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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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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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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1,802

작성
21.10.02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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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살아있니? (2)

DUMMY

(대근건설 - 메모리아 부서)



컨트롤은 현재 기분이 이상한 상태였다.

4명 밖에 안 되는 직원 중 3명은 근무시간에 다른 곳으로 튀지를 않나, 갑자기 뇌부서 직원 하나가 오더니 메모리아부서 자료실을 열람하게 해달라고 하지를 않나.


슥—


릴리는 컨트롤에게 뇌부서 전용 분홍 가운 주머니에 있던, 귀여운 뇌가 그려진 분홍색 카드 하나를 보여주었다.


"올-프리패스(all-free pass) 카드입니다. 뇌부서의 부장과 팀장은 대근건설 모든 부서의 자료실을 자율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컨트롤은 할 말이 없었다.

본인 역시 뇌부서 출신이기에, 올-프리패스 카드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허나 뇌부서 내에 퍼진 릴리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 역시, 컨트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여자가 아니라 농땡이치는 그 문제아들이 더 짜증난단 말이지. 이 여자가 설마 자료실을 마음대로 헤집어 놓는다 해도, 그건 내 잘못이 아냐. 그 문제아들 잘못이지. 암, 그렇고 말고! 그리고 이런 쬐깐한 여자애가 뭘 하겠어?'


마음을 정한 컨트롤은, 사실 그가 허락하지 않아도 올-프리패스 카드만 있다면 릴리는 얼마든지 메모리아 부서 자료실을 열람할 수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컨트롤은 릴리를 자료실로 들여보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녀는 컨트롤에게 형식적인 감사인사를 한 후 자료실 문 앞에 섰다.

자료실 문은 자동문이었는데, 차가운 냉기와 함께 문이 열리자 그녀는 온몸으로 한기를 느꼈다.

자료실은 자료의 보관을 위해 최소한의 산소와 낮은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지이잉—


자료실 문이 닫혔다. 릴리는 책꽂이에 적힌 숫자를 유심히 살펴보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보았다.

그러다 그녀는 책꽂이에 적힌 숫자 8을 발견했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이런, 먼지가..... 얼마나 오랫동안 안 봤길래..."


책꽂이에서 유독 낡아 보이는 책 하나를 펼치자, 오랫동안 묵혔던 먼지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콜록, 콜록! 아이고, 폐 썩겠네!"


릴리 역시 황대근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페르소나를 자유롭게 만든 것은 분명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근골격 부서에 있는 어린 페르소나가 4살에서 6살 정도까지의 자아니까, 8살 즈음을 살펴보면 되겠지. 인간 황대근이 겪은 '그 사건'에 관한 단서가 나올지도 몰라.'


낡고 낡은 책을 훑어보던 릴리는 책을 넘기던 손을 갑자기 멈추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택 살인사건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고? 범인이..... 평택에 거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쾅—


릴리는 읽던 책을 쾅하고 덮어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잠깐만, 이 자료는 인간 황대근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료야. 그러니까 이건 황대근의 상상일 수 도 있어. 8살 어린 아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 없던 일도 있던 일처럼 꾸며내고 망상을 할 수 있다고 쳐도 뭔가 이상했다.


'물론, 이 자료가 황대근이 8살일 때 만들어진 자료라 업데이트 한지 아주 오래되기는 했지만.... 참고할 가치는 충분하겠어. 주이사님께 듣기로 황대근이 15살 쯤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숫자 15.... 숫자 15......'






(대근건설 - 심장부서 내 카페)



"어린 트라우마는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어린 페르소나가 자유를 되찾은 뒤 자연스럽게 사라졌나봐요."


심장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며 리콜이 말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인간 황대근의 무의식도 언젠간 평화를 되찾게 되겠죠."


리콜와 황대근, 혜윰, 주혁 그리고 릴리는 심장부서 내 카페 테라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릴리는 자신이 메모리아부서 자료실에서 발견한 것들에 관해 직원들에게 알려주었다.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어요."


릴리의 말에 네 명의 직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리콜은 그의 동그란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며 릴리에게 말했다.


"피니시팀장님께서도 저번에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그 사건'속 살인 현장이었는데, 피해자들 얼굴을 팀장님께서도 보셨다고 해요. 팀장님이 이성(reason)이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팀장님은 정말 힘드셨을 겁니다."


이쯤되면 리콜이 위장팀 직원인지, 아니면 메모리아부서 직원인지 조금 헷갈릴 정도다.

릴리는 리콜의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황대근이 15살이었을 때쯤,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의 마지막 겨울 날 편지 한 통을 받았나봐요."


