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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82,367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7.06 10:13
조회
1,324
추천
43
글자
20쪽

78화. 사랑의 절규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얼굴을 스치는 제법 서늘한 기운에 눈을 뜨니 어느덧 새벽녘.


쥬맥은 어제 무리를 하였는지 아직도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미루를 모피로 따뜻하게 덮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있는 과일을 골라서 줍고, 가져온 태을미 흰 쌀밥에, 냇가에서 금방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굽고 끓이니 그런대로 맛있는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


뒤늦게 눈을 비비고 일어난 미루는 자기가 할 건데 오라버니가 다 했다며 복에 겨운 듯한 투정을 부렸다.


“아니, 오라버니! 내가 할 일을 오라버니가 다 해 버리면 내가 할 일이 없잖아요. 내가 꼭 해 주고 싶었는데······.”


“누가 하면 어때. 먼저 일어나서 심심해서 그냥 했어. 맛있나 모르겠네.”


“어디 맛 좀 봐요. 아유~ 맛있어.”


미루는 신나게 이것저것을 맛있게 먹어 치웠다. 식후에는 물고기를 잡았던 냇가로 가서 수욕(水浴)을 하니 전신이 다 개운하다. 미루는 안 보이게 큰 바위 뒤에서 하고 나오는데 추운지 몸을 덜덜 떨었고.


얼른 모피로 감싸 주니 한 떨기 꽃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에 눈이 부셨다. 마치 천상의 여신처럼 전신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쥬맥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때, 감미롭게 들려오는 미루의 목소리!


“오라버니, 오늘은 우리 뭐하고 놀아요? 다른 데도 멋진 곳이 있어요?”


그제야 쥬맥은 눈을 뜨고 허겁지겁 대답했다.


“어? 그래, 아직 대협곡은 안 봤지? 내가 그 안에 있는 멋진 동굴에서 살았거든.”


“그럼 우리 얼른 거기 가 봐요. 오라버니가 살았던 곳을 보고 싶어요.”


그러다가 또 진통이 밀려오는지 몸을 비틀거렸다. 환한 여신 같은 얼굴에 잔물결처럼 고통이 번져 갔다. 그러나 쥬맥이 얼른 약을 찾아서 건네고 넓은 나뭇잎에 물을 떠 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금방 좋아졌다.


신의가 준 약이 있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약을 먹고 몸이 편해지자 둘은 짐을 챙겨서 대협곡으로 향했다.


드디어 대협곡(大峽谷)에 다다르니 그 끝을 알 수 없는 장대한 협곡이 예전과 다름없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대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미루는 입을 벌리고 그저 감탄사만 연발했다.


“우와~ 와~ 정말!”


쥬맥은 이곳에서 십 년을 넘게 살았어도 이렇게 가슴이 벅찬데, 오늘 처음으로 보는 미루는 어떠하겠는가?


그저 입을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 그 장대(張大)하면서도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습이 책 속에서 얘기하는 별천지를 그대로 그려 내고 있었으니.


밑으로 내려가는 길은 험난하여 쥬맥이 미루를 업고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그러나 십 년이 넘게 날마다 오르내리며 체력 단련 삼아 다닌 길이라서 눈을 감고도 편히 내려갈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다람쥐처럼 오르내렸는데 이제 무술의 고수가 되었으니 더 쉬웠다.


천 장이 다 되는 낭떠러지를 내려오자 밑에는 또 다른 별천지가 펼쳐졌다.


사람만큼 큰 메가네잠자리가 여기저기 맴돌고,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은 미루처럼 활짝 피어나 둘을 반겼다.


벌과 나비가 떼 지어 날고······.


귀여운 새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아름다운 새소리에 취한 듯 미루가 등에서 내려오더니 금령파를 찾았다.


미루는 쥬맥의 체향이 잔뜩 묻어 있는 금령파를 한시도 옆에서 떼어 놓기 싫어해서 결국 여기까지 들고 온 것인데······.


평평한 바위 위에 모피를 깔아 주자 그 위에 앉아서 쥬맥에게 배운 연주를 하니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리리링~


샤라랑 샤라랑 샤라라라랑~


맑고 고운 금령파 소리에 주변의 작은 새들이 모여들어 함께 울어 대며 군무를 추었고, 벌과 나비도 따라서 꽃밭에서 춤추니 도원경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자연과 동화되어 함께 어울리는 미루의 아름다운 모습을 쥬맥은 넋을 잃고 멍하니 앉아서 바라보았다. 도대체 사람인지 여신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평생을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소원이 없겠는데······.’


