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46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4.26 10:25
조회
6,983
추천
155
글자
12쪽

< #5. 하주(河州) 3 >

DUMMY

말을 달려 앞선 류의 눈에는 조그만 마을이 보였다. 연기는 불타버린 나무집에서 피어오른 것이다. 마을의 여러 집이 불타버리고 뼈대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불이 났다면 모두 모여 불을 끄는 게 맞을 텐데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비명만이 들려왔다.


‘뭐냐? 혹시 산적이나? 서하 군대가 쳐들어온 것인가?’


비명이 들리는 곳으로 말을 몰며,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비명에 아이와 여자의 목소리도 섞여 있다. 그렇기에 더 서둘렀다.

말을 몰아 마을의 광장인 듯 중앙에 탁 트인 곳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는 듯했다. 모두 무릎 꿇고 겁을 먹은 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둘러싼 사내들은 흉흉한 표정으로 겁을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류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류를 응시했다. 겁먹은 자들은 도와달라는 애원의 표정을···. 사내들은 뭐야? 하는 뚱한 표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준마를 타고 깨끗한 차림새를 보아 평민이 아니라 생각되자 사내 중 나이 먹은 자가 나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 그냥 갈 길이나 가는 게 어떻겠나? 다 이유가 있어 그런 거니까 말이야.”


존대도 아닌 하대도 아닌 애매모호한 말투로 슬쩍 떠본다. 류는 발끈하려다 참는다. 아니 다시 분노가 솟구친다. 어린아이가 겁을 먹은 듯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다. 불을 끄려고 고생을 했는지 얼굴에는 검댕이 거뭇하다. 안고 떨고 있는 아낙도 비슷한 행색이다.


“일행이 있다. 그중 한 분이 성읍으로 부임하는 중이라, 같이 가고 있었다. 그분이 무슨 일인지 알아오라 하셨기에 묻는 거다.”


류는 겨우 분노를 가라앉히고 정체를 최대한 숨긴 채 말을 건넸다. 류의 말에 사내들의 표정이 당혹스러워진다. 서로 소곤소곤하며 상의하는 폼이 난처한 게 분명했다. 여차하면 시비붙을듯한 표정인데 사내가 이번엔 좀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혹시, 새로 오신다는 방어사 나리를 얘기하는 건가요?”


“그렇다.”


사내는 류의 대답을 듣자 입을 열어 욕을 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그러진 표정과 중얼거리는 입 모양은 욕이나 다름없었다. 쏘아보는 류의 눈빛을 본 그는 좀 비굴한 표정으로 자세를 낮춘다. 때마침 말을 탄 기병과 야율모까지 류를 찾아 뒤에 서니, 허리가 더 굽혀진다.


“방어사 나리가 오기 전에 좀 정리를 해야 했는데, 송구합니다. 사실 이 마을이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아, 이리 난리를 피게 됐습니다.”


“세금이 밀렸다고, 살 터전을 박살 내는가?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인가? 관리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야.”


“저흰 향리인 ‘고람’님 밑에서 일하는 세금징수인들입니다. 사실 고람 님도 이리 하기는 싫으셨으나 신임 방어사께서 오셔서 장부와 맞춰보시고 역정을 내면 안 되니까요. 어쩔 수 없이 할 일을 하신 겁니다.”


야율모가 다가와 류에게 넌지시 귓속말을 던진다.


“지방에선 향리들의 힘이 셉니다. 워낙 토착세력인 데다가 하급관리로 일도 꿰고 있어서 말입니다. 적당히 물러나시죠. 그게 서로 좋습니다.”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류는 단호한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다가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외쳤다. 느닷없는 고함에 움찔거리며 겁먹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무엇이 옳은지는 양쪽의 말을 들어봐야 할 터이다. 손해를 입은 사람들, 즉 집이 불타거나 다친 자들은 모레까지 성읍으로 와서 사정을 고해라. 세금과 비교해서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본 자들은 나라에서 배상해줄 것이다. 그리고 고하려면 말이야.”


류는 말을 마치며 움츠리고 있는 사내가 들으라는 듯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얼마나 세금이 부과됐는지도 숨김없이 얘기를 해줘야겠지. 알겠나?”


류의 말에 충격받은 듯 사내들은 주춤 인사를 올리고는 부리나케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일어나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했지만 씁쓸한 뒷맛만 남겼다. 아무도 억울하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고맙다며 인사만 올리고는 류도 부담스럽다는 듯이 서둘러 사라져버렸다.


“쉽지 않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말입니다.”


야율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직 잘 모르는 철부지구나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뭐가 말입니까?”


“관리는 언젠가는 승진하거나 아니면 일을 못 해 그만두거나 해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요. 토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 사람들의 주인 노릇을 했습니다. 바뀔 사람보다는 그들이 더 무섭겠지요.”



***



뒤이어 도착한 일행들은 심각한 표정의 류를 보고는 무슨 일이 있나 생각이 들었나 보다. 겸이는 류를 불러 자초지종을 묻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곧 옆에 다가온 야율모가 몇 가지를 덧붙여 설명하니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그렇구나. 쉽지 않겠구나. 텃세라···.”


