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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루이야기] 갓쉰동전-신채호 조선상고사에서 발췌.

중국에 전하는 갓쉰동전(傳)은 이것과 같은 소설이니 그 대강이 다음과 같다.

 

연국혜라는 한 재상이 있었는데 나이 50이 되도록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하늘에 제사를 올려 아들의 점지를 기도하여 한 옥동자를 낳아 이름을 갓쉰동이라고 하였다. 갓 쉰 살 되던 해에 낳았다는 뜻이었다. 자라나매 용모가 비범하고 재주가 월등하므로 연국혜가 손 안의 구슬 같이 사랑하여 늘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갓쉰동이가 7살 되던 해에 문 앞에서 장난을 하고 노는데 어떤 도사(道士)가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아깝다, 아깝다.” 하고 갔다. 연국혜가 그 말을 듣고 뒤쫓아가 도사를 붙잡고 그 까닭을 물으니 도사가 처음에는 굳이 사양하고 말하지 아니 하다가 나중에 하는 말이 이 아이가 자라면 부귀와 공명이 무궁할 것이지마는 타고난 수명이 짧아서 그때를 기다리지 못할 것이오.” 하였다. 그러면 그 액을 면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으니까 “십오 년 동안 이 아이를 내버려 부모와 서로 만나지 못하면 그 액을 면할 것이오.” 하였다.

연국혜는 차마 못할 일이었지마는 도사의 말을 믿고 아들의 장래를 위해 하인을 시켜서 갓쉰동이를 멀리멀리 산도 설고 물도 선 어느 시골에 데려다 버리게 하였는데, 다만 훗날 도로 찾을 표적은 만들기 위해 먹실로 등에다가 ‘갓쉰동’이란 석 자를 새겨서 보 냈다. 갓쉰동이가 버려진 곳은 원주(原州) 학성동(鶴城洞)이었다 그 동네의 장자(長者) 유씨(柳氏)가 그날 밤 꿈에 앞내에 황룡(黃龍)。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새벽에 앞내에 나가보니 한 준수한 어린아이가 있으므로 데려다가 길렀는데 그 등에 새긴 글자를 보고 이름을 그대로 ‘갓쉰동’이라 불렸다.

갓쉰동이 자랄수록 미목(眉目)이 청수하고 용모가 영특하나 그 내력을 알 수 없어 온 집안이 천한 사람으로 대접하였다. 장자는 그들 사랑하기는 하였으나 남의 시비를 싫어하여 그 신분을 높여주지 못하고, 다만 글을 약간 가르쳐 자기 집 종으로 부렸다.

하루는 갓쉰동이가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는데 난데없는 청아한 퉁소 소리가 들리므로 지게를 버티어놓고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니 한 노인이 앉아서 퉁소를 불고 있었다. 노인이 갓쉰동이를 보더니 “네가 갓자쉰동이가 아니냐? 네가오늘에 배우지 아니하면 장래 어찌 큰공을 이루겠느냐?” 하고 학문의 필요함을 이야기해주었다 갓쉰동이는 그 이야기에 취하여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듣고 있는데 노인이 석양을 가리키며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오라고 하며 어디로인지 획 가버렸다.갓쉰동이가 그제야 깜짝 놀라 내가 나무를 하러 왔다가 빈 지게를 버 티어놓고 해를 다 보냈으니 주인의 꾸중을 어찌하나, 하고 내려와 보니 누구의 짓인지 나무를 베어 지게에 지워놓았다.