연주가 끝났는데도 새들은 주변을 맴돌며 떠나지 않았고 나비는 날아와서 미루의 팔과 어깨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인 것처럼······.


낭떠러지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과 밑에 내려와서 올려다보는 풍경은 또 달랐다.


쩍 벌어진 틈새로 하늘이 아득하게

보이고, 옆을 보면 수많은 기암절벽이 오래된 고목들과 어우러져 신비스러운 풍경을 만들었다.


바닥에는 온갖 기화이초가 만발하여 바람결에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아름다운 자태로 살랑살랑 춤추는 듯하니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미루도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된 듯 그윽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라버니, 우리 돌아가지 말고 여기에서 그냥 살면 안 돼요?”


“그럴까? 여기서 그냥 살아 버릴까?”


쥬맥도 미루만 건강하다면 여기서 이렇게 한세상을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루만 건강하다면······.


세상사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이곳에서 사랑하는 님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오라버니가 살았다는 동굴은 어디예요? 이 근처인가요?”


“응, 저 위쪽인데 지금은 결계로 봉해져서 가 볼 수가 없어.”


“정말 아쉽다. 나도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에잉, 가 보고 싶어~”


어린애처럼 앙탈을 부리는 듯한 모습도 귀여워서 쥬맥은 미소를 지었다.


“대신에 내가 다른 굴을 찾을 테니까 우리 거기서 하룻밤 자자, 응?”


“네, 좋아요. 미루는 오라버니랑 함께라면 아무 데나 다 좋아요.”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쥬맥은 미루가 편히 쉬게 자리를 만들어 주고 혹시 몰라서 간단한 진법(陣法)을 설치한 다음, 근처를 뒤져서 잠자리가 될 만한 적당한 동굴을 찾았다.


다행히 근처에 전에 살던 동굴과 비슷한 굴이 있었다. 그리 깊지는 않았고 옆에 큰 고목은 없었지만, 굴 앞에 제법 넓적한 바위가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밖을 바라보는 전망대처럼.


단검에 강기를 실어서 오르내리기 좋게 암벽에 계단을 만들고 동굴 앞과 안을 쉬기 편하게 다듬으니, 그런대로 편히 쉴 곳이 마련되었다.


다시 부드러운 들풀을 베다가 동굴 바닥에 깔고, 부드럽고 푹신한 모피를 그 위에 덮었고······.


이만하면 편안한 잠자리다. 오늘 하룻밤을 이곳에서 묵으면 내일은 다시 주거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동굴을 다 다듬고 앞쪽의 넓은 바위에도 푹신한 모피를 깔았다.


미루를 데리고 올라가 그곳에서 쉬게 하니 내려다보이는 전망(展望)이 너무 좋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맨날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보니 벌써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 다 되었다. 쥬맥은 점심 준비에 바쁜데, 미루는 바위 위에 엎드려서 턱을 괴고 아래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와! 오라버니,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멋있어요.”


“또 언제 올지 모르니 많이 봐 두렴. 멀어서 자주 오기가 쉽지 않잖아.”


“이렇게 거대한 협곡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어제오늘 오라버니 덕분에 제 눈이 호사를 누리네요. 고마워요.”


점심을 함께 먹고 턱을 괸 채 아래를 구경하고, 또 입맞춤을 하다 보니 아쉬운 시간이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가 버렸다. 야속하게도 아쉬운 시간은 항상 금방 가 버리는 법이니!


‘어휴~ 벌써 해가 지나 보다.’


대협곡 안은 깊어서 해가 금방 지고 어두워진다. 그래서 서둘러 저녁을 먹고 동굴 앞 너럭바위 위에서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았다.


이곳은 깊어서 해가 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높다랗게 올려다보이는 하늘에는 노을빛이 가득했다.


새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지 날갯짓이 부산하고, 어둠은 밑에서부터 태고의 심연처럼 피어오르고······.


대협곡의 황혼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기암절벽에 늘어진 고목들과 노을빛이 음양을 이루며, 말로는 이루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신비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다가 미루는 또 통증이 있다고 약을 먹었다. 벌써 이틀 새에 몇 번인지 모른다.


스스로도 몸에 이상이 있다고 느끼는 모양인데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가만히 바라보는 쥬맥의 가슴만 썩어 문드러지며 그저 무너져 내릴 뿐!!


