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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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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33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4.28 10:25
조회
6,281
추천
135
글자
8쪽

< #5. 하주(河州) 7-1 >

DUMMY

새로운 세상이라······. 과연 그랬었나?'


류는 성안을 거닐기로 했다. 간간이 순라를 도는 병사들이 보였지만 모두 조용히 잠들었는지 사람 기척 하나 없는 고요한 밤이다.

하늘에 높이 뜬 달에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무얼까? 뭔가가 비어있나. 곁에는 야초오가 묵묵히 걷는다.


'뭐? 밤에 성을 돌아다닌다? 안된다. 여긴 아직 적지라고 생각해야 해.'


형은 자신이면 몰라도 허접스러운 류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병사를 붙이려 했다. 그때 야초오가 마유주나 한잔 걸치겠다고 일어서니 자연스레 둘이 짝이 돼버렸다.


'형님, 평소와 달리 조심성이 많아졌어요. 좀 당황스럽네요.'


'전······. 전에는 말이야. 별로 죽음이 겁나지 않았어. 그냥 피해갈 거 같았거든. 죽음이란 게 날 피해서 말이야. 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면 참 막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네?'


'화살이 쏟아져도 말을 몰아 궁수를 향해 달려들었지. 미친 짓이야. 눈이 안 달린 화살이 내 목에 꽂힐지······. 아니면 말의 정수리를 꿰뚫고 그 덕에 내가 나가떨어질지······. 모를 일이지. 이제는 좀 겁을 내며 살련다.'


류의 말에 겸이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는 살아가기 위한 목적이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은 그래도 필요할 때는 예전처럼 싸울 것이다. 핏줄을 돌아다니며 온몸에 가득 차 있는 용기라는 게 그리 쉽게 식지는 않을 사람이다.


"자, 다 왔어요. 저도 슬슬 돌아갈 테니 먼저 들어가세요."


적당한 산책과 함께 돌아가려는 류의 손목을 야초오가 거침없이 잡는다. 그윽한 눈빛이다.


"친구는 술을 같이 한다. 조금 마신다. 좋다?"


몇 번이나 손을 빼려고 했지만, 야초오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끌려가 버렸다. 둘이 들어서자 반기며 나온 기루의 여자주인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한동안 야초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방을 안내하더니 이내 자신이 자리를 잡고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예쁜 기녀들이 문밖에서 고개를 살며시 들이대며 구경을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긴 뒷머리를 넘기며 과묵하게 술을 받아 마시는 야초오의 옆모습을 보니 알 것 같다. 이런 과분한 환대는 류가 아니라, 야초오에 향하는 것이니 자리를 피해줄 수밖에······.

어느덧 술에 취한 야초오의 어깨에 매달린 주인은 엉큼하게 어깨를 살며시 드러내고 있었고, 질세라 젊은 기녀 둘이 허벅지를 주무르며 넌지시 다리를 드러내어 야초오의 손을 끌어당긴다.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살며시 빠져나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 씁쓸할 뿐이다. 커다란 홀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귀에 익숙한 음색이 들려온다.

웅장하지만 슬픈······. 처연한 피리 소리가 살며시 귓가에 들리고, 피리 소리를 살며시 뚫고 읊조리듯 편안히 하는 노래가 들린다.


절로 발걸음이 향했다.



***



류의 발이 멈춘 곳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방문 앞.


아름다운 소리에 홀려 이끌려왔다. 방문을 열려던 류의 뇌리에 소녀의 눈빛이 떠올랐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발을 돌리려던 순간, 형이 옛날에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찝찝하게 그냥 놔두냐? 남자라면 말이야. 뭐가 불만인지 털어놓아 봐.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그냥 싫다고 하면 말이야. 나도 싫어. 이렇게 얘기하고 주먹을 날려라.'


동네 아이 중 한 녀석과 서먹해 고민하던 때 해준 얘기였다. 알고 보니, 녀석의 아버지가 전쟁 때 죽어서 군인들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산원의 아들인 류만 보면 괜히 말을 섞기가 싫다고 말이다. 결국, 주먹다짐하기는 했지만 친해질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도 서경 김씨가문인가 보네.'


서경 김 씨는 이런 일을 피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뇐 류는 방문을 열려 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하자, 선예야. 마음에 담긴 건 그냥 풀어버리자. 원한은 원한을 낳는 법. 그냥 산으로 돌아가자. 고려로 돌아가자.]


[사부님도 제 생각에 동의하셔서 같이 오신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네가 가니, 따랐을 뿐. 잘못된 길로 빠진 건 하나면 족하지 않으냐?]


류는 대화가 신경 쓰였지만 반가움이 컸다. 문을 열며 웃으며 얘기했다. 노인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별 움직임이 없었지만, 소녀만 화들짝 놀란다.


"고려분들이군요. 아······. 무례한 건 용서를 구합니다만. 지나가다 반가운 마음에 말입니다."