“그래요. 형. 그래도 나서서 설레발친 것 같아 송구합니다.”


“잘했어. 난 목이라도 베 버렸을 텐데······. 차라리 첫인상은 네가 나은 편이구나.”


형은 모레 마을 사람들이 고하러 온다면 그때 얘기를 들어보자며 길을 재촉했다. 도착하면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지나치는 일행을 배웅하며 길 양편에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렸지만 아무도 겸이에 억울함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그냥 모두 피곤하고 지친 표정이었을 뿐이다.




***



볼품없이 사라진 세금징수꾼들은 말을 급히 몰아 성읍으로 향했다. 그들은 관청에 도착하자마자 부산을 떨며 고람이라는 관리를 찾았다.


방에 앉아 서류를 이리저리 손보던 고람은 부산스러운 소리에 나와 얘기를 시작했다. 그 곁에는 친한듯한 관리 몇이 더 있었다. 사실 주의 자사인 방어사를 제외하고는 이들이 가장 힘이 센 이들이다. 하주를 좌지우지하는 실세들이다.


“나리, 시키신 대로 일을 했는데 날짜가 잘못됐나 봅니다. 방어사가 생각보다 일찍 오는 바람에 그 일행에게 망신을 당했습니다.”


고개를 조아린 사내는 우물쭈물하다 있었던 일을 고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차분히 듣던 고람은 관노(官奴)를 불러다 차를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험상궂은 표정에 살이 비대하게 쪄서 작은 의자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몸이었다. 하지만 작은 잔을 조심스레 들어 홀짝이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 우습다.


“그렇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세금은 얼마나 거둬들이고 있었느냐?”


“네? 그건 시키신 대로 가구당 쌀 열 섬이나, 가축 다섯 마리 정도로···.”


“허허···. 과하게 거둬들이고 있었군. 그런데 말이야.”


사내는 이상하게 되묻는 고람의 말에 불안을 느끼며 더듬거렸다.


“네, 어르신···. 그런데 무슨 말씀을?”


“누가 널 세금징수인으로 뽑았더냐? 난 널 처음 보는데······. 내 이름을 팔고 다니는 녀석이었더냐?”


“예?”


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고람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병사들이 급하게 달려와 명을 따른다.


“이 녀석을 옥에 가둬라. 거짓으로 백성들을 등쳐먹은 파렴치한이다. 방어사가 오시면 죄의 처벌을 의논할 것이다.”


억울하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지만, 병사들의 몽둥이질에 사내는 이마에 피를 흘리며 질질 끌려갔다. 사내의 뒤에 서 있던 다른 이들은 모두 아연한 표정이었다.


“너희들은 누구에게 명을 받아 세금징수인을 하고 있었더냐?”


정적이 흐르다, 눈치가 빠른 한 명이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저희는 말입니다. 나리를 모릅니다. 그냥 지금 끌려간 병 씨가 일을 맡았다고 거짓으로 꼬이는 바람에 그런 줄 알았을 뿐입니다.”


“그렇군. 그래도 말이야. 속아서 저질렀다 해도 죄는 죄야. 방어사께서 오시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고하도록 해라. 모두 사는 곳과 이름을 써놓고 가보도록···.”


누가 과연 제대로 이름을 써놓겠는가······. 모두 가짜 이름과 주소를 적더니 부리나케 사라져버렸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리 사는 법이다.


소란스럽던 관아의 뜰이 텅 비어버렸다. 고람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곁의 동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음. 사실 오늘쯤이면 방어사와 부딪칠 가능성이 큰데 무리하게 시킨 게 화근이구먼.”


“알아보려 했네. 반응을 말이야.”


“무얼 말인가?”


“대충 이곳에 올 만한 이들은 꿰고 있는데 천둥벌거숭이처럼 뚝 떨어졌단 말이지. 모르겠어. 어떤 성격인지 말이야. 앞으로 서로 잘해나가려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봐야겠다 싶었네.”


다른 관리들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며칠 동안 모두의 최대 관심사가 아니었는가? 새로 온다는 이 방어사의 정체가 말이다.


“어쨌든 깐깐해 보이는 게 그리 좋지는 않겠어. 좀 수그리든가 해야지. 몸 좀 사리면서 말이야.”


“그래야겠군.”


고람은 쓰다듬던 수염 끝을 손가락을 배배 꼬며 힘없게 얘기했다. 뭐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처음에만 고고한 척하는 수도 있으니 잘 구워삶아 보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옥에 갇힌 녀석이 생각 없이 주절대면 어쩌려고? 세금보다 배는 더 걷어서 우리가 챙긴 걸 알면 말이야.”


쥐상의 사내가 슬며시 걱정되는 걸 꺼냈다. 옆의 원숭이상의 사내가 맞받아친다. 고람은 멧돼지상이니 모두 볼품은 없는 사내들이다.


“뭐 털던가···. 아니면 뇌물로 바치던가···. 그래야지.”


“무슨 걱정인가? 엄벌이 무서워서 옥에서 목을 매 죽은 자인데···. 무슨 말을 한다고 말이야.”


