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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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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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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22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2.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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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뼈따구할배 (3)

DUMMY

(대근건설 - 구영원)




그날 이른 저녁, 서세희는 구영원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굳이 구영원에 가려던 것은 아니고, 그녀가 가려는 마트가 하필이면 구영원을 지나야 했던 것이다.


"끙!"


서세희는 장을 봐온 봉지를 양 손 가득 들고는 낑낑거리며 걷고 있었다.

정우엄마와는 달리, 서세희의 몸은 가냘펐다. 몸이 작고 가늘어도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이 있는 법인데, 서세희는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청순가련형 스타일의 표본이라 할 수 있었다.


"에이, 너무 무겁잖아."


하필이면 오늘 같이 바람 불고 추운 날, 그것도 길거리 곳곳에 위험천만한 블랙아이스가 가득 생겨버린 날에 세일을 할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세일을 할 거라면 좀 이른 시간에 하지, 가뜩이나 겨울에는 밤에 나가고 싶지도 않은데 저녁시간에 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전 종목이 한 번에 세일을 하다니, 아무래도 장사가 잘 안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어...!"


양 손 무겁게 낑낑거리며 길을 걸어가던 그녀는, 구영원 앞 인도에서 그만 중심을 잃고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으악!"


탁—


그녀의 얼굴이 꽝꽝 얼음 바닥과 진한 입맞춤을 하기 바로 직전에, 누군가 그녀를 붙잡았다.


"괜찮으십니까?"


서세희는 쪽팔렸다. 넘어지던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붙잡아준 은인의 얼굴을 제대로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별 것 아닙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서세희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녀를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영부였던 것이다.


타악—


서세희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영부의 손을 뿌리쳤다.


"당신이 여긴 왜 있는 거죠?"


사실 서세희의 질문은 딱히 정당한 질문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구영원 근처기도 하지만, 굳이 구영원 근처가 아니라도 영부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는 거니까.

허나 서세희가 그동안 영부에게 당한 모든 것을 감안해 본다면, 그녀가 그런 발언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산책 중이었답니다."

"산책이요?"

"네. 밖에서 우리 큰하늘님이 거하시는 구영원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서 말입니다."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 서세희는 바닥에 떨어진 짐을 들고 영부를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영부가 그런 그녀를 말로써 붙잡았다.


"당신이 신고한 거겠지요."


영부의 말에 서세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얼마 전, 119에 구영원에서 불이 난다고 신고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아마 원했겠지요. 119가 불에 탄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말입니다."

"......"

"하하, 하지만 큰하늘님의 크신 은혜 덕분에 저희의 의식은 들키지 않았습니다. 사실, 들킨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지요. 그것은 필연적인 희생이었으니까."

"어린 애들을 죽여 놓고 필연적인 희생이라는 말이 나오나요?"


영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아이들은 신의 아이들이었습니다. 당신 역시 신의 아기를 낳을 수 있었으나.... 당신이 그 숭고한 희생을 거부하고 말았지요."

"그게 어떻게 숭고한 희생이야? 그냥 야만적인 또라이 사이코패스같은 짓이지!"


서세희는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영부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닙니다.... 그것은 숭고한 희생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모두, 희생을 바탕으로 자라났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없이 과연 그 누가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날 어떻게 할 셈이죠?"


서세희가 자신을 경계하자, 영부는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하하하! 당신과 구영원의 관계는 이미 끝났습니다. 당신은 구영원을 배신했고, 큰하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댓가는 이미 치루셨지요."


서세희는 속으로 안심했으나, 일부러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부는 말했다.


"물론, 당신이 치룬 댓가는 저에 대한 배신이었죠. 하지만.... 큰하늘님에 대한 배신의 댓가는..... 아직 치루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물론 큰하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대근건설 - 망각의 호수)



언제나처럼, 늘 그랬듯이 노인은 낚시를 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잠잠했던 망각의 호수가 몇 번의 진동을 울렸는데, 그 덕분인지 아니면 탓인지 노인은 신나게 기억들을 낚을 수 있었다.