고개를 조아린 류를 노인은 웃으며 반겨줬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여전히 냉담한 표정으로 쏘아보기만 하고는 입을 닫아버렸다.


"말투로 보아 알고 있었습니다만 높으신 분인 것 같아 조용히 있었을 뿐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도련님."


"아닙니다. 그냥 반가워서 그렇습니다. 아, 이곳에 저의 형님이 방어사로 계십니다. 그리고 열댓 명정도 고려사람이 더 있어요. 적적하시면 한번 관아로 오시죠. 제가 소개를 하겠습니다."


"생각보다는 친절하신 분이군요."


노인과의 대화는 계집아이의 차가운 말로 깨졌다. 노래할 때는 하늘을 걷는 선녀 같은 목소리였는데, 류를 대할 때 다르다.


"그러시면 가시죠. 저희가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드릴게요. 갈 일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계집의 당돌한 축객령에 류는 화가 치밀었지만 참으며 인사를 했다. 돌리려는 발걸음을 노인이 막았다.


"분명 오신 이유가 있었을 텐데···. 어쩐 일이신지요?"


"아, 어르신과 저 아이의 음색이 너무 좋아 발이 절로 오게 됐습니다. 막무가내로 들어와 부탁을 드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오겠습니다."


노인은 류의 말에 함빡 웃으며 '음을 아는 사람은 지인'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손으로 자리를 가리켜 앉으라 하고 피리를 들어 입에 갖다 댔다.


피리의 전주가 흐르는 동안, 생뚱맞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닫았던 소녀는 노인의 눈초리에 입을 열어 노래하기 시작했다.


"수렴에 기대 쉬니 버들솜 날려"

"눈가 찌푸리며 마음 갈피 못 잡네"

"꽃 꺾어 눈물 씻고 기러기에 묻노니"

"너 혹시 우리 낭군 보았는지고."


소녀는 노래할 때 아름다운 목소리로 류를 행복하게 해줬다. 눈은 이글이글 불타올랐지만 말이다. 불편함에 노래가 끝나자 류는 안주머니를 뒤져 은자를 꺼내려 했다.


"은자는 받지 않습니다. 혹시 은자로 몸을 사실 생각인가요?"


당돌한 질문에 류는 당황하면서도 이제는 화를 참지 못했다. 입을 열어 호통을 치려다 겨우 가다듬어 말을 할 수 있었다.


"아니, 뭐 나도 그리 크지는 않으나, 꼬맹이하고는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네."


"오···. 나이 든 사람들은 저 같은 또래를 좋아한다고 하더이다. 뭐 회춘이라 뭐라 하면서······. 좋은 음악을 들려드렸으니 대신 뭔가 보답을 받고 싶습니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피식 웃으며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서 벽을 향해 걸어갔다. 장식으로 걸린 쌍도를 만지작거리더니 걸이에서 뽑아냈다.


"뭐···. 뭐냐?"


"저도 조금은 검을 다룰 줄 압니다. 도련님도 허리에 차신 검이 장식이 아니라면 다룰 줄 알겠지요. 제 재주를 보셨으니, 도련님의 재주를 한번 보여주시면 어떨는지요?"


소녀는 검을 눈앞에서 엇갈려 들고는 말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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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5. 하주(河州) 15-2 > +13 18.05.04 5,689 118 9쪽
55 < #5. 하주(河州) 15-1 > +16 18.05.04 5,453 11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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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 #5. 하주(河州) 13-2 > +10 18.05.02 5,393 116 8쪽
51 < #5. 하주(河州) 13-1 > +4 18.05.02 5,523 111 8쪽
50 < #5. 하주(河州) 12 > +7 18.05.01 5,814 118 16쪽
49 < #5. 하주(河州) 11 > +2 18.05.01 5,914 1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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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5. 하주(河州) 10-1 > +7 18.04.30 5,868 126 8쪽
46 < #5. 하주(河州) 9 > +5 18.04.29 6,202 124 16쪽
45 < #5. 하주(河州) 8 > +6 18.04.29 6,450 132 16쪽
44 < #5. 하주(河州) 7-2 > +11 18.04.28 6,128 129 8쪽
» < #5. 하주(河州) 7-1 > +4 18.04.28 6,282 135 8쪽
42 < #5. 하주(河州) 6 > +13 18.04.27 6,724 143 13쪽
41 < #5. 하주(河州) 5 > +6 18.04.27 6,542 132 12쪽
40 < #5. 하주(河州) 4 > +5 18.04.26 6,750 145 15쪽
39 < #5. 하주(河州) 3 > +9 18.04.26 6,983 155 12쪽
38 < #5. 하주(河州) 2 > +5 18.04.25 6,928 148 13쪽
37 < #5. 하주(河州) 1 > +13 18.04.25 7,186 165 12쪽
36 < #4. 태평루 9 > +13 18.04.24 6,919 156 13쪽
35 < #4. 태평루 8 > +7 18.04.24 6,998 14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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