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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82,370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4:18
조회
1,361
추천
47
글자
19쪽

63화. 마린챠 모녀의 복수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전장에 울려 퍼지는 뿔고동 소리에 맞추어서 들판을 둘러싸고 수만의 병사가 나타나며 화살을 쏘아 댔다.


그러자 또 수많은 적병이 쓰러지는데, 이번에는 적이 밀집한 중앙으로 불화살이 수없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유(魚油)가 발린 이 불화살로 들판에 널린 마른 풀에 불이 붙고 하얀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일어나 전장을 뒤덮었다.


이제 먼지와 연기에 휩싸여서 진신챠 부대의 전사들이 밀집한 벌판 가운데는 한치 앞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불길이 일기 시작하자 금방 사방으로 번지니, 아직 푸른 풀들은 더욱 매캐한 연기를 내뿜어서 눈이 쓰리고 아프다.


금방 눈물이 줄줄 흐르고 매운 연기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고······.


그때 진신챠의 부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들!


“으악~ 독이다!”


“적이 독화살을 쏜다! 아악~”


아우성치며 죽겠다고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보이지 않는 연무 속에서 수없이 들려오는데, 이번에는 불길 가운데 여기저기서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퍼엉~


퍼퍼벙~ 펑~


불에 잘 타는 기름과 독을 버무린 액체가 담긴 수천 개의 단지가 갑자기 불을 내뿜으며 폭발(爆發)했다.


어떻게 반인족의 정보를 알아냈는지, 기름 단지에 만독초를 넣어서 불에 타는데도 독성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독성이 배나 강해졌다.


점점 뿌옇게 번지는 연무에 심장을 옥죄는 독까지 스며들자 전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지옥 같은 아수라장 속에서 수없이 스러져 갔다.


인세에 지옥이 따로 있으랴? 이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같은 동족끼리 죽고 죽이며 붉디 붉은 피를 흘리는······.


그제야 상황을 알아챈 진신챠 부대의 대장들이 목청껏 후퇴를 외쳤다.


“후퇴하라! 모두 후퇴하라!”


아군을 향해 목청껏 외치지만 비명과 함성(喊聲)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이제는 연기에 가려 방향 감각도 잃어버렸다. 우왕좌왕하면서 한 명씩 하릴없이 땅으로 쓰러져 가는데······.


간혹 밖으로 튀어나오는 병사는 둘러싼 마린챠의 부대에게 격살되었다. 그런 전장을 둘러보는 진신챠의 얼굴이 마치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목이 터지게 후퇴하라고 외쳐도 멀고 함성에 묻혀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니!


‘안 되겠다. 나라도 살아서 도망가 재기를 꿈꿔야 한다. 죽기는 너무 억울해! 어떻게든 살아야 내일도 있다.’


그래서 마차를 끄는 인부들을 불러 잽싸게 도망가려고 하는데, 멀리서 미라챠가 그 모습을 보더니 오백 명의 정예를 이끌고 득달같이 쫓아왔다.


“진신챠 이놈! 게 섯거라!”


멀리서 지르는 미라챠의 고함이 마치 천둥소리처럼 진신챠의 고막을 때렸다.


그러자 더욱 마음이 급해진 진신챠. 급한 마음에 채찍으로 인부들을 짐승을 치듯이 사정없이 후려치자 비명 소리와 함께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었다.


결국 채찍을 견디지 못한 인부들이 모두 줄을 던져 버리고 잽싸게 도망쳐 버렸다.


이러다가는 맞아서 죽게 생겼으니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모두 주군인 진신챠를 나 몰라라 하고 등진 채 말이다.


망연(茫然)한 얼굴로 쳐다보던 진신챠가 마차에서 내리더니, 호위의 옷을 빼앗아 갈아입고 얼굴과 옷에는 사방에 널린 피와 흙을 묻혔다.


그래도 혼자만 살겠다고 호위들마저 버리고 잽싸게 내빼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부하 하나가 부아가 치밀어서 달리는 앞쪽에 슬쩍 다리를 걸었다.


“어이쿠! 이놈들이······.”


결국 부하들에게까지 인망을 얻지 못한 진신챠는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달려온 미라챠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진신챠의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거나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고, 심복들과 마차에 데려온 은모야차 여자들은 대부분이 포로(捕虜)가 되었다.


진신챠는 전신이 오랏줄로 꽁꽁 묶인 채 마차 앞에 무릎이 꿇린 자세로 앉아서 허망하게 전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나?’


