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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 Of Blackflag

외톨이 순애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L.O.B
작품등록일 :
2014.01.09 22:27
최근연재일 :
2015.11.13 04:13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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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90
추천수 :
726
글자수 :
22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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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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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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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042 - Dead Man Rendezvous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단체, 지명, 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DUMMY

시체 두구가 나뒹구는 폐허의 잔해더미 속이라고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지금 교령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말해도 무리 없음직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식겁하고는 벌떡일어나 교령에게 다가선다.


「대관절, 영문을 모르니 미칠 노릇이구만.」


꿈을 꿨던 것 같다. 내용은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 눈부신 느낌의 무언가였다. 손에 절그럭 거리며 따뜻한 금속의 질감이 잡히는 걸 내려다본다. 쓰러지기 전에 꼭 쥐었던 은제 스패너에 체온이 옮겨간 듯 했다.


「여봐요- 교령누님, 이 난장판은 어떻게 된거요. 설마, 자.자고있는거요.」


코앞에 무시무시한 여성이 쓰러져있다는 것에서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 승부의 향방은커녕 세계가 무사하기나 한 건지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위아래 전체를 훑어본 사방천지는 과연 무사한 구석이라곤 한군데도 남아있지 않았다. 잠든 것인지 쓰러진 것인지 모를 미묘한 여성의 누운 모습에 적잖이 고민이 된다. 그도 그럴것이 수일전 자고있던 그녀에게 손을 대었다 봉변을 당한 기억이 남은 탓이다. 돌이키고 싶지않은 사고이다. 퍼석거리는 소리가 얼른 판단을 내리고 떠나라며 채근한다. 군데군데 기둥이 사라진 가운데 온데 간데 금이가고있는 구조물은 수명을 다했음을 알리고 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런 곳에서 깔려죽는 건 폼새가 나지 않는다.


「넨장- 잘 테면 부디 깨지 말고 푹 자고 있으셔. 이건 진짜 비상사태이니까 말이외다. 불쑥 일어나 때리기 없기요.」


조심스럽게 교령의 어깻죽지를 들어 왼쪽 어깨에 짊어 메듯이 걸친다. 이번엔 귀싸대기가 날라들지 않는다. 한심하게도 안심이 되면서 몸의 상처가 칼로 찍어 도리는 것처럼 쓰라리다. 덕분에 정신이 쨍하니 맑다. 옷감위로 닿는 살결의 보드라움 같은 것에 필요이상으로 의식되지 않음에 도움이 된다. 붕괴되기 시작하는 폐허화된 집터밖으로 벗어나 두사람이 편히 쉴만한 곳을 살핀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주변 일대는 참담하다. 세 채이상의 집이 초토화되어 있는 폭탄이 터진 모양새이다. 질질 발을 끌어가면서 일대를 벗어나 멀쩡한 구역으로 가기까지가 벅찼다. 결국에 임시 피신처로 몸을 들여놓았을 때엔 모든 기력을 쇠진하여 제대로 쉴 자리를 찾기도 전에 바닥에 퍼지고야 말았다. 이후 정신이 든 건 그로부터 몇시간 뒤였다.


「조양팔이- 골통 놈아 죽을래? 이게 어디서 은근슬쩍 수작질이야.」

「이. 이건 오해요. 내가 다 설명할 수 있다니깐.」



깨어난 직후 거친 말을 해대는 교령을 향해 처음 꺼낸 말은 억울함이 가득한 말투였다. 변명할 틀도 없이 교령은 열성적으로 밀어붙인다. 사단이 난 것은 우연한 신체접촉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피신처로 들어와 그대로 엎어졌을 적에 교령과 몸이 포개어지면서 달라붙듯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 또한 남녀 간의 인연의 증표라면 증표로 여기면서 좋아할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남녀간에게서나 가능한 이야기였고 교령과의 과한 스킨쉽은 살가죽이 벗겨지는 극형에 처할수도 있는 정신나간 짓이였다. 원치않은 동침을 겪은 동정녀마냥 경멸스럽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교령의 눈빛으로 보아 충분히 실현가능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이 파렴치한 놈, 각오는 해두고 있겠지이-」

