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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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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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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57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0.0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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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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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우연 혹은 필연 (1)

DUMMY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J아파트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뒤 아침조례시간, 김철환은 잔뜩 화가 나 벌게진 얼굴로 2학년 2반 교실 앞문을 거칠게 열어 젖혔다.

담임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파악한 2학년 2반 학생들은 불똥이 튈까 두려워 입을 다물었다.

김철환의 표정에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 담겨있었으나, 그래도 지도 나름 어른이랍시고 애써 화를 꾹꾹 눌러 담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큼큼, 1교시 수업 잘 듣고, 이따가 보자."


결국 간단한 아침 조례를 마친 김철환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교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김철환이 교실을 빠져나온 것을 확인한 이시연은 잽싸게 2학년 2반 교실로 들어와 황대근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천강우가 말했다.


"황대근, 네 말대로 13년 전 평택 살인사건의 범인과 이번 J아파트 살인사건의 범인이 같다면, 네가 잘 하면 범인을 잡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딴은 그럴 듯 했다.


"그러니까 경찰한테 말하러 가자!"


천강우의 말에 이시연은 강하게 반대했다.


"야, 경찰이 겨우 고딩 서너명이 얘기한다고 듣겠냐? 그리고 겨우 기억 속에 편지가 있었다고 하는 건, 증거가 너무 불충분해. 경찰들은 대근이가 그냥 과대망상증이 있는 걸로만 생각할 거야."


그러자 천강우는 울상이 된 채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굉장한 일이란 말이야!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가죽이 벗겨져서 죽었다잖아!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한껏 들뜬 천강우의 말을 무시한 채, 이시연은 황대근에게 물었다.


"J아파트 살인 사건, 오튜브에 떴나?"


황대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뜨긴 떴는데, 음모론이나 3류 기사나 다루는 오튜버가 만든 영상이라 신뢰성은 없어. 댓글들 반응도 그닥이고."

"조회수는?"

"글쎄, 한 만 정도 될 걸."

"뭐라고 올렸대?"

"동영상 올린 오튜버가 약 13,4년 전 평택 살인사건의 범인이 이번 J아파트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떠들어대더라고."


이시연은 코웃음을 쳤다.


"흥, 그 오튜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너랑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본데?"

"그러니까! 경찰한테 가서 얘기하자니까?"


황대근의 옆에서 숙제를 열심히 베끼던 백경민은 계속해서 경찰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천강우에게 말했다.


"강우야, 강우야. 경찰들은 생각보다 이번 사건에 열정이 없을 거다."


천강우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 열정이 없다니? 무슨 소리야?"

"평택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우연인지 뭔지 우리 동네 말고 평택 다른 동네에서 한 번 더 살인사건이 일어났거든. 그런데 문제는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아~주 높으신 분의 자제분이셨나봐. 지금 뉴스도 다 그쪽 살인사건만 보여주고 있어. 그거 때문에 우리 동네 살인사건은 묻혀버렸다니까."


태어나는 것에 계급이 있다면, 죽음에도 계급이 있을까?

죽음에 순서가 없다고는 하지만, 결국 '누가' 죽었느냐도 인간들에게는 중요한 게 아닐까.


"으아~ 요즘 평택 왜 이러냐? 뭐가 문제냐?"


천강우가 곱슬곱슬한 자신의 머리를 잔뜩 헝클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천강우에게는 지금 이 사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난 평화주의잔데, 다들 왜 이러는 거냐고!"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한 편, 또 다른 황대근은 메모리아 부서의 비밀의 방에 쭈구려 앉아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는 중이었다.

그는 릴리가 알려주었던 초등학생, 그러니까 인간 황대근이 8살 정도였을 때의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실 사건이 아니라 정보라 표현해야 옳은 표현이겠지만, 릴리는 살인사건의 범인이 평택에 거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중요한 정보를 발견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결국 또 다른 트라우마나 페르소나가 나타나게 되는 건 아닐까?'


바로 그때였다.


"대근씨!"


백혈구 모양 감자칩을 양 손에 가득 든 혜윰이 황대근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음침하게?"


혜윰이 건네는 백혈구 모양 감자칩을 받으며 그가 대답했다.


"생각 좀 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 소식 들으셨나요?"


백혈구 모양 감자칩을 오독오독 씹는 혜윰을 보며 그가 물었다.


"무슨 소식이요?"

"리콜씨가 그러는데, 또 다른 트라우마가 등장했대요!"

"또 다른 트라우마라고요?"

"네. 그 친구는 5살이었던 애기 트라우마보다는 조금 컸대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그래도 걔 역시 애기는 애기죠. 그런데... 그 친구 조금 외로워보였다네요."


얼마 전, 황대근은 피니시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을 수 있었는데 바로 리콜이 피니시의 첩자라는 이야기였다.

