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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610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7.29 10:27
조회
1,312
추천
28
글자
18쪽

101화. 가정을 꿈꾸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살았던 대협곡을 다녀오며 천령수(天靈樹)를 보고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서산에 지고 있었다.


쥬맥이 씻는 동안에 미루가 주방에 들어가서 저녁을 지으니 마치 벌써 신혼살림을 차린 기분이다.


미루는 여(女)무사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혼기를 놓치니, 친했던 친구들도 다 결혼해 버려서 함께 어울릴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결혼한 친구들은 모두 애들 키우랴 시집살이하느라 바쁘니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께 음식 만들기 등 신부 수업을 착실히 받아서 제법 요리 솜씨가 좋았다.


아직 날씨가 더워서 욕조에 찬물을 받아 개운하게 씻고 나오니 어느새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


“오라버니, 저녁 다 되었어요. 식기 전에 오셔서 빨리 식사하세요.”


“맛있는 냄새가 많이 나네. 뭘 했는데 이렇게 군침이 돌지?”


“맛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이것저것 해 봤는데 그냥 맛있게 드세요.”


“어디 맛 좀 볼까? 음~ 맛이 좋은데? 언제 이렇게 요리하는 것을 배웠어?”


“오라버니 때문에 밖에도 못 다니고 집에 틀어박혀 살면서요.”


“그래? 다행이네. 난 또 내가 다 가르쳐야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뭐예요? 그동안 제가 지옥 같은 시간을 얼마나 힘들게 버텼다고요.”


“알고 있어. 내가 앞으로 잘 할게.”


“지금같이만 살아도 저는 행복해요. 그런데 결혼은 올해 안에 해야 되겠죠? 엄마 아빠가 올해를 넘기지 말래요.”


그러면서 곁눈으로 슬쩍 쥬맥의 눈치를 보았다. 올해를 넘기면 이제 서른두 살! 나이 한 살을 더 먹을 때마다 노처녀의 가슴은 먹물처럼 새까맣게 탄다.


이제 고지가 바로 코앞인데······.


“그러지 뭐. 그럼 벌써 8월이니까 조금 더 시원해지면 천단(10월30일) 며칠 전에나 할까? 부모님께 좋은 날자를 잡아 주시라고 말씀드려 봐. 날자는 주로 신부네 집에서 잡잖아.”


금년에 날짜까지 얘기가 나오자 미루는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었다.


“알았어요. 오늘 집에 가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우리는 그~ 그~ 중요하다는 혼수는 안 해도 돼요?”


“응? 아니 무슨 중요한 혼수?”


“아~ 유리 씨도 아인 씨도 해 갔다는 그 효~도~ 혼수요.”


처녀가 말하자니 부끄러운지 얼굴에 홍조를 띄우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하하하하! 수르가 놀리려고 농담한 것을 가지고 뭘 그래. 나는 살아 계신 부모님도 없는데 효도는 무슨 효도? 나는 첫날밤까지 미루의 순결을 꼭 지켜 주고 싶어.”


“고마워요 오라버니.”


식사를 마치고 금령파를 함께 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미루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잠깐만요. 집 앞에 누가 있네요.”


둘이 미루네 집 근처에 이르렀는데 집 앞에 두 남자가 서 있다. 길모퉁이에 멈추어 서서 자세히 살펴보니 한 사람은 보돈타 대족장이고 한 사람은 미루의 아버지 상구 부족장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지 보 대족장의 언성이 좀 높다. 모퉁이에 숨어서 귀를 기울이니 소리가 들리는데······.


“이봐, 상 부족장! 정말로 쥬맥 그 녀석하고 딸을 결혼시킬 거요?”


“이미 혼기가 넘었고, 둘이 좋아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딸내미 결혼이야 부모가 정하기 나름 아니오? 나하고 비 대족장하고 그런 사이인데, 꼭 그 밑에 있는 녀석과 결혼(結婚)을 시켜야겠소?”


“결혼은 두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니 정략적인 것하고 서로 연관(聯關)을 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대족장님을 향한 제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 이해해 주십시오. 사위는 사위고 저는 저이니 똑같이 묶어서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상 부족장은 결심을 굳힌 듯 자신의 소신을 강하게 이야기했다.