그 모습이 마치 허수아비 같았다.


야신이 생포되자 전투도 끝이 났다. 마린챠와 미라챠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적이나 도주하는 적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아무리 적이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했고 또한 동족이지 않은가? 죄가 있다면 그들이 아닌, 그들을 사주한 진신챠와 그 심복들에게 있을 뿐이니.


아침 해가 뜨자마자 시작한 전투가 해가 서산에 걸려서야 끝이 났다.


불탄 벌판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부상당하고, 독에 중독(中毒)되어 신음하고 있었다.


이날 진신챠의 부대는 이십만 명 중에서 십이만 명이 죽고 오만 명이 부상당하거나 독에 중독되었으며, 삼만 명은 싸우다가 도주하였다.


마린챠의 부대는 삼만 명이 죽고 이만 명이 부상을 당했고······.


중독된 사람은 해약으로 치료를 하였으나 중상자들이 또 많이 죽어 나가니 결국 이 전장에서 십육만 명이 넘는 야차족이 벌판에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


전쟁이란 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같았다.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시신과 독에 중독되어 전신이 짓물러 죽어 가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노릿하고 구역질 나는 살 타는 냄새가 연기를 타고 퍼져 나가니 세상에 이런 지옥(地獄)이 따로 없었다.


이긴 사람이나 진 사람이나 모두 망연자실(茫然自失)하여 허망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들판에는 수많은 시신이 한을 머금고 널려 있건만, 태양은 변함없이 붉은 노을을 뿌리며 서산으로 넘어간다. 마치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처럼 말이다. 자연이 악귀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인간들에게 무슨 관심이 있으랴. 그저 말없이 바라볼 뿐이지.


갈가마귀와 독수리 그리고 들짐승 수천 마리가 떼를 지어 만찬을 즐기니, 싸운 자들은 지옥을 오가는데 지켜본 들짐승과 날짐승은 천국을 오가는 세상!


이렇게 복수극으로 시작된 전쟁이 끝난 이 벌판은 수많은 야차족의 원념이 싸인 곳이라 하여 나중에 ‘야원평(夜怨平)’ 또는 차원평(叉怨平)이라고 불리고, 야차족 지도자들에게는 자성(自省)의 장소가 되었다.



마린챠 모녀는 전장을 수습하고 진신챠와 사로잡힌 그의 심복들을 모두 끌어다가 자신들 앞에 꿇어앉혔다.


“나를 욕보이지 말고 어서 죽여라!”


그래도 야신이랍시고 고개를 빳빳이 추켜들고 말하는 진신챠에게 마린챠가 거칠게 쏘아붙였다.


“진신챠! 너는 욕보일 가치도 없는 놈이다. 여봐라! 이놈을 당장 오체분시해서 혈천귀범에게 먹이로 던져 주고, 심장은 뽑아서 이리 가져오너라!”


심장(心臟)을 뽑아 오라는 말에 진신챠가 치를 떨었으나, 곧 끌려가서 목이 떨어지고 사지가 잘려 혈천귀범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은 가고 펄떡거리는 심장만 남아서 형을 집행한 병사의 손에 들렸고.


마린챠는 아직도 펄떡거리는 진신챠의 심장을 그대로 우두둑거리며 씹어 먹었다. 핏물이 입술을 타고 흐르니 그 모습이 진짜 야차나 다름없었다.


원수(怨讐)의 시신을 짐승처럼 구워서 먹는 그들이니 오죽 하겠는가? 그 모습을 보고 모두가 무서워서 몸을 떨었다.


잘 보아 두어라. 배반하면 너희도 이렇게 될 것이다. 그것을 노리는 것일까? 그러나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서 십수 년을 모진 고생을 하면서 한을 품고 복수의 칼날을 갈아 온 마린챠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야차족의 풍습을 고려할 때 말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않던가?


나머지 심복들도 모두 오체분시해서 범의 먹이가 되었고 사로잡힌 은모야차 여자들과 항복한 포로들은 그냥 놓아주었다.


이렇게 십 수년의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마린챠 모녀의 복수가 막을 내렸다. 살아남은 전사들을 이끌고 야아란에 입성하니 진신챠의 학정에 시달리던 부족민들이 모두 달려나와서 두 손을 들고 환영하였다.


마린챠는 그동안 진신챠에게 충성했던 부하들을 모두 불러서 자신에게 불복하는 자들은 산 채로 뱀에게 먹이거나 죽여서 범의 먹이로 던져 주었다.


