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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2,932
추천수 :
108
글자수 :
335,404

작성
21.05.20 09:13
조회
84
추천
3
글자
11쪽

제1장 (4) 기괴한 호의

DUMMY

아파트 주위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잔뜩 긴장한 송화가 아파트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나무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근처에 있었다.

소원 계약자인 그녀는 그의 악영향을 받지 않았다.


나무탈이 불덩이를 준비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는 공기 중의 점혈을 열어 조정을 시작했다.

눈에 보일까 말까 한 낙뢰가 발생했다가 사라졌다.


나무탈은 잡풀과 잔가지를 모아 수분을 제거했다.

그가 한 번 더 발생시킨 낙뢰로 가지에 불이 붙었다.


이번에는 바람의 점혈을 눌러 그 불을 더 크게 했다.

송화 외에 다른 사람은 불덩이를 볼 수 없게, 공기의 점혈을 조작했다.

무지개가 보이는 것과 반대되는 현상 비슷했다.


송화가 공중에 뜬 불덩이를 알아챘다.

사과 정도 되는 크기였다.

망설이던 그녀는 그 불에 과도의 칼끝을 잠시 지져 보았다.

그러고 나서 칼등에 손가락을 대어보니 제대로 뜨거웠다.


그러나 송화가 놀란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그녀는 너무 지쳐있었다.


나무탈은 자신의 손으로 툭툭 치며 그 불덩이를 공중에서 몰고 갔다.

모습만 보면 비눗방울을 손으로 살짝 튕겨내는 듯했다.


평상시 같으면 조금 더 의심했을 송화였다.

녹초가 된 그녀는 귀신에 홀린 듯 그 불덩이를 따라갔다.


나무탈의 횃불은 가로등 밑의 벤치 앞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그때 처음으로 탈을 쓴 사람을 보았다.


“노고가 많으시오.”


나무탈은 노고를 치하하는 기분을 알지 못했다.

‘어서 오시오’보다 상황에 어울릴 것 같아서 그 말을 했을 뿐이었다.


송화는 아무 반응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너무 놀랐지만, 그 이상으로 피곤했던 것이다.


가로등 불빛이 나무탈을 더욱더 수상한 모습으로 비치게 해 주었다.


송화는 천천히 다가와 과도를 내밀었다.

만에 하나 나무탈이 진짜로 위험한 존재였다면 그런 건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현섭은 그런 아내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다 자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우리 마누라 진짜 피곤한가 보다···.”


송화는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의 모습도 목소리도 알아챌 수 없었다.


탈바가지가 송화와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고 현섭이 계속 기다렸던 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현섭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분위기였다.

현섭은 탈바가지가 송화를 괴롭히면 용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뭐예요?”


송화가 가까이서 보니 내려오라고 한 자는 참으로 기괴한 분위기의 남자였다.


“사람··· 맞아요?”

“나는 사람이 아니요.”

“··· 악마?”

“악마도 아니고 사신도 아니요.

그저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요.”

“··· 뭐라고요?”


나무탈의 말은 지쳐서 뿌연 송화의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나송화라는 사람과 박현섭이라는 사람은 하늘이 지어준 연분이었소.”


송화는 남편의 이름이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서로 떨어져 홀로 남고 말았으니 하늘이 그 안타까운 시간을 보상해주려는 것이오.”


송화는 자기가 홀로 남고 말았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겼다.


“당신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소.”


현섭은 나무탈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걸 알아챘다.


“야, 탈바가지, 내 얘긴 왜 안 해!

내 소원도 들어준대매!

그럼 두 개잖아. 송화랑 상담한다니까.”


현섭의 영혼에도 점혈은 있었다. 나무탈은 그의 점혈을 하나 눌렀다.

보이지 않게 되는 점혈이었다.


“야! 이 새끼가! 이거 안풀어?!

야! 아- 나 이 탈바가지가 진짜!”


현섭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송화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나무탈에게 누군가를 무시하는 것은 호흡처럼 일상적인 일이었다.


특히 산 사람에게 할 이야기와 죽은 사람에게 할 이야기는 완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 소원··· 이요?”

“그렇소.

한가지요. 무엇이든 말해보시오”


소원 따위 이루어질 리 없었지만, 소원을 빈다면 송화는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현섭 오빠를 살려주세요.”


