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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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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9
추천수 :
108
글자수 :
335,404

작성
21.05.1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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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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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DUMMY

조연정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영혼은 홀로 남은 남편 김상철을 위해 소원을 빌었다.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나무탈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존재였다.

그는 상철이 모르게 그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상철이 지닌 능력을 빠르게 파악하였고, 그의 감성과 용기를 갈고닦았다,

그 시점에 상철은 아내가 다녔던 문화센터, 클레이 아트 교실에 등록했다.


감성이 예민해졌다 해도 진행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예를 들어 상철은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지만, 아내가 없는 집에서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클레이 아트의 세계 속이라면 무엇이든 창조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료가 되어주는 점토가 자기처럼 무뚝뚝한 느낌이 드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센터에 다닌 지 두 달, 상철은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완성품을 만들었다.

갈색 토끼였다.

추억의 토끼 복슬이를 구현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은 퀄리티였다.

다만 그때 그는 클레이 아트에 완전히 꽂히고 말았다.


감성이 날카로워지고 샘솟는 용기가 멈추지 않았던 상철은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다.


나무탈은 정기적으로 상철의 점혈을 확인하며 그의 현 상태를 파악했다.

그의 계획이 보였다.

나무탈은 상철의 능력을 토대로 그의 앞날을 그려보았다.


상철은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먹고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또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건 연정의 소원이 아니었다.


상철에게는 자금과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무탈은 상철이 바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도록, 계획을 설계하는 지혜의 점혈과, 참을성의 점혈을 눌렀다.


상철은 욱해서 썼던 사표를 찢어버렸다.


연정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무탈의 지속적인 조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상철은 머지않은 훗날 찻집을 개업할 꿈을 꾸었다.

물론 클레이 아트가 메인 컨셉인 찻집이었다.


시간이 지났다.

상철이 만든 갈색 토끼 복슬이가 입상했다.

클레이 아트 전시회의 일반인 부문이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상철은 처음으로 한 발 내디딘 기분이 들었다.

문화센터의 강사님과 수강생들도 다 같이 기뻐해 주었다.


오랜만에 빛의 조각이 나타나 나무탈에게 스며든 건 그 무렵이었다.

나무탈은 이번에도 역시 언제까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떤 병원으로 향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소원을 둘러싼 관계가 맺어지려 했다.

연정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나 있었다.


나무탈에게 시간의 감각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시간이, 실제로 의미가 없는 것인지는 나무탈 자신도 몰랐다.


* *


나무탈이 걷고 있는 곳은 장례식장의 천장이었다.

그는 중력이 상관없었다. 그래서인지 거꾸로 서서 가는데도 침착해 보였다.


몇 개로 나뉜 빈소는 거의 다 차있었고 조문객으로 붐비는 시간대였다.


나무탈과 거리가 좁혀진 사람들은 기침을 하고 몸이 무거워졌다.

그의 몸에서 바스러져 나오는 잿가루가 사람들의 호흡기나 귓구멍 등으로 빨려 들어갔다.


때문에 나무탈은 천장을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밀도가 적은 통로를 찾다가 그렇게 되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멈춰 서지 않았다.

나무탈은 자기 때문에 사람들의 몸이 나빠지는 걸 의도하지 않았다.


이런 나무탈이 지나간다 한들 산 사람들은 그를 볼 수 없었지만 고인의 영혼들은 달랐다.


우연히 가까이 있던 두 명의 영혼이 그를 보았다.

그들의 영혼은 말을 걸며 달려들었지만 나무탈은 사라져 버렸다.

소원 관계자가 아니면 나무탈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상대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영혼은 포기한 듯 천정을 뚫고 사라졌다.

한 영혼은 무언가 집착하며 다시 복도를 해메기 시작했다.


나무탈은 박현섭이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한적한 곳으로 오는 걸 기다리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안내데스크 앞에 현섭의 영혼이 나타났다.

그의 몸에 붉은 가시 넝쿨 몇 줄기가 힘없이 얽혀있었다.


“알았어요! 나 죽은 거 알았다고요!

근데 그다음부터 어떻게 해야 되는데?!

밖에 나가 보니 아주 버스도 타겠던데?!”


현섭은 목이 터져라 따지고 있었다.

