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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가장 높은 곳에

별기군은 엘븐하임의 거대한 숲을 방벽삼아 대량의 박격포와 기관총과 대전차로켓을 곳곳에 배치하고 다가오는 황제의 군대를 박살내려 했다. 그 검은 숲 속으로 인간 병사가 아니라 마탑의 마법사들이 소환한 소환수며 폭주시킨 정령을 들여보낸 것에는 놀랐지만 결국 화력은 답을 아는 법인지라, 있는대로 쏟아진 화약의 폭염이 그것들을 휩쓸어버렸다.

그러나 승리를 만끽할 시간조차 없이, 별기군 포병대의 집중포격을 방어마법으로 막아내던 황제군의 진지에서는 황제가 직접 자신의 중장기사에 탑승하고 거대한 마력 폭풍을 남기며 로켓처럼 날아올라, 하늘에서부터 별기군의 포병진지로 내리꽂혔다. 포대를 방열하기 위해 일부러 나무를 밀어서 공터를 만들어두었기에 황제와 그 뒤를 따른 친위기사들이 날뛸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방어선을 뛰어넘어 느닷없이 최대 화력인 포병진지에 딥 스트라이크를 당한 별기군은 혼란에 빠졌고, 황제는 여유있게 포병진지를 초토화시켰다.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밟아 부수며 전장을 가로지르는 중장기사 그 자체라 할 만한 위업이었다.

<< 가자, 기사들이여! 짐을 따르라! >>

<< 황제폐하 만세! >>

그러나 황제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도약하여 이번엔 세계수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ㅡ

- 쿠슈아아악!

방금 전 엘프들이 달려올라가 쏘아댔던 대전차로켓과는 비교도 안되는 것이 튀어나왔다. 차량 장착형 헬파이어 대전차미사일. 속도는 음속의 2배, 자중 45kg, 탄두중량 8kg. 대전차로켓의 4배 속도, 8배 위력으로 후려갈기는 괴물이다. 대신 사람이 들고 다닐 수도 없을만치 무거웠지만, 전방진지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을 엘프가 불러낸 숲의 수호자 - 흙 골렘이 들고 이제서야 여기에 도착한 것이다.

‘어?’

황제는 이미 사격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높이 올라가 있었지만 중간쯤 뛰어오르던 중장기사의 등짝에 두께 1미터의 철판을 관통하는 파괴력의 쇠화살이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기사가 반응도 하지 못할 만한 속도였다. 콰쾅!

수백 톤의 중장기사는 대전차미사일 단 한 방에 두터운 장갑판이 꿰뚫리고 내부의 골렘 구조물이 파괴되면서 팔다리가 분리되고 전신의 갑주가 조각조각 박살나며 흝어졌다. 그 안에는 역류된 마력의 충격으로 피를 토하며 즉사한 젊은 기사도 있었다. 뒤이어 뛰어오르던 후임 기사는 그 수백 톤의 파편에 스스로 들이받고는 휘청이다가 나자빠지며 결국 바닥으로 추락했다.

쿠우우웅!

수백 톤의 파편과 수백 톤의 철거인이 함께 나뒹구는 소음은 마치 화력시범처럼 땅을 울리게 하고 심지어는 거대한 백수십 미터 나무들의 굵디굵은 뿌리로 단단히 뒤얽혀 보강되어 있는 땅을 푹 꺼지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당연히 그 충격은 아직 중장기사에 탑승하고 있던 기사에게로도 그대로 전해졌고, 또 한 명의 기사가 피를 토하고는 좌석에 털썩 쓰러졌다. 머리맡에서 작은 것들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작은 것들, 대전차로켓을 집어든 엘프 레인저들은 조금도 망설임없이 근거리까지 접근해 쓰러진 중장기사의 머리 부분에 작지만 치명적인 불꽃을 퍼부었다.

oo0oo

“핫하, 인간의 분노를 받아라!”