오직 야차족의 맹세(?)로 충성(忠誠)을 서약한 자들만 부하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또 혀를 잘못 놀려 마린챠의 발길에 차이고 아파서 꺽꺽대는 녀석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 * * * *


쥬맥은 생각이 바뀌니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니 습관과 주변 환경이 따라서 바뀌었다.


힘이 들 때도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띠고 어렵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은 자기가 나서서 먼저 일하니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좋아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는지 혹시 연예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냥 웃음으로 대신했고 말이다.


항상 웃으니 사람들이 ‘혹시 머리가?’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간혹 있었으나, 말과 행동(行動)이 올바르니 곧 생각을 바꾸었고 따라서 모두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리고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위험한 일에는 항상 무술이 뛰어난 쥬맥을 앞장세우니, 힘든 만큼 또한 남보다 많은 공적을 쌓고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수르도 항상 쥬맥 옆에 붙어 다니며 수족처럼 도와주니, 남들이 친구 사이인 둘을 이란성(二卵性) 쌍둥이가 아니냐고 얘기할 정도였다.


쥬맥에게 가려서 그렇지 수르도 무술이 많이 늘어서 쥬맥을 빼면 소속된 소부족에서는 당할 사람이 없었다.


이런 세월이 꿈결처럼 흘러 3년이 지나니 어느덧 둘은 나이가 스물다섯이 되었다. 바로 한창 물오른 청년기.


그런데도 아직까지 불타는 사랑 한 번 못 해 보고 수르하고만 어울려 지냈다. 마치 동성연애라도 하는 듯이.


쾌청한 날씨에 해가 떠오르자 오늘도 쥬맥은 금령월에게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병역 기간 5년이 이미 지난해 봄에 끝났고, 수르와 함께 계속해서 부족의 무사로 남기로 하여 급료(給料)도 꽤 올랐다.


이제 아침저녁은 자신이 해결해야 하지만 그건 산속에서 혼자 살아온 쥬맥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수르가 같이 가자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와~ 무슨 노래야? 처음 들어보는데도 듣기가 너무 좋은데.”


“응, 비월족 노래야.”


“네가 비월족 노래를 어떻게 알어?”


“어릴 때 산속에서 금령월이라고 비월족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때 그 녀석에게 배웠어. 참! 그 녀석은 지금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


“와~ 너는 정말 많은 일을 겪었구나! 그 노래를 우리말로 만들어서 부르면 정말 인기 짱이겠다. 한번 해 봐라.”


“실은 악기를 켜면서 부르면 더 멋진데 너무 오래되어서 완전히 부서졌다.”


쥬맥이 아쉽다는 듯이 금령월이 주고 갔던 악기를 들고나와서 보여 주었다.


나무로 몸통을 만들고 동물의 심줄로 가는 줄을 만들어 튕기는 악기는, 몸체 중에 울림통 역할을 하는 곳에 금이 가 있었다. 줄도 끊어져 있었고···.


소싯적 친구와의 추억(追憶)으로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수르가 비파 비슷하게 생긴 악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말했다.


“이거 만들기가 어렵지 않겠는데? 너 내공(內功) 많잖아? 그거 두었다 뭐하냐? 한번 좋은 목재를 깎아서 만들어봐. 그 단단하다는 자철목으로 만들면 튼튼해서 오래 갈 거 아니냐?”


“자철목은 쇠처럼 단단해서 무기도 만드는 나무잖아. 그걸 어떻게 깎아? 그러다가 한세월 다 가겠다.”


“내공이 3갑자가 넘는 놈이 엄살은, 소도에 도기를 실으면 되잖아? 못 해?”


“그럼 오늘 사다가 한번 만들어 볼까? 옛 친구를 위해서······.”


“그래, 일과 끝나고 나랑 같이 나무랑 줄을 만들 재료나 사러 가자.”


“그런데 줄은 또 무엇으로 구하지? 소리가 잘 나야 하는데······.”


“야, 이 바보야! 계속 입 아프게 할래? 안 되면 좋은 금속을 사다가 네가 가늘게 줄을 만들어서 쓰면 되잖아? 손에 수강까지 쓰는 놈이 양기를 실어서 가늘게 늘리면 왜 안 되냐? 삼매진화!”


“와~ 너 그러고 보니 천재(天才)다, 응?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그런데 그런거나 만들려고 죽어라고 무공을 수련한 것은 아닌데······.”