「자. 잠깐!」


심각한 오해를 푸는 법은 엉망으로 묶인 끈을 푸는 법과 동일하다. 즉, 끈을 잘라버려라. 다른 쪽으로 논지를 돌려서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 당장 한대 쥐어 맞는 고통과 곤욕을 피하게 할지어니- 때마침 자신의 피와 멍투성이의 신체상태는 써먹기에 알맞다.


「누님 눈엔 내가 정상으로 보입니까? 만신창이라고요.」

「어쭈구리.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아주 가관이다. 잔꾀부리지 마.」

「아야야야- 사람 죽겠수다.」


비겁한 회피술로 보인다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성의 있게 오해를 풀어보려해도 말재주가 없는 고로 해 줄 말이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외려 이 편이 더 낫다. 그대로 뻔뻔한 연기를 해댄다. 골병을 앓는 환자연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해댄다, 바지춤 위로 올라타서 그대로 주먹을 내리꽂을 것만 같던 마운트 자세에서 교령은 경멸을 담은 눈초리를 보내며 일어선다,


「흥- 이따 물어볼 것도 있으니 처분은 조금 뒤에 미뤄두기로 하지. 뭐-」


실상 아는 것은 교령 쪽이 훨씬 많았다. 도리어 교령에게 물어보고 싶은 쪽이란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승부의 향방도 신경 쓰이고 말이다.


「기껏 이것저것 지도해줬건만 그 꼬락서니는 뭐니. 정말 복장이 터진다. 에휴-」

「에고고고- 그러게요. 누군가가 가르침이 조금 모자랐나 봅디다.」

「워낙에 인간이 불량이라 그만큼 알아듣게 만드는 것도 힘들었답니다. 됐니?」


시답잖은 일로 신경전을 한창 벌이고 있을적이였다. 부상자의 완치가 끝나지 않은 그럴 때 지옥의 마을에 방문자가 뚜벅뚜벅 걸음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휴식처에 정중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불현 듯 울리는 노크소리에 대문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이미 집안에 발을 들인 뒤였다.


「너. 너어어-」

「얼씨구. 이거 잘나신 분이 납셨군.」


교령과의 다툼에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친 뒤로 반나절이 조금 지났을 시각에 그는 찾아온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지 못해 안달 난 2류 명사마냥 매우 사교적이며 배려가 없다.


「관리인 나리께서 어인 일로 행차이신가?」


분명 안이 나타나기 전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던 그 푸근했던 분위기가 돌변해있다. 누구하나 찢어 죽일 것 같은 살기등등한 전장의 분위기로 방문객을 반긴다. 비꼬아 말하는 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는 안 녀석의 태도가 건방지기 짝이 없다. 본격적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순간이다.


「첫 과제를 훌륭히 해낸 걸 축하드립니다.」


가교령은 말로 비꼬지 않는다. 여유를 찾아볼 수 없는 표정에서 이는 확실히 드러났다. 말없이 사뿐 사뿐히 안에게로 걸어가 두 손에 단단히 고정시켜 든 우산을 쭉 일직선으로 내밀며 그를 향해 곧장 찔러 들어간 것이다. 안의 눈앞까지 하늘거리면서도 절도있는 춤사위의 한 동작같은 기품있는 동작 안에는 매서운 힘이 공존했다. 그것은 지면에 굳게 박힌 그녀의 발자국에서 한껏 힘이 들어가 부르르 떨리는 팔에서 증명된다.


