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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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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309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09.3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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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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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시간이 멈춘 아이 (5)

DUMMY

(대근건설 - 제 1건물 브레인 - 사장실)



사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장실 근처에도 아무도 없었다.

사장실에는 두 손과 발이 묶인 채 입에 재갈이 물려 벌벌 떨고 있는 어린 페르소나만이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왕근의 말대로 헨리는 사장실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 놓은 어린 페르소나를 다른 직원들에게 들킬까 두려워, 경비를 단 한 명도 세워두지 않았던 것이다.

왕근이 보내 준 프로틴의 건장한 부하 직원 두 명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서로 등을 맞대며 사방을 살폈다.

황대근은 쓰러져 있는 어린 페르소나에게 걸어가 주혁이 준 릴리의 자료를 꺼내들었다.


"여기서 어린 페르소나를 달래주려고요?"


혜윰의 질문에 황대근의 옆에 서 있던 리콜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이 4시 10분 정도 됐으니까, 헨리와 7이사들은 이미 골프장으로 떠났을 겁니다. 오히려 만신창이가 된 어린 페르소나를 들고 여길 빠져나갔다가는 의심만 살 겁니다. 게다가 저 두 건장한 분들 때문에 더 의심을 살 거예요."


어린 페르소나의 부자유스러운 신체를 자유롭게 풀어주며 황대근이 리콜에게 말했다.


"아니요, 리콜씨. 저희는 어린 페르소나를 데리고 여길 빠져나가야 합니다. 저희에 관한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하, 하지만... 들키기라도 하면....."

"걱정 마세요. 지금은 어린 페르소나가 만신창이가 되어서 그렇지, 말끔하게 닦아 놓으면 그냥 아빠 회사 따라온 평범한 철없는 어린애인줄로만 알 겁니다. 혜윰씨!"


황대근은 혜윰을 불러 약 한 가지를 요청했다.


"여기로 오기 전에 부탁했던 것 기억나죠? 그것 좀 주세요."


그러자 리콜의 표정은 호기심으로 뒤덮였다.

주위를 살피던 건장한 두 직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 있어요, 대근씨."

"고맙습니다."


혜윰으로부터 거품무늬의 약병을 건네받은 황대근은 즉시 뚜껑을 열고 어린 페르소나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어린 페르소나는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보이더니, 맛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꿀꺽꿀꺽 마시며 약병을 싹 비워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밧줄에 쓸리고 발길질에 걷어차였던 어린 페르소나의 꼬질했던 몸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손목과 발목의 상처도, 얼굴에 묻은 쉐도우의 신발 자국도 모두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리콜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혜윰씨는 무슨..... 마법사인가요? 저번에는 탈모약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혜윰은 자랑스러운 듯 입술을 씰룩거렸다.


"씻기 귀찮아 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제가 발명한 약 중 하나예요."

"부작용은 없습니까?"


순간 털복숭이가 된 컨트롤을 떠올린 황대근이 묻자, 혜윰이 대답했다.


"부작용은 없어요! 이번에는 제가 제 몸으로 직접 실험해 봤거든요. 그런데 왜 얼굴에 묻은 피는 안 지워지는 걸까요?"


과정이야 어쨌든 말끔하게 깨끗해진 어린 페르소나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은 황대근은 여전히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건장한 두 직원에게 이렇게 일렀다.


"저와 혜윰씨, 그리고 리콜씨가 먼저 이곳을 빠져나갈 겁니다. 저희가 떠나고 약 10분 뒤에, 두 분은 저 어린 페르소나를 데리고 근골격부서 헬스장으로 데려와 주세요. 혹시 다른 직원, 특히 뇌부서 직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린 애가 함부로 회사에 들어와 길을 잃어서 부모님을 찾아주러 가는 중이라고 대충 둘러대세요. 솔직히 두 분의 덩치라면 그 누구도 시비를 걸 것 같지는 않긴 하지만요."






(대근건설 - 근골격부서 - 헬스장 - 개인 전용 탈의실)



"어린 페르소나는 내 먼 친척의 조카라고 직원들에게 대충 둘러댔어. 사실 우리 근골격부서 직원들은 남의 일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야. 다들 알겠지만 그놈들은 모두 근성장에만 관심이 있지."