그러는 사이에 금방 대협곡 틈새로 별들이 총총히 빛났다. 잠시 뒤에는 달이 떠올라서 환한 빛으로 대협곡을 비추니 그 모습이 또한 장관이었다.


쥬맥은 금령파를 가져다가 가슴에 안고 연주하면서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샤라~라라랑~ 샤라랑~

사랑하는 내님아! 어디를 홀로 떠나려 하는가?


치리리리링~ 띠리링~

저 별과 달처럼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이지.


디디디디딩~ 디디딩~

너 없는 세상을 나 홀로 어찌 살라고······.


······



미루는 연주와 노래에 취해서 등 뒤에서 쥬맥을 꼭 끌어안았다.


“오라버니! 저 지금 너무나 행복해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요.”


아이처럼 등 뒤에서 얼굴을 비비는 미루. 등 뒤에 있으니 쥬맥의 눈에 맺힌 눈물은 보지 못하고 마냥 행복해하는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쥬맥은 노래를 멈춘 채 말없이 연주만 해댈 뿐이다.


그렇게 또 밤이 깊어서 동굴 안 잠자리에 들어오니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미루는 또 행복하다는 듯이 쥬맥의 가슴으로 말없이 파고들었고.


둘은 또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처음처럼, 그리고 마지막처럼······.


미루는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는지 온 힘을 다하여 쥬맥을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마치 놓으면 바닷가의 물거품같이 사라질까 봐 겁나는 것처럼 말이다.



“쬬로롱~ 쬬롱~ 쭁쭁!”


아침에 새소리에 일어나니 미루는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잠들어 있는 듯하여, 쥬맥은 살그머니 모피를 덮어 주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남은 태을미로 쌀밥을 짓고, 대협곡 개울에서 여러 가지 물고기를 잡아서 굽고, 산채를 뜯어서 반찬을 만들었다.


지금쯤 일어날 시간인데 인기척이 없어서 살며시 동굴로 들어가 들여다보니, 나올 때의 모습 그대로 얼굴에 고운 미소(微笑)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깨우려고 어깨를 흔드는데···, 그런데 머리가 힘없이 옆으로 툭 하고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덜컥하여 얼굴을 잡고 흔드는데···, 이미 영원(永遠)한 잠 속으로 빠졌는지 호흡이 없었다. 아~ 미루야!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이 비처럼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맥박을 확인하고 여러 가지 알고 있는 비상조치(非常措置)를 다 해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얼굴에 띤 미소만은 그대로 지은 채 무정하게도 님은 말이 없었다.


‘무정한 님아! 날 두고 혼자 가 버렸는가? 나 혼자 남아서 어찌 살라고?’


한참 뒤에 모든 것을 포기한 쥬맥은 꺼이꺼이 하면서 사내의 체면도 다 내팽개치고 목놓아 울었다.


“끄윽~ 끅 끄흐흑! ······. ”


“미루야! 미루야! 나만 두고 혼자서 가면 나는 어떡하라고! 어허허허헝!”


구슬프게 목놓아 부르건만···, 죽은 사람은 야속하게도 대답이 없구나!


그렇게 한동안 넋을 잃고 울어 대던 쥬맥은 겨우 정신을 붙들고 미루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대협곡 안에 안장하면 너무 답답할 수도 있으니 쥬맥이 처음 버려진, 사방이 탁 트인 곳에다 묻고 싶었다.


자신은 예전에 여러 번 보았지만 미루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꽃눈이 아름답게 휘날리는 풍경을 영혼이 있다면 죽어서라도 보여 주고 싶었으니까.


가을 달밤에 흰 꽃이 마치 눈처럼 아름답게 흩날리며 밤하늘을 수놓는 풍경을 쥬맥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근처에 이르러 강기가 맺힌 단검으로 붉은 대리석을 깎아서 미루가 영면할 커다란 석관을 만들었다.


그 뒤에 사방이 가장 잘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을 깊이 파서 석관을 넣은 다음, 미루를 안아다가 모피에 곱게 싸서 편히 눕혔다.


미루가 그토록 좋아하던 금령파도 가죽집을 모피로 다시 싸서 머리 위에 넣어 주고 울면서 관뚜껑을 닫았다.


막상 흙을 덮으려고 하니 또 끝없는 슬픔이 밀려오는데···, 이를 어찌하나?


그래도 이를 악물고 흙을 다시 덮은 뒤, 그 위에 아름다운 꽃이 피는 나무를 한 그루 캐다가 심었다.