그러자 주혁은 다 마신 심장라떼를 빨대로 호로록 들이키며 말했다.


"인간 황대근이 15살이면... 대근건설에 '그 사건'이 일어나고 약 2년 후 아닌가?"


황대근이 물었다.


"2년 후라고요?"


주혁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2년, 아니 어쩌면 3년 전 쯤일수도 있겠군. 확실한 건 기억안나지만 대근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 다음일 거야. 대근이는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거든. 대근이랑 같은 반을 하는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아주 극성이었지. 아주 지독했어."


혜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지독했는데요?"

"괜히 찝찝하다는 게 이유였지. 황대근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녀석이 '그 사건'을 겪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까, 여기 평택 동네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다 알고 있었거든."

"찝찝할 게 뭐가 있는데요?"

"범인이 안 잡혔잖아. 그리고 학부모들은 살인 현장에서 피만 잔뜩 뒤집어쓰고 나온 황대근을 좋지 않게 생각했어. 범인이 추후에 녀석을 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지 자식들하고 어울리는 걸 싫어했지. 물론 부모로서는 당연한 일이야."


더 물어보려는 혜윰을 저지하며 황대근이 릴리에게 물었다.


"편지라는 건 또 뭡니까?"


릴리가 주혁이 건네는 심장스콘을 정중히 거절하며 대답했다.


"범인이.... 보낸 편지였어요."


순간 카페 테라스 주위에는 정적이 쏟아졌다.

숨막히는 정적을 먼저 깨부순 것은 황대근이었다.


"범인이라면....? 설마...?"


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인간 황대근의 부모님을 살해한, 바로 그 범인이요.“

"뭐라고 적혀있었는데요?"


혜윰이 묻자 릴리는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편지가 일부 훼손되어 있어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 중요한 말이 적혀있었어요."


자신을 바라보며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는 나머지 4직원들을 보며, 릴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있니?"






(경기도 평택시 - S치과)



다음 날, 황대근은 하교를 한 뒤 예약 시간에 맞추어 치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도 역시 대기실에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5분도 되지 않아 간호사는 황대근의 이름을 불렀고, 그는 진료실에 있는 의자에 앉아야만 했다.


'잇몸 마취는 처음 해보는데.'


석허용이 가느다란 주사로 황대근의 잇몸을 찌르자, 그는 입가 주변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시연이 치과 의자는 생각의자 같다고 했었지. 자동적으로 고해성사를 하게 된다면서.'


오늘 점심에 황대근은 이시연에게 사랑니를 뽑는다고 알려주었었다. 그러자 이시연은 황대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옛날부터 이빨 뽑기는 고문으로 쓰였어.'


참 힘이 나는 이시연의 응원 아닌 응원을 되새기며, 점점 굳어지는 하악(下顎)의 감각을 느끼면서 황대근은 생각의자에 앉아 자신이 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근건설 - 소화기부서 - 구강팀)



구강팀장 마우스는 완전 무장을 한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방금 전 황대근의 잇몸이 마취 되었다! 조금 있으면 석허용이 무시무시한 연장도구를 가지고 황대근의 잇몸을 찢어버릴 것이다! 상당량의 피가 흘러나올 테니, 모두 마음 단단히 먹도록! 몸에 피가 직접 닿지 않도록 작업복 단단히 입었나 확인들 하도록!"


마우스의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황대근의 입은 위 아래로 크게 벌어졌다.

그러자 치과 특유의 밝은 빛이 구강팀을 비추기 시작했다.

구강팀 직원들은 난데없는 빛의 공격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젊은 팀장인 마우스 역시 사랑니 뽑기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전직 구강팀 직원들이 모두 은퇴하거나 부서를 옮긴 탓에 현재 구강팀 직원들은 마우스를 포함해 대다수가 신규 직원들이었다.


지이이잉—


벌어진 황대근의 입 속으로 은색 빛의 칼이 들어왔다.

마우스는 그 칼을 보며 직원들에게 외쳤다.


"당황하지 마라! 석허용이 잇몸을 째기 전까지는 저 근처에 가서는 안 된다!"


그때였다.


꿀렁꿀렁—


황대근의 침샘에서 침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구강팀 직원들은 밀대를 이용해 막 잇몸을 째고 있는 칼 쪽으로 침이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흐르는 침을 막았다.

마우스는 다시 한 번 더 소리쳤다.


"침이 밀려오지 못하도록 제대로 막아라! 물론 저 치과의사가 침의 일부를 치워주겠지만! 어쨌든 우리도 도와야 한다! 침이 자꾸 나오면 치료하기 힘들어진다! 대근이도 입 벌리고 있기 힘들어져! 최대한 막아라!"


