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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부장
작품등록일 :
2017.12.16 21:04
최근연재일 :
2020.07.12 23:27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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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8,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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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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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엘프의 숲은 넓다.


인류전쟁이 일어나기 전, 엘프가 인간을 닮아가며 평범하게 적대하던 때, 한 인간이 엘븐하임을 방문했다.


그가 말하기를,


첫째 날, 당혹스러워진다.


둘째 날에는 위압된다.


셋째 날이면 숲에서 나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고,


여드레째에는 숲 바깥의 세상이 잊혀진다.


그가 물었다. “이 숲은 세계의 반 정도 됩니까?”


엘프가 답했다. “숲이 세계인 것이 아니다. 세계가 숲이다.”


- 황제의 경험담


***


황제의 뒤를 이은 2위 실력자였던 베루스 공작이 자신의 주력부대인 12군과 함께 사라지고, 뒤이어 인류동맹의 상징 중 하나인 제4군 용기사단이 소멸해버린 충격은 컸다. 물론 하루하루 세금뺐기고 징병당하는 대상일 뿐인 평민들에게야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세력의 합의체인 인류동맹에서 강력한 상위 실력자들이 사라지자 그 잔해를 한조각이라도 뜯어먹기 위해 이전투구가 일어난 것이다.


물론 그것을 황제가 찍어눌렀다.


인류동맹 수도 카이세리아. 수없이 많은 아인종 노예와, 아인종들을 노예라고 비웃을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인간 하층민들의 피땀으로 쌓아올린 이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는 눈에 보일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다. 그것의 발원지는 카이세리아의 중심인 황제궁의 대회합실이라 할 것이었으니, 거대한 원탁에는 두 명 분의 자리가 비어 마치 빗의 이빨이 빠진 듯한 어색함을 참석자들에게 내보였다.


비록 황제로 인정되고 있으나 원탁의 한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인 인류동맹의 수장, 황제는 그 빈 자리의 주인들이 남기고 간 영지며 재산이며 권리와 권력을 노리는 실력자들을 노련하게 제어했다. 하위 실력자들을 응집시켜 상위 실력자들을 견제시키고, 하위 실력자들의 연합에 내분을 일으켜 성장을 방해한다. 그리고 베루스와 그라니아의 유산을 자신이 관리하여 나누어준다. 누구에게 줄 것인가는, 황제가 정한다.


“과연, 인간은 숲 속에서는 엘프를 당할 수 없는가. 어떻게들 생각하시는가?”


그랬기에 중보병으로 구성된 12군은 나무를 베고 숲을 불태우며 전진하였던 것이고, 숲 속에 숨은 엘프를 찾기 어려운 용기사단은 정찰 삼아 투입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평지라면 엘븐하임의 왕성이 보일법한 곳까지 진군했던 12군과, 그저 정찰 목적이었던 4군이 괴멸 정도가 아니라 소멸해 버렸기에 그들의 유산을 받아먹고는 싶지만 자신의 세력을 줄이기는 싫은 실력자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사실 엘프 자체가 상당히 많이 포획되어 시장에 풀렸기에, 엘븐하임을 정복하고 보물을 약탈하고 남은 엘프들을 노예로 팔아치우더라도 그렇게까지 큰 수익이 없다는 것도 있다. 문제는 경제야!


서로 딴청을 피우며 책임을 떠넘기자 황제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맺힌다.


“흐으음... 허면 나의 벗 베루스와 그라니아의 복수는 누가 이루어줄 것인가. 오, 그러고보니 베루스의 아들이 군을 재건하여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던데, 베루스의 벗으로서 대부가 되어 후원할까 하오.”


대놓고 베루스의 어린 자식을 배후조종해 그의 세력을 먹어치우겠다는 말에 실력자들이 발끈한다. 그렇잖아도 인류동맹 최대의 세력을 지닌 황제가 2위 실력자인 베루스의 유산을 삼켜버리면, 이하 실력자들은 더이상 실력자가 아니라 신하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짐을 빼앗아 짊어질 요량은 없으므로 알맹이 없는 대화만 오가던 도중...


“그런데, 실은 우리의 젊은 베루스가 조언을 청한 바가 있는데,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오.”


황제는 카드를 들이밀었다.


요약하자면 인류동맹의 귀족층 곳곳에서 사육되고 있는 엘프 노예들을 모아다가 인질극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비인간 종족들이 인류동맹에 맞설큼 강성하던 때는 드물지 않게 사용하던 방법이었으나, 엘프가 그 대상이 아니었던 것은 그만큼 손쉬운 상대였던데다, 다들 내놓고 싶어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이번에는 판돈이 꽤나 컸다. 엘븐하임의 엘프들이 눈앞에 있는데다 베루스와 그라니아의 유산 배분에 한몫 낄 기회였으니, 위험에 뛰어들지 않고 내놓은 엘프만큼의 엘프를 돌려받고 거대한 유산의 권리를 약속받은 실력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 및 휘하 세력자들의 것을 회수해 젊은 베루스에게 제공했다. 실패해도 큰 손해는 없고 성공하면 확실한 이익이 보장되는 지혜로운 투자라고 할 것이다. 그 투자를 관리하는 것이 황제라는 사실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


별기군 주둔지에서 가장 안전한, 탄약고 안쪽의 개인실.