저번에는 기억들을 낚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낚아지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신기할 정도로, 기억들은 노인의 날카로운 낚싯바늘에 걸려들었다.


"하하하! 이제야 좀 낚시할 맛이 나는구만! 걸려라, 걸려! 아무 놈이나 걸려들어라!"


노인은 낚아 올린 기억들을 섬 한가운데에 쌓아 올렸다.

기억 중 일부는, 누가 물어 뜯은 것인지 날카로운 이빨 자국이 나 있었고, 다른 기억에는 소름 끼치는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제 아무리 핏자국이라 할지라도 호수의 물에 닿으면 핏자국은 사라지기 마련이거늘. 이 핏자국은 원래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


잔뜩 쌓아 올려진 기억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노인은 한 기억에 묻은 핏자국을 보았다.

노인은 한참 동안이나 그것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다른 일이라도 생각난 것처럼 고개를 돌려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노인이 제대로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에 묻은 핏자국은 단순한 핏자국이 아니었다.

그것은 손자국이었는데, 누군가 살려 달라고 애원이라도 한 것처럼 절박한 느낌을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낚시를 할 뿐이었다.


"흠흠~"


노인이 모르는 것은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그를 몰래 훔쳐보는 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대근건설 - 뇌부서 맷돌팀)



다음 날 금요일. 팝콘 브레인의 재판일이 되었다.

돌쇠에 의해서, 아니 마님에 의해 체포된 팝콘 브레인은 피고인석에 앉아있었다.

재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재판장은 피고인을 향해 판결문을 읽어주었다.


"인간 황대근이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점, 서울의대에 가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무기징역을 넘어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지만....."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다 말고 한숨을 내뱉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마땅하지만, 피고인에게는 무조건 면책특권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뻔한 일이었다. 팝콘브레인은 분명 인간 황대근을 괴롭히는 죄인이지만, TK법원과 대근건설 고위층들은 팝콘브레인에게 희한할 정도로 관대했다.


"아오, 빡치네!"


당연히 돌쇠의 기분이 더러워졌음은 물론이다.

애꿎은 미생물들은 화가난 상사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열심히 맷돌을 굴리고 있었다.


"아니, 분명히 그 새끼는 죄인인데 대체 왜 내버려두는 거야?! 언제부터 그새끼한테 무조건 면책특권같은 게 있었다고?! 이해가 안 되네, 진짜!"


돌쇠의 말대로 팝콘브레인에게는 원래 무조건 면책특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생긴 것은 헨리가 바지사장이 되고, 쉐도우가 실질적 사장이 된 이후였다.

그 전에는 팝콘브레인이 난동을 부리면 큰 벌을 받았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그 새끼를 잡아 가두지 않으면 일할 때 너무 곤란하다고. 그 새끼가 새끼라도 쳐 봐. 팝콘브레인이 드글드글하면.... 진짜.... 으으!"


돌쇠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데, 마님이 사랑방에서 나왔다.

마님이 나오자 두 손으로 열심히 맷돌을 굴리던 미생물들은 순간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얻게 되었다.


마님의 옷차림이 그들의 눈을 괴롭힌 것인데, 마님은 마치 어우동과 장녹수가 입을 것만 같은 야시꾸리한 한복아닌 한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돌쇠~"


사랑하는 마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돌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마님! 부르셨습니까!"

"이것 좀 마셔봐~"


마님이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차(茶)였다. 얼마 전 키드니가 크래디터에게 주었던 차와 똑같은 차였다.

그것은 바로 '기생충 우린 차'였는데, 징그럽게 생긴 기생충을 따듯한 곳에 말려 바삭바삭하게 만든 다음, 아무것도 타지 않은 물에 넣어 우린 차였다.


