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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부장
작품등록일 :
2017.12.16 21:04
최근연재일 :
2020.07.12 23:27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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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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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글자수 :
408,729

작성
18.06.1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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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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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나무와 나뭇잎

DUMMY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는 나뭇잎을 떨군다.

나무는 나뭇잎을 설득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 속이지도 않는다. 그저 나무라는 전체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최적의 선택을 할 뿐이다.


엘프들은 감성과 욕망을 지니고 있으나 이성이 그것을 지배한다. 이들은 위기에 처하면 집단의 최대 다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고 약자는 강자를 지원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위기라면 약자가 알아서 생명을 포기하고 자원을 최소한의 강자들에게 집중시킨다. 겨울이 다가올 때 나무가 잎을 떨구듯이.


따라서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엘븐하임은 합리적으로 엘프의 문명을 파괴하려는 인류동맹에 맞서 저항하며 탈출을 시도했고, 인류동맹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 엘프 포로들은 합리적으로 최선의 방법을 택해 인간에게 순종하며 동족들에게 그 정보를 전달했다. 같은 정보를 습득한다면 모든 엘프는 같은 결론을 내리고 살아남게 될 것이었다.


ㅡ그리고 인류동맹에 대한 정보를 별기군과 비교한 일레나 공주가 결론을 내렸다.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엘프가 가장 많은 정보를 지니고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모든 엘프가 인정하고 그녀의 결론에 따른다.


인간이 보기에는 극단적인 전체주의의 완성체. 인간이라면 조직의 능력 대부분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에 투입되지만 엘프들 사이에서는 인간 집단에서 일어나는 충돌이나 경쟁이 없다. 인간을 흉내내어 만들어진 엘프의 집단은 본질적으로 효율 면에서 인간의 조직을 아득하게 능가하니, 인간이 이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인류동맹을 맺어 멸절전쟁을 걸어온 것이 설레발만은 아니라는 증거라 할 것이다.


일레나 공주는 결정했고, 그 결정을 요안나에게 전달한다. 그것은 그녀가 사촌언니에 해당하기 때문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녔기 때문도, 레인저리더라는 지위에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요안나가 별기군의 장군과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진에 포로로 잡혀있는 동족들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명령하시면 즉시 마법을 사용하여 자폭하겠습니다.”


물론 김현수 대령으로서는 기겁할 내용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


숲 속에서는 대답이 없다. 필리푸스 베루스 차기 공작의 젊은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직 투구와 땡볕에 익숙해지지 않은 얼굴인지라 위엄이 조금 부족하다.


그는 행군하는 동안 귀찮은 노인네들에 대해 자신의 엘프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여 전투 전에 인질극이 아니라 설득을 시킨다는 제안을 간신히 관철시켰다. 그의 부친인 전대 베루스 공작이 매우, 아주, 무척 엘프 노예를 좋아했기에 젊은 베루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엘프들에 익숙했고, 그녀들이 인간에게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 대답이 없는 거야?’


그는 이 설득으로 황제의 제안조차 뛰어넘는 성과를 이루어 후계자의 자리를 확실히 하고 아버지의 유산을 지킬 참이었다. 아버지 베루스 공작과 그렇게 치열한 음모전을 펼쳐왔으면서 단숨에 자신을 아버지로 생각하라느니 하는 황제의 낯짝에 샌들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조차 잘 견디고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전력을 모아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엘프들에게서 대답이 없다.


‘뭐 하는 거야, 바보년들아! 빨리 대답해!’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는 듯한 마법사의 눈치를 젊은 베루스는 모른 척하며 숲을 노려보았다.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군의 주력이 황제의 마법사들인 이상, 전투에 들어간 뒤 항복을 받아서야 의미가 없다...!


간신히 표정을 굳혀 안달복달하는 마음을 감추고 있었기에 뒤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


- 떴다. 기다려라.


포반장 성지훈 중령이 직접 사격을 관제하여 보고하며 타이머를 읽었다. 가로세로 1km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 밀집한 인류동맹 12군의 1만 명을 항해, 2연대 포병대 중 기존 포반장들이 맡고 있는 포반만 골라 뽑은 6문이 포탄을 퍼붓는다.