“꼭 쥬맥이 아니더라도 내가 명문가에 잘 아는 혼처가 있으니 연결을 해 주겠소. 비록 지난번에 거인들과의 전쟁에서 아내를 잃은 재취 자리지만, 이미 딸이 서른한 살 노처녀이니 그런 자리도 괜찮지 않겠소? 집이 부자이니 먹고살 걱정도 없을 것이고······.”


“우리 딸은 아직 처녀입니다. 어떻게 재혼(再婚) 자리에 보낼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건 너무한 처사입니다.”


“요즘은 조혼이 유행이라서 20대 초반이나 중반에 모두 결혼하고, 20대 후반에 접어들면 벌써 노처녀 소리를 들어요. 그런데 이미 서른한 살에 곧 서른두 살이 될 텐데 재취 자리도 과한 게 아닙니다.”


“안 됩니다. 둘은 이미 결혼을 허락했고요, 저는 딸을 제 욕심으로 팔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 다시는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에이~ 씨! 하여튼 두고 보겠소.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보 대족장이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쏘아붙이더니, 주먹으로 대문을 한 번 꽝 치고는 휙 돌아서서 가 버렸다.


“조심히 가십시오.”


등 뒤에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미루 아버지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대문을 붙들고 머리를 기대며 한참을 고민하던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미루는 갑자기 늙어 보이고 초라해진 것 같은 아버지 뒷모습이 눈에 밟혀서 눈에 눈물이 글썽하게 맺혔다.


사랑에 빠져서 아버지가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모르련만 감추고 있는 아버지의 상처가 너무 커 보이니 참지 못하고 쥬맥의 품으로 파고들며 울먹거렸다.


“우리 지금 당장 함께 들어가서 시월에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려요.”


“아니야. 지금은 아버님 심사가 복잡하실 테니까 오늘은 그만 조용히 들어 가고, 따로 날을 잡아서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어. 그러니 어서 들어가.”


“그럼 저 먼저 들어갈게요.”


미루가 쥬맥의 볼에 뽀뽀를 하고 뛰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쥬맥은 보 대족장의 언사(言辭)를 떠올리며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미루가 집에 들어와서 자신의 방으로 가지 않고 응접실(應接室)로 가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 보 대족장 심사가 뒤틀렸으니 미루 결혼을 방해하려고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고, 쥬맥한테도 그렇고······.”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어요. 아들딸 다 결혼시키고 막내 미루만 하나 남았는데, 예쁜 우리 딸을 재취 자리라니 그건 말도 안 돼요.”


“정말 이러다가 내가 부족장에서 잘리면 우리 먹고살 일이 걱정이네, 참.”


“안되면 내가 품팔이라도 할 테니까 우리 미루 재취 자리는 절대 안 돼요.”


가만히 들어가서 그 얘기를 엿들은 미루가 일부러 인기척을 냈다.


“흠 흠, 엄마! 저 들어왔어요.”


“어? 미루구나. 언제 왔니? 방금 네 아빠랑 한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니지?”


괜히 딸이 알면 속상할까 봐서 혹시 들었는지 모르니 표정을 살핀다. 미루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었다.


“무슨 얘기요?”


“아니다. 그래 그 쥬맥이란 친구하고는 잘되고 있냐?”


“예, 지금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에요.”


“질질 끌지 말고 빨리 결혼식을 올리자고 해라. 그게 너희들에게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천단 전에 식을 올리자고, 좋은 날짜로 잡으라고 했어요.”


“그래? 정말 잘됐다. 부모 형제가 없으니 우리가 알아서 준비하마. 너는 착실하게 시집갈 준비나 하고, 조신하게 지내거라. 어여 건너가 봐.”


“예, 그럼 엄마 아빠도 편히 쉬세요.”


미루가 응접실을 나와서 자기 방으로 돌아가자 둘은 또 걱정이 태산이다.


“에구, 또 막내딸 시집보내려면 등허리가 휘겠네. 큰애부터 줄줄이 일곱을 결혼시키니 집에 남아나는 게 없구만.


그나마 부족장 자리라도 꿰차고 있어서 이만했는데 우리 두 사람의 노후가 걱정이네. 보 대족장하고도 오래 못 갈 것 같고······. 으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쥬맥이 백호대장에다 소족장이라면서요? 먹고살 만할 테니 정 안되면 사위 덕 좀 봅시다.”


“그건 내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네. 에구, 내 팔자야.”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을 너무 미리서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어디나 부모들의 걱정은 한결같은 모양이다. 자식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쥬맥은 보 대족장과 상 부족장의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빨리 결혼식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어떻게 다시 찾은 사랑인데···, 미적거리다가 정말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난 김에 내일 미루의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했는데······.