영혼의 목소리는 생전의 성량, 음색과 동일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전혀 들리지 않을 뿐이었다.

안내데스크 직원은 현섭이 있는 걸 모른 채 하품을 했다.


“아니, 이럴 거면 가족하고 말 좀 하게 해 달라고요!

이 보세요?! 뭐라고 좀 해봐요!

아 진짜! 쫌!”

“통행증이 사라지기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면 되오.”

“우와악!”


뒤에서 나직이 들리는 나무탈의 목소리에 현섭이 소스라치며 놀랐다.

그리고 나무탈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또 놀라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박현섭 씨, 당신의 경우는 그전에 해야 할 것이 있소.”

“하하···.”


현섭이 허탈하게 웃었다.

순간적으로 그 기분을 이해하지 못한 나무탈은 말을 못 잇고 말았다.


“진짜로···.

내가 죽긴 죽었구나.”


현섭은 처음에 나무탈의 기괴함이 무서웠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냐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것이다.


“날 데리러 온 거죠?”

“난 사신 같은 게 아니오.”


현섭은 마지막으로 중요한 게 뭔지를 생각했다.

답은 너무나 분명했다.


“알았어요.

사신이든 악마든 상관없는데 하나만 부탁할게요.

마지막으로 가족들하고 얘기 좀 하고 싶거든요?

되도록 오래 얘기하면 좋은데···.

잠깐만이라도. 네?”

“박현섭 씨. 그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갑자기 웬 소원?”

“박현섭 씨와 나송화 씨,

당신네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연분이오.

그런데 홀로 남고 말았으니, 그 안타까운 시간을 하늘이 보상해주는 것이요.”


잠시 침묵한 현섭은 영혼인데도 눈가가 살짝 촉촉해졌다.

그의 말 중 ‘부부’, ‘연분’ 같은 단어에 아내와 하건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나무탈이 말한 내용이 현섭의 머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당신과 당신의 아내는 특별한 부부였소.

하늘이 지어준 연분 속에서 만날 정도니 말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서로 떨어져야 하니, 하늘이 두 사람 각자에게 하나씩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요.”

“소원··· 훗. ”


코웃음은 쳤지만, 현섭은 그래도 이야기가 들어보고 싶었다.


“송화는 뭐라는데?”

“아직 그녀의 소원 이야기는 듣지 못했소.”

“그럼 같이 얘기해.”

“산 사람하고 말할 때는 나도 산 사람처럼, 죽은 사람하고 말할 때는 나도 죽은 사람처럼 된다오.”


현섭은 그의 말들이 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 소릴 하는 거야.

따라와. 저쪽이야.”

“내가 마음대로 당신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당신들이 나를 마음대로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요.”

“아 우리, 소원 들어준대매?!

송화랑 상의해본다니까?”

“아내에게 진짜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잘 정리를 하여 소원으로 그렇게 말하면 되오.”

“이 자식이 대화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현섭은 이런 꽉 막힌 사람은 잡아끌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무탈의 팔을 잡아끌었다.

끌 생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무탈의 팔은 어떠한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허공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의 아내와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게 좋을 거요.”

“이 새끼가!”


갑자기 죽게 된 현섭은 쌓인 게 많았다.

그래서 일단 저 꽉 막힌 놈의 멱살은 잡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나무탈은 만져지지 않았다.

오히려 몸의 밸런스가 무너진 현섭이 넘어질뻔했다.

그는 이 와중에 넘어질 뻔했다는 게 신기해서 쓴웃음을 지었다.


나무탈은 일단 자리를 떠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안내데스크 직원의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 있었다.

나무탈의 잿가루가 머리로 간 듯, 굉장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소원이 생기면 날 부르시오.”

“저게! 송화랑 얘기 안 하냐고?!”


나무탈이 사라졌다.


현섭은 그와 비슷한 존재가 또 있나 장례식장을 돌아보고, 병실과 주차장까지 돌아보았다.

탈을 쓴다든지 기괴한 자는 그뿐이었다.

얼굴이 험상궂은 사람에게 혹시 사신이냐고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개무시하네···.

이게 연기라면 진짜 끝내준다···.’


그는 그만큼 자신이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게 절실하게 다가왔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결국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소리를 지르고, 마구 뛰어다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때 현섭은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이날 거행되는 장례식중에 자기 자신과 같은 입장의 사람을 못 본 것 같았다.