별기군 2연대장 김현수 대령에게 있어 황연호 소위는 매우 곤란한 상대였다. 조선제국에서도 황족들이 군에 입대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지만 대부분은 고급 지휘관으로서 그와는 머나먼 병조나 중앙작전사령부 정도에 처박혀 있으니, 대령 따위가 자기보다 하급자인 황족을 볼 일은 없었던 것이다.


(여담으로 조선의 동맹인 영국 왕실의 왕자들은 기초군사훈련 받을 때 “내가 왕년에 왕자를 걷어차봤는데 말이지”하고 싶은 조교들에게 굴려지다 못해 구석에 짱박혀 많이 운다고 한다.)


게다가 황연호 소위는 단순한 부마 후보 정도가 아니라 조선이 감추어 온 비장의 무기였으며, 만일 2연대가 - 정확히는 그가 -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땅에 세울 새로운 조선의 부왕이 될 몸이었다. 그런 젊은이를 대하는 것은 고아원 출신 대령 나부랭이에게는 무거운 짐이었지만, 이번 건은 실로 중요한 일이었기에 ‘접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은 괜찮은가? 혹시 무리라도...”


“죄송합니다. 그것 관련해서는 외부에 발설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날씨와 함께 가장 진부한 인사가 꽤 뾰족하게 찢겨버려서 민망해졌다. 김현수 대령이 헛기침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밀어내고 말을 이었다.


“엘븐하임의 요청이 매우 집요하고 필요성이 높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일세. 관련하여 귀관의 의사를 알고 싶은데...”


그렇다고 황연호 소위의 태도가 오만하거나 건방진 것도 아니다. 그다지 군인답지는 않지만 한참 어린 연소자로서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있다. 그는 김현수 대령이 직접 전달한 보고서를 읽으며 조금 얼굴을 붉혔다.


“엘프들도 마음고생이 심하겠네요.”


엘븐하임은 끈질기게 별기군 장병들과 엘프 간의 ‘교제’를 청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군기를 핑계로 금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쥐잡듯 잡는다고 해도 병사들 하나하나를 다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적지 않은 PTSD 환자들 - 의무관은 2연대 거의 전원이 위험하다고 판단중이다 - 에게 간호를 자원한 엘프들의 섬세한 보살핌은 큰 도움이 되고 있으니, 결국 김현수 대령은 이를 승일할 수밖에 없겠다고 판단중이었다.


“...그런데 왜 이걸 저한테 주십니까?”


소위 따까리에 사실은 사관학교는 커녕 기초군사훈련조차 이진 옆에서 경복궁의 별기군 교관들이 눈쌀 찌푸릴만한 수준으로 알콩달콩 기본만 배운,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체제의 세뇌를 받아 기초사상이 ‘나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그만’인 황연호로서는 왜 이걸 자신에게 보여주는지 짐작도 못할 노릇이다.


물론 김현수로서는 이자식이 언제까지 말 돌릴거야 싶지만.


“으음... 무어랄까, 엘븐하임 측에서 장병들에게 엘프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니, 귀관의 취향은 어떤 여성일지 물어둘까 해서 말이지.”


말했다! 같은 고아원 출신인 후임들하고, 그리고 사석에서라면 시시덕거리며 취향이 뭐냐 어디 갈거냐 웃을 수 있는 내용일 것을, 황족이나 다름없는 부마 후보에게 말해버렸다...! 이제서야 대충 감을 잡은, 하지만 조선인들의 계급제도적 사상을 갖지 못한 황연호는 이게 대령이 알아보고 다닐 문제인가 생각하면서도, 평범하게 대답했다.


“저는 지아 누나 약혼자인걸요. 됐어요, 뭐.”


“...진짜로? 이 세상에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가까운 사람이 있어야 할텐데, 귀관은 좀... 사람 접촉이 적지 않은가.”


“누나가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주는걸요. 제 쪽에서 답장을 못 보내는 게 아쉽긴 하지만 참을 만 해요.”


“아, 음... 그, 그러면, 그래도 만약 도움이 필요하면 부끄러워 말고 언제든지 말하게. 귀관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니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치 보고를 부탁하지.”


군사부일체라 하여 기본적으로 황실에서 관리하기에, 고아원 출신이 오히려 부모 있는 아이들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까지 하는 곳이 조선제국의 고아원이다. 부모 있는 아이들이 출세 같은 거 때려치고 하사금으로 놀아버리는 풍조가 문제지만, 교육법과 황령에 따라 엄격한 교육이 주의 깊게 행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강력한 충성교육을 받고 그 성과를 인정받은 엘리트인 김현수 대령에게 이러한 천박한 행위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그는 20년 가까운 군 생활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망신스러운 부끄러움에 달아올라 있음을 짐작하였으니, 김현수 대령은 팔자에 없는 삐끼질에 실패하고 탄약고를 나서게 되는 것이었다.