마우스와 직원들이 밀려오는 침을 막는 사이, 석허용은 황대근의 잇몸을 찢은 후 다른 도구를 이용해 누워있는 사랑니를 캐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구강팀은 마치 샷시공사를 하는 것처럼 엄청난 소음과 마주해야만 했다.


[아~ 이거 뿌리가 깊은데?]


석허용의 근심 가득한 목소리가 벌어진 황대근의 입을 따라 구강팀에 울려 퍼졌다.

그의 한 마디에 구강팀 직원들은 모두 입고 있던 작업복을 더욱 단단히 고정해야 했다.






(대근건설 - 뇌부서 - 감정팀)



감정팀에 있는 명상실의 문은 열려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니, 페이션과 앵거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채였다.


[cham a ya ha n ni ra]라고 적힌 문구 역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끄으으으...."


어지간해서는 평정심을 잃지 않는 페이션은, 무슨 이유인지 단정했던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그는 옆에 대자로 누워 뻗은 앵거의 축 처진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애.... 앵거... 일어나....."

"......"


앵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뿌리 깊은 사랑니를 뽑느라 화란 화는 다 내버린 앵거는, 이제 더 이상 화낼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콰앙—


바로 그 때, 이미 열려있는 명상실의 문을 박로 뻥 하고 차며 누군가 들어왔다.

감정팀에서 고통을 담당하는 직원, 페인(pain)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두 직원을 향해 그는 소리쳤다.


"인생은 고통이야아악!"


일어설 힘조차 없어 보이는, 심지어는 숟가락 들 힘마저도 없어 보이는 페이션과 앵거는 입에서 불을 뿜어대는 페인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붓다 말이 맞았어. 인생은 고(苦)야, 인생은 고라고!"







얼음팩으로 퉁퉁 부어버린 오른쪽 볼을 문지르며, 황대근은 약 봉지를 들고 방금 막 약국을 빠져나왔다.

그는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비릿한 피맛을 느끼며 조금 전에 석허용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것 좀 봐요. 아주 잘 뽑혔지요?‘


그것은 황대근의 뽑힌 사랑니였다.


'확실히 젊은 피는 달라. 근육들이 튼튼하고 그래서 잘 안 뽑히더라고. 겨우 뽑았지, 뿌리가 아주 깊은 놈이었어. 학생, 가져갈래요?‘


물론 황대근은 그것을 가져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고통을 선물한 사랑니를 굳이 집에 들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으, 다부가 바 모머게네(으, 당분간 밥 못 먹겠네).“


웅성웅성—


집으로 돌아가던 황대근은 J아파트 근처에 주민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경찰이 있었다.

심각한 상황인지 경찰들은 주민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막았다.

황대근은 그곳에 다가가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주민 한 명에게 물었다.


"무스 이이에오(무슨 일이에요)?“


황대근의 어설픈 발음을 용케 알아낸 주민이 대답했다.


"누가 죽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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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1) 21.10.05 25 1 13쪽
52 그림자 (2) 21.10.05 23 1 13쪽
51 그림자 (1) 21.10.05 21 1 13쪽
50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2) 21.10.04 36 1 13쪽
49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1) 21.10.04 32 1 13쪽
48 우연 혹은 필연 (2) 21.10.03 26 1 14쪽
47 우연 혹은 필연 (1) 21.10.03 25 1 13쪽
46 살았니? (3) 21.10.02 21 1 13쪽
» 살아있니? (2) 21.10.02 22 1 13쪽
44 살았니? (1) 21.10.01 28 1 13쪽
43 급성상기도염 21.10.01 25 1 13쪽
42 시간이 멈춘 아이 (5) 21.09.30 26 1 12쪽
41 시간이 멈춘 아이 (4) 21.09.30 27 1 13쪽
40 시간이 멈춘 아이 (3) 21.09.29 25 1 13쪽
39 시간이 멈춘 아이 (2) 21.09.29 26 1 12쪽
38 시간이 멈춘 아이 (1) 21.09.28 27 1 13쪽
37 모의고사 (2) 21.09.28 27 1 12쪽
36 모의고사 (1) 21.09.27 28 1 13쪽
35 리콜(recall) (2) 21.09.27 27 1 12쪽
34 리콜(recall) (1) 21.09.26 30 1 12쪽
33 내 안의 또 다른 나 21.09.26 33 1 12쪽
32 미제 사건 (2) 21.09.25 29 1 13쪽
31 미제 사건 (1) 21.09.25 3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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