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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373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0.0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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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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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특명! 머리카락을 지켜라 (2)

DUMMY

(대근건설 - 면역과 신경 그리고 내분비부서 - 모발팀)



케어와 플루는 길고 긴 사다리를 타고 한참을 오른 끝에 겨우 모낭에 도착했다.

끈기는 좋으나 체력이 유독 약한 플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케어에게 물었다.


"헉... 헉... 그런데... 헤어 팀장님은 저희에게 바로 오시면 될 것을, 뭐 하러 근골격부서에 먼저 가신 걸까요?"


손전등을 켜 5α-환원효소의 흔적을 찾으며 케어가 대답했다.


"헤어팀장이 믿는 미신이 하나 있거든."

"미신이요?"


고양이 자세를 한 채 숨을 고르던 플루는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강제로 움직인 후에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런 플루의 대견스러운 모습을 자랑스럽게 쳐다보며 케어가 말했다.


"그래. 운동하면 대머리 된다는 미신이지. 뭐가 되었든 간에 고중량 운동을 하면 테스토스테론이 뿜뿜 하잖아? 고중량 스쿼트 같은 거 말이야. 그것 때문에 그래. 헤어팀장은 테스토스테론이 탈모의 주된 원인이라고 믿고 있지."


케어가 건넨 손전등으로 5α-환원효소를 찾기 시작한 플루가 물었다.


"테스토스테론이 탈모의 원인이라고요?"

"그게 직접적인 원인인지 어쩐지는 나도 잘 몰라. 헤어팀장이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야."

"하긴, 콩을 많이 먹은 케어대장님을 보면 그게 맞는 말일지도..."

"아, 진짜! 가슴운동 많이 해서 커진 거라니까? 이거 참, 보여줄 수도 없고....."


휘익—


케어와 플루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 무언가 그 둘 사이를 지나갔다.

아주 빠른 속도였다.


"플루! 흡착기 가져왔지?"


플루가 거칠게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는 하얗고 기다란 원통형의 기계를 들어 보였다.


"여기 있습니다!"

"좋아, 천천히 움직여. 급하게 움직였다가는 놈이 도망친다."

"5α-환원효소인가요?"

"그래. 저~기 모낭에 5α-환원효소가 테스토스테론 가까이 가는 게 보이지? 놈이 테스토스테론과 결합해 DHT로 변하기 전에 우리가 손을 써야 한다."

"알겠습니다!"

"신호 하면 즉시 흡착기를 놈에게 들이밀어라. 놈이 다쳐도 상관없다. 우리는 대근이의 모발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알겠나?"

"예!"


휘익— 휙—


케어와 플루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눈치 못 챌 수가 없을 것이다), 5α-환원효소의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분명 도망칠 기회를 엿보고 있을 터였다.


'좋아....'


5α-환원효소의 움직임이 둔해졌다는 것을 파악한 케어는 오른손을 뒤로 한 후,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플루를 향해 손짓을 해 보였다.

손짓의 의미를 파악한 플루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모낭 주위에 있는 5α-환원효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5α-환원효소를 향해 흡착기를 갔다 대었다.


'지금이다!'


따악—


케어가 손가락을 튕기자, 기계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슈우욱—


[으악! 살려줘요! 살려줘요!]


플루의 흡착기는 정확하게 5α-환원효소를 빨아들였다.

문제는 애꿎은 테스토스테론 역시 함께 빨아들였다는 것이다.


[저는 내보내줘요! 내보내줘요! 전 잘못 없어요! 저는 원래 리비도팀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길을 잃어 여기로 온 거예요! 나가게 해줘요! 제발요!]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며칠 뒤, 우리 학생들이 기다리고 기대하고 고대하던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 돌아왔다.


"와, 어떻게 너는 X싸러 가느라 시간 버렸는데도 성적이 이렇게 나오냐?"


천강우가 황대근의 화려한 성적표를 보며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역시, 황대근이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김철환은 이번 기말고사 역시 다른 선생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겨서 그런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황대근이 말했다.


"거의 다 풀고 갔던 거야. 돌아와서 급하게 마킹하느라 힘들었어."


그러자 믿기지 않는지 천강우가 물었다.


"아니, 영어 서술형도 있었잖아? 그것도 풀고 간 거야?"

"음~ 아니. 그건 갔다 와서 풀었지. 서술형까지 풀고 갈 여유는 없었거든."


천강우는 자신의 성적표를 반으로 접더니 말했다.


"역시, 난 인서울 못할 것 같아. 정시가 글러먹었으니, 수시라도 잘해야 하는데 수~시가 이 모양이니."

"3학년 때 성적 올리면 돼. 입학사정관들 성적 올라가는 애들 좋아한다고 하더라."

