단원이라는 식으로 행동을 했다.


뭐랄까, 쓸데없이 예의 바른 느낌이었다.

‘참 꽉 막힌 애다.’

라는 것이 제대로 알고 나서부터 송화의 첫인상이었다.


그 후 극단은 여러 가지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해산하게 됐는데 송화는 마지막까지 보러 와 준 정말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해산이 결정되고, 성심도 마지막이니까 하면서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송화도 객석에 있었다.

그날 성심은 그녀와 차를 마시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런데도 전혀 변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송화는 애를 낳고 체형이 무너지긴 했지만, 눈빛. 손짓, 몸짓, 말투 등이 예전과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넌 참 쓸데없이 예의 바르고, 꽉 막힌 애라고 그때 처음으로 본인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극단이 없어져서 계속 우울해했던 그녀도 살짝 웃음을 터뜨려주었다.


송화는 장례식 때문에 초췌하긴 했지만, 지금은 체형도 젊었을 때처럼 완벽하게 돌아와 있었다.

그녀도 벌써 서른네댓은 되었을 텐데, 과장이 아니라 20대로도 보일 것 같았다.


이렇게 미용실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도 그렇고, 송화는 자기 관리가 잘 되는 사람이었다.

성심은 그런 사람이 현섭의 죽음을 병준을 탓으로 돌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여기 앉으세요.”


송화가 친절하게 안내해주자 병준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쭈뼛거렸다.


“빨리 가서 앉아. 여기 오래 있으면 민폐야.”


성심은 상냥하게 다가가 남편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민폐라니요?!

장례식에 와주신 것도 감사한데 반찬까지 해주시고···.”

“맛은 별로일 거야.”


성심은 소파에 앉았다.

거울로 눈짓하면 될 것을 송화는 일부러 고개를 돌려서 목례를 했다.


성심이 앉은 소파 바로 그 자리에는 현섭의 영혼이 앉아 있었다.

성심과 보이지 않는 현섭이 거의 겹쳐지게 된 것이다.

현섭은 바람이 부는 것 이외에는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별다른 감촉이 없었지만 기분은 이상했다.

좋아하는 형수님하고 이런 자세로 있으면 안 될 거 같아서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런데 성심이 먼저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뭔가 몸이 쑤시는 듯 고개와 어깨를 돌려보았다.


‘내가 있는걸 아나?

그럼 송화는 못 알아채나···.’


송화가 집에 가면 뭐라도 시도를 해봐야 겠다고 생각한 현섭이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어색한 시간이 조금 흘렀다.


현섭은 머리를 깎고 있는 병준 형을 보았다.

그는 어른한테 혼난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영혼이 되고 난 뒤 너무 울적해진 현섭은 그를 원망하기도 했다.

형이 같이 일하자고 하지 않았다면···.

형이 했던 업종이 닭갈비가 아니었다면···.

형의 말을 거절하고 다른 일을 했더라면···.


그런데 장례식에 와서 꺼이꺼이 우는 그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많이 슬퍼하게 만든 것이 오히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섭은 닭갈비가 좋았다.

고기처럼 잘라먹는 게 아니라, 같이 퍼먹는 느낌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었다.

물론 맛있는데 그렇게 안 비싸니 기가 막힌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병준 형은 춘천에서 일을 배워왔지만, 자기는 형덕분에 서울에서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결국 현섭이 이렇게 되어버린 건 자기 자신 탓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술만 덜 마셨더라면,

담배만 덜 피웠다면,

운동을 조금이라도 더했더라면,

더 건강히 오래 살 수 있었을까.’


현섭은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원을 빌 후보 목록을 생각해 보았을 때도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가족들의 건강이었다.


현섭은 일단 송화가 무슨 소원을 비나 보고 싶었다.

아직까지 송화가 탈바가지를 부르고자 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 *


“극단 사람들, 다 잘 지내요?”


보통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 송화는 조금 고민한 후 그렇게 물었다.

진짜로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어, 다들 잘 지내지.”


병준은 현섭의 와이프가 자기를 원망하는 듯한 단서를 전혀 찾을 수 없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직도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더라···.”


송화는 자연스럽게 극단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리틀 킹덤’은 작은 극단이었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했었다.