「죽기 싫다는 녀석이 왜 얼쩡거리는 거지. 혼나고 싶은 기분이 자꾸 드나봐?」

「싸울 생각 없습니다. 그저 말하러 온 거라구요.」


가교령은 매몰찬 눈빛으로 안을 노려봤다. 살얼음판이 따로 없다. 양극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전에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함부로 끼어 들 수 없는 법일지니 그저 팔짱낀 채로 두사람의 다툼을 방관하듯이 지켜본다.


「그래, 넌 절대 싸울 생각이 없겠지. 이쪽은 다르다는 걸 좀 알아뒀으면 좋겠는데 말야.」

「거- 나도 나지만 댁은 더 하네. 분위기를 좀 읽으쇼.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하- 그것 참 이상하네요. 이쪽은 성심껏 도와드리는 건데 말입니다.」


안의 딴청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령은 무표정으로 응수하면서 우산을 슬쩍 뒤로 뺐다가 다시 한 번 안에게로 찌르기를 되풀이 했다. 묘하게도 안은 전혀 피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공격에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교령이 봐주고 있는 것은 아닌 듯 한데 어떻게 된 것인지 알 턱이 없는 지금 서커스를 보는 심경이였다. 통안에 광대를 넣고 칼로 마구 찔러대는 마술 같은 것 말이다.


「소용없는 걸 아시면서 왜 힘을 빼고 그러세요. 교령씨.」

「시끄러. 분풀이 상대도 해주지 않을 거면 눈앞에서 얼른 사라지란 말이야. 이 엉터리안내인.」

「누님, 뭐해요. 체- 빗나갔수다. 봐줄 것 없잖수까.」


언제고 계속되는 대치상황에 답답한 나머지 직접적으로 응원에 나서고 만다. 교령을 편드는 것은 당연했다. 직접은 아니더라도 꼴 보기 싫은 녀석에게 한방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봐준다고? 크흐흐. 내가 언젠가 네게 말한 적 있을거야. 지옥이란 기관이 실재하는 증거.」

「그랬었던가? 그게 왜요.」

「생각 안 난다해도 좋아. 지금 눈으로 명백하게 확인하고 있으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별 생각 없이 두사람의 불화를 지켜보던 주제에 알 턱이 없다. 그 모습에 무엇이 기쁜지 안이 생글거리며 대신 말을 늘어놓는다.


「안의 죽음의 3조건이라는 게 있어서요. 지옥의 증거라고 한다면 증거가 되겠네요.」

「저 놈, 말 그대로야. 밉살스럽게도 지옥의 전권이라는 특정조건에 의해 죽지 않는 불멸성말이지.」


불멸성이라고 했겠다― 죽지 않는 불사신이라는 소리이다.


「당신께는 설명 드린 적이 없군요.」

「아니. 난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


안은 다른 사람의 요청이나 주장을 무시하는 경향이 몹시 돋보이는 매력을 뽐내며 제 입으로 꺼낸 말을 이어간다.


「그 첫째, 안의 죽음은 그가 싸울 의사가 있는 중에만 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싸울 의사가 없는 한 지옥 자체가 영구히 죽음으로 부터 지켜준다. 이 법칙 덕분에 안은 불멸에 가까운 존재가 됩니다. 월등히 강한 상대와 맞붙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듣기만 해도 메스꺼운 불멸성이다. 이딴 놈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들리기에는 마치 자신보다 강한 상대가 없다는 투가 아닌가― 곱상한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오만함이 가득하다.


「그리고 죽음의 조건 두 번째, 안의 죽음은 죽음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시할 때만 가능하다. 교령씨처럼 막무가내로 무기를 휘두른다고 맞지 않아요.」


안은 허공중에서 거대한 지옥의 힘과 힘겨루기 하고 있는 교령의 우산을 검지로 가리키며 좌우로 까닥거렸다. 장난이 과하다. 사회성이 의심될 정도다.