두 사람이 나눈 얘기로 봐서는 상 부족장이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보 대족장 성질에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수하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으니.


그리되면 그렇지 않아도 자식이 많아서 막내딸인 미루 위로 줄줄이 결혼을 시키며 가산이 거덜난 미루의 부모는? 당연히 형편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깊이 넣어 둔 월광석을 꺼냈다. 이제는 처갓집이 될 터인데 무엇을 아끼겠는가?


몇 개나 사용했는지 헤아려 보니 유리네 두 개, 수르네 두 개, 아인이네 한 개, 죽은 미루네 한 개, 총 여섯 개를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책을 읽는 데 쓰고 있는 하나를 빼면 아직도 여섯 개가 남았다. 물론 산속에 묻어 둔 한 자루는 빼고···.


세 개를 예쁜 나무상자에 보드라운 가죽으로 싸서 넣은 뒤 오색으로 수놓아진 보자기로 다시 한 번 포장했다.



다음 날 저녁 무렵.


또 미루가 쥬맥의 집으로 금령파를 배운다는 핑계로 찾아왔다.


속마음은 부모님이 결혼을 서두르라고 하시니 한편은 기쁘고 한편으로는 잘못될까 두려워서 알리러 온 것이다.


“오라버니, 저 왔어요.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응, 좀 전에 먹었어. 어제 저녁에 부모님들께서 걱정을 많이 하시지?”


“다행히 우리 결혼은 반대를 안 하시고 가능한 빨리 식을 올리래요. 그래서 천단(天旦) 전에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날자를 잡아서 준비하신다고 오라버니도 최대한 빨리 준비하시래요.


저를 시집보내려면 또 힘드실 거예요. 제 위로 일곱이나 결혼시키시느라 허리가 휘셨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돈이나 많이 벌어 놓을 걸 그랬나 봐요.”


“아니, 미루가 뭘 해서 돈을 벌어? 아리(峩理)별 때처럼 표국이 있기를 해 상단이 있기를 해? 다 고만고만한 장사치들밖에 없는데······.”


“우리 부모님들 나중에 힘들게 사시면 제가 좀 보살펴 드려도 돼요?”


“그야 사위도 자식인데 당연한 얘기지. 그런데 미리서 걱정하지 마.”


“그러게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먼 훗일로 우리들 분위기 깨지 마요.”


“오늘 조금 있다가 나랑 같이 부모님 뵈러 가자. 걱정을 덜어 드려야겠어.”


“택일하는 것 때문에요? 어제 제가 날짜 잡으시라고 다 말씀드렸는데요?”


“그래도 내가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지. 뵌 지도 꽤 오래되었고······.”


“알았어요. 그럼 빨리 금령파부터 연습하고 같이 가요.”


미루는 쥬맥의 넓은 가슴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금령파를 배우는 것이 너무 좋았다. 님의 품에 안겨 있으면 세상이 모두 내 것만 같으니······.


오랫동안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해서 따스한 체온을 한몸처럼 느끼며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꿈만 같았다.


“이제 끝났으니까 어서 가요.”


“잠깐만 기다려. 뭐 좀 챙기고······.”


둘이 금령파 연습을 마치고 미루네로 가는데, 미루가 오늘은 금령파를 가지고 가서 부모님께 배운 실력을 자랑하고 싶다고 하여 들고 나섰다.


쥬맥이 대신에 노래는 절대로 부르지 말라고 하니까 알았다고 하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꺄우뚱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노래를 잘한다고 한 곡조 더 하라고 하는데, 왜 오라버니만 자꾸 하지 말라고 하지?’


미루네 집에 이르러서 미루가 먼저 들어가 부모님께 쥬맥이 왔음을 말씀드리고 데리러 나왔다.


“어서 들어오세요.”


미루를 따라서 응접실로 들어서니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겼다.


“아버님 어머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인사를 자주 못 드려 죄송합니다.”


“어서 오게. 이제는 편히 드나들어도 되는데 왜 얼굴 보기가 힘들어? 자네도 준비는 하고 있나?”


“어서 와요. 이이는 첫 말부터 불편하게 왜 그런 걸 물어요. 편히 앉아요.”


“예, 어머님. 이제 말씀도 낮추시고 편히 대해 주십시오.”


