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2,931
추천수 :
108
글자수 :
335,404

작성
21.06.03 08:30
조회
50
추천
3
글자
12쪽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DUMMY

귀가해 보니 집이 반짝거리고 빨래도 널려 있었다.

송화는 친정어머니한테 밥만 부탁해 놓았었다.


그녀는 나중에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랩으로 싸인 반찬들 옆에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이동환이 보내준 지정 대본이었다.


대사는 세 가지였다.

전부 셰익스피어 ‘리어왕’ 등장인물, 둘째 딸인 ‘리건’의 것이었다.


‘리건?

정미숙은 평범한 가정주부인데···.’


‘리건’은 아버지 ‘리어왕’에게 매몰차게 대했다.

아부이던 잔인한 짓이던 서슴지 않던 여자였다.


‘감독님은 왜 이런 걸 정했을까···.

이렇게나 다른 인물이 온 걸 보면,

대본을 입수한 사람이 더 있을 거 같은데···.’


송화는 대사 표현을 두 가지로 준비해보았다.


하나는 ‘미숙’을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리건’은 한쪽 눈이 뽑힌 사람을 보고, 나머지 한쪽 눈도 뽑아 버리라며 비웃는 자였다.


아니면 다소 억지스럽더라도 ‘미숙’과 연결 짓는 것이었다.

‘미숙’은 현모양처에 가치를 두면서도 몰래 사교댄스를 배웠다.


갭?


‘악랄한 리건은 오히려 평범한 구석이 있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라든지?’


물론 리건이 평범한 여성일 수는 없다.

그러니 성격으로 접근해보았다.


이기적이지만 소심한 사람?

욕심이 많아서 판단력을 잃은 사람?


사람은 나쁜 짓을 하고 후회와 반성을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후회할 인물이라면, 애초에 나쁜 짓을 할 때 망설였을 것이다.


송화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밤은 또다시 깊어지고 있었다.


* *


현섭의 영혼은 여전히 소원을 찾지 못했다.

언제인지 모를 아내의 오디션이 신경 쓰였다.


그는 당일이 돼서야 그날이 왔다는 걸 알았다.


아내는 화장에 시간을 들이고 자신의 머리 모양을 만들었다.

그녀는 평상시 외출 복 차림이었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 같았다.


오디션 장소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영화 쪽도 제작하는 것 같았다.


송화는 응접실로 안내받았다.

응시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현섭은 오가는 사람을 따라갔다.

회의실 책상 배치가 딱 오디션이었다.

안에는 세명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현섭도 아는 사람이 있었다.


배우 한성복이었다.

그는 40대 초반이었는데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성복이 프로필을 보더니 연출가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경력이 없는데 오디션에를 불렀어?

우리 감독님 새 여친인가? 핫핫핫.”


말하다가 스스로 핫핫핫 하고 웃는, 특유의 분위기를 띄우는 기술도 여전했다.


“제가 여자였으면 성희롱이에요 형님.”


젊은 연출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쏘아댔다.


“핫핫핫.”

“헷취-!”


이동환과 성복 외의 세 번째 남자가 재채기를 했다.


현섭의 몸에서 나온 먼지가 그의 코로 들어가고 있었다.

교만한 자세와 고민스러운 표정이 제작자 같아 보였다.


그가 기침을 시작하자 현섭은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복 형한테 민폐 끼치면 안 되지.’


적당한 장소가 좀처럼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자세를 바꾸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일단 외벽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그 상태에서 얼굴은 회의실 안쪽으로 내밀고, 귀부터 다리 밑까지는 밖으로 빼놓은 자세를 취했다.

회의실 벽에, 현섭의 얼굴 모양을 한 탈이 걸린 꼴이 되었다.


* *


두 명의 응모자가 오디션을 마쳤다.

동환은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녀들은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강수정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첫인상은 매력 있는 30대 여성이었다.

동환도 수정을 직접 보는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물론, 나송화보다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그녀를 뽑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표정부터가 교만했다.

자기는 오디션에 되었고, 이건 형식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강수정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의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목소리가 선풍기라면 강풍밖에 없는 느낌이었다.


“네- 지정 대본의 대사 시작해주세요.

세 개, 순서는 상관없습니다-.”

“감독님이 신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준비- 시작-.”


1번은 아부하는 대사였다.

‘리건’은 ‘리어왕’에게 국토를 내려받고 싶었다.