중장기사를 탄 기사라면 거의 당연한 일이지만, 황제는 전능감에 취해 있었다. 시선의 높이가 열 배나 높아져서 마탑을 제외한 어떤 드높은 건물도 기껏해야 허리 정도에 불과하고, 가볍게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조각조각 갈라진다. 인간 ‘따위’는 발치에 거슬리는 작은 동물에 지나지 않는, 수백 톤의 거대하고 굴강한 육체가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육체를 휘두르는 것은 마탑의 마법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강력한 마력로. 인간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마력 또한 자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쯤하면 도취하지 않는 자는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걱정해야 할 정도다. 수많은 인간 집단들을 조심스레 끌어모아 겨우겨우 하나로 묶어놓고 있던 황제는 고민도 걱정도 떨궈버린 듯한 이 강대한 힘에 마음껏 도취하며 거검에 마음껏 마력을 몰아넣어 세계수를 향해 내리꽂았다. 인간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는 것은 불필요하다!

젊은 시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이 엘븐하임이 아닌 다른 엘프의 숲을 헤메고 세계수를 직접 본 일도 있었지만, 그 오랜 과거의 기억은 거의 잊혀졌다. 황제에게 있어 세계수는 마탑이라는 이름으로 개조하여 인간을 위해 사용하던 도구였을 뿐이다ㅡ

“!?”

그랬으므로, 세계수의 굵은 가지 하나가 움직여 그의 중장기사 ‘황제’를 후려치는 순간, 황제는 당황해서 방어기동조차 하지 못했다. 꽈광! 나무와 쇠가 부딪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치 웅장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 직후 엄청난 충격이 바람의 형태로 휘몰아쳤다. 그 바람은 엘븐하임의 드높은 나무들 틈새로 파고들어 순간적으로 폭풍이 되었다.

“와아악!” “자아, 제 손을 잡으세요.”

방금 전 난장판이 된 포병진지에서도, 함께 붙어있던 엘프들의 방어마법 덕분에 겨우겨우 살아남은 병사들이 이번엔 난데없이 회오리치는 폭풍에 흙먼지나 모래를 뒤집어쓰거나, 심지어는 살짝 떠서 허둥거릴 지경이었다.

“정신차려 짜식들아! 살아남은 포 있냐!?”

“틀렸어요! 이자식들이 꼼꼼하게도 밟고 가서...!”

“제기랄! 그럼 움직여! 대전차전 준비!”

“형 진심!?”

빡! 같은 고아원 출신의 장교 형님에게 반문했던 이등병이 한 대 맞았다. 헬멧 위였다지만 겨낭대는 머리가 띵하니 울렸다.

“여자애들이 싸우고 있는데 그럼 맡겨두고 놀래? 그러고도 니가 남자냐! 다들 똥구멍에 힘 꽉 줘라! 사내새끼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확실히, 그건 심각한 문제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엘프 소녀들이 지켜준 덕택에 큰 부상이나 정신적 충격에서는 벗어나 있었던 별기군의 어린 병사들은 반쯤은 자존심으로, 반쯤은 자기 여자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예비탄 박스를 뜯어 열고 비축해두었던 대전차로켓들을 하나씩 나누어 들기 시작했다. 대형 대전차미사일을 장비한 키 2미터의 흙 골렘들이 저벅저벅 걷는 옆에서 병사들도 뛰기 시작했다.

“목표는 다리나 발목이다! 앞에는 서지 말고 옆에서 발모가지를 부러트려 버려! 위쪽은 엘프들한테 맡긴다!”

하급 장교와 부사관들이 동생들이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다시 혼란해하지 못하도록,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닦달해서 몰아내는 사이 별기군 지휘부는 숲 밖에서 접근하는 적을 상대로 배치되어 있던 사격진지를 재배치해서 이미 세계수 앞으로 다가온 철거인들을 저격할 포위진을 형성했다. 원거리에서도 무전기 이상 정확하게 명령을 수령하고 숲 속에서 무섭도록 빨리 움직이는 엘프들은 지휘관으로서 참으로 지휘할 맛 나는 유닛들이었다...

“외곽진지에서 보고! 적 보병집단이 전진대열을 갖추고 접근중입니다!”

