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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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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글자수 :
1,6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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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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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모의고사 (2)

DUMMY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하루가 지나고, 기다리던 6월 모의고사 날이 되었다.

지루하고 지루했던 1교시 국어 시간이 끝나고 몇 배는 더 지루한 수학시간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사각사각—


학구열이 딱히 높은 편은 아닌 지역이라 그런 것일까? 2학년 2반 학생들의 3분의 2는 모두 전멸한 상태였다.

그들 중에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학생도 있었고, 시험지에 볼펜으로 낙서를 하는 학생, 시험지는 훑어보지도 않은 채 OMR카드에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일렬로 쭉 그어버리는 학생, 들어 먹지도 않는 머리로 애써 문제를 풀어보려다 포기하고 잠을 청하는 학생 등 여러 가지 유형이 존재했다.


오직 5명의 학생만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시험지를 풀고 있었다.


'아, 이거. 공식이 뭐였더라? 배웠는데... 갑자기 기억이 안 나냐.'


중간 풀이 과정에서 막혔는지 김현은 볼펜을 손으로 돌리며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시험 감독관은 그녀가 불쌍해 보였는지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반면 김현과 대각선으로 앉아있던 박정우는 신이 나서 문제를 풀고 있었다.


'후후, 이번 6월 모의고사는 내가 이긴다. 황대근은 날 이길 수 없을 걸. 왜냐하면 난 강남 출신인 안익준이 소개해준 학원을 다니고 있으니까 말이야!'


자신감이라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때로는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을 부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두 눈을 가려 현실을 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하하! 이번엔 내가 1등이다! 이러다 나 전국 1등 하는 거 아냐?'


박정우는 말 같지도 않은 망상에 부풀어, 말도 안 되는 수학 공식이란 공식은 죄다 끌어다 쓰며 억지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발견한 감독관은 안타깝게도 박정우가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어마무시한 착각을 하고 말았다.


'......'


천강우의 뒷자리에 앉아있던 황대근의 머릿속에는 번뇌가 없었다.

그는 마치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태어난 사람 마냥 문제를 풀었다. 그의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번 모의고사는 조금 쉽게 출제된 것 같네. 9월에 어려울라고 이러는 건가.... 어? 잠깐만.'


2교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 황대근은 난관에 봉착했다.

전교 1등을 방해하는 귀찮고 예의없는 문제가 한 가지 발견되었던 것이다.






(대근건설 - 뇌부서 - 맷돌팀)



끼이익— 끼익—


오만하고 거만한 뇌부서 직원들은 위장팀이나 구강팀과 같은 몸을 쓰는 일을 하는 팀들을 무시하고는 한다.

솔직히 뇌부서 만큼 편하고 안락한 부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뇌부서 직원들이 유일하게 무시하지 못하는 몸쓰는 팀이 하나 있다.

바로 맷돌을 굴리는 맷돌팀이다.


맷돌팀은 주로 사무직이 점령한 뇌부서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몸쓰는 팀인데, 뇌부서에서 만들었다기 보다는 인간 황대근의 정신연령이 조금씩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팀이라고 한다.

맷돌팀에 있는 맷돌은 황대근이 자라면 자랄 수록 크기가 커지는데, 만약 황대근이 머리를 너무 안 쓸 경우 자연스럽게 퇴화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늘 따라 맷돌이 아주 잘 굴러가는 군! 더 열심히 돌려라! 이번 모의고사도 잘 봐야지!"


맷돌팀장 돌쇠가 열심히 맷돌을 굴리는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끼긱— 긱—


"아, 진짜! 더 빨리 굴려 이것들아!"


부드럽게 돌던 맷돌의 움직임이 둔탁해지자 돌쇠가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갑자기 왜 이래? 더 굴리라고, 더! 빡세게! 하여간 개 같은 미생물 새끼들 게을러 터져가지고!"


사실 이건 불법인데, 그래서는 안 되지만 맷돌팀은 브레인과 강도윤의 보호 아래 생활이 어려운 미생물들에게 돈을 주겠다고 꾀어내 거의 강제로 맷돌을 굴리게 시키고는 했다.

어리버리한 불쌍한 미생물들은 정규직의 꿈을 꾸고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희망으로 이 일을 하지만, 사실 그들은 현대판 노예일 뿐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다.


긱— 긱—


맷돌의 움직임이 거의 멈췄다.