고람의 말에 쥐와 원숭이가 꺅꺅대며 좋다고 한다. 역시 생각이 깊은 거로는 고람을 따를 수 없다며 공치사를 해대며 말이다. 그들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바쁜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좀 비는 곳이 많다 보니 이리저리 짜 맞춰야 할 게 꽤 됐기 때문이다. 식량도 보관된 무기도······. 그리고 여러 가지 좀 맞지 않는 게 있어서 말이다. 그래도 오늘만 고생하면 적당히 맞출 수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날을 고생했으니 내일은 신임 방어사의 환영 잔치에서 노곤한 몸을 풀어야겠다며 두런두런 수다를 떨면서 말이다.


“관기 중에 제일 나은 애를 처소에 넣을까?”


“촉심루에 새로 온 애가 예쁘데···. 소주 출신이라는데 속살이 그리 하얗다고 하더군. 그리고 물면 놓지를 않는다고 하던데······. 걔가 낫지 않을까?”


“난 묘심이로 정했네. 자네들은 눈독 들이지 마.”


주로 이런 얘기들 말이다. 그때 방문 밖에서 누군가 조용히 얘기했다. 싸늘하고 무서운 목소리였다.


“고람님, 죄수가 목을 매달았습니다. 이거 경비를 서던 병사가 잠시 측간을 간 사이에 옷을 감아 죽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쯧쯧···. 잘 좀 하지. 방어사에게 내가 무슨 낯으로 말씀드리나? 어휴···.”


“송구합니다.”


“잘 꺼내서 거적에 쌓아 창고에 놓고 말이야. 처음 발견한 녀석의 증언을 받아 놓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천연덕스러운 고람의 말에 방안은 잠시 정적에 쌓였지만, 곧 그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묘심이는 누가 차지한다고? 에이, 나랑 먼저 선약이 있다네. 크크”


“아이, 젠장 먼저 손을 썼구먼.”


“내가 좀 빠르잖나? 하하하”


상사를 기다리는 이들의 밤은 이렇게 늦어져만 갔다. 사실 웃으며 이렇게 얘기하지만, 이들 눈에 벗어난다면 방어사도 꽤 힘들 것이다.


가끔 사고로 죽은 방어사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사, 기사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4 < #6. 검귀(劍鬼) 6 > +10 18.05.08 5,404 122 15쪽
63 < #6. 검귀(劍鬼) 5 > +12 18.05.08 5,471 123 12쪽
62 < #6. 검귀(劍鬼) 4 > +19 18.05.07 5,528 127 12쪽
61 < #6. 검귀(劍鬼) 3 > +9 18.05.07 5,527 119 12쪽
60 < #6. 검귀(劍鬼) 2-2 > +10 18.05.06 5,580 117 7쪽
59 < #6. 검귀(劍鬼) 2-1 > +8 18.05.06 5,629 123 8쪽
58 < #6. 검귀(劍鬼) 1-2 > +13 18.05.05 5,812 123 8쪽
57 < #6. 검귀(劍鬼) 1-1 > +8 18.05.05 6,262 117 7쪽
56 < #5. 하주(河州) 15-2 > +13 18.05.04 5,689 118 9쪽
55 < #5. 하주(河州) 15-1 > +16 18.05.04 5,453 117 8쪽
54 < #5. 하주(河州) 14-2 > +14 18.05.03 5,343 127 7쪽
53 < #5. 하주(河州) 14-1 > +16 18.05.03 5,437 121 7쪽
52 < #5. 하주(河州) 13-2 > +10 18.05.02 5,394 116 8쪽
51 < #5. 하주(河州) 13-1 > +4 18.05.02 5,523 111 8쪽
50 < #5. 하주(河州) 12 > +7 18.05.01 5,814 118 16쪽
49 < #5. 하주(河州) 11 > +2 18.05.01 5,914 123 14쪽
48 < #5. 하주(河州) 10-2 > +4 18.04.30 5,757 128 8쪽
47 < #5. 하주(河州) 10-1 > +7 18.04.30 5,868 126 8쪽
46 < #5. 하주(河州) 9 > +5 18.04.29 6,202 124 16쪽
45 < #5. 하주(河州) 8 > +6 18.04.29 6,450 132 16쪽
44 < #5. 하주(河州) 7-2 > +11 18.04.28 6,128 129 8쪽
43 < #5. 하주(河州) 7-1 > +4 18.04.28 6,282 135 8쪽
42 < #5. 하주(河州) 6 > +13 18.04.27 6,724 143 13쪽
41 < #5. 하주(河州) 5 > +6 18.04.27 6,542 132 12쪽
40 < #5. 하주(河州) 4 > +5 18.04.26 6,750 145 15쪽
» < #5. 하주(河州) 3 > +9 18.04.26 6,984 155 12쪽
38 < #5. 하주(河州) 2 > +5 18.04.25 6,928 148 13쪽
37 < #5. 하주(河州) 1 > +13 18.04.25 7,186 165 12쪽
36 < #4. 태평루 9 > +13 18.04.24 6,919 156 13쪽
35 < #4. 태평루 8 > +7 18.04.24 6,998 148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