갓쉰동이가 그이튿날 부터 나무를 하러 가면 반드시 그 노인을 만나고 만나서는 검술(劍術)·병서(兵書)·천문(天文)·지리(地理)등을 배우고, 그리고 내려오면 반드시 그 지게에 나무가 지워져 있어서 지고 돌아올 뿐이었다. 장자는 아들은 없이 딸만 셋을 두었는데 문희 · 경희 · 영희라 하였다. 세 사람이 다 뛰어난 미인인데 영희가 더욱 뛰어났다. 갓쉰동이가 l5살 되던 해 봄 어느날, 장자는 갓쉰동이를 불러 세 아가씨를 가마에 태워가지고 화류(花柳) 구경을 가라고 하였다. 갓쉰동이 그의 말에 따라 교군(轎軍)을 가지고 문희의 방 앞에 가서 “아가씨, 가마를 대령했습니다·”라고 했다. 문희가 버선발로 마루 끝에 나서더니 “아이고 맨 땅을 어떻게 디디겠느냐? 갓쉰동아, 네가 거기 엎드려라.”하여 갓쉰동이의 등을 밟고 내려와 가마에 들어갔다. 경희를 태울때 경희도 그러는지라 갓쉰동이 노하여 한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었지마는 장자의 은혜를 생각하여 꾹 참고, 영희의 방에 가서는 이 년도 그 년의 동생이니 별다르겠느냐 하는 생각이 나서 가마를 대령하였습니다·” 한 마디 하고는 미리 뜰에 엎드렸다. 영희가 문에서 나와 보고는 놀라 “갓쉰동이, 이것이 무슨 짓이야·” 하였다. 갓쉰동이가 말했다 “갓쉰동이의 등이야 하느님이 아가씨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까? 이 등으로 나무를 져다가 아가씨들의 방을 덥히고, 이 등으로 쌀을 실어다가 아가씨들의 배를 불리고, 아가씨들이 앉고 싶으면 갓쉰 둥이의 등을 자리로 쓰시고, 아가씨들이 걷고 싶으면 갓쉰동이의 등을 다리로 삼으시고- - -” 말이 채 끝나지 아니하여 영희가 달려들어 “아서라, 이게 무슨 짓이냐? 사람의 발로 사람의 등을 밟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고 갓쉰동이를 일으켰다. 갓쉰동이는 일어나 영희의 꽃같은 얼굴, 관옥 같은 살결과 정다운 말소리에 마음을 잡지 못하며, “나도 어렴풋이 어릴 때의 일을 생각하면 너와 결혼할 만한 집안 인데- - - ”라고 말하며 눈물이 글썽해졌다.영희도 갓쉰동이의 용모가 범상치 아니하고 음성이 우렁참을 보고 이같은 남자가 어찌하여 남의 집 종이 되었을까 생각하고 눈물이 흐름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뒤로부터 갓쉰동이는 영희를 생각하고 영희는 갓쉰동이를 사랑하여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점점 두터워졌다. 갓쉰동이가 “내가 일곱 살때 집을 떠나던 일을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아마 우리 부모가 도사의 말을 믿고 나를버려 훗날다시 찾으려 한것 같다. 나도 집에 돌아가면 귀한 집 아들이니 너 나하고 결혼하자·”라고 하니 영희는 “나는 귀인의 아내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나이의 아내가 되기를 바란다 만일 네가 사나이가 아닐진대 귀한 집 아들이라도 내 남편이 못될 것이고, 네가 사내라면 종이라도 나는 너 아니면 아내가 되지 않겠다. 그러니 너는 그 회포를 말해보아라·” 하였다. 갓쉰동이 “달딸이는 늘 우리 나라를 침범하여 백성을 괴롭히는데 우리는 다만 침입하는 달딸이를 물리칠 뿐이요 달딸국에 쳐들어가지 못했으니 나는 이것이 분하여 늘 달딸이의 땅을 한 번 쳐서 백 년의 태평을 이룩하려고 생각 한다.” 하고 요즈음 나무하러 가서 어떤 선관(仙官)에게 날마다 검술 · 병서 · 천문 · 지리 등을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영희는 크게 기뻐하며 “그렇지만 적국을 치자면 적국의 형편을 잘 알아야 할 것인데 네가 친히 달딸국에 들어가 그 산천을 두루 돌아다녀서 국정을 살펴보아 훗날 성공할 터를 닦아가지고 오면 나는 너의 아내가 못되면 종이 되어서라도 네 앞에서 백 년을 모시려 한다.”고 하였다. 갓쉰 동이가 쾌히 허락하고 장자의 집에서 달아났는데 영희는 제가 가진 금가락지와 은그릇 등을 주어 노자를 만들게 하였다.

