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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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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08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4.28 22:25
조회
6,127
추천
129
글자
8쪽

< #5. 하주(河州) 7-2 >

DUMMY

“자아, 우린 이제 백련산 녀석들인 거지.”


“뭐 상관없어, 그렇게 알아도 되고 아니어도 되고, 저 무지렁이들이 반항이나 하겠나?”


말을 탄 십여 명의 사내들이 마을을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곧 백련산 애들이 하는 것처럼 긴 하얀 천을 감아 입과 얼굴을 가렸다.


부싯돌을 몇 번 부딪쳐 횃불에 갖다 댔다. 기름 먹인 횃불은 불을 붙이자 어느새 활활 타오르며 사내들의 눈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비열한 눈웃음이 가득하다. 서로의 모습에 흠칫하던 그들은 말을 달려 언덕을 쏜살같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 언덕 위에서 도깨비불이 춤을 추듯 내려왔다.


평화롭던 마을에 들이닥친 그들은 곳곳에 불을 붙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겁을 주었다. 거친 말의 울음소리와 싸리를 엮은 담장을 짓밟고 들어가 물건을 깨는 소리에 사람들은 하나둘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이놈들, 우리 백련산이 보호세를 받으러 왔다. 어서 내놓지 않느냐?]


"거짓말쟁이들!"


한 젊은이가 욕을 하며 방문 곁에 있던 곡괭이를 들었다. 달려드는 말을 피해 곡괭이를 휘두르던 그는 지나치는 괴한의 칼에 등을 맞고 쓰러졌다. 쓰러진 젊은이를 한 아이가 달려와 몸으로 감쌌다.


말 위에서 칼을 들고 노려보던 괴한은 잠시 고민하다 어둠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반항하던 젊은이마저 쓰러지자 마을 사람들은 불을 피해 집을 뛰쳐나와 숨기에만 바빴다.


[다음번에도 준비해놓지 않으면 몰살을 시킬 거야. 다음번 만월이 뜨기 전에 달구지에 실어서 마을 밖에 내놓도록······.]


괴한들은 손에 남았던 횃불을 휘휘 돌리다 가까운 초가지붕에 던져버리고는 말을 몰아 사라졌다. 떠나는 그들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머리 뒤편으로 불꽃이 환하게 일렁였다. 일렁이는 불꽃에 드러난 사람들의 얼굴은 참담하고, 비통하고, 무기력했다.


“형아!”


젊은이를 감싸 안은 꼬마가 외쳤다.

겨우 숨이 붙어있던 젊은이는 조용히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꽃이 더 활활 타오르지만 모두 멍하니 서서 불을 끌 생각도 못 했다.

그냥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나무와 짚단 소리에 아이의 울부짖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당황스럽다.


머리 하나는 작은 계집애가, 소녀라 칭해야겠지만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니, 검을 들고 덤벼보라며 도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좀 화가 나기는 했지만, 검집에서 손을 놓고 양손을 흔들며 말렸다.


"그만두자. 내가 그렇게 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아니어서······."


소녀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오른손을 내밀어 류의 어깨를 찔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깨를 뒤로 빼며 피하니, 손안에서 도가 핑그르르 돌았다. 그러더니 주저앉으며 류의 발등을 노려 찍는다.


"어! 이봐. 적당히 좀···."


놀라 발을 빼며 뒤로 몸을 날렸다. 탁자에 몸이 부딪쳐 꽃병이 떨어져 버렸다. 소녀는 낮춘 몸을 그대로 돌리며 뒤돌려차기를 걸어왔다. 치맛단 사이로 하얀 다리가 매끈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가늘고 예쁜 다리는 뱀처럼 류의 발목을 걷어차 버렸다.


중심을 못 잡은 사이에 발목을 맞으니 류의 몸이 떴다. 하지만 넘어지면서도 류는 검을 검집 채로 뽑아 들며 바닥을 굴렀다. 류가 있던 곳에 소녀가 두 손으로 내려찍은 쌍도가 박혀버렸다.


"장난이 도가 지나치구나! 원망은 하지 마라!"


뒤로 물러선 류는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검집을 돌리고 허리 뒤에서 뽑으며 쏘아져 나갔다. 연습을 거듭해 이제는 바닥을 긁듯이 달려간다. 검집을 발도하려던 순간, 허릿심까지 더하면 크게 다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주저해 힘과 빠르기가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매끄러웠고 날카로웠다. 소녀를 향해 뻗어져 나가는 검집에 '다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겹쳐질 때 소녀는 오히려 류처럼 몸을 굽히고 달려들었다. 류보다도 더 빨리 발을 내디디며 말이다.