피니시에 따르면, 리콜은 원래 헨리를 따르던 헨리의 직원, 즉 뇌부서 출신이었으나 무슨 계기로 인해 피니시와 함께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리콜씨는 완전 정보통이라니까요~ 별 걸 다 알아요~ 아! 그리고 이 얘기도 하던데."


어느 새 감자칩 한 봉지를 다 먹은 혜윰이 아쉬운 듯 황대근에게 억지로 쥐어준 감자칩 봉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황대근은 감자칩을 그녀에게 쥐어주며 물었다.


"무슨 얘기 말입니까?"


비밀의 방은 완벽한 방음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혜윰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리콜씨 말로는, 헨리가 이번 사태를 이용할 계획인가 봐요."






(대근건설 - 제 1건물 브레인 - 사장실)



"그냥 깔끔하게 메모리아 부서를 통째로 날려버리면 어떻겠습니까?"


어린 페르소나를 도둑(?)맞았다는 사실에 여전히 화가 난 헨리에게, 브레인이 멍청한 소리를 했다.


"기억을 모조리 삭제해 버려서 표백상태를 만드는 겁니다! 그럼 인간 황대근을 쉽게 지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왜 망설이시는 겁니까?"


브레인의 항변에 헨리의 옆에 서 있던 쉐도우가 그에게 말했다.


"뇌부서는 메모리아부서에 보관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사장님께선 깨달으셨습니다. 메모리아부서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사장님께서 왜 지금까지 황대근을 내버려 두셨는지 잊으신 겁니까, 브레인?"


쉐도우의 차가운 칼날같은 목소리에 브레인은 자동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차라리 황대근 녀석을 어디 가둬 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게 훨씬 더 공평..."

"브레인."


창문을 향해 뒤돌아 앉아 있던 헨리는 가죽의자를 돌려 브레인을 마주했다.

브레인의 고개는 여전히 바닥을 향한 채였다.


"내 결정에 토 달지 말도록."


브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너무 숙인 탓에 그의 뚱뚱한 코가 그의 사타구니에 닿을 정도였다.


"핵심이고라고 생각했던 피니시 녀석은 사실 이성이었고, 흡수할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린 페르소나는 누군가에게 빼앗겼다. 어린 페르소나의 위치도 파악할 수가 없는 상태다."


쾅—


헨리가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그러자 사장실에 있던 직원들은(쉐도우를 제외하고) 모두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저번에도 트래디션을 죽였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근본적인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대근건설 속 '그 사건'의 J는 실수를 저질렀어. 브레인 자네 말대로 이고는 하나가 아니야... 여러 개지.... 피니시의 말이 사실이라면, 피니시는 중요한 놈이 아니다. 인간의 자아는 원래 한 가지로 통일할 수 없으니까."


벌떡—


헨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간 황대근의 진짜 자아, 즉 자기(self)를 발견해야 한다. 그게 바로 핵심 이고다. 리콜!"


브레인과 페로, 그리고 강도윤의 바로 옆에 서 있던 리콜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평택에 또 다른 살인사건이 벌어졌다지? J아파트였나?"


리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장님."

"J아파트 살인사건의 범인이.... 13,4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과 같은 인물이라지?"

"...그렇습니다."

"증거는?"

"범인이 범행 당시 피해자의 피로 적은 문구가 일치한다고 합니다."


껄껄껄—


리콜의 말이 끝나자 헨리는 웃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소리는 울음소리가 약간 섞인 것 같았는데, 마치 두 사람이 동시에 내는 목소리처럼 기괴하게 들렸다.


"리콜, 그리고 자네들. 쉐도우를 제외하고 모두 이 방에서 나가도록."


자기가 왜 여기 왔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페로와 강도윤, 그리고 나름 이 상황을 이해하는 브레인과 완벽하게 상황판단을 하는 리콜이 방에서 모두 나갔다.

그들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헨리는 쉐도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근건설의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황대근은 심리상태가 매우 안 좋은 상태였지."


쉐도우는 불량하게도 책상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러나 헨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 부모가 그렇게 처참하게 죽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초등학교에서는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자라왔으니 애가 멀쩡하겠어? 하지만 그 상태가 오히려 우리에게는 기회나 다름 없었지. 마음이 상하고, 정신 상태가 망가진 어린 아이의 육신을 우리가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야."


큐브 블럭을 가지고 놀던 쉐도우는 이제 책상에 완전히 드러누웠다.


"맞아, 헨리. 자네 말이 맞지. 자네가 대근건설의 전설의 '그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한 걸 알고 있다고. 뭐, 물론 시간이 조금 오래걸리기는 했어. 아무튼 결국 몇 년을 노력한 끝에 황대근이 16살 정도 되었을 때, '그 사건'이 터지고 자네는 대근건설의 사장이 되었지. 최고 권력을 쥐게 된 거야."