“그럴까? 이제 사위나 진배없는데 그러지 뭐. 호호호”


“엄마, 오라버니한테 이 악기를 배웠는데 제가 한 곡 들려 드릴게요.”


“그래? 네가 악기를 다 배웠어? 그런데 그 악기가 너무 예쁘구나.”


“이거 우리 오라버니가 직접 만든 거예요. 소리가 너무 예뻐요.”


그러자 아버지가 뻐근하다는 듯이 목덜미를 잡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딸 시집보내려고 하니까 내가 골치가 아프다. 어디 시원하게 한 곡조 해 봐라. 한번 들어 보자.”


“잠깐 기다리세요.”


미루가 가죽집을 벗기고 줄을 고르더니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띠리링~ 띠리링~, 샤라랑~······.


맑고 고운 선율이 울려 퍼지자 뜻밖이라는 듯이 놀래는 얼굴로 웃음을 띠고 듣고 있던 어머니가, 연주가 끝나자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와~ 잘한다. 우리 딸 최고다.”


그러면서 ‘짝짝짝!’ 박수를 쳤다.


“오라버니는 저보다 훨씬 잘해요. 오라버니도 한 곡 해 보세요.”


은근슬쩍 금령파를 쥬맥에게 내민다.

실은 오늘 자신이 하기보다는 쥬맥의 솜씨를 보이고 싶어서, 미리 자신이 한 곡조를 하고 슬며시 끌어들인 것!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금령파를 받아 들고 줄을 고르더니 연주를 하는데···.


샤라라라랑~ 랑랑~ 샤~라랑~······.


미루가 연주할 때와는 격이 다른 선율이 집안 가득히 울려 퍼진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리고 놀라는 시늉을 하는데, 미루는 ‘그것 보세요’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일인 양 자랑스레 웃었다.


연주가 끝나자 모두 박수를 치는데, 미루의 아버지가 시름을 다 잊었는지 미소를 띠고 밝게 웃었다.


짝짝짝짝!


“하하하하! 멋~지네. 머리가 아주 개운해졌어. 천상의 소리일세.”


“호호호호! 정말 근심 걱정이 모두 날아가 버리네요. 자주 좀 들려주게.”


“변변치 않은 솜씨입니다.”


“그게 변변치 않다고 하면 모두 욕하겠어. 그걸로 먹고살아도 되겠네. 여보, 미루 얘는 이제 걱정할 필요 없겠어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한바탕 웃고 나니 온갖 근심과 걱정을 다 떨치고 분위기가 살아났다. 그러자 어머니가 미루에게 눈치를 준다.


“미루야! 너는 신랑 될 사람이 왔는데 들어가서 다과라도 내와야지?”


“네, 알았어요. 말씀 나누고 계세요.”


미루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미루의 어머니가 나서서 혼례 얘기를 꺼냈다.


“혼자서 혼례를 준비한다고 힘들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말게. 부모님도 안 계시니까 있는 만큼만 소박하게 준비해서 하지 뭐. 우리도 부모님과 일가친척(一家親戚)이 다 안 계시니 혼수는 살림살이나 좀 준비하려고 하네.”


“집에 있을 건 다 있으니 별로 준비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예물로 준비한 것인데 미리 드리겠습니다. 변변치 않지만 받아 주십시오.”


그러면서 뒤에 놓아두었던 예쁜 보자기에 싼 물건을 두 손으로 들어서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건넸다.


“아니, 벌써 무슨 예물? 하하하! 하여간 고맙게 받겠네.”


혹시나 변변찮은 것이면 민망해할까 봐 받아만 놓고 차마 풀어 보지는 못하는데, 그때 미루가 차와 과일이 놓인 다과상을 들고 들어왔다.


“차 한잔 드시면서 말씀하세요. 제가 차 끓이는 솜씨가 꽤 괜찮거든요.”


그러자 미루 아버지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들며 쥬맥에게도 마셔 보라고 손짓을 하며 권했다.


“자네도 한번 마셔 보게. 그럼 어디 우리 딸이 끓인 차 맛 좀 볼까?”


이렇게 차를 마시며 오붓하게 얘기를 하니 마치 벌써 한 식구가 된 것 같았다.


쥬맥이 악기(樂器)는 내일 가져오라며 나서자, 미루가 대문 앞까지 따라 나와서 기어코 오늘 하지 못한 입맞춤을 하고서 뛰어들어갔다.