“임마, 무공을 사람 죽이는 데 쓰는 것보다는 백 번 낫겠다. 안 그래?”


“그 말도 맞네. 그럼 한번 만들어서 시험이나 해 보지 뭐.”



이렇게 해서 둘은 일과가 끝나고 나무들을 파는 목재상(木材商)에 들렀다.


수르가 당당하게 앞장서서 들어가더니 가게에 쌓여 있는 나무들을 둘러보며 오십 대 주인을 보고 묻는데······.


“아저씨! 여기 혹시 자철목 없어요?”


“자철목은 너무 비싸서 내놓고 팔지 않는다네. 아리(峩理)별에서 가져다 키운 묘목이 자라서 이제야 겨우 쓸 만한 목재가 나오는 중이거든.”


“비싸도 한번 보여 주세요. 꼭 필요한 곳이 있어서요.”


“잠시만 기다리게. 겨우 하나 구해다 놓은 게 있어.”


그러면서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더니 가로세로가 각 한 자에 길이가 여덟 자쯤 되는, 진한 자주색을 띤 나무를 낑낑대며 들고나왔다.


“이 나무가 쇠처럼 너무 강해서 무게도 제법 나가거든.”


“그런데 가격은 얼마나 해요? 다른 데는 별로 비싸지 않던데······.”


“무슨 소리야! 이 나무는 부르는 게 값일세. 다른 데도 들러서 온 모양이니 내가 본전(本錢)치기로 주지. 금령으로 세 개만 내게.”


“아니, 너무 비싸네요. 다른 목재상에서는 금령 두 개밖에 안 하던데요?”


“그건 본전치기도 안돼. 금령 두 개에 적령 다섯 개만 내게. 아니면 말고.”


“맥아! 네 거니까 돈은 네가 내라. 나보다 훨씬 부자잖아?”


“알았어 임마! 아저씨, 여기요. 금령 세 개입니다.”


계산을 끝내고 물건은 맡겨 둔 뒤, 이번에는 줄을 만들 재료를 사기 위해서 대장간을 찾아 나섰다.


비록 뒷골목에 위치해 있지만 주거지에서 가장 큰 대장간은 용광로에서 나오는 열로 내부에 열기가 가득 찼고, 장단을 맞추어 쇠망치를 두드리는 소리가 무척 요란했다.


주인인지 열기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머리가 훌렁 벗겨진 칠십 대가 헐렁한 작업용 상의를 걸친 채 나오더니, 무슨 일로 왔느냐는 듯이 둘을 훑어보았다.


“어서들 오게. 뭐 찾는 거라도 있나?”


그러면서 쥬맥이 메고 있는 백호제마검(白虎制魔劍)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역시 붙임성 좋은 수르가 먼저 앞으로 나서더니 싹싹하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 지난번에 한 번 왔잖아요. 못 알아보시겠어요?”


“아~ 그때 도를 수리해 간 그 친구군. 그래, 그 도는 잘 쓰고 있나?”


“예, 아주 새것과 다름없습니다. 오늘은 좀 다른 것들을 사려고요. 혹시 가늘게 늘려도 잘 안 끊어지고 소리가 좋은 금속이 없을까요? 악기처럼 맑고 고운 소리가 나는 금속이요.”


“그런 것은 있어도 값이 비싸지. 찾기도 힘들고. 사는 사람도 없거든.”


“그럼 있다는 말씀이에요 없다는 말씀이에요?”


“음~ 내게 조금 있기는 한데, 실은 함부로 내돌릴 게 아닌데······.”


은근히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한 번 쥬맥의 백호제마검을 힐끗 보았다.


“자네가 그 검의 주인이 되었군. 정말 좋은 검이니 잘 쓰게.”


“아니, 이 검을 아세요? 지난 영웅대회의 영웅이 바로 이 친구예요. 그때 상품으로 받은 명검이거든요. (귓속말로) 태을현철로 만들었대요.”


“이 사람아! 그 뒷마무리를 내가 한 것일세. 태을 선인과 함께 청룡과 백호 신수를 찾아가서, 태을현철을 녹여 틀을 만들고 숨결을 불어넣은 것을 내가 다듬은 거야. 그때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지 아나?”


수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랑스럽다는 듯이 그때 고생했던 얘기들을 손짓까지 해 가며 줄줄이 들려주었다.