"말이 성적을 올리는 거지, 내리는 건 쉬운데 올리는 건 너무 어려워."

"가고 싶은 대학이 있어?"


천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 뭐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나도 너처럼 의사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인문계에 오면 안 됐나 봐. 그냥 전문고등학교 가서 취직이나 할 걸. 아~ 내 인생 어떡하냐. 답이 없네."


황대근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겨우 18살인데 답이 없긴 왜 없어. 살다 보면 다 자기의 길이 있겠지.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차라리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해 봐."

"경험? 어떤 경험?"

"음, 운동을 배운다던가, 요리를 배운다던가. 아니면 뭐, 컴퓨터 학원을 다니던 여행을 다니던 여러가지 있잖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것들."


꾸깃꾸깃 접어두었던 성적표를 펼치며 천강우가 나지막히 물었다.


"그러다 보면 내 길이 보이겠지?"


황대근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황대근과 천강우가 진로에 관한 나름 진지한 대화를 마쳤을 때, 김철환이 교탁 앞에서 소리쳤다.


"여기 반에 성적 떨어진 놈들 많지?"


전교 1등인 황대근을 향해 웬일로 인자한 눈빛을 지어 보이던 김철환은, 순식간에 거만하고 못된 악마의 눈빛으로 변해버렸다.


"너희가 경쟁해야 할 상대가 누구라고? 어? 여기 촌동네 애들? 아니야~ 아냐! 너희가 정~말로 신경 쓰고 경쟁하고 생각해야 할 놈들은 저~기 서울에 사는 놈들이야! 걔네? 이 꼴통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준으로 배울 것 같냐? 걔네가 배우는 건 클라~스가 달라요, 클라스가!"


또 시작이군. 2학년 2반 학생들은 이제는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마치 자기 전 ASMR이라도 듣는 것처럼 졸린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100점을 맞으면 100점 짜리 인생 사는 거고, 80점 맞으면 80점짜리 인생 사는 거야. 그런데 너희들의 3분의 2는 이번에 60점도 안 되지? 어? 수학 평균이 60점이 안 된다고 요놈들아! 이게 말이 되냐? 어? 그딴 식으로 살면 너희 나중에 커서 빵점짜리 인생 사는 거야~ 알겠어?!"


저 인간 말이 좀 심한데. 황대근은 생각했다.


"이번에 수학 서술형 백지로 낸 새끼들이 한 둘이 아니더만? 내가 누군지 다 기억하고 있다. 성적이 니들 미래야! 성적 안 나오면 인생 끝이야! 알겠어?!"


김철환의 설교가 한참을 이어지고 있는 동안, 성적표를 계속해서 바라보는 박정우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의 등교 석차가 드디어 100등 안에 들었던 것이다.


'역시, 역시! 그 비싼 과외를 한 보람이 있어! 대치동 출신이라더니, 정말인가 봐! 계속 이렇게 하다 보면 3학년 때는 내가 전교 1등을 할 수 있겠지? 그렇겠지?'






(대근건설 - WBC)



흡착기에 5α-환원효소를 잡아 WBC로 돌아온 지 며칠 뒤, 케어와 플루는 한참 토론 중이었다.

5α-환원효소를 잡아냈으니 대근이의 모발 건강은 지켜주긴 했는데, 문제는 대근이의 정신 건강이다.

플루는 아직 18살 밖에 안 된 대근이가 지금쯤 분명 탈모에 관한 걱정 때문에 잠도 못 이루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근이에게 알려줘야 해요!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려줘야 해요!"


흡착기 안을 마구 뛰어다니는 5α-환원효소를 노려보며, 케어가 물었다.


"플루, 자네 말이 맞기는 한데... 어떻게 알려 주지? 대근이는 우리 목소리를 듣지 못해. 우리가 있는 줄도 모를 걸?"


플루가 외쳤다.


"뇌부서로 가면 돼요! 대근이의 정신 건강은 뇌부서가 주로 담당하잖아요!"

"뇌... 뇌부서?"


케어는 망설여졌다. 뇌부서는 WBC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하는 일 외에는 모두 쓸데없고 하찮은 일이라고 굳게 믿는 뇌부서 직원들은, 툭 하면 경보기가 울려 현장출동을 해야 하는 WBC의 노고와 고생을 철저히 무시했다.


"뇌부서 말고, 다른 부서의 도움을 받는 게 좋지 않을까? 뇌부서 놈들은 대근이가 탈모 유전자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텐데? 솔직히 헤어팀장이 말해서 알았잖아."


쾅쾅—


바로 그때, 흡착기 안에서 누군가 절박한 느낌으로 흡착기를 두들겼다.


[저기! 저 내보내주신다면서요!]


흡착기를 두들긴 존재는 다름 아닌 5α-환원효소와 함께 흡착기로 빨려 들어간 테스토스테론이었다.