콩닥대는 가슴으로 다시 응접실로 들어가더니 찻잔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오라버니는 갔어요. 상은 제가 치울게요.”


미루는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철없는 딸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너는 이제 시집가려니 그렇게 기분이 좋으냐? 부모와 헤어지는데도······.”


그러자 미루가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이 얼굴을 똑바로 들고 말대꾸를 했다.


“그럼요, 이제 그 지긋지긋한 노처녀 소리는 안 들어도 되잖아요. 부모님이야 자주 찾아뵈면 되구요.”


미루의 어머니가 얄밉다는 듯이 딸에게 한 번 눈을 흘기더니 쥬맥이 주고 간 예물 상자로 눈을 돌렸다.


상자가 조그만 것을 보니 무슨 장식품이나 노리개인가 보다.


“여보, 그 주고 간 예물이나 한번 열어 보세요. 조그만 상자에 뭐가 들었을까 궁금하네. 내 노리개인가?”


“오라버니가 뭐 주고 갔어요? 어서 한번 봐요. 오라버니가 준 것이면 제 노리개지 왜 엄마 노리개예요?”


둘이 서로 말씨름을 하는데 미루 아버지가 예물을 앞으로 끌어당기더니 보자기를 풀자 그 안에서 또 예쁘고 길쭉한 나무상자가 나타났다.


“정말로 당신의 장신구나 노리개인가 보구려. 나무상자에 든 것을 보니까.”


“제 결혼 예물이니까 제 거죠.”


그 말에 미루 아버지가 철없는 딸을 웃으면서 쳐다보더니, 상자의 잠긴 고리를 풀고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부드러운 가죽에 싸인 것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


“빛까지 나는 것을 보니까 제법 비싼 것인 모양인데······.”


보통의 물건에서 이렇게 빛이 날 리가 없다. 스스로 빛을 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라는 뜻인데······.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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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82화. 참혹한 전투(戰鬪) 21.07.10 1,341 42 20쪽
81 81화. 선발대와의 접전 +1 21.07.09 1,324 44 19쪽
80 80화. 거인족의 침략 21.07.08 1,343 43 20쪽
79 79화. 남은 자의 몫 +1 21.07.07 1,355 44 20쪽
78 78화. 사랑의 절규 +1 21.07.06 1,316 43 20쪽
77 77화. 불타는 것은 재를 남기고 21.07.05 1,322 45 19쪽
76 76화. 뜨겁게 타오르는 불 21.07.04 1,325 45 18쪽
75 75화. 사랑의 불씨 +1 21.07.03 1,347 46 18쪽
74 74화. 새로운 인연 +1 21.07.02 1,349 47 18쪽
73 73화. 최연소 소족장이 되다 21.07.01 1,339 45 18쪽
72 72화. 신의와의 새로운 인연 21.06.30 1,351 45 19쪽
71 71화. 점박이 별이와의 재회 21.06.29 1,337 45 18쪽
70 70화. 피 끓는 혈전 21.06.29 1,330 46 19쪽
69 69화. 백호대와 야차족의 전투 21.06.29 1,341 47 19쪽
68 68화. 백호대 대장이 되다 +1 21.06.29 1,330 46 19쪽
67 67화. 비월족과 소인족의 격돌 21.06.29 1,345 46 19쪽
66 66화. 유리의 결혼 21.06.29 1,343 47 18쪽
65 65화. 금령파와 금령신공 21.06.29 1,358 47 19쪽
64 64화. 백호제마검의 비밀 21.06.29 1,354 47 19쪽
63 63화. 마린챠 모녀의 복수 21.06.29 1,352 47 19쪽
62 62화. 새로운 출발 21.06.29 1,378 44 19쪽
61 61화. 기다리는 지혜를 배우다 21.06.29 1,350 46 19쪽
60 60화. 야차족과의 충돌 21.06.29 1,336 46 18쪽
59 59화. 길거리 생사결(生死決) 21.06.29 1,339 47 18쪽
58 58화. 영웅(英雄)이 되다 21.06.29 1,349 48 21쪽
57 57화. 비루먹은 망아지라고? 21.06.29 1,351 47 18쪽
56 56화. 영웅대회(英雄大會) 21.06.29 1,355 46 18쪽
55 55화. 선배들의 신고식 21.06.29 1,351 48 19쪽
54 54화. 의무 복무 입대 21.06.29 1,342 4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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