「그래. 재밌네. 재밌어. 안, 만약 내가 제물을 제시하면 상대해 줄 테냐? 내 오른팔이면 어때? 할만하지 않아?」


교령은 진심으로 가증스럽게 여기는 안에게 소매를 걷어 미끈한 오른 팔을 내 보이며 묻는다. 그는 그야말로 영악한 웃음으로 받아넘기고는 손사래 쳤다.


「아아. 마지막 조건을 애기하시는 거군요. 안은 죽음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시하는 상대와의 결투를 거부할 수 없다. 당신의 오른팔뚝이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정말로 그러고 싶으시다면 . 마음대로 하셔도 괜찮아요. 절 죽이고 이 지옥을 죄다 무너뜨려도 상관 않겠습니다. 단, 그럴 경우 제가 약조했던 일도 자연히 없던 일로 되겠죠.」


「아까부터 입만 살아가지고 쫑알쫑알 말도 참 많아.」


사람의 약점을 잡고 흔드는 것은 소악당이나 할 짓일진대 안 녀석은 질 안 좋은 녀석들이 할만한 짓거리도 서슴지 않는다. 우산을 거두고 잠자코 살기를 내뿜고 있는 교령을 대신해 불쾌감을 토로했다.


「싸울 생각도 없다. 죽을 생각도 없다는 양반이 여기엔 웬일로 온거요? 잘도 나불대시네.」

「관리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재수 없게 여기 저기 들쑤셔 대서 사람 꼴 받게 하고 장난하는 건가? 됐으니까 용건이나 전하고 썩 꺼지쇼.」


안의 얼굴위로 옅은 미소가 덧씌워져서 더욱 얄밉다.


「아아- 그럼, 지옥재난대전의 통제관으로서 전언입니다.」

「지옥 재난 대전 통제관?」


가교령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미묘하게 일어난 변화에도 여기 모인 세 명 전원이 동요를 깨닫고 가늘게 서로의 눈치를 엿봤다. 기선을 잡은 듯 한 안은 여유를 두며 천천히 말을 잇고 교령은 말을 잃은 채 시큰둥하게 듣는다.


「지옥 재난 대전은 총 여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서너 단계는 이미 끝났고요. 앞으로 남은 두번의 싸움은 제 주관 하에 이루어 질 겁니다.」

「이 짓거리를 두번이나 더해라고 농짓거리는 거요?」

「처음 듣는 애기가 나왔군.」



애써 침착성을 되찾은 교령은 은근한 분노를 담아 안을 쏘아 봤지만 그는 시선을 회피한 채 애기를 이어간다. 중간에 끼어든 말은 두사람사이에 없는 말처럼 그냥 넘어간다.


「그야, 이 애기는 이번 단계에서 밝혀야 할 것이었으니까요. 전통을 지키되 내 멋대로 추진할 것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불만 있으신 분.」

「누님. 어째 팔다리 같은 거 말고 귀금속 없소? 이 놈 때려죽이고 대가로 지불할 만한 거 말이외다.」

「그냥 둬. 반쯤은 놀려먹을 작정으로 벌이는 간 큰 농담같은 거니까.」

「얼레- 이거 진지하게 들어두셔야 손해 없는 계약 이야기입니다.」


안의 안하무인에 너 나 할 것 없이 입을 꾹 다물게 된다. 서로간의 이해가 없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덕분에 장내는 안의 목소리만이 두둥실 떠올라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닌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는 주문같이 허공중을 떠도는 말에 그만 귀지를 파내어 더럽히고 말았다. 귀 분비물만큼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가교령씨와 조양팔씨, 두 분 다 아마도 절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여러분의 생각이야 어찌됐든 간에 앞으로의 진행은 온전히 제 소관입니다. 그 진행 내용에 대해 부디 불만을 갖지 않고 절 감안해서 행동하시길 바라는 바 입니다.」


아다마다요- 그 부분은 동의합니다― 특히 이쪽과 저쪽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그 부분, 딱 그 부분까지 내심 동의를 표했다.


