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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渗

전능하신 당신들의 적대자가 말하니.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구삼(久渗)
작품등록일 :
2024.01.11 06:45
최근연재일 :
2024.03.07 07: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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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5
추천수 :
249
글자수 :
298,498

작성
24.01.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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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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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이상한 티파티 (1)

DUMMY

하지만 녀석은 그저 하품을 한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태연한 척 녀석을 지나쳐 아직 남아있는 다른 깨끗한 웅덩이를 찾았다.


“후식으로는 허브티.”


일단 캠핑 스킬을 활용해, 고기를 굽던 모닥불 앞에 작은 텐트를 소환했다.

그리고 허브티.

굳이 요리 스킬을 이용해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냥 인벤토리 안에 있는 컵 하나를 꺼낸 다음, 뜨거운 물을 담아 가져와 그 위에 허브 잎을 띄우면 되니까.


차가 우러날 동안 텐트 안에서 잠시 기다리니 이번에도 새끼용이 어슬렁거리며 모닥불 앞으로 왔다.

어미는 그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 더 이상 나를 위협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다시 코를 벌름 거리는 용.

남은 고기 향을 맡는 거라 생각했는데 녀석의 눈은 내 찻잔을 향해있다.


용이 차도 마시나?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 더 남은 허브 잎이 없었다. 고기를 구울 때 위에 듬뿍 듬뿍 뿌렸고, 용뼈 사골탕을 만들 때도 거의 남은 대부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딱히 차를 우려낼 잎도 없고.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일단 나는 찻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허브가 더 없어.”


그런데 용이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거린다.

음? 뭐지?

설마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아니, 뭐 그건 상관이 없다.

어차피 이건 게임이니까.

판타지 게임에 용이 말을 하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묘하게 이 현실적인 환상 속에서, 용 특유의 길쭉한 두개골과 구강구조 덕분에 쉽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희한했다.


그걸 보면서 조심스럽게 찻잔을 들고 훅훅 불며 마실 준비를 하는데······.


하마터면 나는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내 앞의 그 새끼용의 몸을 푸른 기운이 감싸더니 10대 소녀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그걸 보더니 어미 용도 순간 벌떡 일어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상위 등급의 용이 인간형으로 변신한다는 건 사실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면, 게임을 했다면 아주 익숙한 클리셰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용이 인간형으로 변했다는 것 자체에는 사실 크게 놀랄 것은 아니었다.

물론 방금 전까지 새끼라고 할지라도 제법 큰 용이었던 녀석이 작은 소녀로 변한 것을 보고 아예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찻잔까지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이 녀석의 변한 모습이었다.

옷은 걸치지도 않고, 그 푸르스름한 기운이 그저 중요 부위를 아주 살짝 가리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아니, 19금 게임이었던 건 아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 접속 장치에 대한 규제 때문에 19금이었던 것이고 당시의 컨텐츠에는 이 정도의 장면은 없었다고.


그 꼴로 나타나서 뭔가를 말하는 용녀, 아니 소녀.

그런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뭐지?

분명 서비스되던 각국의 언어로 컨텐츠 텍스트나 음성 자체는 현지화가 되었었는데.

알 수 없는 언어.

독일어?

비슷한데 독일어는 아니다.

마치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뒤섞은 언어 같다.

알 수 없는, 번역되지 않은 언어. 언어. 언어라······.


잠깐. 에이. 설마.

필사(Inscription) 스킬의 40레벨, 고대 언어학 특성이 이것 때문이었어?


그건 그냥 마법책 제조 속도를 올리는 패시브로 알았는데······.


뭐라고 계속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그 순간 어미 용마저 푸른 기운으로 감싸지더니 그 기운이 무서운 속도로 이곳으로 다가왔다.

그 기운이 옅어지며 나타난 모습은 역시 인간형.

그것도 아주······, 음. 나올 곳 확실히 나오고 들어갈 곳 확실히 들어간 엄청난 몸매의 여자였다.

다행인 것은(아니, 다행인가?) 옅은 푸른 기운으로 나체를 가린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그 푸른 기운과 같은 색의 은은하고 빛나는 색, 황금 장식이 화려하게 달린 드레스를 걸쳤다는 것이다.