- 착탄 8, 7, 6, 5...


그 첫 발이 병사들의 꿈도, 희망도, 욕망도, 의지도, 용기도 아무런 관계도 없이, 냉혹하게 폭발하기 3초 전.


<< 지금! >>


요안나 미레임 여사가 12군 진지의 엘프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녀들은 어째서인지도 모르는 채 일제히 밀착해 엎드리며 가장 작은, 그리고 단단한 방어마법으로 자신들을 보호했고ㅡ


인간들이 그것을 돌아보기도 전에 수십 발의 고폭탄이 최적 고도에서 폭발하며 수천 개의 파편을 쏟아부었다.


>>>


“...! ,! ㅡ!!!”


“ㅡㅡㅡ!”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포탄이 지나쳐간 곳의 병사들뿐이고, 포탄이 폭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그 목표에서 벗어난 병사들뿐이다. 그랬기에 신생 12군의 대부분 병사들은 자신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


참호 속에 있는 것도 엄폐물 뒤에 숨은 것도 심지어 엎드린 것조차 아닌 우뚝 선 표적이기에 포탄의 살상효율이 극대화된다. 첫 폭발 순간 12군 병사들의 절반이 폭압에 짓눌리거나 파편에 찢겨 즉사했고, 제2격, 제3격이 떨어질 때 즈음엔 생존자는 천 명에도 지나지 않았다. 그들 천 명도 자기 자신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창과 방패를 버리고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신세였다.


누군가는 폭압에 안구와 고막이 터져 비트적거리며 걷는다.


누군가는 신의 이름을 외치며 무릎을 꿇었다.


누군가는 전우의 사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머리가 깨졌다.


누군가는 찢어진 배에서 흘러나온 내장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 비명은 폭음에 휩쓸려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폭음은 들리지 않는다. 말을 타고 있었기에 조금 더 일찍 파편을 한 발 맞고 나뒹구는 젊은 베루스의 눈 안에 그 모든 모습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느리게 천천히 박혀들었다. 그리고 간신히 모은 병사들이 신의 분노에 휩쓸린 것처럼 죽어가는 너머에, 엘프들이, 그 충성스럽던 엘프들이 인간을 버리고 자신들만을 방어하는 모습이 있었다.


‘어째서?’


젊은 베루스는 생애 마지막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고 죽었다.


***


“이게 대체 뭐야!?”


마탑의 마법사들은 방어진 안에서 주변 병사들이 몰살당하는- 아니, 해체당하는 광경에 기함했다. 그나마 엘프와 거리가 가깝고 성지훈 중령이 그래도 좀 엘프들과 떨어진 곳에 포격을 집중시켰기에 의식적인 것도 아니라 반사적으로 펼쳐진 방어마법이 견디고 있을 뿐, 후두둑 쏟아지는 파편이 마법진에 충돌하는 파공이 공중에 수백 개씩 울려대고 있었다.


“도, 도사님! 도와주...!”


마력에 따라 다르지만 화살 한두발 정도를 막는 것이 한계인 제자급들은 방어마법에 충격이 포화되어 파괴되는 꼴을 자기 눈과 마력감지력으로 질척하게 즐긴 뒤 죽었다. 공포를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고 마법을 사용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자동장전장치를 이용한 3연사 TOT 포격, 인류동맹의 사람들로서는 영원히 이어지는 듯한 신의 분노가 끝났을 때, 엘프를 제외한 인간 중에도 의외로 수천 명 정도는 살아남아 있었다. 포격이란게 워낙 확률적이라 그렇다. 그러나 그 중 상처가 없는 인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몸을 일으킨 인간은 단 한 명 뿐이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엎드려 벌레처럼 웅크리고 있던 늙은 마법사가 고개를 든다. 아직도 땅이 흔들리는 것은 세반고리관이 뒤흔들렸기 때문. 폭풍우치듯이 땅이 흔들리고 있어서 그는 엎드린 채 황망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마탑의 제3도사인 자신에 비하면 장식품에 불과했지만 인간의 위엄을 장식하기엔 충분했던 1만 명의 창칼을 든 병사들이 시체가 되어 널부러지거나 곧 시체가 될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는 그 모습이 무척 낯익다고 생각했다 - 자신이 마법을 퍼부었던 아인종이나 반란군들에게서 보았었기에.