「워- 뭐라고? 이 씨바 레고머리가 뭐라는 겨? 그러니까 네멋대로 설칠테니 우리더러 참으라고?」


안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뜯어버릴 만큼 발끈한 것을 교령이 앞으로 나서며 제지한다. 실제로 흥분해서 달려든다고 해도 눈 앞의 녀석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 게 슬프다.


「너 언제고 누님께 꽤나 혼쭐 날 일이 있을 거다. 그때엔 꼭 내 주먹맛을 제대로 보여주마.」

「기회가 되면 꼭 부탁드리죠.」

「그래. 잘 나셨군. 네 허세에 망설일 것도 없어. 혹시라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안이여, 난 아무렇지도 않아..」

「오호라- 듣기에 좋은 말씀입니다. 교령씨. 아니, 제일 듣고 싶었던 말 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찬사 아닌 찬사가 안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무리 그래봤자 여태 화를 돋우는 짓만 해놓고 뒷수습이 전혀 없었던 그의 태도가 상기되어 강조될 뿐이다. 도발이 목적이였다면 훌륭히 역할을 해낸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저도 털어놓을 말이 있습니다.」

「무슨 헛소리야?」

「가만있어. 조양팔. 저 녀석 본심을 들어봐야겠다.」

「현명합니다. 여러분께서 알다시피 나는 통제관입니다. 그러므로 소임을 밝힌 이상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편 들어준다거나 할 수 없어요. 기본적으로 중립이 언제까지고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객관적일 수밖에 없지요.」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닐 텐데. 네멋대로이면서 공정하겠다. 이건 중립이 아니지 않아?」


교령은 날카롭게 안을 추궁해갔지만 안은 무력하게 헛웃음 지으며 즉답을 피했다.


「해석은 듣는 사람에게 맡기지요. 관리인에다가 통제관까지 맡고 있는 처지에 말조심 해야 돼서요.」

「네 말 인즉, 네 행태에 대해 섭섭해 하지 말고 널 믿고 따라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 아냐?」


안은 연신 어물쩍 말을 돌리며 꿋꿋하게 대답을 피했다.


「아차차. 본론 애기가 또 있었군요. 이번 단계에 관한 애기지요. 쉽게 말해 임무 지시입니다.」

「벌써? 싸움이 끝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시작이야? 빠른 게 지나치잖아.」

「체- 임무를 들먹이다니 약은 놈.」


안은 실실거리며 교령의 질책성 발언을 뭉그러뜨렸다.


「연달아 뭔가를 한다는 건 힘든 일이지요.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당장은 시작하지 않을 겁니다. 며칠 말미를 드리죠. 이틀 후 아침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시면 됩니다.」

「그- 래? 어째 수상하군. 설명이라면 그때 가서 슝- 하니 나타나 애기하면 그만 일 것을.」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기며 교령의 지적에 감탄을 보낸다. 이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어째서 직접 친절하게 휴식기간을 지정해주며 떠벌떠벌 말을 늘어놓는 것인가-


「배려가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

「마음에 딱히 들것도 없는 이야기인걸.」

「그러게.」

「그럼, 경청해주시겠습니까?」


동의를 구하는 듯 했지만 이쪽의 입장으로선 들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어느 샌가 완전우위를 차지한 녀석이 못마땅해도 느긋한 어조와 여유만만한 미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임무내용을 숙지한다. .


「이번에 여러분께서 풀어내야 할 일은 바로 '사냥' 입니다.」


사냥이라고 말했다. 무엇을 이라는 가정을 세운다면 이렇게 척박하고 생명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몇 가지 유추밖에 나오지 않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을 번쩍 들어 묻는다. 절대로 그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묻는 것이다.


「에이 설마아- 사괴가지고 애기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너무 어색하잖아.」


교령은 입 밖으로 내 뱉을 말에 날을 바싹 세워 안에게 갖다 대며 지적한다.