미생물들은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쥐어 짜 맷돌을 굴려보려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맷돌이 움직이지 않자, 돌쇠가 소리쳤다.


"야! 조금 있으면 2교시 끝나간다고! 빨리 어떻게 좀 해봐!"


맷돌 굴리는 일 밖에 모르는 미생물들이 하긴 뭘 하는가.


"젠장! 이러다가 한 문제 놓치겠어! 어떡하지?"


우르릉—


돌쇠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때, 커다란 맷돌 밑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고, 덩치가 매우 작은 미생물들은 넘어지지 않게 서로를 감쌌다.

돌쇠 역시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뭐, 뭐야? 이거.... 이거 설마......?"


그때였다.


퍼어엉—


사무실 바닥은 전혀 뚫리지 않았지만, 마치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나타났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돌쇠의 표정은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봐, !. 왜 이제서야 나타나?"


갑작스럽게 나타난 존재는 바로 '!'였다.

'!'라 불리는 맷돌팀 직원은 말이 없었다.

아주 오래전, 황대근이 어렸을 때부터 존재했던 직원인데, 황대근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곤란할 때마다 황대근을 도와주고는 했던 직원이다.

문제는 '!'는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의 생김새도 특이했다. 정말로 '!'처럼 생겼으니까.


끼이익— 끼이익—


'!'가 나타나자 맷돌은 부드럽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미생물들은 스스로 돌아가는 맷돌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따라서 굴리기 시작했다.


"!, 어디 가? 조금 있다가 같이 점심이라도 먹지?"


돌쇠의 제안에 '!'는 돌쇠를 빤히 바라보더니(어디가 눈일까?) 아무 말 없이 스르륵 하고 사라졌다.

'!'는 늘 그랬다. 갑자기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가 나타났을 때 재빠르게 '!'의 힘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으니까.






(대근건설 - 심장부서 내 카페)



점심시간, 주혁이 사준 심장라떼를 마시며 릴리는 그에게 자료 하나를 건네주었다.


"한 번 보시죠."


불량한 자세로 심장 라떼를 호로록 들이키며, 주혁은 릴리가 준 자료를 훑어보았다.


"이게 뭔데?"

"뇌부서 이비인후팀 자료입니다."

"이비인후팀 자료? 훔쳐왔나?"

"아뇨, 그쪽에서 저한테 보내준 겁니다. 이시연이라는 인간과 황대근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주변 소음때문에 이시연의 말 어떤 부분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흐음..."

"이비인후팀장 엔트가 저에게 이 자료를 복원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지지직— 지직—


자료에서는 이상한 소음이 들렸다.

이시연의 목소리는 주변 소음, 그러니까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학생들의 정신없는 말소리와 섞여 시끄러운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뇌파추적팀에서 이 자료를 복원할 수 있나? 외부 소음을 제거할 수 있겠어?"


주혁의 질문에 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의 고갯짓에는 이유 모를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주혁은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갑자기 자신이 없나?"

"소음 제거하는 건 사실 일도 아닙니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뭔데?"

"제 부하직원이 그 일을 참 잘하기는 하는데, 문제는.... 그 녀석은 헨리의 직원이라는 겁니다."


주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리커버 녀석 말이지? 대근고시 수석 합격했다는 그 놈?"

"네."

"젠장할...."


리커버는 릴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브레인이나 강도윤, 헨리에게 곧이 곧대로 일러바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릴리팀장, 다행이지 않아?"


다 마신 심장라떼를 카페 직원에게 가져다 주며 주혁이 말했다.


"생각해 봐, 애초에 이비인후팀장이 자네에게 복원할 수 있냐고 보내줬다며? 이비인후팀에서도 이 자료를 복원해야 저장할 수 있을 것 아니야?"


해석할 수 없는 자료는 자연스럽게 폐기된다.

폐기된 자료는 무의식의 깊은 곳에 영원히 묻히게 된다.

우연한 계기로 무의식에 묻혀있던 자료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문 경우다.


"그러니까, 일단 리커버에게 자료를 복원해 보라고 해봐. 이비인후팀장이 보낸 거라고 하면 되잖아? 팀장끼리 돕자고 한 일이니까 누가 뭐라고 하겠어? 뭐라 하는 놈이 미친놈이지."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릴리와 주혁이 만나고 시간이 흘러 벌써 다음 주 월요일이 되었고, 기말고사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수업 시간인 수학 시간에 김철환은 공부하던 황대근을 복도 밖으로 조용히 불러냈다.