그렇게 변한 어미용은 딸이 머리를 가볍게 톡 때리며 잔소리하듯 그들의 언어로 뭔가를 말했다.

그리고 손짓을 하자 마침내 딸의 몸에도 그녀의 것과 비슷한 모습의 옷이 걸쳐졌다.


그리고 그녀가 놀랍게도 이제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다.


“내 딸이 그 음료를 마시고 싶어 한다.”

“이거? 허브차?”

“그래.”

“음······.”


나는 잠깐 그녀들의 표정을 살피다가 일단 허브차를 건넸다. 딸은 따뜻한 컵을 쥐더니 무척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내 옆에 찰싹 붙어 앉더니 컵을 호호 불며 뜨거운 차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어미용이 내게 물었다.


“더 없나?”

“재료가 떨어져서.”

“흠. 이것은 어떤가?”


그녀가 가죽 가방 하나를 소환하더니 내 앞에 던졌다.

나는 무심결에 그걸 뒤졌다.


“어? 이건······.”


가방을 뒤지자, 가방 위로 반투명의 상태창이 겹쳐졌다.


----------

작은 여행용 가죽가방 (5/8)

소유자 : 불명

가방의 내용물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이건 분명 어떤 플레이어의 것일 텐데.

소유자 불명?


일단 가방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아이콘화 된 내용물이 허공에 나타난다.

썩은 음식 두 덩이, 그리고 용의 풀 세 덩이.

한 칸을 차지하는 한 덩이에는 10장의 풀잎이 겹쳐진 것이었다.


나는 레시피를 열어 용의 풀을 이용하는 음료나 음식 레시피를 찾았다.

그게 과거의 내 목적이기도 했고.


하나는 음식이 아닌 고급 연금술의 재료가 되는 용의 풀 농축액.

그리고 또 하나는 마침 이 자리에서 바로 만들 수 있는 말린 용의 풀 차였다.


그것을 선택하니 내 손 위에 있던 용의 풀이 바사삭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바짝 말랐다.

그런 나를 보는 어미 용이 물었다.


“마법사인가?”

“어······, 아니. 요리사인데.”


일단 나는 컵 두 개를 더 꺼낸 후에, 아직 뜨거운 물 웅덩이에서 물을 퍼낸 후 각각의 컵에 그 말린 용의 풀을 담았다.

그리고 어느새 허브티를 다 마신 새끼 용이 빈 잔을 내밀기에 그곳에도 물을 채워 넣고 말린 용의 풀을 넣었다.


살며시 위로 올라오는 향을 맡은 나는 저도 모르게, 오, 하는 소리를 냈다.

캐머마일과 비슷한 향이 났다.


그렇게 한 사람과 두 용이 조금 어색하게 모닥불 앞에 앉아 뜨거운 차를 홀짝였다.


어미 용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아수스를 죽인 거지?”

“아수스? 아, 그 인페르노 드래곤?”

“그래.”

“이름도 있구나.”

“어떻게 죽인 거지?”

“내······, 기술로?”

“기술? 어떤 마법이지? 그렇게 단번에······, 음식으로 변환을 시키다니. 나는 그런 마법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천년 동안이나.”


천년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풉, 하고 비웃을 뻔 했다.

천년은 무슨. 따지고 보면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게.

아, 뭐. 그게 너에게 부여된 설정이겠지.

그게 이 세상이다.


다만 나는 지금의 이 대화가, 그들에게 할당된 스크립트인지 아니면 정말로 각각의 AI가 있는 것인지 그것만이 조금 궁금했을 뿐이다.


“끝내주는 요리 마법이지. 음.”

“어쨌든······, 고맙다.”

“고마우면 나중에 저 불 좀 꺼달라고. 산에서 내려가야 하니까.”

“불은 끄지 못하나? 네 마법으로.”

“그런 마법은 없어서.”

“그럼······.”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이어 나오는 말은.


“너. 우리와 같이 살아라. 너의 음식. 아주 맛있었다.”


뭔 개소리야. 이 NPC 녀석들이. 뭐야. 설마 나 여기서 감금당하는 건가? 그러면 뭐······. 정말 싫지만 저 불길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일단 나는 거절했다.