“··· 어떤 부귀와 영화가 주는 도락이라도,

저는 효도 이외에는 즐거움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오직 존귀하신 아버님에 대한 사랑만이!

저의 유일무이한 행복이 옵니다!”


동환이 느끼기에 너무 아부 같았다.

‘리어왕’은 속아도 관객은 안 속는다고 생각했다.


2번은 ‘리건’이 ‘리어왕’을 쫓아내는 장면에서 왔다.

자기가 언제 효도를 한다고 말했냐는 듯한 대사였다.


“··· 다시 한번 말하오니,

그 이상은 결코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동환이 느끼기에 차가움이 단순했다.

그 정도는 우리네 일상 속에서도 벌어질 것 같았다.

그는 감정의 개수가 다양한 연기자를 원했다.

어렸을 때 동경했던 48색들이 크레파스처럼 말이다.


3번은 비인간적인 대사였다.

‘리건’의 남편이 ‘리어왕’의 신하를 붙잡고 한 쪽 눈을 뽑았다.

그걸 보고 그녀가 심하게 조소하는 부분이었다.


“··· 한쪽 눈이 남은 눈을 보고 비웃을 거예요!

아예 다 빼어주는 것이 보기 좋지 않겠어요?!”


강수정은 너무 날카로웠다.

셰익스피어가 수놓은 언어유희를 죽여버렸다.


하지만 동환이 무엇보다 싫었던 건 따로 있었다.

그녀의 손이었다.

어절에 힘을 줄 때마다, 그 딱딱함이 고스란히 손에 전달되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사방으로 하늘을 찔러댔다.


‘아- 역시 이 여자는 안돼···.

나송화, 부탁이다···.

나 좀 살려주라.’


동환은 나송화에 대해서 잘 몰랐다.

하지만 그 팬터마임 속에는 많은 정보가 있었다.

지금 그는 수정보다 송화를 더 잘알고 있었다.


수정은 제작자 권 대표가 잘 안다는 사람이 소개해준 배우였다.

프로필 사진밖에 못 본 동환은 그녀에게 대본을 넘겨야 했다.

그는 그 상황이 정말로 답답했다.

이번 작품은 그런 식의 캐스팅이 너무 많았다.


동환이 제작지원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러 가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는 그날의 송화가 환상이 아니었기를 바랐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벌써 다 끝났나요?”


수정은 웃으면서 자신의 합격을 곱씹었다.

동환은 권 대표가 자기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모른 척 성복을 바라보았다.

성복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동환의 눈을 보았다.

그는 잘 모르는 수정이 귀찮게 느껴졌다.


* *


벽에 걸린 탈 같은 현섭의 영혼은 두근거렸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강수정이라고 했나.

매력적이긴 한데···.

저런 타입은 버릇이 찐해서 고치기 힘들지.’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고 송화가 방으로 들어왔다.


현섭은 현실로 돌아왔다.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인식했다.


송화가 여기 있는 것은 비일상적이었지만 그래도 아내였다.

그는 그 위화감에 머리가 아팠다.


‘아내가 연기를 하지 않기를 원하는 이유.

하건을 챙겨야 하니까.

미용실을 해야 하니까.

연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이번에 그녀는 미용실을 빼먹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건은 학교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평상시의 리듬을 살리면서 여기까지 온 그녀였다.


그럼에도 현섭이 마음이 불편한 것은 역시 질투인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면 한층 더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였다.


“안녕하세요, 나송화라고 합니다.”


권 대표는 거만하게 엉덩이를 빼 앉았다.

시작부터 보지도 않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 지정 대본의 대사 시작해주세요.

세 개 순서는 상관없습니다-.”


송화는 3번부터 말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준비한 ‘리건’은 이랬다.


어렸을 때는 평범한 여자였다는 설정이었다.

남편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사랑받지도 못했다.

그래서 몰상식하게 살게 된 그런 여자였다.


송화는 가장 몰상식한 세 번째 대사부터 시작할 것이었다.


지정 대본의 첫 번째 대사는 상식적이었다.

세 가지 대사를 하는 동안 평범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었다.


‘리건’의 망설임, 허세 ···.


송화는 극단적인 해석도 해봤다.

‘리건’이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겠다고 한 것은 진심일 수도 있었다.

뜻은 좋은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가장 악독한 대사는 되도록 무르게, 망설이면서···.


송화는 연출가의 신호로 연기를 시작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몰입하기 시작했다.


