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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327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2.2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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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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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내가 너를 두고 어딜 가겠냐 (3)

DUMMY

(대근건설 - 망각의 호수)



황대근은 당황스러웠다. 스켈레톤을 죽이러 왔다고? 주혁이?


"방금 하신 그 말씀... 무슨 뜻입니까?"


황대근이 묻자, 주혁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네가 들은 말 그대로야. 스켈레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는 말."

"누구한테 받은 명령이죠?"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혼란스럽다.

분명 주혁은 쉐도우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을 터다. 주혁은 드림워커가 아니니까, 무의식 속에 위치한 이 망각의 호수에 마음대로 올 수 는 없다.

쉐도우의 도움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언제부터였습니까?"


황대근이 물었다.


"언제부터 우릴 배신한 겁니까? 처음부터였습니까?"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던 주혁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곧 입을 열었다.


"너흴 배신한 건 아냐."

"그럼 여길 왜 온 겁니까?"

"......뭐가 인간 황대근에게 옳은 일일까?"

"예?"


뭐가 인간 황대근에게 옳은 일일까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쉐도우를 없애면, 분명 또 다른 대근건설 제 2의 '그 사건'이 발생할지도 몰라."

"우린 이미 너무도 많은 변화와 혼란을 겪었고,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았어. 더 이상의 아픔을 견디기에는 우리 모두 지쳤다."

"쉐도우가 사라지면 결국 권력자의 자리는 공석이 되어버려."

"그렇다면 또 누군가 그 권력을 쥐기 위해 온갖 일을 벌이겠지."

"그럼 결국에는 애꿎은 효소와 미생물만 고통을 받게 될 거야. 그러길 바라? 메모리아부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한 마디로 주혁의 말은 결국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애써 판을 뒤집어 엎으려 하지 마라,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라, 변화를 주려 하지 마라, 현실에 안주해라.


쉐도우, 즉 범인의 그림자를 인간 황대근의 몸 속에서 없애는 과정은 분명 쉽지 않을 일이다.


허나 그런 범인의 그림자를 그대로 몸 속에 내버려 둔다는 것 역시, 옳은 일은 아니다.


쉐도우가 계속해서 인간 황대근의 몸 속에 있다면, 인간 황대근은 무너지게 된다.


설령 합격해 서울의대에 갈 수 있다고 쳐도 결국에는 파멸로 걸어가게 될 것이다.


현재 범인이 그걸 원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 황대근의 최고의 순간에서, 최악에 순간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황대근. 오해하지 마. 난 지금 쉐도우 편을 들고 있는 게 아냐.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거야. 네가 스켈레톤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스켈레톤은 구할 수 없어. 이미 오블리비온이 그놈을 잡아먹었으니까."

"오블리비온은? 어떻게 잡으려고? 쉬울 것 같으냐?"

"네가 너 호수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오블리비온은 네 발을 잡아먹을 거다. 그럼 네 발목은 영영 사라지겠지."

"평생을 절뚝거리며 걷거나,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 발 뼈라도 남아있게 되겠지."


주혁은 몰랐다. 아마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황대근이 질문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혁은 스켈레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바로 오블리비온을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오블리비온을 어떻게 죽이지?'


터벅터벅-


황대근이 고민하는 동안, 주혁은 호수 주변을 걸어 다니며 이리저리 흩어진 기억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기억들을 엮어 뗏목을 만들어 노인이 있는 작은 섬으로 흘러갔다.


"어딜 가는 겁니까?"


황대근이 소리쳤으나, 주혁은 대답 없이 그로부터 점점 멀어져 갈 뿐이었다.






(대근건설 - 망각의 호수)



호수의 물결은 잠잠했다. 그 탓에 주혁이 탄 뗏목은 아주 천천히 작은 섬을 향해 흘러갔다.

아직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기 때문에, 주혁은 뗏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정신은 살아있지만 육신은 죽었다. 아마 두 분이 스켈레톤을 망각의 호수에 버린다면 스켈레톤에게 곧 생길 일입니다.'


젊은 시절의 주혁과 강도윤이 스켈레톤과 그의 딸들을 유기하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쉐도우는 사장실에 둘을 불러 놓고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말이 이해가 안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은 정확한 표현입니다. 육신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죠. 모든 것은 정신이 지배합니다. 오블리비온이 만약 강도윤을 집어삼킨다면, 강도윤은 육신을 잃게 될 겁니다. 그럼 해골이 되겠죠.'

'저, 그럼.... 기억은...?'

'기억 역시 잃게 될 겁니다. 헌데, 다른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조금 드문 확률이긴 합니다만.'


사실, 주혁은 쉐도우가 이날 자신에게 시켰던 일이 탐탁지 않았었다.

스켈레톤과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나, 굳이 멀쩡히 살아있는 놈을 죽이려 들자니 찝찝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물론 거절했으나, 쉐도우와 강도윤은 그런 그를 협박했다.

쉐도우는 은은하게 협박했고, 강도윤은 대놓고 협박했다.


제 3자가 본다면 결국 둘에게 굴복한 주혁이 나쁜 놈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허나 반대로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당시 주혁은 심장부서의 부장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조금만 쉐도우의 비위를 건드린다면, 심장부서에 있는 전 직원의 생계가 아주 위험해질 터였다.

그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바로 육신만 잃고, 기억은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죠.'

'이런 경우 육신을 잃어 몸은 해골이 되지만, 정신과 기억은 해골에 멀쩡히 남아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더욱 더 특이한 사례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오블리비온이 먹어치웠다고 생각했던 육신이,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이죠.'

