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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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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333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2.17 18:40
조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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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그 날의 기억들 (2)

DUMMY

두 여자아이가 물에 빠졌다.


아직 해골이기 전, 살아있었을 적의 스켈레톤은 아이들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필사적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살려야 한다. 살려야 한다. 아직 저 둘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살려야 한다.


스켈레톤이 사력을 다해 헤엄쳐 겨우 두 딸아이를 붙잡자, 기억의 장면이 바뀌었다.






장면이 바뀌고, 황대근은 바뀐 이곳이 어디인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곳은 망각의 호수였다. 그가 최근에 다녀온 호수와 아주 똑같이 생겼는데, 노인이 자리에 앉아 낚시를 즐기곤 했던 작은 섬도 보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호수가 있는 것까지는 확실한데, 어딘가 어색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느낌, 앙꼬없는 찐빵같은 이 느낌. 그게 무엇일까.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아!"


황대근은 어색함의 원인을 알아냈다. 노인이 없던 것이다.

안대를 끼고, 잡히지도 않는 낚싯대를 호수 속에 던져 허무맹랑하고 이해 안 되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노인이 있어야 하는데 노인은 없었다.


"아.... 아...."


여전히 주저앉아있는 혜윰이 일어나려 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혜윰은 조금 전, 젊은 시절의 강도윤이 스켈레톤의 두 딸아이를 물 속에 빠뜨린 후로 줄곧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야... 그럴리가..."


혜윰은 벌벌 떨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 불길한 예감이, 부디 틀리길 바랐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불길한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혜윰씨, 얼른 일어나요. 저쪽으로 가야 하니까."


황대근은 힘이 빠져 축 쳐진 혜윰을 부축해 호수 가까이 걸어갔다.

이곳은 과거의 기억 속이니, 호수에 가까이 가도 위험은 덜 할 것이다.


"으헉!"


잠잠했던 호수의 표면이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보랏빛이 돌지만 검은 머리를 한, 비교적 젊어보이는 남자. 스켈레톤이었다.


그는 남아있는 온 힘을 모아 엉엉 울고 있는 어린 두 딸을 수면 위로 들어 올렸다.

지금쯤 수면 밑에 있는 그의 다리는 매우 바쁠터다.


"됐어... 조금만 더...!"


스켈레톤은 쥐가 날 정도로 다리를 움직여, 호수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으로 헤엄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황대근과 혜윰은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제... 이제 살 수 있ㅇ....?!"


크아아앙—


눈 앞에 있었던, 바로 코 앞에 있던 희망이라는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꺼져버리고 말았다. 망각의 호수 깊은 곳에 사는 괴물, 오블리비온이 나타난 것이다.

갑작스런 괴물의 등장에 스켈레톤은 본능적으로 두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


크아앙—


오블리비온이 스켈레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괴물의 몸이 상당히 큰 탓일까, 스켈레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게다가 홀몸이 아닌, 두 딸아이를 안고 피해야 하는 까닭에 스켈레톤의 움직임은 둔탁했다.


크아앙—


"안 돼!


오블리비온이 나타난 탓에 잠잠했던 호수의 표면이 격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고, 스켈레톤은 그런 호수의 움직임에 힘없이 떠밀렸다.

그 바람에 그는 두 딸아이 중 좀 더 큰 아이를 놓치고 말았다.


"안 돼! 안 된다ㄱ... 크헉!"


손에서 떨어져 나가버린 아이를 구하려 하던 스켈레톤은, 오블리비온이 아직 자신 품 안에 있던 나머지 아이를 삼키려고 하자 온 몸을 던져 막았다.


"크흑.... 허억...."


오블리비온은 스켈레톤의 왼쪽 팔을 물어버렸다.

곧 괴물이 그의 팔을 뜯어먹었고, 호수는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너.... 너는.... 너는 살아야 한다....."


아직은 멀쩡한 나머지 오른팔로, 스켈레톤은 기절한 딸아이를 들어 올렸다.


"....넌 나를 잊겠지만... 나는 결코 잊지 않는다."


그가 아이를 던졌다. 호수의 작은 섬을 향해 던졌다.

죽음을 마주한 순간에는, 누구나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던 힘을 낼 수 있다고 하던가.


"으으...."


오블리비온은 한 번 고기맛을 보더니 움직임이 조금 둔해졌다. 허나 스켈레톤은 여전히 흐르는 피와 이미 충분히 흘린 피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머리가 뜨거운데, 몸은 으슬으슬 추웠다. 구토가 나올 것도 같았고, 뜯겨진 왼쪽 팔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허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한 아이가 남아있었다.


아빠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크아아앙—


스켈레톤이 호수 속으로 들어갔고, 장면이 다시 한 번 더 바뀌었다.






장면이 바뀌었을 때, 황대근과 혜윰은 호수 속에 있었다.

망각의 호수의 물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둘은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다.

그러다 자신들이 있는 이곳이 기억 속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편하게 숨을 쉬었다.


호수 안은 어두웠다. 어두우면서도 붉은 빛이 감돌았는데, 아마 스켈레톤의 피 때문일 것이다.


크아앙—


그때, 오블리비온이 황대근과 혜윰을 지나쳤다.

스켈레톤을 쫒는 것이 아니었다. 찾고 있었다.


"스켈레톤은 어디 있는 거지?"


황대근은 스켈레톤을 찾으려 애썼지만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어두웠기 때문에 방향을 살피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으니까.


"저기! 저기 있어요!"


혜윰이 오른쪽 끝을 가리켰다.