그러자 어미 용이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나보고 저 불타는 나무 숲을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냐고 말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정 그러면 뭐, 불길에 뛰어들어 죽으면 그만이야.”

“뭐?”

“그럼 어차피 신전이나 신상 앞에서 다시 살아날 테니까.”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잔을 던져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너······, 데우스의 족속이냐?”


데우스. 아 맞다. 데우스의 피조물.

데우스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유명하잖아. 데우스 엑스 마키나.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게임을 하던 시절에는 데우스라는 캐릭터나 설정을 알지 못했다.


다만 적응 훈련기간에 들은 건데, 이제 NPC가 아닌 플레이어들은, 그게 현실에서는 죽고 그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이나 나같이 토끼굴을 들어온 사람의 캐릭터는, 모두 데우스의 피조물로 불린다는 설정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한마디로, 보통의 NPC들은 플레이어가 공격을 할 수 없고, 보통 특별히 공격당하는 일은 없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라도 죽으면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즉, 이 세상 안에서도 정말로 죽은 것으로 처리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죽음을 맞이해도 일단은 흔히 무덤이라고 부르는 신상 앞, 혹은 신전 근처에서 되살아난다.

물론 그것은 게임 상의 시스템적 측면이지만, 설정 상으로는 데우스의 피조물들만이 가진 특권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런 용들은 그 데우스라는 자를 적대한다는 뜻이겠지.


갑작스럽게 변한 어미를 보며 소녀 용이 겁먹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나 나는 이쯤 되니 이상한 오기, 혹은 허풍이 생겼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너는 적이다!”

“적이고 뭐고 밥만 잘 얻어먹고.”

“그건······.”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나는 매번 드래곤 사냥이니 뭐니 해서 플레이어들이 레이드를 뛸 테니 어쨌든 적대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미를 보면서 말했다.


“싸우려고? 그럼 뭐 그쪽이 방금 전 그······, 아수스? 그놈처럼 고깃덩이가 되거나 내가 죽거나.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조용히 차를 마시고, 내가 내려갈 길을 만들어주면 아무 문제없이 끝나는 거고.”


그런데 문득 그녀의 주변에 이상한 테두리가 보인다.

약간 짙은 주황색의 무언가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일반 서버 시절에 상대의 적대 상태를 보여주는 것과 비슷했다.


분명 RP서버에서는 그게 없었다고 했고, RP서버를 기반으로 하는 이 세계에서도 그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기능은 사라졌다고 했는데.


심지어 상대를 알기 전까지는 일반 NPC.와 유저를 구분할 수도 없는 세계가 이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저것이 보이는 걸까?


나는 무심코 내 옆에 앉은 새끼 용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몸에는 흰색에 가까운 테두리가 희미하게 보였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그녀는 완벽히 우호적인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직 머뭇거리는 어미 용. 나는 일어나서 그녀가 떨어뜨린 찻잔을 주워 들고 뜨거운 물웅덩이로 다시 갔다.

비어있는 내 잔에 물을 담은 후 그녀의 잔으로 흐르게 해 겉을 씻은 후에 물을 담고, 남은 말린 용의 풀을 다시 그 위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에게 말없이 건넸다.


불안해하는, 그리고 의심하는 눈길.

하지만 결국 그녀는 내가 건넨 잔을 받았다.


내가 자리에 돌아와 앉자, 그녀도 결국 앉는다.

짙은 주황색의 테두리는 이제 다시 노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중립상태.

나쁘지 않다.


그렇게 다시 말없이 우리는 차를 다시 마셨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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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거지 한스(1) 24.01.25 21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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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첫 복귀 (1) 24.01.24 206 7 13쪽
13 이상한 티파티 (2) 24.01.23 226 7 10쪽
» 이상한 티파티 (1) 24.01.22 268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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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적응 교육 (2) +1 24.01.18 25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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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리엔테이션 (3) 24.01.16 273 7 11쪽
5 오리엔테이션 (2) 24.01.16 291 6 11쪽
4 오리엔테이션 (1) 24.01.15 314 6 12쪽
3 위험한 아르바이트 (2) 24.01.15 326 6 9쪽
2 위험한 아르바이트 (1) 24.01.14 432 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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