[두 분 대화 다 들었어요! 절 내보내 주시면, 대근이의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절 좀 내보내 주세요! 5α-환원효소가 자꾸 들이댄다고요!]


케어가 플루에게 손짓하자, 플루는 즉시 흡착기의 흡입구에 손을 집어넣었다.

5α-환원효소의 거센 반항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리기는 했지만, 그녀는 용케 테스토스테론을 바깥으로 꺼내 줄 수 있었다.

5α-환원효소의 거친 반항 때문인지, 플루의 손은 상처가 나있었다.


"이런, 효소놈이 제법 거친 놈인가 보군?"


케어가 올챙이 모양의 어린 테스토스테론을 보며 플루에게 말했다.

그러자 플루는 상처 난 손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슥—


두 눈은 테스토스테론에게 고정한 채, 케어는 플루에게 반창고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다.


"상처 덧나기 전에 써라. 몸도 약한 놈이 열나고 어쩌고 하면 골치 아프다."


케어가 테스토스테론에게 물었다.


"그래, 방법을 알려준다고?"


테스토스테론은 그의 올챙이 같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어떤 방법이지?"

"메모리아 부서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테스토스테론과 함께, 케어와 플루는 메모리아부서에 도착했다.

그들은 곧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고 열심히 일하는(?) 황대근과 혜윰, 그리고 다른 직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메모리아 부장 컨트롤이 그들을 막아서기는 했으나, WBC대장의 권한 덕분에 그들은 무사히 메모리아부서로 들어올 수 있었다.


WBC대장의 권한 중 한 가지는, 바로 인간 황대근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닥쳤을 경우 대근건설의 그 어디라도 방해 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누구도 WBC대장인 케어를 막을 권한은 없었다. 단, 뇌부서를 제외하고.


"대근씨!"


모처럼 자리에 얌전히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황대근에게 케어가 다가왔다.

황대근은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한 작은 올챙이 한 마리를 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저 올챙이는 뭡니까?"


플루가 대신 대답했다.


"테스토스테론이에요. 원래는 리비도팀으로 가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모발팀에 오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길을 잃었나봐요."

"그런데 그 녀석은 왜 데려오신 건가요?"

"인질이에요. 몸값 받으러 왔어요.”

"예?!"


주어도 목적어도 모두 생략하고 말하는 위험한 플루를 제지하며, 케어가 황대근에게 말했다.


"인질이 아니라, 이 녀석이 저희에게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왔습니다."


황대근은 이해할 수 없었다.


"방법이라뇨?"


케어는 그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현재 상황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황대근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대근이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탈모에 관련된 기억을 바꾸어 놓아야겠습니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케어의 질문에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혜윰이 작은 솜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치며 대답했다.


"그럼요! 누구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는 거... 아니, 기억 조작하는 건 저희가 전문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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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혜윰의 선물 (1) 21.10.07 28 1 11쪽
» 특명! 머리카락을 지켜라 (2) 21.10.07 25 1 12쪽
55 특명! 머리카락을 지켜라 (1) 21.10.06 27 1 12쪽
54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2) 21.10.06 23 1 13쪽
53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1) 21.10.05 25 1 13쪽
52 그림자 (2) 21.10.05 23 1 13쪽
51 그림자 (1) 21.10.05 21 1 13쪽
50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2) 21.10.04 37 1 13쪽
49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1) 21.10.04 32 1 13쪽
48 우연 혹은 필연 (2) 21.10.03 26 1 14쪽
47 우연 혹은 필연 (1) 21.10.03 25 1 13쪽
46 살았니? (3) 21.10.02 21 1 13쪽
45 살아있니? (2) 21.10.02 22 1 13쪽
44 살았니? (1) 21.10.01 29 1 13쪽
43 급성상기도염 21.10.01 25 1 13쪽
42 시간이 멈춘 아이 (5) 21.09.30 26 1 12쪽
41 시간이 멈춘 아이 (4) 21.09.30 27 1 13쪽
40 시간이 멈춘 아이 (3) 21.09.29 25 1 13쪽
39 시간이 멈춘 아이 (2) 21.09.29 26 1 12쪽
38 시간이 멈춘 아이 (1) 21.09.28 27 1 13쪽
37 모의고사 (2) 21.09.28 27 1 12쪽
36 모의고사 (1) 21.09.27 28 1 13쪽
35 리콜(recall) (2) 21.09.27 27 1 12쪽
34 리콜(recall) (1) 21.09.26 30 1 12쪽
33 내 안의 또 다른 나 21.09.26 33 1 12쪽
32 미제 사건 (2) 21.09.25 30 1 13쪽
31 미제 사건 (1) 21.09.25 3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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