「양팔이 말이 맞아. 그 놈들 해치우는 거라면 '사냥' 이란 말이 부적당 하단 말이지.」


몰아세움에도 안은 생각했던 바 였는지 전혀 피해 입지 않은 모습으로 태연히 지적에 맞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맞는 말입죠. 사괴따위야 '사냥' 같은 표현보다는 격퇴 혹은 박멸 같은 게 훨씬 잘 어울립니다.」

「그럼, 박멸로 정정해. 지금 당장!」

「워- 성급하시기는 물론 사괴를 해치운다고 해서 당장에 돌아올 이득은 없지요. 모피나 고기 같은 부산물 보수가 일절 없는 최악죄악의 녀석들입니다.」

「그런데 구태여 '사냥' 이란 용어를 쓴 것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너-」


고개를 얌전히 끄덕인다. 순순한 태도가 미심쩍다.


「약간의 특이점 때문에 그 말이 미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보면..」

「사괴?!」

「뭐하는 짓이야! 어째서 안개도 없는데 이런 것들이 돌아다니는 거야!」


안은 당장이라도 사괴들을 뭉개버릴 기세로 경계 하고 있는 둘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워, 워. 진정하시라니까요. 이것들은 예시로 보여주려고 데려온 것들입니다. 이른바 견본이란 거라고요. 생채기라도 나면 곤란합니다.」

「견본이라 굽쇼?」


얌전히 안의 뒤를 따르는 사괴들을 보니 기분이 또 묘하다. 안달복달한 마음으로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야 될 것 같은데 생리적인 혐오감을 참고 있으려니 그런 것이다. 안은 짐짓 만류하는 체하며 한손에 쥔 결계석을 슬쩍 바닥에 떨어뜨린다. 한 번도 아니고 몇차례나 연이어 눈앞의 상대를 기만하는 그 태도가 참기 어렵다.


「네 애완동물을 구경할 생각일랑 없어.」


버럭 울분을 터뜨린 동시에 그가 데려온 사괴들이 생각을 바꾸게 했다. 안이 떨어뜨린 결계석은 사괴들의 게걸스런 탐닉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굳이 신체 한 부위를 특정 지을것 없이 사괴들은 탐욕에 가득 찬 눈으로 결계석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달려들어 온몸을 사용해 먹어치워버렸다. 화를 벌컥 낸 것과 반대로 빤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보여준다는 게 이거라면야. 과연 납득할 만 해.」


교령은 비로소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어 눈빛을 번뜩였다. 사괴들이 자신들을 보조재로 삼아 설명 해준 건 결계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였다. 그들은 변했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듯이 뱀이 허물 벗듯이 기괴한 형태로 변태하기 시작했다. 두 눈에 담기 끔찍한 광경이 교령이 흥미에 가득 차 어쩔 줄 모르겠다는 열기어린 눈길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분명 그녀의 눈으로는 개구리의 변태과정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을 것이였다. 사괴들에게 뚫어져라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 안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교령은 변태과정이 끝난 걸 확인한 후 안에게 한 가지 부탁을 꺼냈다.


「잠깐, 잠깐만 이 녀석들과 놀아 볼 수 있을까? 상처 없이 끝낼테니까. 한번만 놀게 해줘라.」


안은 곤란할거 없다는 식의 여유를 부리며 흔쾌히 승낙했다. 교령이 사괴 중 한 마리의 머리통으로 손을 찔러넣은 다음에 살짝 어두워졌지만 말이다. 상식 밖의 힘이 그녀의 그 유들유들한 몸에서 발휘되어 사괴는 손이 들어가는 순간 전신이 조각단위의 고깃덩이로 변해버렸다. 흉악한 일이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손을 살짝 털고는 사체 속에서 결계석을 골라내어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고서는 호기를 부렸다.