현섭은 그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역시 내 아내라고 생각했다.


“소원은 한 가지라 했소.

그 소원이 박현섭 씨를 살릴 수 있다면 살릴 수 있겠지요.”


나무탈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뜻은 현섭을 살릴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현섭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잘됐다고 생각했고, 송화는 그가 역시나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힘이 풀린 그녀는 과도를 떨어뜨렸다.


“··· 나··· 지금 되게 피곤해요.

그만 갈게요.”


과도를 주워 올린 송화는 아파트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나무탈이 봐도 송화는 말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원만한 대화를 위해, 이런 선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피곤을 잊게 해 주겠소.”


나무탈은 송화의 머리 뒤쪽에 있는 점혈 하나를 만졌다.

갑자기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송화의 머릿속부터 혈관을 타고 근육 구석구석까지 씻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송화는 나무탈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야 비로소 본디 느꼈어야 할 공포와 놀라움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의 기대를 담아 나무탈을 바라보았다.


시각이 사라진 현섭은 그저 불안했다.


“피곤을 잊게 해 줘?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탈바가지!

눈, 이거 안 돌려놔?!

아이씨, 내 후배면 넌 진짜 뒤졌다?!”


현섭의 목소리는 나무탈에게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송화의 피로가 풀린 모습을 소원에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현섭의 시각을 돌려주었다.


현섭에게도 송화가 과도를 겨누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까와 다르게 진짜 무슨 짓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다.

아내의 건강한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 여긴 뭐하러 온 거야?!

뭐하는 사람이야?!”

“소원···.”


그녀는 이제 말을 끊는 것도 당찼다.


“그래, 당신이 무슨 소원을 들어준다고 그러는데?!”

“사람이 본디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바꿀 수 없소.

성장판이 닫힌 사람을 키가 크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요”


말하는 가운데 나무탈은 현섭에게도 눈길을 주었다.

현섭의 소원도 마찬가지라고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한데 삼라만상 서로 얽히고설켜있는 게 또 세상살이 아니겠소.

같은 ‘능력’이라도 ‘의욕’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기회’에 따라 또 다른 열매를 맺을 것이요.”


현섭은 그 말을 대충 흘려들었다.

그러나 송화의 맑아진 머리는 그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믿지는 않았다.

소원.

송화는 가장 단순하게 말이 안 되는 걸 한번 골라봤다.


“하늘을 날게 해 줘.”


현섭은 순간적으로 아내가 날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했다.

나무탈은 무덤덤했다.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능력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소.”

“됐어요.

무슨 약을 탔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성가시게 굴지 말아요.

그 딴 거 절대 안 살 거니까.”

“나는 성가시게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소원···.”

“당신이 천사든 악마든 상관없으니까 내버려 두라고요!”


현섭은 새삼스레 송화의 목소리가 힘이 있다고 느꼈다.


나무탈은 약을 파는 사람들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예전에 연을 맺은 소원 관계자들의 기억 속이었다.

송화의 말은, 아무리 유창한 말로 엉터리 약을 사실과 다르게 소개한다 한들, 자기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거짓된 약장수도 예를 들어 보인다.

진짜인 나무탈이 예를 들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더 원활한 소원 이야기가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송화는 홱 뒤돌아 몇 걸음 나아갔다.


"악, 깜짝이야!"


어느새 나무탈이 그녀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날게 할 수는 없지만, 달리기를 가지고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소.”

"뭐, 뭘요?!"

"효능말이요."


나무탈은 송화의 심폐와 근육의 점혈을 눌렀다.

그녀의 신체능력이 웬만한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비일상적으로 조정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송화에게 손을 대는 나무탈의 모습은 현섭을 격노케 했다.


“이 새끼가! 진짜!”


현섭은 나무탈을 얼굴을 향해, 큼지막한 몸짓으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대로 그를 통과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현섭은 다음 주먹을 날리려고 바로 섰다.


그런데 송화는 어디론가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나무탈이 마지막으로 누른 점혈은, 송화가 고민 따위를 달리기로 잊고 싶은 욕망이었던 것이다.


* *


하건이 나중에 입학할 수도 있는, 중학교 운동장은 비어있었다.