“여자라. 거 참...”


황연호에게 있어 ‘높은 아저씨’로 느껴질 뿐 군인적 계급격차를 느끼지 못하는 ‘연대장님’이 나간 뒤, 황연호는 중얼거리며 손 위에 통신용의 작은 문을 열었다. 출발지는 여기, 도착지는 조선 한성 경복궁. 그러나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조선 쪽에서 이쪽으로는 이동할 수 있지만 그것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의 옆방에는 대형 게이트가 조선(정확히는 만주에 새로 만들어둔 보급용 기지)에서 보내진 물자를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총과 대포와 폭탄과 음식과 물과 심지어는 별기군 정보부에서 주의 깊게 검열한 조선제국의 예능프로까지 온갖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 때마다 문이 일렁이고 개문사만이 느낄 수 있는 진동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진동 와중에 그의 손 위에, 저쪽에서 포착했다는 의미로 보낸 신호가 툭 떨어졌다.


“연결 성공. 장, 단, 장, 단, 단...”


황연호는 주어진 연락표에 따라 문을 길고 짧게 여닫았다. 시르바나에서 조선으로는 아무것도 보낼 수 없지만 단 하나, 이런 방식으로 신호만은 가능하다. 문을 여닫는 데 시간이 들기에 문장 하나 보내는 데만도 하루 종일 걸릴 판국이라 사전에 약속한 신호로만 보고해야 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이번 내용은 부상자 수와 치료 가능성 관련이고, 현지 세력과 밀집도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전송 끝.”


잠시 기다리자 저쪽에서 그의 신호를 기록한 작은 쪽지가 날아들었다. 그것을 보낸 것과 비교해 이상없이 전달된 것을 확인한 뒤, ‘이상 없음, 통신 종료.’의 신호를 보냈다. 단어 열 개 정도의 단순한 내용인데도 두 시간도 넘게 걸려 황연호는 꼬르륵 소리를 낸 배를 잠깐 쓰다듬었다. 슬슬 저녁식사 시간이긴 한데, 아직 통신이 끝난 것은 아니다.


퉁, 퉁, 퉁.


저쪽에서 통신종료 신호가 왔다. 개문사만이 알 수 있는 느낌, 문 저편에서 그의 신호를 읽는 것은 조선의 개문사인 월하옹주 이진, 그의 약혼녀였다. [[수고했어.]] 세 번 느리게 울린 파동은 그녀가 보낸 것이었으니, 개문사로서의 황연호는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맡는 것처럼 - 아니 그보다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곁에 있다.


그녀는 개문으로 이어진 바로 곁에 있다.


숨소리보다 체향보다 피부의 열기보다 진하게 느껴진다.



기분탓인지 오늘 그녀의 느낌은 조금, 야했다.




*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국가를 비롯한 조직 또는 인명, 사건 등은 모두 상상에 기반한 것이며, 현실에 유사한 사례가 존재한다면 이는 모두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 댓글과 감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다음화가 설명충이 되어가고 있어 곤란합니다OTL

설정 파트 따윈 필요없어! 이걸 내용에 녹여넣어야 한다구!(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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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거인의 전장 +1 20.06.27 87 3 13쪽
65 포격전 20.06.26 92 2 12쪽
64 작은 것들의 전장 20.06.26 68 2 15쪽
63 (2년만에) 전쟁, 재개 +1 20.06.26 84 2 17쪽
62 세계수 +4 18.10.28 210 4 11쪽
61 중장기사, 마탑에 서다 +1 18.10.14 290 3 11쪽
60 개문강습 +1 18.09.26 200 5 9쪽
59 첩보전 +5 18.07.09 255 4 12쪽
58 이종간 연애의 곤란함 +1 18.07.07 242 2 12쪽
57 외전~지금 중원, 그리고 일본에서는~ +1 18.07.03 228 4 16쪽
56 외전~지금 중원에서는~(2) +4 18.07.03 201 4 13쪽
55 외전~지금 중원에서는~(1) +1 18.07.01 217 3 11쪽
54 외전~지금 일본에서는~ 18.06.30 234 3 16쪽
53 지금 조선에서는 18.06.25 268 4 14쪽
52 합리와 비합리 18.06.24 187 5 13쪽
51 ‘인간’ 대 인간 18.06.23 181 4 10쪽
50 조각, 영혼의, 미친. 18.06.22 204 5 10쪽
49 ...나무와 나뭇잎 18.06.18 168 3 11쪽
48 이성적인 판단 18.06.17 196 3 10쪽
47 숲과 나무와... 18.06.16 160 3 10쪽
46 속이고 사랑하고 먹고 18.06.15 172 4 13쪽
45 유혹하는 꽃 18.06.10 196 4 8쪽
» 콘택트 18.06.09 192 4 12쪽
43 전투가 끝난 뒤 +1 18.06.03 22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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