류의 검집이 뽑혀 횡으로 베기를 시도하자, 소녀는 달려오던 속도를 높이며 몸을 틀어버렸다. 류의 반경 밖으로 돌아간 그녀는 몸을 공중으로 띄운 채 빙글 돌아 류의 뒤로 뛰어들었다. 류의 등 뒤로 돌아간 그녀는 등을 맞대고 순식간에 도를 허리에 갖다 댔다. 그리고 남은 도를 손에서 돌려 거꾸로 잡더니 류의 목 밑에 가져다 댔다.


장식용으로 만들어진 칼이다 보니 날카롭지 않았으나, 목 밑을 파고드니 살짝 피가 배어 나왔다.


"그만, 그 정도면 이제 되지 않았느냐? 어서!"


노인이 일갈하자, 목 밑의 칼이 부들부들 떨리다 빠져나갔다. 소녀는 바닥에 도를 던져버리고는 갑자기 주저앉아 울어버리기 시작했다.


"미안합니다. 도련님, 요즘 선예의 성정이 흔들릴 일이 있어 마음이 혼탁합니다.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목을 매만지며 철렁한 가슴을 쓸어내리던 류에게 노인은 사과했다. 그때 기루의 여자주인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사나운 눈초리로 방안을 훑었다.


"이것들이······. 이게 무슨 난리야!, 앗, 저 꽃병이 얼마짜리인 줄 알고···."


노인을 흘겨보던 주인은 류를 보자 고개를 살짝 조아렸지만, 여전히 거친 말투로 노인과 여자아이를 밀어붙였다.

결국, 류가 나서서 은자로 배상을 하자, 순식간에 다시 친절한 표정으로 바뀌어 류를 배웅해주었다.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여자아이와 노인을 놔두고 찝찝한 마음을 한가득 가진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수련을 빼먹지 않았는데······. 계집아이한테도 지는구나. 마음가짐의 문제인가?'


류는 밤거리를 걸어 관아로 돌아오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제대로 무예를 가르쳐준 사람은 막쇠와 형이었다. 둘 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했었다. 이제 열심히 갈고 닦기만 하면 된다 하였거늘, 어찌 그런 꼬마에게······.


내일부터는 제대로 다시 수련하겠다 마음먹기로 했다.



***



아직 난장판인 방에서 아직도 소녀는 울고 있었다. 노인은 말릴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멀찍이 떨어진 채 피리만 매만지고 있었다.


"돌아가요. 그냥 돌아가요."


이제야 겨우 마음을 가다듬었는지 소녀가 울음을 그치고 노인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노인이 한참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그래, 검을 맞대보니 어떠하더냐? 좀 속이 풀리더냐?"


"아니요. 허무합니다. 저런 녀석한테 져버리다니. 사제를 병신같은 녀석이라 욕하고 싶네요. 병신이에요···. 바보 멍청이라고요."


노인은 울먹거리는 선예에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가라앉던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검을 수련하다 보면 강해진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운이 승패를 가르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아마도······. 막쇠는 운이 안 좋았던 거겠지. 출세하겠다며 산을 뛰쳐나갈 때부터 운이 안 좋았던 거겠지!"


"그···. 그래도! 저런 무지렁이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산속에서 둘이서만 십여 년을 살았다. 그런 그를 이리저리 헤매다 찾아온 젊은이를 내칠 수가 없었다. 노인과 선예가 살던 초가 옆에 자리를 잡은 그 녀석은 어찌나 넉살이 좋았던지 자리를 잡고 떠나지 않았다.


사람이라곤 다 노인네 하나만 보던 선예가 그 녀석하고 친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덧 친구가······. 어느덧 사제가······. 어느덧 오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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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5. 하주(河州) 15-2 > +13 18.05.04 5,689 1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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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 #5. 하주(河州) 11 > +2 18.05.01 5,914 1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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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5. 하주(河州) 10-1 > +7 18.04.30 5,868 126 8쪽
46 < #5. 하주(河州) 9 > +5 18.04.29 6,202 124 16쪽
45 < #5. 하주(河州) 8 > +6 18.04.29 6,450 132 16쪽
» < #5. 하주(河州) 7-2 > +11 18.04.28 6,128 129 8쪽
43 < #5. 하주(河州) 7-1 > +4 18.04.28 6,281 135 8쪽
42 < #5. 하주(河州) 6 > +13 18.04.27 6,724 143 13쪽
41 < #5. 하주(河州) 5 > +6 18.04.27 6,542 132 12쪽
40 < #5. 하주(河州) 4 > +5 18.04.26 6,749 145 15쪽
39 < #5. 하주(河州) 3 > +9 18.04.26 6,983 155 12쪽
38 < #5. 하주(河州) 2 > +5 18.04.25 6,928 148 13쪽
37 < #5. 하주(河州) 1 > +13 18.04.25 7,186 16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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