황대근이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둠 속에서 무언가 꾸물꾸물 움직이고 잇었다. 스켈레톤이었다.


어떻게 찾은 것인지, 스켈레톤은 입으로 어린 딸의 옷을 물고 오른팔로 열심히 수면 위를 향해 헤엄을 치고 잇었다.

왼쪽 팔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렀다. 빨리 수면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피냄새를 맡은 오블리비온이 그 둘을 덮칠 터였다.


"우리도 위로 올라가죠!"


다행히 오블리비온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스켈레톤은 수면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황대근과 혜윰 역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죽으면... 죽으면 안 된다.... 설마... 망각의 물을 마신건가...."


작은 섬에 나머지 아이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채, 스켈레톤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너희.... 너희 엄마를 살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스켈레톤은 울고 있었다. 해골이 아닌, 살과 피가 있는 스켈레톤이 울고 있었다.

허나 그는 감성에 젖어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이곳에서 내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망각의 호수의 출구쪽으로 내보내야 했다.


그곳으로 내보내면, 어떻게든 이 아이들이 대근건설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오블리비온에게 잡아 먹힐것이다.


아이들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어떻게.... 어떻게 츨구 쪽으로 보내지? 뭔가 작은 나룻배 같은 게 있어야 애들을 태워서 보낼텐데, 어떻게.... 아!"


스켈레톤은 기억을 모으기 시작했다. 작은 섬 주위에 떨어진 기억은 많았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기억으로 만들어진 작은 뗏목을 완성할 수 있었다.


"자, 조심해서 가라..."


스켈레톤은 기절한 두 아이들을 뗏목에 태워 모래사장이 있는 쪽으로 흘려보냈다.

아이들이 절반쯤 가는 것을 확인한 그는, 안심한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으..."


그제서야 더욱 크게 느껴지는 왼팔 통증에, 그는 찢겨 나간 왼팔을 힐끔 쳐다보았다.

잘려진 왼팔의 모습은 끔찍했다. 해부학 교실에서나 볼 법한 잘려나간 스켈레톤의 왼팔의 단면은, 무의식 깊은 곳에 트라우마를 남기기 충분했다.


울고 싶었다. 오블리비온에게 팔이 물리다니, 이제 그는 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해도, 나중에 저 두 딸을 만날 수 있다 해도, 저 아이들이 과연 나를 기억할까.


내가 너희들의 아빠였다는 사실은 기억할 수 있을까.


너희에게, 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줄까.


크아앙—


스켈레톤이 앉아있던 작은섬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오블리비온이 다시 수면 밖으로 얼굴을 내민 것이다.


"크억!"


'널 위해서라면 난 죽을 수도 있어'라는 말은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유치한 대사일지도 모른다.

허나 스켈레톤에게 있어서, 두 딸아이들은 삼류 드라마의 유치한 대사를 셰익스피어의 명언으로 들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내 목숨을 내놓으면서 까지 살려야 할 아이들이다.

내 삶의 전부가 사라진다해도 지켜야 할 아이들이다.


설령 내가 이 세상에서 잊혀진다 해도, 조금도 상관없다.


크아앙—


스켈레톤의 오른쪽팔이 마저 뜯겨나갔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크앙—


순식간에, 스켈레톤은 오블리비온의 거대한 입 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의 얼굴 부분이 입 속에 들어가고 다리 부분만 삐죽하니 나온 터라, 황대근과 혜윰은 더 징그러운 꼴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직원휴게실)



첫 번째 기억이 모두 끝났다.

알고 싶지 않았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황대근과 혜윰은, 기억이 끝나고 그들이 메모리아부서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꽤 오랫동안 인지하지 못했다.


둘 중 가장 먼저 충격에서 헤어나온 황대근이 입을 열었다.


"뗏목..."


그는 얼마 전, 강도윤의 인위적 자아 사건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 그는 그곳을 안전하게 빠져나오기 위해 기억들을 이용해 뗏목을 만들었었다.


"설마....?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스켈레톤은 이미 죽었는데."

"이제 알겠어요."


한참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만 있던 혜윰이 입을 열었다.


"왜 스켈레톤이 저에게 이런 기억을 주었는지, 알 것 같아요."


혜윰의 표정은 비장했으나, 황대근은 여전히 의문스러워 보였다.


"뭘 알 것 같다는 겁니까?"

"스켈레톤은, 제 아빠였어요."


황대근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명이인일지도 모르잖습니까? 기억 속의 스켈레톤은 해골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이미 오블리비온에게 잡아먹혀 죽었죠."


혜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블리비온에게 잡아먹히면 죽는 게 아녜요. 물론 죽긴 죽지만, 죽어도 죽은 게 아니고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가 되어버리죠. 마치 유령처럼."


스켈레톤은 분명 망각의 물을 마셨다. 허나 기억을 잃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몸을 잃었다.


몸에 대한 기억, 몸이 느끼는 고통, 입이 느끼는 여러가지 맛, 끔찍하고 지겨운 다리 저림, 책장을 넘기다 날카로운 종이에 살이 베이는 소름끼치는 느낌과 같은 모든 것을 잃었다.


망각의 호수의 물은 단순히 기억만을 잃게 하지는 않는다.


"그럼... 혜윰씨랑 플루씨는....?"


깊은 곳에 묻혀있던, 혜윰의 기억이 깨어났다.


"자매였죠. 그것도 친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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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1) 21.12.19 2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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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뚫린 입이라고 다 말은 아니지 (1) 21.12.18 1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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