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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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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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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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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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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미제 사건 (1)

DUMMY

(대근건설 - 메모리아 부서)



피니시와 황대근이 만나고 며칠 뒤, 쓸데없이 직급만 높고 딱히 일하는 것 없는 주혁이 메모리아 부서의 직원 휴게실로 쳐들어왔다.

점심시간 약 30분 전 쯤이었다.


'아, 아니... 주이사님....? 여긴 어쩐 일로....?'


당연하다는 듯이 직원 휴게실 소파에 털썩 눌러 앉은 주혁을 보며, 컨트롤은 애써 구겨지는 자신의 얼굴 근육을 붙잡아야만 했다.

그런 컨트롤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혁은 컨트롤의 셔츠 깃 사이로 삐져나온 풍성한 털을 힐긋 쳐다볼 뿐이었다.

혜윰이 주었던(?) 탈모약의 부작용이 제법 심각했는지, 컨트롤은 여전히 근무시간에 틈만 나면 제모를 하러 사무실을 빠져나가곤 했던 것이다.


'황대근이를 좀 보러 왔습니다만.'


주혁이 뻔뻔한 얼굴로 소파 앞의 식탁 위에 올려진 적혈구맛 탄산 주스를 집어 들며 말했다.

컨트롤은 속으로, 자신도 나름 메모리아 부서의 부장인데 이딴 취급이나 받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했다.

허나 대답은 해야지. 이사가 질문했는데.


'큼큼! 황대근이라면... 지금은 여기 없는데요. 아마 더 있어야 올 겁니다. 오래 걸릴 텐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들어보면 컨트롤의 말에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해 보인다.

허나 자세히 들어보면 배려는 개뿔, 빨리 꺼지라는 뜻이었다.


'상관 없어. 금방 점심시간이니까, 기다리면 돼.'


이제는 직원휴게실 소파에 드러누워버린 주혁을 보며 컨트롤은 쓰고 있던 안경을 매만졌다.

어쩔 수 없다. 최대한 황대근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끼이익—


몇 십분 뒤, 황대근과 혜윰, 리콜 그리고 메모리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리콜과 메모리는 휴게실에 컨트롤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자료가 모여있는 책장으로 달려가 마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을 꾸몄다.


우리의 뻔뻔하기 그지없는, 회사는 취미로 다니시는 황대근과 혜윰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당당하고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휴게실로 들어왔다.

그 장면을 하루 이틀 본 것이 아닌 컨트롤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 익숙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히려 주혁의 표정이 기가 찬 듯 해 보였다.


"이야, 근무시간에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시나?"


주혁의 빈정거림에 황대근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죽을 때까지 매달 월 500만셀씩 받고, 하는 일도 없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 황대근의 인생은 어느 순간 여유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한 푼 더 벌겠다고 윗사람에게 비굴하게 굴 것도 없었고, 짜증 나는 사내 정치질에 휘말려야 할 일도 없었다.

'부(富)'라는 건, 이렇게 인생을 여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다."


주혁의 말에 혜윰이 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 설마.....!"


혜윰은 컨트롤의 눈치를 살살 보며 자신이 휴게실 한 구석에 숨겨둔 약병이 있는 곳으로 흘끔흘끔 시선을 돌렸다.

이 안에서 그 시선을 알아챈 자는 오직 황대근 뿐이었지만, 그는 모른 척 했다.

그는 주혁에게 물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주혁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컨트롤을 바라보았다. 눈치 있게 이곳에서 얼른 꺼지라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읽은 컨트롤은 억울한 나머지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버렸다.

주혁은 그런 컨트롤을 무시한 채, 한 손을 휘둘러 얼른 나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나가 새끼야.'


컨트롤이 휴게실을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주혁은 정장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자료 두 개를 황대근에게 건넸다.

자료를 받아든 황대근이 이게 무엇이냐 묻자, 주혁이 대답했다.


"헨리가 대근건설 속 '그 사건'의 J를 따라하려는 게 확실하다는 증거자료들이다. 하나는 마이크로가 헨리에게 납치 당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뇌파추적팀장 릴리가 알아낸 담배냄새에 관한 자료야."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자료를 보며 황대근이 말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피니시팀장님께서 얼마 전 제게 말씀해 주셨거든요."