둘이 맛있게 먹으려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 것이 제삿밥이 되어 버렸다.


심은 나무 아래에 아침에 만든 흰 쌀밥과 물고기며 반찬을 늘어놓고···, 그 앞에 앉으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대로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원망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하늘도 그 슬픔을 아는지 차가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얼어붙은 쥬맥의 마음처럼······.


온몸이 비에 젖어서 일어선 쥬맥은 슬픔에 차 하늘을 향하여 절규하였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으흐흑!”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목소리가 애처롭게 사방으로 퍼지건만 대자연은 무심하게 메아리만 울려 대고 있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얄궂은 운명은 그에게서 미루와 한평생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단숨에 앗아가 버렸다.


“왜? 왜? 왜~~~~?”


하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천신이시여! 왜 저에게 이리도 가혹하십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빼앗아 가십니까? 제발 대답 좀 해 보세요. 내가 뭘 잘못했기에······. 으흐흐흑!”


꿇어앉아 땅을 치며 통곡을 해 대니 그나마 조금 가슴이 후련해진 듯했다.


이렇게 쥬맥과 미루의 살 떨리는 사랑은 끝을 맺었고···, 쥬맥은 혹시 미루가 뒤따라오지 않을까 수십 번을 뒤돌아보며 홀로 빗속을 걸었다.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올 때는 둘이 와서, 사랑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차가운 땅에 묻어 버리고, 이렇게 혼자서 돌아가야 하다니!


무거운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미루야! 우리 다음 생에 꼭 다시 만나자.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사랑한다 미루야! 내 사랑 미루야! 으흐흑!”


억지로 위안을 삼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터덜터덜 옮겼다. 마치 지금 지옥문이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해서 쥬맥이 최초로 만든 금령파와 그 속에 넣은 금령천음신공도 미루와 함께 땅속에 묻혔다.


먼 훗날, 어느 연자(緣者)가 우연히 발견할 때까지······.


차갑게 쏟아지는 겨울 비!


그 속을 절규하며 홀로 걷는 쥬맥!


도대체 삶이 무엇이길래, 왜 이리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쥬맥이 떠난 협곡에 다시 밤이 찾아왔다. 별이 빛나고 달이 떠오르고.


그리고 쥬맥이 미루의 무덤에 심은 나무에서 미루를 닮은 하얀 꽃 한 송이가 청순하게 피어나더니 그곳에서 눈부신 빛이 일었다. 그 빛 속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는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미루의 영혼인가? 여신의 현신인가? 바람결에 긴 백발을 나부끼고 성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오는 여인의 시선은 쥬맥이 버려졌던 커다란 바위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곳에는 한 나이 어린 소년이 바위 옆에 자란 큰 나무의 가지를 붙들고 서서, 달빛에 흰 꽃이 눈처럼 휘날리는 산하를 내려다보며 무서움과 슬픔에 젖어 울고 있었다.


"엄마~ 엉엉엉!"


"아빠~ 엉엉엉!"


"형아~ 엉엉엉!"


"나 무서워~ 엉엉! 나 어떡해 엉엉!"


그러자 여인이 다가가서 가만히 손을 내밀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너에게는 큰 소명이 있단다. 멈추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렴."


그러나 언젠가 꿈속에서 보고 들었던 것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지 소년은 계속 달빛에 젖은 산하를 보며 흐느꼈다.


그러자 그 여인이 이번에는 쥬맥이 절규하며 떠났던 길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미안해요. 이렇게 홀로 두고 떠나서. 그리고 그 큰 사랑 너무 감사해요. 비록 저는 먼저 떠나지만 제 의지는 남아서 오라버니를 지킬 거예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또 다른 미루가 오라버니를 찾아갈 것이니."


여인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빛을 뿌리며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고, 하늘에서는 흰 빛기둥이 아래로 내려오더니 여인을 받치고 하늘로 아득하게 사라져 갔다.


* * * * *


사랑하던 미루를 잃고 차가운 겨울비에 흠뻑 젖어서 집으로 돌아온 쥬맥은, 불덩이처럼 온몸에 열이 올랐다.


전신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들어오자마자 거실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고.


저녁에 수르가 찾아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젖은 옷을 벗기고 모피로 몸을 감쌌으나,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의원을 불러서 침을 놓고 약을 먹이는 등 응급조치를 하는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참을 조심스레 살피던 의원이 다시 모피를 덮어 주면서 수르를 불렀다.


“몸에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걸세.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보게.”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건가요?”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듯하네. 병이 아니니 시간이 약일세.”