「이제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죽이지 않는 한도 내에서라면 얼마든지요.」

「에이 시시하게시리. 간만에 놀아보나 했더니 뭐야- 한 마리 가지곤 뭘 하란 거야?」

「그래- 그래- 누님은 탐색하고 자시고 할 생각도 없는데 너무하네― 지옥재난대전 통제관 나리.」


괜스레 제 발 저린 도둑마냥 편들어 말하며 안을 힐난한다. 능구렁이를 수십 마리쯤 집어삼킨 너구리같은 녀석에게 전혀 먹힐 일 없는 말이였다.


「하하- 사람을 달달 볶으시는 게 사나운 기운이 전염이라도 되나 보군요. 좀 봐주세요.」


더 많은 사괴를 불러내는 대신 안은 항복 선언이라도 하는 양 손바닥이 보이게끔 두손을 펼쳐 들어 올렸다.


「두 분 다 똑같이 절 못 잡아 드셔서 안달이니. 약자입장에서 얼마나 지쳐 가는지 모를겁니다.」

「누가 전염 됐다는 거야? 엉?」

「뭐가 똑같다는 거요? 엉?」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양측방에서 똑같은 종결어미를 사용해 거세게 안의 발언을 힐난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굵직한 목소리의 이중주가 제법 시끄럽다.


「하아아. 이래서 지친다는 거지요.. 제 편이 없지 않습니까.」


연기인지 진실인지 혼동될 정도로 허심탄회한 태도를 내 보이며 말을 빼어내는 녀석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정답이 뭔지 모를 진실게임은 대충 마무리 되는 듯 했다.


「아무렴 어때. 여기선 아쉬운 대로 놀아줄게.」


교령은 남은 사괴에게 달려들어 장난감 다루듯 이리저리 굴리다가 안에게로 집어 던졌다. 그의 발밑으로 날아 들어온 사괴는 불과 1분여에 묵사발로 점액질을 내뿜는 시들한 모습으로 꿈틀거렸다. 교령은 두 손을 들고 죽이지는 않았잖아- 라고 반론한다. 안은 침묵하며 그 묵사발 난 것을 조각내어 좀전에 없앴던 녀석과 똑같은 꼴로 만들어 놓고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속이후련하다 못해 시원한 한방이다.


「‘사냥’에 대해 남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어이- 어차피 모조리 다 잡아 없애면 되는 거 아닌감? 그걸 또 설명하는 거야?」

「그건 몰살이겠지요. 물론 그 경우에도 인정합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좀전에 보여드린 것과 같이 두 마리의 결계석을 지닌 사냥감을 쓰러뜨리시면 됩니다,」


친절한 안님의 설명이시다. 졸지에 섣부른 바보가 되어버려서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그 외의 규칙은?」

「네- 교령씨, 시간은 무제한, 따로 페널티가 붙는 것은 없습니다.」

「그거 참말이렷다. 딴소리 하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조양팔씨, 말꼬릴 잡고 늘어질 생각은 마시죠 설혹 그렇다 한들 호락호락하게 털어놓진 않을 테니까요..」

「그래, 알았어. 아는 즉시 깡그리 다 뭉개버려 줄께.」


역시 누님이시다- 진심으로 감탄스러운 직격표현이였다.


「오늘 말 할건 여기까지네요. 아무튼 이틀 후 아침에 일을 시작하지요. 마지막 서비스로 선물 하나 남기고 갑니다.」

「그것 참 후하게 인심 써주시네. 고맙소 외다.」


한쪽 입 꼬리를 바짝 높이 세워 웃고는 뒤돌아 떠나는 안에게서 선물이라는 아리달쏭한 말이 무슨 의미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누님, 뭐 받은 거 있수까?」

「아니, 전혀- 네가 받은 거 아냐?」


놈은 문을 탁 닫고 떠나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넘겨주지도 남기지도 않았었는데 선물 같은 걸 어딘가 숨겨두고 간것이였나- 보물찾기라도 해보라는 것일까- 아무튼 간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존재였다.