제일 잘 나갈 때는 지방 공연까지 다니곤 했다.

송화는 리더십이 뛰어났던 주명석 오빠가 떠올랐다.


임창규도 빼먹을 수 없었다.

창규는 극단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현섭이 극단을 그만 둘 무렵부터는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극단이 해산하고 난 뒤에도 활동을 이어간 여배우가 없는 것이 좀 아쉽다고 생각했다.


“창규는 드라마에도 가끔 나오는 거 알지?

그리고 명석이···. 아, 명석이는 요즘 연기보다는 무대 연출 쪽에 힘쓰는 것 같더라···.

뭐··· 그 정도인가···.”

“네···.”


그때 송화는 잘 웃고 밝던 공선배가 떠올랐다.


“공선배는요?”

“진태···.

많이 힘들었는데 요즘은 택시 몰면서 안정이 좀 됐나봐.”


병준은 운전대를 잡는 흉내를 냈다.

그건 현섭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공선배가 힘들어···?”


현섭이 기억하는 공선배는 늘 웃던 형이었다.

극단 해산 후에는 거의 만나지 못했는데 그는 장례식에서 누구보다 슬퍼해 주었다. 알고 보니 본인의 삶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송화는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어깨가 가벼워졌다.

가위질 소리가 달라진 것은 송화만 알 수 있었다.


“··· 자주 모이세요?”

“어··· 가끔이지만 모이긴 모이지···. 매년 망년회도 하잖아.”


그때 병준은 작년 망년회 때 참석하지 못한 현섭이 떠올랐다.

그건 송화도 알고 있었다.

겨우 시간을 내어 하건과 백화점에 간 날이었을 것이다.

송화와 병준은 다시 말이 없어졌다.


한편, 현섭과 나란히 앉아있던 성심의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잡지를 보던 그녀는 몸을 배배 꼬며, 살짝 하던 기침도 점점 심해졌다.

현섭은 태평하게 성심 옆에서 그녀가 보던 잡지를 엿보고 있었다.

손님에 민감한 송화가 먼저 알아챘다.


“언니, 괜찮으세요?”

“어···. 갑자기 왜 이러지?

신경 쓰지 마.”


결국 성심은 잡지를 좌탁에 덮어놓을 정도로 몸이 나빠졌다.


“뜨거운 차 좀 타 드릴게요.”


송화가 가위질을 멈추고 물을 끓였다.

현섭은 덮어놓은 잡지를 무심히 펼치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때 미용실의 천장에 나무탈이 거꾸로 매달린 채 나타났다.


“우와악!”


현섭만 엄청나게 깜짝 놀랐다.


“잠깐만 옥상으로 올라 오시오.”


나무탈은 그 말 만하고 사라졌는데 성심뿐 아니라 병준도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었다.

당황한 송화는 병준의 컵도 꺼내었다.

현섭은 ‘역시 탈바가지는 나쁜 시키야’라고 생각하며 쭐래쭐래 미용실 밖으로 나갔다.


* *


건물 옥상으로 연결된 문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현섭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내가 무슨 유령이냐.’


현섭은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철문을 통과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낮은 건물에서 보는 시야가 펼쳐졌다.

옥상은 좁았지만 아파트 사이에 있으니 큰 새의 둥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무탈은 모서리 난간 끄트머리에 서있었다.


“야 탈바가지!

내가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이야?!”


나무탈은 웬만하면 먼저 말을 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설명을 제대로 안 한 것은 나무탈이기도 했다.

감정이 없는 사람 같은 나무탈이었지만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싫었다.


“그 여성이 몸이 안 좋아진 것은 당신 때문이요.”

“뭐?”

“사람의 영혼은 저 세상으로 가야 하오.

그런데 이 세상에 머물면 영혼의 부패가 시작되는 거라오.

그 부패가 산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인데, 지금의 당신도 그런 상태인 거요.

당신의 영혼도 부패하기 시작했소.”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현섭이었다.

소원에는 기한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세 달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소.

영혼이 부패를 해서 미라가 될 때까지 석 달,

그 안에 소원을 정하지 않으면 당신은 저세상에 갈 수 있는 통행증마저 잃게 될 것이오.”