"뭐? 피니시? 그놈이 먼저 선수를 쳐버렸구만."


아까운지 입맛을 다시는 주혁을 보던 황대근은 갑자기 고개를 뒤로 돌리더니 휴게실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했다.

컨트롤이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확인한 후, 그가 말했다.


"안 그래도 저희 직원들끼리 조금 전에 마이크로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헨리에게 납치 당한 마이크로를 어떻게 구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마이크로는 이미 풀려났거든."


'풀려났다'고? 그럼 헨리가 마이크로를 풀어주었다는 이야기인가? 황대근은 의심스러웠다.


"금방 여기로 올 거야. 점심때까지 아직 시간 남았지? 너희 시간 괜찮지?"


주혁은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의 신성한 점심시간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부장인 컨트롤이 비슷한 얘기를 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데, 이사가 이런 얘기를 한다고 개차반인 메모리아 부서 직원들이 말을 들을까?


"근데 배고프면 당 떨어져서 안 되는데요~ 밥을 먹어야 머리가 돌아가든 말든 할 것 같은데~"


역시, 혜윰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다들~ 먹고 살자고 이런 짓 하는 건데~ 밥은 먹어야죠~ 뭐 드실래요? 사다리타기로 정할까요? 저기 컨트롤 부장니임~ 뭐 드실래요~?"






(대근건설 - 심장부서 구내식당)



황대근과 다른 메모리아 직원들은 주혁이 안내한 구내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얼떨결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된 컨트롤은 한 번도 심장부서에서 식사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지, 마치 처음 한양에 올라온 시골 선비 마냥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컨트롤은 분명 뇌부서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부서의 화려하고 온갖 맛있는 냄새로 진동하는 구내식당을 보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심장부서. 뇌부서 다음가는 대근건설 최고의 부서 중 하나다.

컨트롤이 주혁에게 꼼짝을 못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는 있는 것이다.


"뭐, 먹고 싶은 것 다 시켜. 내가 살 거니까. 아, 술도 마시고 싶으면 시켜."


주혁의 말에 혜윰의 두 눈이 반짝거리는 것을 눈치챈 황대근은 그녀에게 단단히 일렀다.


"술은 안 됩니다. 그냥 다른 걸 많이 드세요."

"쳇."


원망이 섞인 혜윰의 눈초리를 애써 무시하며, 황대근은 주혁이 건넨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대근건설 각 부서에는 구내식당이 존재한다.

메모리아 부서에도 물론 식당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심하게 낡았으며 발을 내딛을 때마다 죽은 벌레를 밟아야 한다는 아주 큰 단점이 존재한다.


보통의 인간들이 다니는 회사에도 분명 구내식당, 그러니까 사내식당이 존재할 것이다.

허나 대근건설의 구내식당은 조금 달랐다. 7성급 뷔페 저리가라 할 정도로 화려하고 기름진 음식들과 프랑스 셰프가 다녀간 듯한 예쁘고 달달한 디저트, 그리고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최고급 원두로 만든 커피까지.


물론... 위의 이야기는 부서의 서열이 높아야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심장부서는 메모리아부서보다는 훨씬 나았다.


"뭐 먹을래?"


황대근을 포함한 6명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음식을 주문했다.

술을 좋아하는 주혁은 정신이 나갔는지 술을 주문하고 말았다. 애초에 회사라는 공간에서 술을 파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ADH1B랑 ALDH2. 이 두 개가 그렇게 맛있다? 한 번 먹어보시죠들!"


황대근은 술을 권하는 주혁에게 은근슬쩍 술잔을 가져다 대는 혜윰을 보자, 혜윰의 술잔을 남들 몰래 뺏어들었다.


'안 된다니까요.'


황대근이 복화술로 혜윰을 타이르자, 혜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녀의 표정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아! 여기야! 여기! 이리 오게!"


혜윰을 제외한 나머지 4명과 대낮에 회사에서 술판을 벌이던 주혁은 저 멀리서 걸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마이크로! 몸은 좀 괜찮나?"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마이크로였다.