갓쉰동이 가 달딸국에 들어 가서는 달딸의 말도 배우고 달딸의 풍속도 익히고, 또 그 내정을 알기 위해 이름을 돌쇠라 고치고 달딸국왕의 가노(家奴)가 되었는데 행동이 영리하므로 왕의 신임을 받았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영매하고 또 사람을 잘 알아보아 갓쉰동이는 비상한 영걸이요 또한 달딸의 종자가 아니니 죽여서 그 후환을 없애자고 그 아비에게 고하여 철책 안에 잡아가두고, 음식을 끊어서 굶겨 죽이려고 하였다. 갓쉰동이는 곧 자기의 몸이 위태로움을 깨달았으나 계책이 없어 답답히 앉았다가 자기 곁에 매를 길들이려고 잡아넣은 새장을 보고 와락 달려들어 새장을 부수고, 그 안에 있는 매를 다 날려보냈다. 이때 마침 달딸왕 부자는 다 사냥을 나가고 달딸왕의 공주가 그를 지키고 있다가 놀라 “네가 왜 매를 놓아 보내느냐? 더욱 우리 아버지와 오빠에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냐?” 하였다. 갓쉰동이가 말했다.“내가 나 갇힌 것을 답답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갇힌 매를 보니 곧 매가 답답해 할 것을 생각하였다. 나를 풀어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면서 내 곁에 갇혀 있는 매를 풀어 보내지 못한다면 매가 얼마나 나를 원망하랴. 차라려 매를 위해 죽을지언정 매의 원망을 받지 않으리라 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 갇혀 있는 매를 놓아주었다.” 공주가 그의 말을 듣고 측은히 여겨 “내가 우리 둘째 오라버니에게 들으니 네가 우리 달딸을 멸망시키려고 생긴 사람이라 하던데 네가 어찌하여 달딸을 망치려고 하느냐?”라고 하였다. 갓쉰동이가 말했다. “하늘이 나를 달딸을 망치려고 내셨다면 너의 오라버니가 나를 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을 것이고, 또 나를 죽일지라도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올 것이다. 너의 오라버니에게 이렇게 잡혀 죽게 된 몸이 어찌 달딸을 멸망 시킨단 말이냐 ? 공주가 만일 나를 풀어주면 나는 저 매와 같이 산으로 물로 훨훨 날아다니면서 ‘나무아미타불’을 불러 공주를 사랑하고 보호해달라고 외울 뿐이요, 다른 생각이 없겠다. ” 공주가 더욱 측은히 여기는 빛이 있더니 “오냐, 내 아무리 무능한 여자인들 우리 아버지의 딸이요 우리 오라버니의 동생이니 어찌 너 하나를 살려주지 못하겠느냐? 얼마 안가 우리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돌아오시거든 너의 무죄함을 아뢰어 너를 돌아가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갓쉰동이 공주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공주는 애쓰지 말라. 돌쇠 한 놈 죽는 것이 무슨 큰일인가 나는 들으니 부처님은 사람을 구할 때에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 고한 일이 없다던데- - -.” 공주가 그 말에 얼굴빛이 더욱 변하더니 내전(內殿) 불당에 들어가 기도하고 열쇠로 철책의 문을 열어 갓쉰동이를 내보냈다. 공주가 손목을 잡고 “내가 너를 처음 보았지마는 너를 보내는 데 내 마음도 따라간다. 네 몸은 매같이 휠훨 날아서 가더라도 네 마음일랑 나를 주고 가거라.” “공주가 나를 잊을지언정 내가 어찌 공주를 잊겠는가? ” 하고는 갈길이 바빠 걸음아 날 살려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도망하여 성문을 나와 풀뿌리를 캐먹으면서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 달딸의 국경을 벗어나 귀국하였다. 달딸의 둘째왕자가 돌아와 공주가 갓쉰동이를 사사로이 놓아준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칼을 빼서 공주의 목을 베었다.