그 말을 듣은 현섭은 조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소원 같은 거 이루지 말고,

그냥 여기서 유령이나 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건 안되나···.’


* *


현섭이 밖으로 나가자 성심과 병준은 건강을 회복했다.

성심은 현섭 때문이었지만, 병준은 창밖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잠깐 안에 들어온 나무탈이 원인이었다.


몸이 괜찮아진 것은 송화를 포함한 모두가 뜨거운 차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미용실의 전화가 울렸다.

하건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아침에 아들이 등교는 했는데 무단으로 조퇴했다고 전했다.


병준의 머리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예약 손님께 전화를 걸어 정중히 취소를 부탁한 송화는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 *


하건은 자기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역시나 눈물자국이 보였다.


“아빠 생각 많이 나?”


하건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송화에게 등을 돌렸다.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다시 가볼까?”


이번엔 벽을 향한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건아···. 걱정하지 마. 학교에 억지로 가란 말 안해.”

“야! 이 사람아!

잘 설득해서 학교 보내야지 그런 말이 어딨어!”


현섭의 영혼은 송화가 가게를 뛰쳐나오는 걸 보고, 굉장히 걱정스럽게 쫓아왔다.


“저녁 먹을까?”


하건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배고프면 말해?”

“야, 뭐라도 먹여야지!”


송화는 하건의 방문을 닫고 나갔다.


현섭은 요즘의 하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애를 이대로 두면 어떡하냐···.”


하지만 현섭이 할 수 있는 것은 닫힌 문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송화는 식탁에 앉았다.

성심에게 받은 반찬을 까먹고 안 가져왔다는 게 그제야 떠올랐다.

그러자 잊고 있었던 나무탈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남편이라면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현섭의 영혼은 송화 건너편에 앉아있었다.

그는 식탁의 자기 자리에서 성심이 아팠던 오후를 복기하고 있었다.


‘내 영혼이 악영향을 미친다고···?’


현섭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송화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기침을 하거나, 어디가 안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족끼린데 괜찮지 않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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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21.06.15 38 0 12쪽
26 제2장 (2) 아리스 광재스 21.06.14 33 0 12쪽
25 제2장 (1) 치약 꼬마 최아리 21.06.13 36 0 12쪽
24 제1장 (마지막) 하건과 즐거움이 따르는 길 21.06.10 36 1 14쪽
23 제1장 (20) 박현섭의 소원 21.06.10 36 1 14쪽
22 제1장 (19) 금이 간 탈바가지 21.06.09 45 0 14쪽
21 제1장 (18) 의외의 반격 21.06.09 36 2 11쪽
20 제1장 (17) 망쳐진 연극 21.06.08 39 1 11쪽
19 제1장 (16) 취해버린 남편 21.06.07 42 1 12쪽
18 제1장 (15) 나쁜 여자 21.06.06 41 3 11쪽
17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21.06.03 51 3 12쪽
16 제1장 (13) 몸 따로 마음 따로 21.06.02 38 3 11쪽
15 제1장 (12) 과도한 효능 21.06.01 44 3 11쪽
14 제1장 (11) 실력 이상의 것 21.05.31 49 2 13쪽
13 제1장 (10) 나송화의 소원 21.05.30 49 2 12쪽
12 제1장 (9) 아내의 결심 21.05.27 57 4 11쪽
11 제1장 (8) 소원의 불안요소 21.05.26 62 5 11쪽
10 제1장 (7) 소원 찾기 21.05.25 63 6 12쪽
» 제1장 (6) 남편의 과거 21.05.24 78 3 12쪽
8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21.05.23 92 5 11쪽
7 제1장 (4) 기괴한 호의 21.05.20 85 3 11쪽
6 제1장 (3) 수상한 전화 21.05.19 91 6 13쪽
5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21.05.18 102 5 11쪽
4 제1장 (1) 하건이네 집 21.05.17 136 5 13쪽
3 프롤로그 (3) 계속되는 소원 21.05.16 158 5 14쪽
2 프롤로그 (2) 하늘이 맺어준 연분 21.05.16 208 14 14쪽
1 프롤로그 (1) 나무탈과 한 가지 소원 21.05.16 409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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