아리별에서 태을현철 다섯 덩이를 가져오다 천둔산에서 이동 시 두 덩이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찾지 못했다.


세 덩이가 남은 것 중에서 한 덩이를 힘센 여러 무사들에게 외발 수레에 실어 끌게 하면서 태을 선인과 함께 신수 청룡을 찾아갔고, 그 숨결로 녹여 내어 신검용(神劍用)으로 검 다섯 자루를 만들었다 한다.


그리고 남은 것은 여러 가지 금속과 배합하여 고강도이면서도 유연하고, 융점이 태을현철보다 낮은 합금(合金)으로 만들었고.


그래야 나중에 다시 신수들을 찾지 않고도 무기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무사들을 돌려보내고 태을 선인과 백호제마검을 만들 틀을 가지고 백호 신수를 찾아갔는데, 오가는 길에 고생(苦生)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무런 법력도 내공도 없는 장인이 선인을 따라다니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푸념을 하면서도 애틋한 눈으로 백호제마검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결국 자네가 그 검의 주인이 되었군. 내 모든 것을 담아서 만든 역작(力作)이니 부디 잘 사용하게. 그런데 그 검집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자네가 주인이니 알고 있겠지?”


“우선 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잘 쓰겠습니다. 그런데 검집은 무슨 말씀이신지요?”


“검집에 대해서는 모르나?”


“검집은 검을 보호하고 평시에 검날에 사람이 상하지 않게 넣어 두는 말 그대로 검집이잖아요?”


“이 사람아! 내가 얼마나 심혈(心血)을 기울여서 만들었는지 아나? 잠시 검 좀 보여줄 수 있겠나?”


사실 무사의 검을 남이 만지고 보는 것은 대단한 실례였다.


하지만 온갖 고생을 해 가며 심혈을 기울여 그 검을 마무리한 대장장이라고 하니 선뜻 등에서 검을 풀어 건네주었다.


대장장이가 검을 받아서 마치 자식을 어루만지듯이 쓰다듬더니 검병을 잡고 검을 뽑아내자 날카로운 예기가 서린 하얀 검날이 눈부시게 빛났다.


대장장이는 전문가답게 빛을 검날에 반사시켜서 이리저리 비춰보면서 반사하는 빛의 색깔을 주요 부위별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각 부위를 가볍게 튕기면서 울리는 소리를 귀담아들었다. 아마 그 소리에도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탁한 소리, 맑은 소리, 떨리는 소리.


이번에는 어디에 무게의 중심이 잡히는지 저울질하듯이 확인하였고······.


“음~ 좋군!”


그러면서······.

63화 야원평 위치 지도.png

63화 야원평 위치 지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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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7화. 불타는 것은 재를 남기고 21.07.05 1,331 45 19쪽
76 76화. 뜨겁게 타오르는 불 21.07.04 1,334 45 18쪽
75 75화. 사랑의 불씨 +1 21.07.03 1,355 46 18쪽
74 74화. 새로운 인연 +1 21.07.02 1,357 4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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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2화. 신의와의 새로운 인연 21.06.30 1,359 45 19쪽
71 71화. 점박이 별이와의 재회 21.06.29 1,345 45 18쪽
70 70화. 피 끓는 혈전 21.06.29 1,338 46 19쪽
69 69화. 백호대와 야차족의 전투 21.06.29 1,349 47 19쪽
68 68화. 백호대 대장이 되다 +1 21.06.29 1,341 46 19쪽
67 67화. 비월족과 소인족의 격돌 21.06.29 1,354 46 19쪽
66 66화. 유리의 결혼 21.06.29 1,353 47 18쪽
65 65화. 금령파와 금령신공 21.06.29 1,366 47 19쪽
64 64화. 백호제마검의 비밀 21.06.29 1,365 47 19쪽
» 63화. 마린챠 모녀의 복수 21.06.29 1,362 47 19쪽
62 62화. 새로운 출발 21.06.29 1,387 44 19쪽
61 61화. 기다리는 지혜를 배우다 21.06.29 1,361 46 19쪽
60 60화. 야차족과의 충돌 21.06.29 1,344 46 18쪽
59 59화. 길거리 생사결(生死決) 21.06.29 1,347 47 18쪽
58 58화. 영웅(英雄)이 되다 21.06.29 1,358 48 21쪽
57 57화. 비루먹은 망아지라고? 21.06.29 1,361 47 18쪽
56 56화. 영웅대회(英雄大會) 21.06.29 1,363 4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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