송화가 상복을 입은 채 그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뒤늦게 쫓아온 현섭은 나무탈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이상한 짓을 하고 지랄이야!

당장 안 멈춰?!”

“그녀가 멈추고 싶으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소.”

“개소리하지 말고!”

“그녀에게 소원의 원리를 설명하려는 것뿐이요.”


현섭은 나무탈을 마구마구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실상은 힘을 주어 그를 공격할 때마다 허공을 치고 땅바닥을 구르게 되는 꼴이었다.

그래도 현섭은 소리를 지르며 나무탈에게 주먹을 날렸다.


송화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여름 치고 서늘한 저녁이었고, 한 두 바퀴 돌 때까지는 송화의 슬픔이 살짝 마비되기도 했다.


그러나 네 바퀴를 더 돌아도 별로 지치지를 않았다.

달리는 것이 단순 작업처럼 되어버렸다.

그러자 슬픔이 다시 차올랐다.

거기서 두어 바퀴 더 뛰니 슬슬 숨도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슬픔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벌써 수차례 땅바닥에 나가떨어졌던 현섭은 송화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송화는 달리면서 울고 있었다.


“송화야, 울지 마! 나 여깄어!”


현섭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송화를 붙잡고 싶었다.

그는 송화의 팔을 잡고 싶었지만 또다시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현섭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외쳐대도 아내는 알아주지 않았다.


송화는 자기가 아직도 이렇게 슬픈 게 신기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이 그녀를 제어하는 모든 것을 없애준 것 같았다.


그녀는 장례식의 어느 때보다 큰소리로 울었다.


송화는 그제야 달리기를 멈추었다.

주저앉듯 무릎을 꿇고 울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현섭이 다가와 그녀를 일으키려 했지만 머리끝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현섭도 눈물이 흘렀다.


사람의 능력은 제한적이었다.

그대로 두면 송화의 육체는 손상되기 직전이었다.

그녀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소원 이야기를 하기 좋게 되었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나무탈이었다.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소.

고민할 수 있는 기한은 석 달이요.”


만약에 진짜로 이루어지는 소원이 있다 해도, 송화의 머릿속에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을···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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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21.06.15 37 0 12쪽
26 제2장 (2) 아리스 광재스 21.06.14 33 0 12쪽
25 제2장 (1) 치약 꼬마 최아리 21.06.13 36 0 12쪽
24 제1장 (마지막) 하건과 즐거움이 따르는 길 21.06.10 35 1 14쪽
23 제1장 (20) 박현섭의 소원 21.06.10 36 1 14쪽
22 제1장 (19) 금이 간 탈바가지 21.06.09 45 0 14쪽
21 제1장 (18) 의외의 반격 21.06.09 35 2 11쪽
20 제1장 (17) 망쳐진 연극 21.06.08 38 1 11쪽
19 제1장 (16) 취해버린 남편 21.06.07 42 1 12쪽
18 제1장 (15) 나쁜 여자 21.06.06 40 3 11쪽
17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21.06.03 51 3 12쪽
16 제1장 (13) 몸 따로 마음 따로 21.06.02 38 3 11쪽
15 제1장 (12) 과도한 효능 21.06.01 44 3 11쪽
14 제1장 (11) 실력 이상의 것 21.05.31 49 2 13쪽
13 제1장 (10) 나송화의 소원 21.05.30 49 2 12쪽
12 제1장 (9) 아내의 결심 21.05.27 57 4 11쪽
11 제1장 (8) 소원의 불안요소 21.05.26 61 5 11쪽
10 제1장 (7) 소원 찾기 21.05.25 63 6 12쪽
9 제1장 (6) 남편의 과거 21.05.24 77 3 12쪽
8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21.05.23 91 5 11쪽
» 제1장 (4) 기괴한 호의 21.05.20 85 3 11쪽
6 제1장 (3) 수상한 전화 21.05.19 91 6 13쪽
5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21.05.18 102 5 11쪽
4 제1장 (1) 하건이네 집 21.05.17 136 5 13쪽
3 프롤로그 (3) 계속되는 소원 21.05.16 157 5 14쪽
2 프롤로그 (2) 하늘이 맺어준 연분 21.05.16 208 14 14쪽
1 프롤로그 (1) 나무탈과 한 가지 소원 21.05.16 407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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