프로틴이 개인 전용 탈의실 문을 닫으며 황대근 일행에게 말했다.


"너희들을 도와주었던 두 건장한 직원들은 믿어도 괜찮아.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우리 근골격부서 직원들은 근육 외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프로틴 팀장님."


황대근의 감사인사에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며 프로틴이 말했다.


"감사 인사 같은 건 됐어. 그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헨리가 골프를 다 치고 오기 전에 어서 일을 진행하자고."


생각보다 어린 아이들은 본능이라는 것이 매우 잘 발달되어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내 앞의 이 존재가 위험한지, 아니면 위험하지 않은 지를 판단한다.

어린 페르소나 역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이 어른들이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헨리의 앞에서 경계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이곳에 온 이후로 어린 페르소나의 얼굴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네요."


혜윰이 어린 페르소나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왜 피는 안 지워지는 거죠?"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이 자료를 이용해야 합니다."


황대근의 말에 리콜이 물었다.


"이 자료에서 이시연이라는 인간이 말한 피해자들의 아이가... 어린 황대근이었죠?"


황대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 아이는 인간 황대근의 어린 자아입니다. 피가 지워지지 않는 것 역시, 아이의 시간이 살인 사건이 일어난 그 당시의 시간에 멈춰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부터 우린 아이의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 줄 겁니다. 이제는 녀석을 자유롭게, 편하게 만들어 줘야죠."


그러자 프로틴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어떻게 녀석을 자유롭게 해 주지? 얘랑 얘기를 해야 하나?"


탈의실을 두리번거리는 어린 페르소나를 보며 황대근이 말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제가 방법을 알 것도 같습니다."






(?)



황대근은 어린 페르소나의 정수리에 오른손을 얹었다.

몇 초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황대근이 손을 떼려고 할 때 쯤 그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한 아파트에 있었다.


"살려줘요.... 우리 엄마아빠 살려줘요....."


어린 페르소나는 난장판이 된 거실에 홀로 주저앉아 잔혹하게 살해된 피해자들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어찌나 겁을 먹었는지, 어린 페르소나는 어린아이답게 목 놓아 울지도 못하고 속으로 감정을 삼켜냈다.

황대근은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은 어린 페르소나에게 다가가 옆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어린 페르소나는 그를 힐끗 보더니 시체에 눈을 고정한 채 말했다.


"많이 아팠을 거예요."


황대근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계속 여기 있었어요. 몇 년이 지나도록. 인간 대근이가 사춘기가 오고 고등학교에 졸업해 지금까지 쭉."


황대근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헌데 어린 페르소나의 얼굴에 묻어 지워지지 않았던 핏자국은, 아주 미세하게 닦여 있었다.


"나는 아직도 아픈데, 주위 어른들은 다 저한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자꾸 힘들어하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네가 계속 울면 안 된다고. 이제 부모님도 계시지 않으니까, 어른 답게 굴어야 한다고."


황대근은 순간 어린 페르소나의 어깨를 다독여줄까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말 없이 아이의 말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우리 엄마아빠를 죽인 나쁜 아저씨가 도망가고 경찰이 왔을 때, 그 아저씨들이 저한테 그랬어요. 범인이 어떻게 했는지 재현해보라고."


아이가 코를 훌쩍였다.


"킁! 그 뒤로는 힘들어도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어요. 울어본 적도 없어요. 오히려 제 또래 친구들이 철 없이 엉엉 울고 떼를 쓰면 저는 신경질을 내곤 했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그게 더 심해졌어요. 하지만 저는 늘 이곳에 있었어요. 저는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어요."

"힘든 건 힘든 거야."


황대근의 나지막한 말 한마디에 시체들을 바라보던 어린 페르소나는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슬픈 건 슬픈 거고, 힘든 건 힘든 거야. 초등학교 졸업도 안 한 네가 그걸 굳이 숨기며 살 이유는 없어. 아직 어린놈이면서 징그럽게 어른처럼 굴지 말라고."


바로 그때, 황대근은 오른손을 뻗어 어린 페르소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어린 페르소나의 얼굴에 묻은 피가 조금씩 닦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네 인생을 살아. 힘든 건 힘든 대로 내버려 두고, 이젠 이 곳에서 벗어나자."


어린 페르소나의 얼굴에 묻은 피는 이제 모두 닦였다.