6면의 큐브 블럭을 모두 맞춘 쉐도우는 소파를 향해 큐브를 던져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왜 피니시녀석을 그냥 보내준 거냐? 놈을 이용하면 좋지 않겠어?"


그의 말에 헨리는 난색을 표했다.


"놈은 이성(reason)이야. 내가 대근건설 '그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 당시 이성이었던 놈을 흡수한 적이 있는데, 놈의 반항이 어찌나 거센지 내가 그만 당해버리고 말았어. 기억 안 나는 거야? 자네가 날 도와줬잖아?"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때는 황대근이 자습시간 도중, 국어 선생 유하린의 허락을 받은 후 교실을 빠져나와 화장실에 가고 있었을 때였다.


저벅저벅—


화장실은 2학년 2반에서 조금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2학년 건물은 총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층에는 2학년 1반부터 2학년 4반까지 있었다.

2학년 1반 건물 바로 옆에는 여자 화장실이, 2학년 3반과 4반 사이에는 교무실이 있었다.

황대근이 가려고 하는 남자 화장실은 2학년 2반에서 아주 먼, 반대편에 있는 컴퓨터실 바로 옆에 있었다.


'아, 너무 멀어.'


두런두런—


그가 교무실정도까지 왔을 때, 그는 두 사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건물은 교무실부터 남자화장실까지 'ㄱ'자로 꺾여 있었다.

그 바람에 황대근은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을 뿐, 목소리들의 주인은 알아볼 수 없었다.


'흐음...'


그는 본능적으로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벽에 바싹 붙어 섰다. 그리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목소리들의 주인은 황대근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황대근은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김철환과 곽두팔이었다.


"나, 나 조사 받고 왔다니까요?"


김철환은 특유의 짜증나는 목소리로 곽두팔의 팔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한 껏 낮춘 채 말했다.


"내, 내가 그 시간에 거길 지나간 건 어떻게 안 걸까요? 응? 곽선생, 대답 좀 해 봐요!"


김철환은 끈질길 정도로 곽두팔에게 매달렸다.

곽두팔은 그런 김철환을 질린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행동을 똑바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곽두팔의 묵직한 목소리가 김철환을 때리자, 그는 울상을 지었다.


"아니.... 내가 뭐 이렇게 될 줄 알았나?"

"학부모님들 아시면 큰일 납니다."

"당연히 큰일이 나긴 하겠지! 이 평택 바닥이 얼마나 좁은데 설마 그거 하나를 모르겠습니까? 경찰서 근처를 지나가던 학부모가 날 봤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경찰들은 제가 한 짓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질문만 하더군요. 다행이지 뭡닊.....?!"


콰악—


곽두팔이 김철환의 멱살을 잡아 올리자, 그는 볼품 없이 위로 딸려 올라갔다.


"이, 이게 뭐 하는....?"

"김선생님. 앞으로는 행동을 좀 더 조심하십시오. 우리가 한 짓을 들키는 순간.... 우린 끝장입니다. 교사 인생은 물론이고 우리 둘의 앞으로의 인생도 끝장이라는 걸 늘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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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특명! 머리카락을 지켜라 (1) 21.10.06 2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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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1) 21.10.05 25 1 13쪽
52 그림자 (2) 21.10.05 23 1 13쪽
51 그림자 (1) 21.10.05 21 1 13쪽
50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2) 21.10.04 36 1 13쪽
49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주었나? (1) 21.10.04 32 1 13쪽
48 우연 혹은 필연 (2) 21.10.03 26 1 14쪽
» 우연 혹은 필연 (1) 21.10.03 25 1 13쪽
46 살았니? (3) 21.10.02 21 1 13쪽
45 살아있니? (2) 21.10.02 21 1 13쪽
44 살았니? (1) 21.10.01 28 1 13쪽
43 급성상기도염 21.10.01 25 1 13쪽
42 시간이 멈춘 아이 (5) 21.09.30 25 1 12쪽
41 시간이 멈춘 아이 (4) 21.09.30 26 1 13쪽
40 시간이 멈춘 아이 (3) 21.09.29 24 1 13쪽
39 시간이 멈춘 아이 (2) 21.09.29 26 1 12쪽
38 시간이 멈춘 아이 (1) 21.09.28 27 1 13쪽
37 모의고사 (2) 21.09.28 26 1 12쪽
36 모의고사 (1) 21.09.27 28 1 13쪽
35 리콜(recall) (2) 21.09.27 27 1 12쪽
34 리콜(recall) (1) 21.09.26 30 1 12쪽
33 내 안의 또 다른 나 21.09.26 33 1 12쪽
32 미제 사건 (2) 21.09.25 29 1 13쪽
31 미제 사건 (1) 21.09.25 3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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