마이크로의 어정쩡한 표정을 보며 황대근은 잊고 있던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마이크로는 대근건설의 7이사를 싫어한다는 사실 말이다.


"자, 여기 앉게!"


주혁이 자신의 바로 왼쪽 자리에 놓여있던 의자를 끌어내 마이크로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밀어주었다.

그러자 주혁의 오른편에 앉아 ADH1B를 마시던 컨트롤은 마이크로를 보자마자 그만 마시던 술을 뿜어버렸다.

컨트롤은 미생물인 마이크로를 싫어했던 것이다.


뇌부서 직원들은 대체로 미생물들을 싫어한다.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컨트롤을 포함한 대부분의 뇌부서 직원들은 미생물들에게 월급을 주어서는 안 되고, 또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야 한다고 늘 주장했다.

그들은 미생물들 때문에 소중한 인재들의 기회를 쓰레기들에게 빼앗긴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 미생물들에게는 그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대근건설의 인사과는 모두 뇌부서 직원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들이 미생물들을 정규직으로 뽑을리가 없다.


'에이!'


컨트롤은 마이크로와 마주 보고 앉아있는 것도 불쾌한지 지나칠 정도로 싫은 티를 내며 술을 연신 퍼마셨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얘기를 해볼까? 아 참! 이봐 컨트롤!"


주혁이 벌써 ADH1B를 9잔 째 마시고 있던 컨트롤에게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자네가 여긴 왜 있지? 자네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컨트롤은 마시던 술을 2차로 뿜어냈다. 그 바람에 그의 잘 다려진 정장이 폭 젖어버렸다.


"자네 정신 나갔나? 짬밥 좀 먹었다고 긴장이 풀렸어, 엉? 어~디 이사 앞에서 대낮부터 노가리를 까고 앉아 있나? 어서 사무실로 돌아가!"


황대근은 컨트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주혁을 보며, 권력은 저렇게 남용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편, 황대근은 주혁을 보느라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혜윰이 몰래 술잔 밑장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컨트롤이 온 몸에 수북이 자라난 자신의 털들로 눈물을 닦고 있을 무렵, 점심을 먹은 또다른 황대근은 이시연과 함께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런지, 아이스크림의 밑부분은 금방 녹아내렸다.

바닥에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 떨어지지 않게 하느라 혼자 별 생쇼를 다하고 있는 황대근을 보며 이시연이 말했다.


"그러니까, 벌써 며칠 째 그 꿈을 꾼다는 거지? 계속 같은 꿈을?"

"그래."


황대근은 벌써 아이스크림의 절반을 먹어 치운 상태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꿈 같은 건 안 믿어. 뭐랄까, 그냥 꿈은 그냥 꿈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든."


황대근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연이 계속 말했다.


"그런데, 네가 꿨다는 그 꿈 말이야. 조금 이상해."


이시연이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했다.


"13년 전인가, 14년 전인가 쯤에 여기 평택에서 살인사건 하나가 일어났었거든?"

"살인사건?"

"응, 미제사건으로 남은 살인사건이야. 범인을 아직까지도 못 잡았대. 내가 듣기로는 그냥 수사종결을 해버린 걸로 알고 있어."


황대근은 '살인사건' 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자신이 꾸었던 이상한 꿈을 다시 회상하기 시작했다.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황대근은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사건인데?"


작가의말

오늘 점심 떡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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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그림자 (2) 21.10.05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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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급성상기도염 21.10.01 2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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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시간이 멈춘 아이 (3) 21.09.29 25 1 13쪽
39 시간이 멈춘 아이 (2) 21.09.29 26 1 12쪽
38 시간이 멈춘 아이 (1) 21.09.28 27 1 13쪽
37 모의고사 (2) 21.09.28 27 1 12쪽
36 모의고사 (1) 21.09.27 28 1 13쪽
35 리콜(recall) (2) 21.09.27 27 1 12쪽
34 리콜(recall) (1) 21.09.26 30 1 12쪽
33 내 안의 또 다른 나 21.09.26 3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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