“예,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수르는 밤새 곁에서 물수건으로 냉찜질을 해 가며 꼬박 날을 새웠다.


아침에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쥬맥이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떴다.


“수르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어? 깨어났어? 임마, 너 죽는 줄 알고 혼났잖아. 그런데 괜찮아?”


“응, 괜찮아. 걱정할 것 없다.”


“그런데 그까짓 비를 좀 맞았다고 거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다니, 너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실은 미루랑 여행을 갔다가······.”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조용히 들려주니 수르가 저도 마음이 상한지 훌쩍거렸다.


“에이~ 지지리 복도 없는 녀석! 아니 미루마저 어떻게 그렇게 떠나냐?”


“다 내 팔자 소관이지 뭐.”


“젊은 녀석이 팔자타령은······. 어차피 떠난 사람은 떠난 거고 산 사람은 또 살아야지. 정신 차리고 힘내라.”


“그래, 기운 차리고 미루 몫까지 잘 살아야지. 그게 남은 자의 몫이니까.”


“오늘은 네 상태가 말이 아니니 그냥 쉬어라. 내가 가서 말 할 테니까.”


수르가 돌아간 다음 쥬맥은 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끝없는 수렁에 빠진 것처럼 마음은 갈 길을 잃었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지?’


정신을 차렸지만 기운도 없고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갑자기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것처럼.


미루만 계속 눈에 밟힐 뿐이니······.


미루의 아버지는 이미 쥬맥이 홀로 돌아온 것을 알았지만 차마 와서 딸의 죽음을 묻지 못했다. 죽은 줄 알면서도 한 가닥 남은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함이요 확인하면 더 애통함만 밀려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모두들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오죽하면 그렇게 말하겠는가? 그 슬픔이 끝없어서 그런 것을.


그리고 쥬맥도 구태여 그 사실을 알리러 찾아가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자연히 말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


미루의 아버지는 행여 가슴이 덜컥할 얘기를 들을까 봐 먼발치에서라도 쥬맥이 보이면 일부러 모습을 감췄다.


날마다 정신을 다른 곳에 둔 것처럼 멍하니 돌아다니는 쥬맥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무슨 일이 있나 보다고 걱정을 하였지만, 쥬맥의 모습은 쉬 변하지 않았다.


쥬맥도 사람인데 그런 일을 당하고 어찌 쉽게 제정신을 찾을 수 있겠는가?


넋잃은 사람처럼 왔다가 어떤 때는 말을 해도 못 들은 것처럼 멍하니 있었고, 식사도 제대로 안 하는지 몸이 눈에 띄게 야위어 갔다.


눈동자에도 힘이 빠지고······.


수르가 안타까워서 끌고 다니며 밥도 먹이고 아양을 떨었지만 잘 웃던 녀석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져 버렸다.


쥬맥이 이렇게 넋이 빠져 있으니 백호대의 일은 모두 수르가 알아서 챙겨야 했다. 믿을 만한 친구가 있어서 우선은 큰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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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피 끓는 혈전 21.06.29 1,337 46 19쪽
69 69화. 백호대와 야차족의 전투 21.06.29 1,349 47 19쪽
68 68화. 백호대 대장이 되다 +1 21.06.29 1,341 46 19쪽
67 67화. 비월족과 소인족의 격돌 21.06.29 1,354 46 19쪽
66 66화. 유리의 결혼 21.06.29 1,353 47 18쪽
65 65화. 금령파와 금령신공 21.06.29 1,366 47 19쪽
64 64화. 백호제마검의 비밀 21.06.29 1,365 47 19쪽
63 63화. 마린챠 모녀의 복수 21.06.29 1,361 47 19쪽
62 62화. 새로운 출발 21.06.29 1,387 44 19쪽
61 61화. 기다리는 지혜를 배우다 21.06.29 1,361 46 19쪽
60 60화. 야차족과의 충돌 21.06.29 1,344 46 18쪽
59 59화. 길거리 생사결(生死決) 21.06.29 1,347 47 18쪽
58 58화. 영웅(英雄)이 되다 21.06.29 1,358 48 21쪽
57 57화. 비루먹은 망아지라고? 21.06.29 1,361 47 18쪽
56 56화. 영웅대회(英雄大會) 21.06.29 1,362 46 18쪽
55 55화. 선배들의 신고식 21.06.29 1,361 48 19쪽
54 54화. 의무 복무 입대 21.06.29 1,351 4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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