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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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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61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5.04 10:25
조회
5,453
추천
117
글자
8쪽

< #5. 하주(河州) 15-1 >

DUMMY

작은 길을 뛰쳐나오는 류는 길이 너무 멀다고 생각했다. 너무 멀다고. 다친 다리를 절룩여서가 아니다.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아 그러는 것도 아니다. 조급한 마음에 비교해 더디게 보이는 빛 때문이다. 저 빛 속으로 나아가 어서 사람들을 데려와야 한다. 아니면 형이 죽는다.


형을 뚫었던 검. 분명 치명상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울부짖듯 포효한다. 형은 상처받았다. 그리고, 형 곁에 남지 못한 류도 상처받았다. 하나 남은 혈육이다. 그리고 류 때문에 저렇게 됐다.


"아아아아!"


류는 형처럼 고성을 지르며 달렸다. 가느다란 동굴 길 사이로 메아리쳐진다. 그건 형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곧 달려갈 테니 조금만 버티라는 그런 응원이다.


빛이다.


이 상황을 구원해줄 빛이다. 눈물이 흐른다. 깊숙한 동굴 안에서는 아직도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류의 등을 밀어댄다.


암흑을 뚫고 나와 빛에 몸을 맡겼다. 눈이 부시다. 희망인가? 아니다. 눈이 천천히 돌아왔을 때 보이는 건 멀리서 누군가를 짓밟는 청랑대의 모습이었다. 녀석들은 잔뜩 창이 꽂힌 시체를 말로 짓밟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몸을 돌려 가까운 숲을 향해 달렸다. 녀석들이 보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가장 가까운 요새가 어딘지 찾아 병사들을 끌어와야 한다. 그들마저 고람의 손이 닿은 녀석들이라면? 불안감이 머리를 스치지만, 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도련님! 같이 가요. 볼일이 있다니까···."


"서운하네. 우리 같은 밑의 것들하고는 말도 안 섞는다는 건가? 버릇을 좀 고쳐야겠어."


말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녀석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저 숲까지만이라도 들어간다면 뭔가 방법이 생길 텐데······. 어느새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진다. 녀석들의 더러운 숨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다. 말들아. 그렇게 힘겹게 호흡하며 달릴 필요는 없을 텐데 야속하구나.


"젠장!"


숲길로 접어든 류는 길에서 벗어난 덤불로 몸을 던져버렸다. 등 뒤로 허공을 가르며 칼이 지나치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의 아쉬운 목소리가 투덜댔지만, 류는 바닥을 기며 말이 들어오기 힘든 좁은 나무 사이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아까워. 더럽게 빠른 놈이야. 어쩌지 고람 나리가 난리 칠 텐데···."


"괜찮아. 여기 봐봐. 핏자국이 크다. 뭐 슬금슬금 쫓아가면 되지. 도움받을만한 마을도 몇 리가 넘는데 말이야. 간만의 사냥이다."


"좋아. 내기하자. 은자 하나씩 어때?"


"목 베는 녀석이 다 갖는 거지? 그렇지······."


녀석들이 한창 즐거운 듯 떠드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개처럼 쥐처럼 바닥을 기어가는 류의 눈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하지만 가까운 마을이 몇 리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서 울렸다.




***



백련은 처음에는 겸이를 우습게 보았다. 마비산에 손과 발이 떨리는 주제에. 지금도 눈을 계속 깜빡거리며 거리를 잡지도 못하는 저 모습에. 배를 뚫고 지나간 검상에 피를 철철 흘리는 상황에.


하지만 녀석은 목숨을 걸고 싸운 경험이 많았다. 기세가 넘치며 느려지는 와중에도 뒷목이 오싹거리게 찔러 들어왔다. 백련조차 쉬이 이기지 못하고 시간을 끌자, 주변의 사냥개들도 도우려 다가왔다. 하지만 방해될 뿐이었다. 겸이가 휘두르는 창은 좁은 길목 안에서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다가서기 힘든 상황.


유려한 검술로 일대일 대결을 즐기던 백련은 짜증이 나자 이마에 깊게 한 줄이 패어버렸다.


"바보들! 활을 가져와. 그래서 녀석을 쏘란 말이다."


뒤쫓아온 고람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사냥개들은 파해 법을 알았다는 듯이 허둥지둥 자신의 말로 뛰어가 활을 챙겨오기 시작했다.


"제길, 겁쟁이들아. 눈을 마주 보고 덤빌 각오는 없는 거냐? 백련 네놈도 결국 그 정도냐?"


겸이의 말에 대답은 날아드는 화살뿐. 백련은 우두커니 한쪽으로 비켜나 화살에 꿰뚫리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앗!"


극을 휘두르며 화살을 쳐내던 겸이의 어깨에 화살이 꽂혔다. 연이은 화살이 허벅지와 배에 꽂힌다. 목을 꿰뚫고 지나 가버린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뼈를 지나쳐 날아갔다. 목을 뚫고 나온 화살 깃은 붉어져 살점 덩어리를 머금은 채 날아갔다.


기도마저 다쳐버린 겸이가 무릎을 꿇는다. 백련의 검에 뚫린 복부에서 피가 멈추지 않는다. 다시 날아든 화살이 극을 잡고 겨우 버티던 겸이의 팔목을 맞췄다. 손목 인대가 끊어지며 무너지듯 앞으로 넘어져 버렸다.