이 이야기는 계속해서 갓쉰동이가 귀국한 뒤에 책문(策文)을 지어 과거에 급제한 일이며 영희와 결혼한 일이며 달딸을 토평한 일이며 그 밖에도 이야기들이 많으나 다 생략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연개소문이 지나를 정탐한 전설의 일단(一段)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갓쉰동 은 곧 개소문(蓋蘇文)이니 개(蓋)는 갓으로 윈고 소문(蘇文)은 쉰으로 읽을 것이며, 국혜는 곧 남생(男生)의 묘지(墓誌)에 보인 개소문의 아버지 태조(太祚)니, 하나는 그 이름이고 하나는 그 자(字)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국혜가 혹 소설의 작자가 사사로이 지은 이름일 것이다. 달딸국왕은 곧 당고조(唐高祖)요 둘째 왕자는 곧 당고조의 둘째 아들 태종이니, 어찌하여 당고조와 태종을 달딸왕이라 달딸왕자라 하였는가 하면 이는 여러 백 년 이래 사대주의파의 세력에 눌려 언문책(諺文冊) 이라고 천대하던 우리 글로 쓴 여염집 부녀자가 읽는 책에서도 당당히 지나 대륙의 정통 제왕을 공격 혹은 비난하지 못하였으므로, 당(唐)을 달딸로 당고종을 달딸국왕으로 태종을 달딸국 둘째 왕자로 고친 것이다. 연개소문이 병력으로 그 임금과 대신과 가족 등 수백 명을 죽인 사실이 왜 갓쉰동전에 빠졌는가? 이것도 구소설의 권선징악(勳善徵惡)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고친 것이다.

연개소문의 시대에는 조선에 과거(科學)가 없던 시대라 책문(策文) 을 지어 과거에 급제한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급제한 이를 천선(天仙)같이 본 이조의 습관에 의해 덧붙인 것이다. 갓쉰동전은 이 같이 옛 전설을 고치고 새 관념으로 첨삭하여 지은 소설이니 그 본래 것의 신용가치의 여하를 말할 수 없음이 아깝다.

규염객전과 갓쉰동전 두 책의 기록이 좀 다른데, 이제 두 책의 기록의 진위(眞僞)를 추론하건대, 이때에 고구려가 새로 수양제(隋煬帝) 의 수백만 군사를 대파하여 전 지나가 크게 놀라 떨고, 당고조(唐高祖)의 부자는 수양제 치하(治下)에 있는 태원(太原)의 소공국(小公國) 이요, 이정(李靖)은 태원의 한 작은 벼슬아치였다. 태원이 옛날부터 많이 고구려의 침략을 받던 지방이므로 더욱 고구려 사람을 경계하였을 것이며, 당태종은 안으로 전 지나를 평정하고 밖으로 고구려를 토멸할 야심을 가져 늘 고구려나 고구려 사람들의 행동을 주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당태종은 여러 노복들 중에서 변장한 고구려 사람 연개소문을 발견한 것이니 얼마나 놀랐으랴? 하물며 당서(唐書)에도 연개소문은 모습이 괴이하고, 의기가 호매(豪邁)하다고 하였으니, 당태종이 이를 발견하자 곧 자기네 장래의 강적이 자기네 수중에 잡혔음을 알고 비상한 요행으로 여겼을 것이고, 또한 얼마나 좋아하였으랴?

그 놀라움, 그 좋아함 끝에 반드시 죽이려고 하였을 것도 불을 보는 것과 같이 명확한 사실일 것이다. 이치로 미루어보아 갓쉰동전은 믿을 만한 점이 많고, 신구 두 당서에 당태종의 말을 기록하여 “개소문 은 방자하다. ” “개 소문은 감히 나오지 못하였다. ” “개 소문은 이리 같 은 야심- - -.” 이라고 한 말들이 비록 개소문을 미워한 말이지마는 반 면에 개소문을 꺼렸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위공병서(李衛公兵書)에 “막리지(寞離支) 개소문은 스스로 군사병법을 안다고 하였다.”고 한 문구가 또한 개소문을 모멸하였다느니 보다 두려워 공경한 뜻이 엿보 인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만나보고 영기(英氣)에 눌려 동으로 나왔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두 기록을 대조해봄에 있어 규염객전 은 의심할 만한 점이 많으므로, 본서에는 규염객전을 버리고 갓쉰동전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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