김철환의 표정은 평소와는 다르게 제법 진지해 보였다.


"그래, 서울의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진로상담인가. 황대근은 생각했다.


"네."


그러자 김철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너도 알겠지만 여긴 평택이다. 서울 강남 학교에서도 서연고 못가는 놈들이 태반인데, 평택 촌놈이 서울의대는 무슨, 경기권도 어려워."


또 시작이군. 황대근은 해탈한 표정으로, 하지만 최대한 예의바른 표정으로 김철환을 보며 영혼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응원은 못해줄 망정, 학생의 기를 꺾는 김철환에게 그 입 닥치라는 말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황대근은 참아냈다.

잘못 하다가는 김철환이 자신의 학생부에 안 좋은 말들을 적어낼지도 모르니까.






(대근건설 - 뇌부서 - 감정팀)



"이거 놔! 이거 놔!"


코티졸은 뜨거운 불똥을 이리저리 흘리며 불같이 화를 내는 앵거를 간신히 뜯어 말리고 있었다.


"이거 놓으라니까, 코티졸! 난 늙은 새끼 면상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말 테니까! 허구한 날 개 같은 소리나 하고! 선생이라는 작자가 학생을 응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기를 꺾어놔?! 우리 대근이가 얼마나 심성이 곧고 똑똑한데! 으아아아아악!"


오늘따라 화가 많이 난 것일까, 그 대단한 코티졸도 앵거를 말리지 못하고 있었다.

감정팀의 한 가운데에 있는 감정 조종기에 앵거가 손을 갖다댈 무렵, 누군가 명상실에서 뛰쳐나왔다.

페이션이었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페이션은 자신이 좋아하는 격언을 낮게 읊조리며 앵거에게 다가왔다.

그는 언제나 승려복같은 헐렁한 회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긴 머리와 제법 잘 어울렸다.

분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앵거에게 그가 말했다.


"최고의 복수는, 우리가 황대근을 서울의대에 보내주는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는 거야. 김철환 따위가 우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김철환이 황대근에게 비굴한 자세로 나올 때, 바로 그것이 복수다."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황대근이 놀라운 속도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는 동안, 김철환이 황대근을 이리저리 관찰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서울 의대에 가고 싶어하는 거냐?"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황대근은 잠시 멈칫했다.

내가 왜 가고 싶어 하는 걸까? 단지 학벌때문일까?

아니다, 그건 확실히 아니었다. 황대근은 박정우나 안익준, 김철환처럼 쓸데 없이 학력으로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그런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인간의 인성이라는 것은 학력과는 무관하니까.


"가고 싶은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부모님이 가라고 하셨냐?"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황대근은 방금 전 막 떠오른 생각을 김철환에게 전달했다.


"사람들을 고쳐주고 싶어서요. 아픈 사람들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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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특명! 머리카락을 지켜라 (1) 21.10.06 27 1 12쪽
54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2) 21.10.06 23 1 13쪽
53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1) 21.10.05 25 1 13쪽
52 그림자 (2) 21.10.05 23 1 13쪽
51 그림자 (1) 21.10.05 21 1 13쪽
50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2) 21.10.04 36 1 13쪽
49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1) 21.10.04 32 1 13쪽
48 우연 혹은 필연 (2) 21.10.03 26 1 14쪽
47 우연 혹은 필연 (1) 21.10.03 2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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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살아있니? (2) 21.10.02 21 1 13쪽
44 살았니? (1) 21.10.01 28 1 13쪽
43 급성상기도염 21.10.01 25 1 13쪽
42 시간이 멈춘 아이 (5) 21.09.30 25 1 12쪽
41 시간이 멈춘 아이 (4) 21.09.30 27 1 13쪽
40 시간이 멈춘 아이 (3) 21.09.29 25 1 13쪽
39 시간이 멈춘 아이 (2) 21.09.29 26 1 12쪽
38 시간이 멈춘 아이 (1) 21.09.28 27 1 13쪽
» 모의고사 (2) 21.09.28 27 1 12쪽
36 모의고사 (1) 21.09.27 28 1 13쪽
35 리콜(recall) (2) 21.09.27 27 1 12쪽
34 리콜(recall) (1) 21.09.26 30 1 12쪽
33 내 안의 또 다른 나 21.09.26 33 1 12쪽
32 미제 사건 (2) 21.09.25 29 1 13쪽
31 미제 사건 (1) 21.09.25 3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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