다가가 백련은 겸이의 목 뒤에 검을 내려치려 했다. 그때 겸이가 무언가 웅얼거린다. 다친 기도 때문에 목소리가 새버린다. 그래도 차분한 말투다. 겁먹지 않고 뭐라고 한다.


'결국, 욕일 뿐인데, 궁금하구나.'


백련이 무릎을 꿇어 겸이의 목을 잡아 올렸다. 여전히 입은 무언가를 웅얼거린다. 잘 들리지 않는다. 눈빛이 애처롭다. 뭔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다.


다가간다. 잘 안 들린다. 조금 더.


이제는 들린다.


"지금 보니까, 잘 생겼다. 너······. 다···. 다른 사람들도 조···. 좋아하겠지?"


살려고 아부라도 떨 생각인가? 갑작스러운 말에 백련은 우습다는 듯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귀찮게 하기는 했으나 고통 없이 죽여줄까? 백련의 귀에 겸이가 힘들게 말을 이었다.


"왕이 되면······. 멋진 왕이 되고 싶겠지? 알았어. 도와주지."


"......"


무슨 뜻인가 잠시 생각에 빠진 백련의 얼굴에 겸이가 입을 벌려 달려들었다. 크고 오뚝한 코를 이빨로 한 움큼 깨물어 끊어내 버렸다.


"으아아!"


피가 터져 나오는 코를 양손으로 잡고 일어선 백련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고람도 그 꼴을 보더니 '안돼'라며 외치며 달려와 백련을 안았다.


"그래···. 문둥이 왕이라 손가락질받거나······. 평생 가면이나 쓰고 살아라. 크크"


고람이 칼을 집어 들고 겸이를 치려 했다. 하지만 백련이 검날을 잡아 뺏었다. 고람은 당황한 눈빛으로 백련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 아름다운 피조물. 완벽한 아들. 위대한 왕. 상처가 크다. 오뚝했던 코는 사라지고 볼품없게 생긴 숨구멍 두 개만 보인다. 고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계속 키득거리는 겸이에 백련이 다가섰다.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거칠게 내려찍은 칼이 목을 가르고 땅에 박혀버렸다. 백련은 분을 못 이겨 검을 빼 들고 잔인하게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분노에 가득 찬 백련을 고람은 아연하게 쳐다볼 뿐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지금 건들면 저 검이 자신에게 떨어질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말이다.



***


핏자국을 숨기려 숲속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을 첨벙첨벙 가로지르고 있었다. 녀석들의 주의를 돌려야 한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며 핏자국을 숨기고 반대쪽으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거봐, 올라간다고 그랬지?"


"그러게···. 피가 흘러내려도 금방 흩어져서 상관없다고 그러는데······. 왠지 도망치면 꼭 상류로 가더라고."


"그게. 심리인 건가? 하긴 하류로 가면 뭔가 우거진다는 느낌이 없으니까 본능적으로 올라가나 보네."


강변 양쪽에서 기병들이 천천히 말을 몰아 나왔다. 녀석들은 창을 빼 들고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창날 곳곳에 붉은 피가 묻어 있는 게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류는 강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녀석들이 비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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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6. 검귀(劍鬼) 2-1 > +8 18.05.06 5,629 123 8쪽
58 < #6. 검귀(劍鬼) 1-2 > +13 18.05.05 5,812 123 8쪽
57 < #6. 검귀(劍鬼) 1-1 > +8 18.05.05 6,262 117 7쪽
56 < #5. 하주(河州) 15-2 > +13 18.05.04 5,689 118 9쪽
» < #5. 하주(河州) 15-1 > +16 18.05.04 5,454 117 8쪽
54 < #5. 하주(河州) 14-2 > +14 18.05.03 5,343 127 7쪽
53 < #5. 하주(河州) 14-1 > +16 18.05.03 5,437 121 7쪽
52 < #5. 하주(河州) 13-2 > +10 18.05.02 5,394 116 8쪽
51 < #5. 하주(河州) 13-1 > +4 18.05.02 5,523 111 8쪽
50 < #5. 하주(河州) 12 > +7 18.05.01 5,814 118 16쪽
49 < #5. 하주(河州) 11 > +2 18.05.01 5,914 123 14쪽
48 < #5. 하주(河州) 10-2 > +4 18.04.30 5,757 128 8쪽
47 < #5. 하주(河州) 10-1 > +7 18.04.30 5,868 126 8쪽
46 < #5. 하주(河州) 9 > +5 18.04.29 6,202 124 16쪽
45 < #5. 하주(河州) 8 > +6 18.04.29 6,450 132 16쪽
44 < #5. 하주(河州) 7-2 > +11 18.04.28 6,128 129 8쪽
43 < #5. 하주(河州) 7-1 > +4 18.04.28 6,282 135 8쪽
42 < #5. 하주(河州) 6 > +13 18.04.27 6,724 143 13쪽
41 < #5. 하주(河州) 5 > +6 18.04.27 6,542 132 12쪽
40 < #5. 하주(河州) 4 > +5 18.04.26 6,750 145 15쪽
39 < #5. 하주(河州) 3 > +9 18.04.26 6,984 155 12쪽
38 < #5. 하주(河州) 2 > +5 18.04.25 6,928 148 13쪽
37 < #5. 하주(河州) 1 > +13 18.04.25 7,186 165 12쪽
36 < #4. 태평루 9 > +13 18.04.24 6,919 156 13쪽
35 < #4. 태평루 8 > +7 18.04.24 6,998 14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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