'즉, 기억을 잃은 육신과 기억은 있으나 육신을 잃어버린 해골 이렇게 두 가지로 분리가 되는 겁니다.'


턱—


주혁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뗏목은 작은 섬에 도착했다.


"음? 이상한 젊은이가 또 나타났구만. 처음 보는 젊은이인데."


노인의 반응에 주혁은 심장 한 켠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언제 저렇게 늙었단 말인가. 내가 자신을 망각의 호수에 유기했던 것을 잊었나?

나는 저렇게 늙지 않았는데. 어째서 저 놈은 저리 늙은 것인가.


"정말 오랜만이군요, 노인장."


안대를 낀 노인이 호수 속에 낚싯 바늘을 던졌다.


"오랜만이라고? 나를 언제 본 적이 있었나, 젊은이?"


예상대로인 노인의 답변에, 주혁은 씨익 웃었다. 허나 그의 눈은 슬퍼 보였다.


"노인장, 아니......"


스윽—


주혁이 정장 안쪽 주머니 품 안에서 단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스켈레톤. 나를 용서하십시오."






(대근건설 - 골방)



"스켈레톤? 스켈레톤!!!"


한편, 스켈레톤과 함께 있던 혜윰은 그만 놀라 까무라치고 말았다. 스켈레톤이 쓰러진 것이다.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눈을 뜨지 못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왜 이런단 말인가?


"혜윰아."


그녀의 곁에 있던 인플루엔자가 조심스레 말했다.


"스서방은 이미 알고 있었다."


혜윰이 구슬프게 흐느끼자, 인플루엔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너에게 해골상자를 건넨 이유는 들었겠지. 인간 황대근을 괴롭히는 범인을 잡는 거야. 범인을 내버려두면, 그러니까 쉐도우를 내버려 두면 인간 황대근이 20살이 되는 해에 큰일이 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스서방, 아니 너희 아빠는 이미 알고 있었단다. 너에게 해골상자에 들어있는 그 기억들을 건네면 쉐도우가 눈치채리라 예상했어."

"그리고.... 그런 스켈레톤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스서방은 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어."


스켈레톤이 쓰러지기 전까지, 혜윰과 그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인간 황대근이 앉아서 공부만 하니 근골격부서 직원들이 우울해한다더라.


반면 빅풋은 너무 좋아한다더라. 대신 핑거스형제 자매들이 아주 바쁘다더라.

타이니가 자가사업으로 순수익 7000만셀을 벌었다더라. 마이크로가 여전히 사장전용 주방장으로 일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죽고싶다더라.


지그문트팀장이 수상한 차를 만들고 있다더라 등등. 모두 중요하다거나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이건 그저 그런 일상의 대화들일 뿐이다.


스켈레톤은 그것을 원했다. 일상의 대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심심풀이 땅콩같은 대화들.


"......아빠."


허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스켈레톤이 원하던 그런 대화들은, 아마 꿈 속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대근건설 - 망각의 호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단도에 심장을 정통으로 뚫려버린 노인은 앉아있던 낚시 전용의자에서 그만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뗏목을 만들기 위해 기억을 주워 모으던 황대근은, 노인이 쿵하며 작은 섬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그만 주웠던 기억들을 모두 떨어뜨렸다.


"노인장.....?"


주혁은 왜 노인을 죽인 것일까? 황대근은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전 자신에게 오블리비온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왜? 왜 노인을 죽였지?"


"젠장할!"


호수를 헤엄쳐 건너려 했으나, 그렇게 되면 황대근이 위험해진다.

기억들을 다시 주워 뗏목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스르륵—


황대근이 떨어진 기억들을 주워 뗏목을 만드려 하는데, 주혁의 뗏목이 모래사장 쪽으로 흘러오기 시작했다.

갈 때는 주혁 혼자였으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의 뗏목에는 노인도 있었다.


".....노인?"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어버린 노인이 주혁의 품에 안겨 실려오는 것을 보며, 황대근은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잠깐만, 생각해보자. 저번에 혜윰이랑 스켈레톤이 준 기억을 봤을 때, 거기에 노인이 있었던가?'


첫 번째 기억의 배경은 망각의 호수였다. 그리고, 그 때의 망각의 호수에는 노인이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오블리비온 뿐이었다.


'왜 내가 그걸 진작 눈치채지 못했지?'


턱. 주혁의 뗏목이 모래사장에 닿았다.

주혁은 침울한 표정으로 노인을 공주님안기 하듯 안아 올리더니 모래사장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노인을 묻어주자."


황대근의 귀에는 주혁의 말 따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는 현재, 단 한 가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주이사님. 제 질문에 대답하세요. 노인이 스켈레톤입니까?"


주혁은 잠시 황대근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같이 묻어주자."


머릿속이 복잡했다.

노인이 스켈레톤이고, 스켈레톤이 노인이라니. 그럼 오블리비온에게 물린 후 몸이 두 개로 분리라도 되었다는 것인가?


"자, 황대근? 얼른 묻어주고 돌아가자..... 어? 야! 너 어디가?!"


다다다—


황대근이 호수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주혁이 말릴 틈도 없이, 그는 호수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는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이렇게 하면, 스켈레톤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본능.


"어? 야! 황대근! 내 칼 들고 튄 거냐?! 이 개새끼가! 뒤지고 싶어?! 그게 얼마짜린데!"


본능이고 나발이고, 주혁은 자신의 단도를 들고 도망친(?) 도둑이 들어간 호수를 향해 주변에 있던 돌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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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1) 21.12.19 2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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