「마지막까지 사람 약 올리고 가는 구만. 저런 타입이 빨리 죽지.」

「에구-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뒷험담을 하는 새 또다시 노크소리가 들린다. 그럼 그렇지- 안 녀석이 선물이란 말을 꺼내놓고서 그냥 가버린 제 실수를 깨달은 것이 틀림없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득달같이 따지러가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이봐! 장난 좀 작작해!」

「아- 저. 저는.」


문을 열자마자 고압적인 태도로 윽박지른 상대는 한껏 물오른 수국의 터져오른 꽃망울같이 청조함을 물씬 풍기는 소녀였다. 연녹색 원피스에 연갈색의 정갈하게 땋은 양갈래 머리를 늘어뜨린 모습이 화를 내는 도중에 할말을 잊게 만든다. 입을 딱 벌린 흉물스런 꼴로 말 더듬으며 이름을 되물어보게 된다. 귀까지 새빨갛게 익어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소녀의 존재감은 우주만큼이나 크다.


「미. 미. 미. 미희님?」

「네. 맞아요.」


단 1년만의 짧은 활동만으로 명실상부한 톱 탤런트에 자리매김했던 전설의 아이돌, 그녀가 지금 눈앞에 서 있다.




'외톨이' 들의 '순애보' - 내일도 쭉 이어집니다.


작가의말

-차회예고-

화염은 널름널름 재앙의 단서를 지우며 새로이 재앙을 탄생시킨다.

절체절명의 지광에게 빠져나갈 뒷문은 준비되어 있을 것 인가?

다음화! 파란불꽃과 붉은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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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순애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8 048 - The Starving Ghost And The Silver Baby 15.11.13 368 11 10쪽
47 047 - Negotiation Derailment 15.11.13 338 12 7쪽
46 046 - Clue 15.11.10 397 11 14쪽
45 045 - Devil's Bargain 15.11.01 406 12 17쪽
44 044 - Debut As An Undead Girl 15.02.28 645 15 8쪽
43 043 - Time To Find The Exit 15.02.24 559 13 14쪽
» 042 - Dead Man Rendezvous 15.02.21 712 17 25쪽
41 041 - The Girl Rise In Arms 15.02.18 723 17 9쪽
40 040 - Blue Highs 15.02.16 378 13 10쪽
39 039 - Back To Square One 15.02.12 563 14 8쪽
38 038 - Disaster's Store 15.01.22 617 15 8쪽
37 037 - Win By Luck Of The Battle 15.01.20 564 12 10쪽
36 036 - Trickster VS Trigger 15.01.20 687 19 10쪽
35 035 - Head To Head Talk 14.10.28 659 12 12쪽
34 034 - Another Trap 14.10.22 653 17 8쪽
33 033 - Another Beginning 14.10.21 567 11 8쪽
32 032 - Result Of The Battle 14.10.21 524 15 10쪽
31 031 - Must be Willing To Survive 14.10.20 593 12 8쪽
30 030 - Warrior Ceremony 14.07.16 541 13 10쪽
29 029 - The Impossible Escape 14.07.09 509 11 8쪽
28 028 - Trap Exploration 14.07.08 590 13 10쪽
27 027 - One Punch 14.02.13 698 11 10쪽
26 026 - Beginning 14.02.09 711 15 10쪽
25 025 - Contract Execution 14.01.30 754 13 10쪽
24 024 - Small Talk 14.01.29 595 14 8쪽
23 023 - The Lesson Of Her Fighting 14.01.28 713 12 12쪽
22 022 - Fighting Language 14.01.28 778 12 12쪽
21 021 - Elixir 14.01.27 745 11 12쪽
20 020 - The Price Of Battle On This Hellland 14.01.27 724 18 14쪽
19 019 - Terms Of Contract 14.01.25 863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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