고인이 된 사람들 말이다.

그 이후 그는 조금 신경 쓰며 돌아다녀 보았다.

영정사진 속 고인으로 보이는 인물은 안 나타났다.


‘뭐야. 난 유령인 거야?’


현섭과 같은 상황의 사람들끼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거나 서로를 쳐다보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그것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유령끼리 모여 같이 놀고 그럴 수 있다면, 온 동네가 유령으로 북적거릴 거 같았다.


그때 현섭은 하나 알아챈 것이 있었다.

가족도 가족이지만 그는 나무탈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현섭이 영혼의 모습이 된 후 유일하게 말 상대가 되어준 존재였다.


* *


현섭의 영정사진은 증명사진이었다.

회사가 부도난 후 이력서를 다시 쓰기 위해 찍은 게 남아있었다.

송화는 빈소 벽에 기대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건은 유가족 방에서 외할머니 최미옥의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현섭은 가까운 곳에서 그 모습을 주욱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도 아들도 울다 지쳐있었다.

그리고 그들 이상으로 그도 눈물을 흘렸다.


“야 사신··· 소원이고 뭐고···.

그냥 날 살려주면 안 되겠냐···.”


현섭은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나무탈은 나타나지 않았다.


소원 관계자에는 계약자와 대상자가 있었다.

소원을 하나 이루는 권한을 가진 자가 계약자, 소원을 이루는 내용에 관여되는 사람이 대상자였다.

물론 계약자가 자기를 위해 소원을 빌면 본인이 당사자가 되었다.

소원 계약자 현섭이 나무탈을 찾으면 서로의 거리에 관계없이 나무탈의 머리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현섭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어 소원에 관해 그를 찾았다면 나무탈은 바로 접촉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소원에 관한 많은 능력 중에,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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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2장 (3) 영혼의 미라와 어긋난 운명 21.06.15 38 0 12쪽
26 제2장 (2) 아리스 광재스 21.06.14 33 0 12쪽
25 제2장 (1) 치약 꼬마 최아리 21.06.13 36 0 12쪽
24 제1장 (마지막) 하건과 즐거움이 따르는 길 21.06.10 36 1 14쪽
23 제1장 (20) 박현섭의 소원 21.06.10 36 1 14쪽
22 제1장 (19) 금이 간 탈바가지 21.06.09 45 0 14쪽
21 제1장 (18) 의외의 반격 21.06.09 36 2 11쪽
20 제1장 (17) 망쳐진 연극 21.06.08 39 1 11쪽
19 제1장 (16) 취해버린 남편 21.06.07 42 1 12쪽
18 제1장 (15) 나쁜 여자 21.06.06 41 3 11쪽
17 제1장 (14) 몰래 보는 오디션 21.06.03 51 3 12쪽
16 제1장 (13) 몸 따로 마음 따로 21.06.02 38 3 11쪽
15 제1장 (12) 과도한 효능 21.06.01 44 3 11쪽
14 제1장 (11) 실력 이상의 것 21.05.31 49 2 13쪽
13 제1장 (10) 나송화의 소원 21.05.30 49 2 12쪽
12 제1장 (9) 아내의 결심 21.05.27 57 4 11쪽
11 제1장 (8) 소원의 불안요소 21.05.26 62 5 11쪽
10 제1장 (7) 소원 찾기 21.05.25 63 6 12쪽
9 제1장 (6) 남편의 과거 21.05.24 78 3 12쪽
8 제1장 (5) 꽉 막힌 나쁜 시키 나무탈 21.05.23 92 5 11쪽
7 제1장 (4) 기괴한 호의 21.05.20 85 3 11쪽
6 제1장 (3) 수상한 전화 21.05.19 91 6 13쪽
» 제1장 (2) 또 다른 장례식 21.05.18 102 5 11쪽
4 제1장 (1) 하건이네 집 21.05.17 136 5 13쪽
3 프롤로그 (3) 계속되는 소원 21.05.16 158 5 14쪽
2 프롤로그 (2) 하늘이 맺어준 연분 21.05.16 208 14 14쪽
1 프롤로그 (1) 나무탈과 한 가지 소원 21.05.16 409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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