마님의 말에 의하면, 그 차는 먹는 방법이 조금 독특했다. 보통은 물에 넣고 우린 재료들을 버리지 먹지는 않는데 이 차는 아니었다.

놀랍게도, 기생충 역시 먹어야 했다. 이빨로 우적우적 씹어서.


"이것 좀 마셔봐~ 지그문트팀장이 그러는데, 우리 인생의 모든 건 다 억압된 성(性)과 관련된 거래. 그게 해결되면 아무런 문제 없다나~? 쭉~ 들이켜 봐, 우리 돌쇠~"






(대근건설 - 골방)



돌쇠가 역겨운 맛이 나는 기생충 우린 차를 억지로 마시고 있는 동안, 혜윰은 골방으로 갔다. 그녀의 곁에는 1+1 행사상품마냥 딸려온 황대근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초췌했는데, 엉덩이 부분을 붙잡고 있는 걸로 보아 꽤 고생한 모양이다.


"왔구나."


그들이 골방에 가자, 스켈레톤과 인플루엔자가 그들을 맞이했다.


"여기 앉아라."


스켈레톤이 둘에게 의자를 권했다. 의자는 하얀 뼈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딱딱했다.

황대근보다는 엉덩이에 살집이 있는 혜윰은 별 무리 없이 편안하게 의자에 앉았지만, 황대근은 아니었다.

살집이 없고 있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엉덩이는 불타고 있었기에, 딱딱한 의자는 쥐약이었다.


'젠장할..... 엉덩이를 누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잖아.'


황대근은 고민해야 했다. 편안함을 선택하고 고통을 받을 것인가, 힘듦을 선택하고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인가.

그는 힘듦을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투명의자에 앉기라도 한 것처럼, 엉덩이를 의자 부분에서 1cm정도 띄고 앉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쿼트 자세였다. 왕근이 이 모습을 보면 아주 기뻐할 테다.


"이거 도로 가져가세요."


혜윰은 스켈레톤에게 받았던 100만셀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아무 이유 없이 받기에는 많은 금액이다.


"왜 돌려주는 건가?"

"제가 달라고 한 적도 없으니까요. 대장님 혼자 쓰세요. 드시고 싶으신 거 드시구. 제가 번 돈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받는 거 불편합니다."

"껄껄껄!"


혜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켈레톤은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소리가 조금 잦아들었을 무렵, 혜윰이 스켈레톤에게 물었다.


"절 부르신 이유가... 뭐죠? 저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실례되는 질문인줄은 알지만, 개인적인 질문 하나 해도 되겠나?"


혜윰은 황대근과 시선을 교환했다.


"뭐.... 무례한 질문이 아니면 상관없겠죠."

"자네에게 부모가 있는가?"


희롱적인 발언을 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혜윰은 안도의 함숨을 내쉬었다.


"없어요. 사실 기억도 별로 없고."

"기억이 없다고?"


혜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없어요. 그리고 기억 안 나는거, 굳이 기억해야 할 필요도 없고요."


스켈레톤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의 곁에 서 있던 인플루엔자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

곧, 인플루엔자가 해골상자 하나를 가져와 혜윰에게 주었다.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들게 된 혜윰은 황대근과 시선을 교환하며 스켈레톤에게 의문의 눈빛을 보냈다.


"그걸 잘 간직하고 있게."


스켈레톤이 말했다.


"오늘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바로 이걸세. 그럼 옆에 있는 황대균이, 저 친구가 무사히 상자를 들고 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도록. 자, 그럼 해산!"


순간, 황대근은 자신의 이름이 결코 대균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허벅지에 쥐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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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그 날의 기억들 (2) 21.12.17 16 1 11쪽
198 그 날의 기억들 (1) 21.12.17 19 1 14쪽
» 뼈따구할배 (3) 21.12.16 18 1 12쪽
196 뼈따구할배 (2) 21.12.16 16 1 14쪽
195 뼈따구할배 (1) 21.12.15 1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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