엘븐하임 안에서 엄청난 폭음과 충격이 일어나고 세계수가 흔들리자 그것을 황제의 승리로 인식한 인류의 제후들이 부하들을 몰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동맹에게 있어 중장기사는 곧 승리의 다른 이름이었으니, 그 거대한 철거인이 벌써 두 기나 박살나 나자빠져 있다고는 상상도 못 하고 황제의 승리에 편승하기 위해 약삭빠르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현장 최선임에게 맡긴다! 최대한 가까이 끌어들여서 한꺼번에 퍼부어! 방어마법이고 뭐고 싸잡아서 날려버려!”

<< 옛써! 전원 내 신호를 기다려! 신호하기 전에 쏘는 놈은 죽여버린다! >>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믿음직했다. 엘프 레인저들 상당수를 숲 내부로 이동시켜버렸으니 믿을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숲 밖은 맡겨놓은 채, 숲 안의 싸움도 계속되고 있었다.

oo0oo

황연호는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장판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세계수 꼭대기의 마력 진공 구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 좁은 곳에서만은 개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보고하자마자 그의 대기장소는 여기가 되었다.

- 최악의 경우에는 황연호 소위 자네의 안전과 귀환을 가장 중시하도록.

정작 함부로 열었다가는 미묘한 마력 진공이 깨지고 난장판이 될 것 같아서 차마 개문을 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게다가 저 아래쪽에서는 나름 얼굴 알고 있는 동갑내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으므로 아직 순진한 황연호로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황연호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을 엘븐하임 제3왕녀 일레나 일슈린데 공주가 살짝 몸을 다가붙이며 속삭였다. 작전 시작 전까지는 엘프 레인저의 리더인 하이어 요안나가 성숙한 여성미를 흘러넘치게 하며 황연호에게 붙어 시중을 든다며 유혹했었다가, 지휘소로 복귀하자 대신 엘븐하임의 실질적인 군주인 그녀가 직접 와서 마치 소녀에서 여자로 변해가는 듯한 풋풋한 요염함을 풍기고 있었다.

“우리 엘프들을 믿어주세요. 인간분들을 꼭 지켜낼 겁니다.”

“아, 네...”

그건 그것대로 죄책감이 느껴지지만. 그리고 잠시 후, 더이상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게 되었다. ‘황제’가 또다시 뛰어올라 그와 일레나가 머물고 있던 세계수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가장 뒤쪽에서는 두 대가 부딪쳐 박살나며 나가떨어졌지만 세계수보다 높이 솟아올랐다가 내리꽂히는 거대한 쇳덩어리의 위압감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태양을 등지게 된 ‘황제’가 세계수 꼭대기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가 점점 커져간다. 인간의 천 배 거대한 강철 거인이 내리꽂힌다ㅡ

- 꺼어어엉!

“!?”

그것을 세계수의 가지 하나가 휘둘려져 후려쳤다. ‘황제’를 감싸고 있던 마력도 굉장한 출력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마력이 세계수를 휘감아몰아친 것을 느낀 황연호가 돌아본 바로 옆에서, 일레나 공주가 눈을 감고 세계수와 동화한 마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황제를 뒤이어 뛰어내린 친위기사들도 마찬가지, 세계수의 가지가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껑! 쾅! 까드득! 와장창! 하늘에 거대한 폭음을 연속으로 울려퍼트렸다.

하지만 뛰어든 중장기사가 충분히 많았다. 마지막 한 기를 놓쳤다.

<< 용 서 못 한 다 ㅡㅡㅡ!!! >>

숭배하는 주군과 존경하는 선배들이 장난감 인형처럼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가장 뒤에서 바라보던, 게다가 자신의 뒤에 있던 두 명은 난데없는 공격으로 파괴당해버린 친위기사단 최신참 사무엘 로빈슨 기사는 휘둘러지는 가지의 방벽을 뚫고 온 힘을 다해 포효하며 전력을 다해 거검을 내리찍었다. 검이라지만 중장기사에 맞춰 열 배 길기에 쇠기둥에 가까운 그것이 세계수 최상부에 건방지게 서 있는 엘프년과 엘프에게 홀려서 인류를 배신했다는 배신자 놈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리고 일레나에게로 칼날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기둥이 쓰러져오는 것 같은 위급상황 앞에서 개문사 황연호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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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국가를 비롯한 조직 또는 인명, 사건 등은 모두 상상에 기반한 것이며, 현실에 유사한 사례가 존재한다면 이는 모두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 댓글과 감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