“세르보 군...! 드글라 자매!”


뒤이어 흔들리는 시선을 돌려보지만 마탑의 동료나 제자들마저,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일단 마법방어가 파쇄될만큼 충격이 중첩된 시점에서 체내의 마력이 진탕되어버리기에, 그가 살아있는 것은 마법사들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그들이 방패가 되어주어서였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맹렬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이럴 리 없다.


인간 중에서도 고귀한, 진리를 깨닫고 권능을 지배하는 우리들은 이래서는 안된다!


“감히, 감히이이이이!”


순간 손이 미끄러져서, 간신히 일으키고 있던 상체가 푹 꺾이며 흙바닥에 얼굴을 들이받았다. 굴욕적이었다. 그리고 숲에서는 야만스럽고 비열한 엘프들이, 흉칙한 무기를 들고 인간을 죽이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 용서- 못한다! >>


마력을 몸 안에 쌓는 마법사는 늙을수록 테러블해진다. 수백 년을 사는 엘프보다 더 정교하게 마력을 조종하고 마법을 체계화해 온 늙은 마법사의 몸 안에서, 그의 분노와 충격과 그리고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공포에 의해, 마력이 맹렬하게 순환하다가ㅡ


<< 파, 파, 파파파파ㅡ >>


폭발했다.


<< 파아아앗! 쿠쿵! >>


***


그 순간 마탑의 제3석이었던 그르보 도사의 육체는 갈기갈기 찢겨 사라졌다.


우선 마력이 급격하게 확산하며 영향받는 모든 것을 밀어내어 진공 상태를 만들었고, 밀려났던 공기와 마력이 모여들어 충돌하면서 폭음이 울려퍼졌다. 그것은 귀와 몸으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력으로도 느낄 수 있는 충격이었다. 노예 엘프들이 자폭했다 해도 이것의 반의 반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니, 그것이 마력의 차이였다. 이 폭발에, 멀리서 날아든 별기군 120밀리 박격포탄의 파편 몇 개 정도는 어떻게 견뎌낸 엘프들의 마법방어가 홱 벗겨지고 마무리를 하기 위해 숲에서 나왔던 엘프 레인저들이 별기군에서 훈련받은대로 납작 엎드려야만 했다.


<< 휘이이이. 휘이이잉. 휘이이이이! >>


뒤이어 마력에 의한 폭풍이 잠시 주변을 휩쓸었고, 죽은 12군 병사들의 영혼은 그 폭풍에 휘말려들어 갈 곳으로 가지 못하고 산산히 부서졌다. 죽음, 충격, 공포, 고통으로 가득한 영혼들이 폭풍에 불길을 더한다. 그리하여 나타난 그것은-




*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국가를 비롯한 조직 또는 인명, 사건 등은 모두 상상에 기반한 것이며, 현실에 유사한 사례가 존재한다면 이는 모두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 댓글과 감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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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포격전 20.06.26 92 2 12쪽
64 작은 것들의 전장 20.06.26 68 2 15쪽
63 (2년만에) 전쟁, 재개 +1 20.06.26 84 2 17쪽
62 세계수 +4 18.10.28 210 4 11쪽
61 중장기사, 마탑에 서다 +1 18.10.14 290 3 11쪽
60 개문강습 +1 18.09.26 200 5 9쪽
59 첩보전 +5 18.07.09 255 4 12쪽
58 이종간 연애의 곤란함 +1 18.07.07 2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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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외전~지금 중원에서는~(1) +1 18.07.01 217 3 11쪽
54 외전~지금 일본에서는~ 18.06.30 23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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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속이고 사랑하고 먹고 18.06.15 172 4 13쪽
45 유혹하는 꽃 18.06.10 196 4 8쪽
44 콘택트 18.06.09 191 4 12쪽
43 전투가 끝난 뒤 +1 18.06.03 22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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