동환은 등골이 짜릿했다.

연기자들이 주변의 공기를 바꾸는 그 순간이었다.

좋은 연기자들은 어떤 상황에도 작품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그는 이 맛에 연출을 했다.


그 맛은 현섭도 잘 알고 있었다.


송화가 입을 열었다.


“··· 한쪽 눈이 남은 눈을 보고 비웃을 거예요···.”


거만한 자세의 권 대표마저 표정이 바뀌었다.

그런 그때였다.


똑 똑 똑 똑 똑!

덜컹!


방안의 사람들이 완전히 깜짝 놀랐다.

강한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권 대표님?!

지금 뭐하시는 거죠?!”


그는 곧장 권 대표 앞으로 갔다.

납득이 안 되는 듯한 말투였다.


“우리 수정이로 얘기 다 된 거 아니었어요?!”


현섭은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많이 놀랐다.

그리고 그 인물이 누군지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는 극단 후배 임창규였다.

여전히 잘생기고, 살짝 건방져 보였다.


송화는 집중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동환과 성복은 그녀의 그런 모습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창규는 거기에 성복이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계셨어요?”


성복은 창규에게 손을 가볍게 한번 들어 보였다.

창규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하는 경향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오디션 참가자에게도 인사를 해두는 게 좋다고 느꼈다.


“미안해요. 좀 급해서.”


그런데 창규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목소리도 다시 커졌다.


“송화 누나?!”


송화도 뒤늦게 창규를 보았다.

그는 소중한 옛날 사람이었다.

나무탈이 독하게 조정해놓은 집중력도 끊기고 말았다.


“어···? 창규 씨···.”


* *


멈춰 선 외제차 조수석에서 임창규가 내렸다.

그는 흥분해서 권기순의 사무실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나무탈은 그 모습을 확인했다.


외제차를 운전하던 여성은 차를 몰고 사라졌다.

나무탈은 그것이 불법 주차를 피하는 것인 줄은 몰랐다.


한편 현섭의 영혼이 비범하게 떠 있었다.

건물 3층 밖에서 얼굴만 벽에 처박은 채 엉덩이를 내민 자세였다.

나무탈은 그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오늘도 상공에서 현섭이 소원 빌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21.06.15 37 0 12쪽
26 제2장 (2) 아리스 광재스 21.06.14 33 0 12쪽
25 제2장 (1) 치약 꼬마 최아리 21.06.13 36 0 12쪽
24 제1장 (마지막) 하건과 즐거움이 따르는 길 21.06.10 35 1 14쪽
23 제1장 (20) 박현섭의 소원 21.06.10 36 1 14쪽
22 제1장 (19) 금이 간 탈바가지 21.06.09 45 0 14쪽
21 제1장 (18) 의외의 반격 21.06.09 35 2 11쪽
20 제1장 (17) 망쳐진 연극 21.06.08 38 1 11쪽
19 제1장 (16) 취해버린 남편 21.06.07 42 1 12쪽
18 제1장 (15) 나쁜 여자 21.06.06 40 3 11쪽
»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21.06.03 51 3 12쪽
16 제1장 (13) 몸 따로 마음 따로 21.06.02 38 3 11쪽
15 제1장 (12) 과도한 효능 21.06.01 44 3 11쪽
14 제1장 (11) 실력 이상의 것 21.05.31 49 2 13쪽
13 제1장 (10) 나송화의 소원 21.05.30 49 2 12쪽
12 제1장 (9) 아내의 결심 21.05.27 57 4 11쪽
11 제1장 (8) 소원의 불안요소 21.05.26 61 5 11쪽
10 제1장 (7) 소원 찾기 21.05.25 63 6 12쪽
9 제1장 (6) 남편의 과거 21.05.24 77 3 12쪽
8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21.05.23 91 5 11쪽
7 제1장 (4) 기괴한 호의 21.05.20 84 3 11쪽
6 제1장 (3) 수상한 전화 21.05.19 91 6 13쪽
5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21.05.18 102 5 11쪽
4 제1장 (1) 하건이네 집 21.05.17 136 5 13쪽
3 프롤로그 (3) 계속되는 소원 21.05.16 157 5 14쪽
2 프롤로그 (2) 하늘이 맺어준 연분 21.05.16 208 14 14쪽
1 프롤로그 (1) 나무탈과 한 가지 소원 21.05.16 407 2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