아이의 얼굴에는 더 이상의 고뇌와 괴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후련함과 개운함,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설렘만이 존재했다.


"형, 나 나중에 커서 되고 싶은 게 생겼어요."

"뭐가 되고 싶은데?"

"의사요."

"의사? 왜?"

"사람들을 고쳐주고 싶어서요. 아픈 사람들이요."






(대근건설 - 소화기부서 - 위장팀)



저녁시간이 다가오면서, 위장팀은 곧 미친듯이 쏟아질 음식들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가하고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황대근이 아마 치킨을 시켜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니시는 미르를 포함한 위장팀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런 뒤 망치 보관대에 F라 적힌 망치를 뽑아 들고 자신의 위치로 가려고 할 때 쯤, 그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인간 황대근의 아주 어린 시절의 자아가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늘, 자신의 발목이나 손목을 마치 누군가가 붙잡고 늘어지기라도 하는 것 처럼 묵직한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바로 지금, 피니시는 자신의 발목과 손목이 해방되는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황대근이 성공했나 보군.'


보기만 해도 어깨가 나갈 것 같은 무거운 망치를 어깨에 걸치며, 피니시는 생각했다.


'어린 페르소나가.... 드디어 나를 놓아주었어.'






(대근건설 - WBC)



피니시가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는 치킨들과 치킨무들을 처리하고 방금 막 직원 휴게실 침대에 뻗어버렸을 때였다.


"케어 대장님, 케어 대장니임!!! 큰일 났어요, 큰일!!!"


갑자기 자신을 불러 대며 WBC로 뛰어 들어오는 플루를 보며, 케어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케어는 방금 막 잘 익은 3분 컵라면을 먹으려 하고 있었다.

인간 세상의 구급대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WBC의 대원들 역시 여유롭게 식사할 시간 없이 일을 하곤 했다.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식사를 했든 못 했든, 화장실을 갔든 못 갔든 상관없이 즉시 출동해야 했으니까.


"대근이가, 대근이가!"


좀처럼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플루를 보며 케어가 젓가락 한 가득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을 집어 들며 말했다.


"대근이가 왜?"

"급성상기도염에 걸렸어요!"


플루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다.


급성상기도염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너무 심각해 보인다고 생각한 케어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왜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지? 급성상기도염이면 심각한 것 아니야?"

"제 이름이 왜 플루(flu)겠어요?"

"뭐?"

"제 이름이 플루니까, 사이렌이 안 울리죠. 이건 제 전문이니까요~"


순간 속은 기분이 든 케어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플루, 급성상기도염이 뭐지?"


그러자 플루는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감기요."


순식간에 다 불어버린 3분 컵라면을 목격한 케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플루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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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1) 21.10.05 25 1 13쪽
52 그림자 (2) 21.10.05 23 1 13쪽
51 그림자 (1) 21.10.05 21 1 13쪽
50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2) 21.10.04 36 1 13쪽
49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1) 21.10.04 32 1 13쪽
48 우연 혹은 필연 (2) 21.10.03 26 1 14쪽
47 우연 혹은 필연 (1) 21.10.03 25 1 13쪽
46 살았니? (3) 21.10.02 21 1 13쪽
45 살아있니? (2) 21.10.02 21 1 13쪽
44 살았니? (1) 21.10.01 28 1 13쪽
43 급성상기도염 21.10.01 25 1 13쪽
» 시간이 멈춘 아이 (5) 21.09.30 26 1 12쪽
41 시간이 멈춘 아이 (4) 21.09.30 27 1 13쪽
40 시간이 멈춘 아이 (3) 21.09.29 25 1 13쪽
39 시간이 멈춘 아이 (2) 21.09.29 26 1 12쪽
38 시간이 멈춘 아이 (1) 21.09.28 27 1 13쪽
37 모의고사 (2) 21.09.28 27 1 12쪽
36 모의고사 (1) 21.09.27 28 1 13쪽
35 리콜(recall) (2) 21.09.27 27 1 12쪽
34 리콜(recall) (1) 21.09.26 30 1 12쪽
33 내 안의 또 다른 나 21.09.26 33 1 12쪽
32 미제 사건 (2) 21.09.25 29 1 13쪽
31 미제 사건 (1) 21.09.25 3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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